00483 제 121 장 - 머천넷 =========================================================================
“네, 그렇습니다. 저희가 알기론 2천개 이상의 코어가 이소울 유저가 살고계신 행성 지구에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 머천넷에서는 이 코어들을 모조리 회수할 수 있도록 필요한 장비와 기술을 제공해드리겠습니다.”
“그럼 원하는 것이 이 코어들에 대한 사용권인가요?”
“그렇습니다. 코어는 그 자체로 무한의 에너지이자 동력입니다. 간단히 에너지충전 사업만 한다고 해도 저희 머천넷과 이소울 유저 양쪽은 엄청난 이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코어에 대한 소유권은요?”
“당연히 100%, 이소울 유저에게 있습니다. 저희는 사용권을 구매하던가 아니면 이소울 유저와 합작회사를 차려서 이익을 공유할 생각입니다.”
“으음, 그건 나쁘지 않군요.”
머천넷이 약속한 달콤한 제안에 소울은 회가 동했다.
정말 지금 말대로만 된다면 대박도 이런 초대박이 없었다.
그가 바로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콤파냐를 잠시 쳐다보며 고민을 하자 콤파냐는 슬그머니 새로운 제안을 꺼내들었다.
“이번에 코어에 대한 보고를 머천넷으로 해주시면 저희는 소울넷에 보고하셨던 전(前) 코어의 사용권을 이소울 유저의 이름으로 다시 되돌려드리겠습니다.”
“그런 일이 가능합니까?”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메인 보고자인 이소울 유저의 이름이라면 전혀 불가능한 일은 아닙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실 수 있습니까?”
“가능합니다. 저희 머천넷에 협상에 대한 전권을 위임해주시면 소울넷과 직접 협상을 해서 전 코어의 사용권을 받아오겠습니다.”
콤파냐는 두 주먹을 불끈 쥐며 확신에 찬 눈으로 말했다.
소울은 그의 그런 모습에 피식 웃음을 흘렸다.
“협상장면을 꼭 보고 싶습니다.”
“그렇게 해드리겠습니다.”
“선 지불, 후 보고 합시다.”
“이소울 유저의 제안을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콤파냐는 거침이 없었다.
그는 소울이 말하는 그 어떤 제안도 받아들일 마음의 자세가 되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에게 위임장을 써주자 곧 인터페이스가 살짝 변하더니 소울과 콤파냐의 사이에 홀로그램이 하나 떠올랐다.
“이곳은 어딥니까?”
“머천넷과 소울넷이 종종 협상을 하는 장소입니다. 서로 문제가 있을 때, 이곳에서 회의를 하거나 협상을 하지요. 머천넷에서는 수석 협상전문가인 네오를 협상대표로 올렸습니다.”
홀로그램은 아늑한 디자인의 회의실 전체를 보여주고 있었다.
머천넷 특유의 황금빛 유니폼을 입은 50대 신사가 회의실 안으로 들어와 앉았다.
그러자 얼마 후, 반대편에서 금발의 30대 중년 미남이 나타났다.
두 사람은 가운데 있는 하얀 탁자를 사이로 서로를 마주봤다.
“소울넷의 협상 대표가 등장했군요.”
“어? 저건 프란시스코 아냐?”
“아는 사람입니까?”
“당연히 알 수밖에 없지요.”
“이소울 유저와 보상을 협상했던 사람이 프란시스코였던 모양이군요.”
“네, 맞습니다.”
“쯧쯧, 쓸데없는 욕심을 부려서 스스로 곤란을 자초하는군요.”
“그런 겁니까?”
“보시면 자연히 알게 되십니다.”
소울은 콤파냐의 말대로 두 사람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하지만 협상은 정말 싱거우리만큼 빠르게 끝이 났다.
머천넷의 수석 협상전문가 네오가 테이블에 몇 가지 서류를 내려놓자 프란시스코는 바로 똥 씹은 얼굴로 표정이 변했다.
-이게 뭡니까?
-보고도 모르십니까?
-정당한 보상이었습니다.
-유저등급 설정 오류부터 코어 사용권 가격에 대한 불성실 고지 등 문제투성이입니다.
프란시스코는 억울하다는 듯 인상을 썼다.
-도대체 언제 이소울 유저와 연락이 닿은 겁니까?
-그걸 알려드려야 할 의무가 없습니다. 여기 이것은 이소울 유저로부터 협상에 대한 전권을 위임받았다는 내용이 적힌 위임장입니다.
-으음!
-이소울 유저는 자신이 보고한 코어에 대한 사용권을 구매하기로 결정하셨습니다. 즉시 사용권을 넘겨주시기 바랍니다.
-그건 곤란합니다.
-그게 소울넷의 공식입장입니까?
-아, 아닙니다.
-여긴 머천넷과 소울넷이 의논과 협상을 하는 공적인 자리입니다. 사적인 의견은 배제해주시기 바랍니다.
네오는 시종일관 차가운 눈빛에 고저(高低)없는 음성으로 프란시스코를 압박했다.
프란시스코는 잠시 생각을 해보더니 이내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무료양도는 안됩니다.
-그럼 가격을 제시해주세요.
-천만 소울넷 포인트로 하지요.
-백만 소울넷 포인트를 제시합니다. 이 제안을 수용하지 않으면 머천넷과 소울넷 양측의 협약대로 소울넷 측의 협상대상자 변경을 요청하겠습니다.
-끄응, 좋습니다. 받아들이겠습니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여기에 서명하시면 됩니다.
네오는 즉시 미리 준비한 계약서를 내밀었다.
프란시스코는 계약서를 확인하더니 곧바로 서명을 하고는 회의실을 빠져 나갔다.
네오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면서 회의실 밖으로 나가자 홀로그램이 꺼졌다.
“어떻습니까?”
소울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대단하군요.”
“이게 소울넷에서 받은 코어의 사용권입니다.”
콤파냐는 소울에게 뭔가를 내밀었다.
그러자 곧바로 인터페이스에서 알림음이 들려왔다.
-머천넷의 콤파냐가 코어 사용권을 보내왔습니다. 받으시겠습니까?
소울은 당연히 수락버튼을 눌렀다.
-코어 사용권을 획득하셨습니다.
그는 급히 인터페이스 상단에 반짝이는 아이콘을 손가락으로 눌렀다.
그러자 눈앞에 기하하적 무늬가 반짝이는 금빛 종이가 하나 떠올랐다.
읽어보니 자신이 소울넷에 확인하고 보고했던, 개성큐브를 가동시키는 코어가 분명했다.
소울의 입에서 참을 수 없는 웃음이 그의 입술을 비집고 흘러나왔다.
“하하하하! 이런 일이 가능하다니 정말 놀랐습니다.”
“조금 일찍 저희를 만나셨더라면 코어를 온전히 원하는 대로 사용할 수 있게 도와드렸을 텐데 유감입니다.”
“그게 무슨 뜻입니까?”
“현재 지구의 개성이란 곳에 에센스넷에 연결된 큐브시스템이 가동 중이더군요. 이소울 유저께서 큐브 사용권을 가지고 계시긴 하지만 당장 큐브시스템을 중단시킬 수는 없습니다.”
“그런…….”
소울은 콤파냐의 말에 살짝 실망했다.
코어 사용권을 받았는데 코어를 자기 마음대로 사용할 수 없다면 결국 있으나 마나한 것이다. 하지만 이어진 콤파냐의 말에 소울은 다시 한 번 환하게 웃을 수 있었다.
“그렇다고 소울넷이 앞으로 계속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엄연히 이소울 유저께서 코어에 대한 사용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계속 사용하려면 사용료를 지불해야합니다. 또한, 현재 가동 중인 큐브시스템도 꼭 소울넷만 연결해서 독점적으로 사용하라는 법도 없습니다. 이 우주에는 소울넷의 에센스넷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그럼 머천넷도 개성큐브에 연결이 가능한 겁니까?”
“물론입니다. 꼭 저희 머천넷도 연결시킬 수 있게 허락해주십시오. 사용료는 절대 섭섭하지 않게 지불하겠습니다. 또한, 코어의 소유권 이전도 차차 진행하겠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용료를 받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절대 적은 액수는 아닐 것이다.
코어의 소유권 이전은 그리 기대하지 않았다.
‘소울넷과 머천넷 양쪽에서 사용료를 받을 수 있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겠네.’
소울의 입 꼬리가 잔뜩 위로 올라가 있자 콤파냐도 덩달아 미소를 지으며 은근하게 말을 이었다.
“한 가지 중요한 정보를 더 알려드리겠습니다.”
“그게 뭔가요?”
소울은 이제 콤파냐의 말에 절로 귀가 기울여졌다.
“코어의 사용권을 가지고 계시니 이제는 얼마든지 멀티로 네트워크를 구상할 수 있고, 또한 원하는 차원과 세계를 선별하셔서 연결시킬 수 있습니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해주세요.”
놀란 마음을 감추며 급히 묻자 콤파냐도 그의 반응에 고무됐는지 신나게 설명을 시작했다.
“빛과 어둠, 선과 악이 있듯이 광활한 우주에도 인류와 대적하는 마족들이 있습니다. 인류와 유사인류 그리고 수인족이 한편이라면 마족과 어둠의 종족, 몬스터, 마수 등이 다른 같은 편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지구에 연결된 코어들이 마족의 작품이라는 것은 대충 짐작하고 있었습니다.”
“잘 보셨습니다. 코어는 그동안 마족이 무너뜨린 세계가 가지고 있던 근원적인 힘의 결정체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러므로 코어 그 자체가 무한 동력이자 에너지이자 카르마 덩어리입니다.”
“카르마 덩어리요?”
“예, 그렇습니다.”
“마족들은 그동안 수많은 세계를 멸망시키면서 코어를 만들어 왔습니다. 그리고 이 코어를 이용해 또다시 다른 세계를 멸망시키려고 획책을 하고 있지요. 지구에 코어가 나타났다는 말은 마족이 지구를 노리고 있다는 말과 동일합니다.”
“그럼 하루라도 빨리 지구와 연결된 코어를 없애야겠네요?”
“가능하면 없애는 것보다 코어를 획득하는 것이 좋습니다. 소울넷의 에센스넷과 머천넷은 바로 이 코어를 기반으로 작동하는 큐브시스템과 피라미드시스템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 시스템은 창조주가 정한 규칙에 의거 카르마, 즉 인과율에 따른 개입 한도가 명확히 정해져 있습니다. 그래서 마족들이 한 번에 모든 힘을 투사하여 다른 세계를 멸망시킬 수 없었던 겁니다.”
소울은 콤파냐를 통해 우주의 새로운 비밀을 하나 알게 됐다.
이제야 우주의 고차원의 상위 지성체들과 마족들이 왜 지구라는 작은 행성 하나를 어쩌지 못하고 있는지 이해가 갔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있지만 창조주는 지금도 인과율이라는 결계를 이용해 지구를 최대한 보호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새삼 창조주의 보이지 않는 손길에 경외감이 들었다.
“어느 시스템이건 코어 사용권을 가진 자의 권한이 제일 큰 법입니다. 거기에다 이소울 유저는 지구 출신입니다. 최소한 지구에서 지구를 지키려는 모든 행동에 인과율의 적용을 가장 적게 받는다는 말이지요.”
“그 말은 제가 제일 유리하다는 말이죠?”
“그렇습니다. 에센스넷의 큐브시스템이건 머천넷의 피라미드시스템이건 던전 방식을 결정하실 수 있고 차원과 세계를 연결하는 것도 선별적으로 택할 수 있습니다.”
“그럼 개성큐브에 머천넷을 추가로 연결하거나 몬스터가 나오는 방식을 내 맘대로 정할 수 있겠네요?”
“정확합니다.”
가슴이 시원해졌다.
마치 사이다를 벌컥벌컥 마신 것처럼 속이 뻥 뚫린 기분이었다.
진즉에 이런 사실을 알았다면 지구에서 날뛰고 있는 몬스터들을 아예 처음부터 나오지 않도록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소울은 괜히 자신 때문에 죽지 않아도 될 사람들이 죽은 것이 아닌가 하는 죄책감이 밀려들었다. 하지만 곧 강하게 고개를 흔들어 이런 부정적인 생각을 털어버렸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머천넷과 잘 의논해서 지구와 연결된 모든 코어들을 내가 몽땅 챙겨야겠다. 그렇게 된다면 지구에 다시 평화가 찾아올 거야.’
콤파냐는 소울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짐작이 간다는 듯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일단 지구라는 행성은 마족들에게 확실히 노출됐습니다. 그러니 과거로 되돌릴 수는 없습니다. 다만 이제부터라도 큐브시스템이나 피라미드시스템 등을 이용해 능력자 인큐베이팅을 시작해야 합니다. 그렇게 된다면 지구는 스스로 지킬 힘을 얻을 수 있게 될 뿐만 아니라 나중에 지구의 능력자들을 용병으로 해서 다른 세계를 구하는데 한팔 보탤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흐음, 이거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스케일이 커졌네요.”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 모든 일에 머천넷이 이소울 유저를 힘껏 돕겠습니다.”
“역시 코어 때문이겠지요?”
“그렇습니다. 이소울 유저가 코어를 확인해서 보고하지 않았다면 이런 일은 불가능했을 겁니다. 지구는 이소울 유저에게 큰 빚을 지는 셈입니다.”
소울은 콤파냐의 말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지구를 구원하는 존재는 아니더라도 일정부분 기여를 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위안이 됐다.
“좋습니다. 이번 코어 보고는 머천넷에 하도록 하지요.”
“탁월한 선택이십니다. 감사합니다.”
“또한 개성큐브에 머천넷의 피라미드시스템을 멀티로 연결하도록 합시다.”
“하하하! 이거 거듭 감사드립니다.”
콤파냐는 소울의 이런 전격적인 결정에 기분이 좋은지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세기의 불공정 계약이자 초대박 계약이라고 역사에 길이 남을 소울과 콤파냐의 계약은 이렇게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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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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