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OULNET-480화 (480/492)

00480  제 120 장 - 죽음은 새로운 시작이다.  =========================================================================

“평양길드가 평양큐브로 바뀌면 평양큐브의 사용권과 지분은 두 길드가 애초에 합의한 그대로 나눠질 겁니다.”

“알겠습니다. 이거 그때까지 또다시 기다릴 생각을 하니 아주 좀이 쑤시네요.”

“하하하, 씨앗이 자라고 열매를 맺는 대는 시간이 걸립니다. 하지만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것이니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그렇게 하도록 노력해보죠.”

고구려 길드 고종석 마스터와 간부들은 뭔가 아쉬움과 미련이 가득 담긴 눈초리로 소울을 한참이나 쳐다보다가 돌아갔다.

“남들이 보면 무슨 연애질 하는 줄 알겠네요.”

나인권의 말에 소울은 쓴 웃음을 지으며 손짓을 했다.

“그러게요. 자! 그만 회의실로 올라갑시다.”

“네, 마스터.”

모두 계단을 통해 2층 회의실로 걸어서 돌아왔다.

회의실 안으로 들어와 각자 자신의 자리에 앉고 나자 소울은 고개를 돌려 좌중을 한번 훑어봤다.

아무 말 없이 소울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는 사람들의 눈에는 여전히 의혹과 호기심이 가득했다.

국정현, 김영신, 나인권, 유정아, 금소희, 모두 코어의 사진과 동영상만으로 소울이 과연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는지 궁금해 하는 것이다.

“여보세요! 다들 정신 차리세요! 어차피 물어봐도 안 가르쳐줄 겁니다.”

“호오! 정말 궁금하네요.”

“꼭 알고 싶은데…….”

국정현은 참을 수 없는 호기심에 입맛을 다셨다.

유정아도 살짝 볼을 부풀리며 소울을 쳐다봤다.

“제 가족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서머너즈 길드 본관과 자택에 계십니다.”

“자택이라면 세곡동 말인가요?”

“네, 그렇습니다. 그동안 개성큐브에 계시다가 어제 내려가셨습니다.”

소울은 그 자리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아버지 이대산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구의 시간으로는 이틀에 불과하지만 메시엘 행성에서 유희를 보낸 소울에게는 두 달이나 된다. 그는 가족들의 목소리가 너무 듣고 싶었다.

-여보세요?

“아버지, 접니다. 소울입니다.”

-어, 그래. 요새 바쁜가보다?

“네, 좀 바쁘네요.”

-밥은 잘 챙겨먹고?

“네, 잘 챙겨 먹고 있습니다.”

-건강이 제일 중요하다. 끼니 거르지 말고 잘 먹어라.

“그러겠습니다.”

-중요한 자리에 있는 사람답게 신중하게 잘 처신하도록 해라.

“네, 명심하겠습니다.”

이대산은 소울이 S클래스 능력자가 된 것도 모르고 그의 건강을 신경 썼다.

아무리 장성한 아들이라고 해도 소울은 그에게 영원한 아들일 뿐이다.

그런 사실을 깨달은 소울은 아버지 아대산이 자신을 걱정하지 않도록 낮은 저음과 부드러운 말투로 그의 말에 순순히 대답을 했다.

잠시 아버지와 대화를 나누자 곧 핸드폰에서 시끄럽게 뭐라고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어머니 김혜진 여사가 핸드폰 바통터치를 했다.

-우리 아들, 소울이지?

“네, 어머니.”

-호호호, 어머니는? 그냥 하던 대로 엄마라고 불러라.

“네, 그럴게요.”

김혜진은 장남 소울이 자신을 어머니라고 부르는 것보다 엄마라고 부르는 것을 더 좋아한다. 물론 사람들 앞에서는 말고 이렇게 단 둘이 전화통화를 하거나 가족끼리 있을 때 말이다.

아무리 아들이 장성해도 어머니에게는 영원히 귀여운 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인가 보다.

-이틀 동안 어디 갔었니?

“네, 조용히 처리할 일이 있어서 잠깐 어디 좀 다녀왔어요.

-그래? 일은 잘 해결됐고?

“네, 잘 해결됐습니다.”

-흐음, 목소리를 들어보니 이제 좀 정신이 나는가 보네?

“네, 이제 좀 정신이 드네요. 죄송해요. 엄마! 그동안 걱정을 끼쳐드렸어요.”

-걱정은 무슨? 네가 괜찮으면 난 그것으로 됐다. 별일 없는 거지?

“네, 특별한 일은 없어요.”

-그럼 주말에 우리 가족 한번 뭉치자. 돈 많이 버는 네가 꽃 등심 한번 쏴라.

“알겠습니다. 그럼 주말에 세곡동으로 내려가겠습니다.”

-그래. 몸 건강히 잘 지내고 입맛 없으면 그냥 집에 잠깐 들려라. 길드에 헬기도 있고 하니 말이다.

김혜진은 당장 소울의 얼굴을 보러가고 싶었지만 마냥 어리기만 하던 예전의 그 아들이 아닌지라 꾹 참고 은근히 돌려 말하고 있었다.

소울은 그런 어머니의 마음이 절절히 느껴져 주말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세곡동으로 내려가야겠다고 결심했다.

‘이번 기회에 개성에 근사한 집을 한 채 사서 선물로 드릴까?’

생각해보니 굳이 세곡동 집을 본가로 쓸 필요는 없었다.

오히려 땅값 싸고 건축비가 저렴한 개성에 넓은 집을 지어서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소울은 어머니 김혜진 여사에 이어 소망과도 전화통화를 했다.

-형!

“소망아! 그동안 별 일 없었지?”

-우리한테 별일 있을 게 뭐가 있어? 그나저나 형은 좀 어때? 이제 좀 괜찮아진 거야?

“응, 난 괜찮아. 넌?”

-난 잠시 머리 식히러 내려왔어. 그동안 능력자로 큐브 안에서 퀘스트를 깨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나한테는 맞지 않는 옷인 것 같아.

“그게 무슨 말이야?”

-능력자 생활은 하는 것은 이 정도로 끝내고, 길드연구소에 들어가겠다는 말이야. 역시 내 적성은 연구가 맞는 것 같아.

“그래? 그럼 그렇게 해야지. 내가 유정아 박사에게 말해줄까?”

-아니야. 이미 유정아 박사님과는 얘기가 다 끝났어. 한 일주일 정도 휴가라고 생각하고 쉬다가 시간되면 길드연구소로 바로 출근할거야.

소울은 속으로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적성을 생각하지 않고 능력자가 되라고 강요를 한 것은 아니었는지 절로 반성이 된다.

다행히 너무 늦지 않게 소망이 스스로의 길을 선택한 것이 큰 위로가 됐다.

유정아 박사와 얘기가 다 되어있다는 말에 더욱 안심이 되는 것을 느꼈다.

길드연구소에 들어가 뭘 연구할지는 모르지만 유정아가 소망을 잘 챙겨준다면 그리 어렵지 않게 길드연구소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소현이 전화를 받았다.

-오빠!

“응, 소현아! 잘 지냈어?”

-미안해!

대뜸 미안하다고 말하는 소현에게 소울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가슴이 짠하고 눈이 뜨끈해졌다.

“아니야. 오히려 내가 미안하다. 바쁘다는 핑계로 내가 너무 신경을 못 썼어.”

-그게 무슨 말이야. 잘못은 내가 저질렀는데……. 난 이제 어떤 처벌도 다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됐어.

“처벌이라니? 누가 널 처벌한다고 그래?”

-오빠, 정말 내가 누군지 몰라서 그래? 난 세계 최대의 길드인 서머너즈 길드의 마스터 이소울의 하나밖에 없는 여동생이야. 공적인 부분에서는 서머너즈 길드의 길드원이기도 하고. 날 처벌하지 않으면 아마 서머너즈 길드의 기강이 바로 서지 않을 거야.

“엄밀히 말해서 넌 서머너즈 길드에 잘못을 저지른 것은 아니야. 그저 오빠의 말을 안 듣고 잠시 큐브 밖에 나갔던 것뿐이잖아.”

-오빠, 정말 고마워! 그렇게 말해줘서……. 하지만 난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내가 만약 오빠의 말을 잘 들었다면 결코 세경 언니가 그렇게 처참하게 죽지는 않았을 거야. 제발 날 처벌해줘. 그렇지 않으면 내가 견딜 수 없을 것 같아서 그래.

“휴우!”

묘한 곳에서 소현은 고집을 부리고 있었다.

머리로는 이해가 갔다. 하지만 심정적으로는 절대 그러고 싶지 않았다.

소울은 잠시 생각을 해보더니 마침내 결단을 내렸다.

“이소현, 네가 서머너즈 길드원으로써 길드마스터의 명령에 불복종한 것을 자복하고 처벌을 원하니, 그럼 원하는 대로 해줄게. 이소현은 이 시간 이후로 서머너즈 길드 제1레기온 제1정찰대에 배속을 명한다. 또한, 1년간 총수입의 50%를 원청 징수하여 서머너즈 길드원의 복지와 소년소녀가장을 돕는데 사용한다. 이상!”

-네, 나 이소현 길드원은 길드마스터의 명령을 받아 즉시 제1레기온 제1정찰대로 이동하겠습니다.

소울은 떨려오는 소현의 목소리에 그만 가슴이 뭉클했다.

소현으로 인해 민세경이 죽긴 했지만 결코 고의적으로 그녀를 죽이려고 한 행동은 아니었다. 그저 어린 마음에 오빠의 말에 작게 반항을 한 것이 운이 없어서 최악의 사태로 치달았을 뿐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세경이 죽은 사실이 변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걸로 된 거니?”

-네, 오빠, 고마워요.

소울은 소현에게 많은 말을 하고 싶었지만 목구멍에 뭐가 걸리기라도 한 듯 말이 나오지 않았다.

“조심해라.”

-네, 오빠.

간신히 한 마디를 내뱉고 무거운 마음으로 스마트폰의 통화종료 버튼을 눌렀다.

고개를 들자 회의실의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소울은 국정현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전화통화 들으셨죠?”

“네, 마스터. 소현 양을 제1레기온 제1정찰대에 배속하신다고요?”

“그렇습니다.”

“수입의 50%를 원천 징수하는 것은 문제가 아닙니다만 제1레기온 제1정찰대에 배속하신 것은 좀 무리가 아닐까 싶습니다.”

“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제1레기온 제1정찰대가 서머너즈 길드 최강의 정찰대라는 것을 말입니다.”

국정현은 소울의 말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걸 알고도 거기에 넣으셨다는 말입니까?”

“그 정도로 빡센 곳이 아니면 소현은 아마 쉽게 죄책감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겁니다. 머리가 복잡하면 몸이 바빠져야 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강하게 담금질되어 나오면 소현은 서머너즈 길드에서 능력자로써 제 한몫은 하면서 살아갈 겁니다.”

“흐음, 마스터께서 굳이 그렇게 하길 원하신다니 즉시 후속조치를 취해놓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소울은 그 자리에서 일어나 국정현에게 깊숙이 고개를 숙였다.

지금의 인사는 길드의 마스터가 아닌 소현의 오빠로써 하는 것이다.

국정현은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소울에게 맞절을 했다.

살짝 당황한 것이 소울이 이렇게 나올지 몰랐기 때문이리라.

“여러분, 오늘 회의는 여기서 끝냅시다. 난 개성지부 별관에 가서 좀 쉬어야겠습니다. 내가 알아서 밖으로 나올 때까지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별관을 폐쇄해주세요.”

“네? 아, 알겠습니다.”

다들 소울의 말에 처음에는 놀라는 표정을 짓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소울이 쉰다고 말했지만 결코 쉬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고종석이 가져온 코어의 사진과 동영상으로 뭔가를 하려는 것을 눈치 채곤 더 이상 궁금해 하지 않았다.

어차피 소울이 알려줄 얘기라면 벌써 얘기했을 것이다.

말 못할 얘기니 입을 열지 않은 것이다.

회의를 마치자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하지만 유정아는 끝까지 남아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뭐야?”

“뭐가 뭐야?”

“나한테 할 얘기 없어?”

“없어. 때가 되면 얘기해줄게.”

“흐음, 좋아. 그럼 지금 꼭 별관으로 들어가야 해?”

“응.”

“휴우, 알았어. 대신 나오면 제일 먼저 나를 찾아야해?”

“알았다.”

유정아는 소울이 조개처럼 입을 꽉 다물자 할 수 없다는 듯, 한 발짝 물러나기로 했다.

쪽!

유정아는 소울의 입술에 가볍게 키스를 하고는 그의 몸을 꼭 끌어안았다.

부드러운 여체의 뭉클거리는 기분 좋은 느낌과 향긋한 그녀의 체향이 순간 소울의 심신을 탁 풀어헤쳤다.

소울은 자신도 모르게 그녀의 허리와 엉덩이를 손으로 잡고는 꽉 끌어안았다.

“아응!”

야릇한 유정아의 콧소리가 들리자 소울은 당장이라도 유정아를 안고 사랑을 나누고 싶었다. 하지만 당장 해야 할 일이 있으니 지금은 참아야한다.

소울이 가볍게 그녀의 몸을 밀어내자 유정아는 노골적으로 아쉬운 눈빛을 보냈다.

눈가에 살짝 붉은 혈기가 도는 것을 보니 며칠 내로 그녀를 꼭 안아줘야 할 것 같았다.

유정아와 헤어진 소울은 개성지부 본관 뒤쪽에 있는 별관으로 이동했다.

이미 김영신이 직접 명령을 해서 별관 사방은 소울 디펜스 대원들에 의해 철통같은 경비가 이뤄지고 있었다.

소울은 소울 디펜스 대원들이 하는 인사를 받으며 별관 안으로 들어갔다.

별관 1층 로비에 선 소울은 즉시 자신의 소환수 넷을 모두 소환했다.

[까뮤, 본, 푸티나, 렉시 소환!]

차례로 까뮤, 본, 푸티나, 렉시가 소환되어 그의 앞에 나타났다.

[주인님, 여기서 보니까 반갑네요.]

[부르셨습니까? 마이로드.]

[주인님 안녕하세요?]

[빠아!]

소울은 그들을 보자 절로 배가 불렀다.

하지만 그는 아직 배가 고팠다.

밥을 못 먹어서 배가 고프다는 소리가 아니라 코어 보고를 통해 받는 보상이 너무나도 고프다는 말이다.

[다들 반갑다. 소울넷에 접속하려고 하니까 호위를 부탁한다.]

[네, 주인님.]

[예스, 마이로드.]

[걱정하지 마세요.]

[빠아, 빠아!]

그의 소환수들은 앞 다투어 걱정하지 말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소울은 어디가 좋을까 생각을 해보다가 역시 편하게 앉거나 누워서 소울넷에 접속하는 것이 좋겠다 싶어 2층의 스위트룸으로 올라갔다.

화려한 스위트룸의 모습은 전혀 그에게 감명을 주지 못했다.

담담한 눈빛으로 그는 응접실의 푹신한 소파에 몸을 누이고 두 다리를 탁자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소울넷에 접속했다.

============================ 작품 후기 ============================

즐겁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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