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76 제 119 장 - 지하수맥 =========================================================================
모닥불 위에 냄비가 올라가서 팔팔 끓고 있었는데 고소한 스프냄새가 코를 찔렀다.
[까뮤, 저녁에는 좀 제대로 먹어보자.]
[감자와 고기를 꺼낼까요?]
[고기 좋지. 닭고기도 좀 꺼내봐.]
숲속을 헤치고 다니느라 떨어진 체력을 회복하려면 영양가 높은 음식을 먹어야한다.
소울은 까뮤의 아공간에 있는 각종 음식재료를 꺼내 요리를 시작했다.
미리 손질 되어 있는 닭다리를 쇠꼬챙이에 꽂아 모닥불 주위에 세우고 냄비에는 감자와 고기를 숭숭 잘라서 넣고 계속 끓였다.
감자와 고기가 익자 허브티와 후추를 좀 넣고 소금으로 간을 봤다.
카렌은 아직 굳지 않은 빵을 꺼내고 그릇과 숟가락을 나눠줬다.
소울이 맛을 보고 고개를 끄덕이자 다들 입맛을 다시면서 모닥불 가까이 다가왔다.
“야아! 맛있겠다.”
“이제 먹어도 된다.”
“감사히 잘 먹겠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고기와 감자 등 건더기가 많은 스프는 맛있었고 모닥불에 기름이 쪽 빠져서 바삭하게 잘 구워진 닭다리는 씹을수록 육즙이 나와 풍미를 더했다.
나름 강행군을 해서 그런지 그릇에 묻어 있는 스프까지 빵조각으로 깨끗하게 닦아 먹는 모습을 보자 요리를 한 사람의 마음이 뿌듯해진다.
“설거지는 제가할게요.”
카렌이 살짝 튀어나온 자신의 배를 통통 치며 말했다.
“그래.”
설거지는 물의 정령 운디네를 소환할 수 있는 카렌이 적격이긴 하다.
식사를 마치고 그녀가 그릇을 씻는 사이, 소울과 마틴 그리고 알렉스는 야영을 할 준비를 했다. 넓은 나뭇잎을 가져와 바닥에 넉넉히 깔고 그 위에 담요를 덮었다.
중앙에 활활 타오르고 있는 모닥불을 위해 넉넉히 땔감을 가져와 한쪽에 쌓아 놓았다.
“이정도면 훌륭하죠?”
알렉스가 배인지 허리인지 모를 곳에 두 손을 턱 걸치고 소울을 쳐다봤다.
“응, 훌륭하다.”
소울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동굴 입구에다 간단한 덫이라도 깔아 놓을까요?”
마틴이 손가락으로 동굴 입구를 가리키자 소울은 그의 어깨를 툭 치더니 먼저 동굴 입구를 향해 걸어갔다.
“같이 가자.”
“네, 마스터.”
오늘 밤 편하게 잠을 자려면 동굴 입구에 미리 안전장치를 해놓는 것이 좋을 것이다.
몬스터와 마수가 득실거리는 북부대산맥 안에서 아무런 준비 없이 잠을 잔다는 것은 그냥 내 목을 잘라가라고 광고하는 행위나 마찬가지다.
소울과 마틴은 동굴 입구 주변에 여러 가지 덫을 설치해놓았다.
몬스터나 마수를 잡기 위한 덫이 아니라 알람의 의미를 가진 덫이었다.
“불침번은 제가 서겠습니다. 주인님은 오늘 밤 편하게 주무십시오.”
“고맙다. 그럼 잘 부탁해.”
“맡겨 주십시오.”
S클래스인 진혈의 뱀파이어 마틴이 밤에 불침번을 선다니 마음이 든든했다.
소울은 동굴 안으로 돌아와 카렌이 준비한 차를 마셨다.
자신의 자리에 있는 담요를 덮고 차를 마시면서 카렌과 그동안 못 다한 얘기를 나눴다. 오랜만에 소울과 마주한 카렌은 피곤하지도 않은지 연신 조잘거리며 즐거워했다.
알렉스는 그들의 대화에는 신경도 쓰지 않고 지도를 꺼내 위치를 확인하고 어디로 어떻게 가야할지 궁리했다.
마틴도 가만히 입을 다물고 모닥불이 꺼지지 않도록 계속 나뭇조각을 집어넣었다.
그렇게 한 시간 쯤 지나자 카렌의 눈 커플이 천근만근이 되어 내려앉기 시작했다.
“아이, 졸려서 안 되겠어요. 그만 자야할까 봐요.”
“오늘 수고했다. 잘 자.”
“네, 마스터도 안녕히 주무세요.”
카렌은 하품을 한번 하더니 바로 자리에 누워 눈을 감았다.
몇 번 가슴이 위아래로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 같더니 카렌은 곧 가늘게 코를 골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소울은 절로 웃음을 흘렸다.
“후후, 많이 피곤했던 모양이군.”
카렌이 잠에 들자 소울은 그녀에게 다가가 담요를 잘 덮어주었다.
자면서도 소울의 손길을 느끼는지 그녀의 입 꼬리가 살짝 위로 올라가는 것이 보였다.
자신의 자리로 돌아온 소울은 자리에 누워 담요를 덮었다.
그 모습을 본 알렉스도 자리에 누워 담요를 덮더니 잠을 청했다.
소울은 모닥불의 불빛이 아른거리는 매끈한 동굴 천장을 바라봤다.
아니 동굴 천장에서 거꾸로 누워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까뮤를 바라보고 있었다.
까뮤가 소울을 향해 싱긋 미소를 짓자 소울도 부드러운 미소를 한번 짓고는 눈을 감았다.
몇 번 숨을 깊게 들이쉬자 그는 바로 잠에 빠져들었다.
치이익 탁탁탁!
타다닥 타다닥!
말소리가 사라진 동굴은 침묵에 빠져들었다.
동굴 안을 은은하게 비춰주는 모닥불만이 자신의 존재를 몰라주는 사람들을 원망하며 투덜대고 있었다.
* * * * *
[주인님, 일어나세요. 적의 기습이에요.]
[뭐?]
까뮤의 목소리가 뇌리를 진동시키자 소울은 반사적으로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고개를 옆으로 돌리자 마틴이 동굴 입구 쪽에서 눈부신 속도로 움직이고 있었다.
아직 잠이 덜 깨서 그런지 소울은 마틴이 왜 저러고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러나 곧 동굴이 무너질 듯 흔들리며 공기가 찢어지는 파공성이 들려오자 소울은 즉시 몸을 일으키며 클레이모어를 뽑아들었다.
“알렉스, 카렌, 일어나! 적이다.”
“네?”
“예?”
소울은 알렉스와 카렌을 부르면서 지체 없이 목걸이에 손을 가져다댔다.
의지를 일으키자 로열형 리콜아바타 전용 바이오 갑주가 즉시 반응해 그의 전신을 감쌌다.
파앙! 파앙!
동굴 입구에서 파공성이 울리며 붉은 두 개의 선이 직선을 그리며 날아왔다.
소울은 두 다리에 단단히 힘을 주고는 클레이모어를 좌에서 우로 빠르게 휘둘렀다.
휙!
카캉!
쇠가 부딪치는 날카로운 소리가 귀청을 울렸다.
소울은 묵직한 충격에 뒤로 한걸음 밀려났다.
그는 자신을 향해 날카로운 손톱을 들이대는 자들의 정체를 확인하고 날카롭게 눈을 빛냈다.
‘뱀파이어? 어떻게? 왜 이곳에 뱀파이어가 있지?’
그제야 적이 누군지 감을 잡은 소울의 머리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붉은 로브를 뒤집어쓰고 있는 뱀파이어 둘은 양손에 날카로운 손톱을 길게 뽑아내며 차가운 살기를 흘려냈다.
그리고 무서운 속도로 소울을 향해 짓쳐들었다.
카카캉 카카캉 캉캉캉!
소울은 정신없이 클레이모어를 휘둘러 뱀파이어의 공격을 방어했다.
그러면서 속으로 이 개 같고 더러운 상황에 욕을 해댔다.
‘빌어먹을, 이게 뭔 일이래? 내가 왜 이런 상황에 몰려야하지?’
자다가 벼락을 맞은 기분이었다.
아니 길을 걷다가 머리에 새똥을 맞은 기분이었다.
어느 쪽이던 기분이 아주 더러웠다.
[까뮤, 카렌과 알렉스를 지켜줘!]
[네, 주인님.]
“알렉스, 카렌을 데리고 먼저 들어가. 이건 명령이다.”
“네, 마스터.”
“마스터!”
알렉스는 소울의 명령에 즉시 카렌의 손을 잡고 동굴 안으로 달려갔다.
다행히 뱀파이어들의 목적은 카렌과 알렉스가 아니었는지 당장 그들을 쫓아가지는 않았다.
파앙, 파앙!
그때 또다시 공기를 찢는 두 개의 소리가 들려왔다.
소울은 즉시 쉐도우 스텝을 이용해 번개처럼 뒤로 두 발짝 물러섰다가 곧바로 타이타닉 검법으로 다가오는 뱀파이어들을 향해 폭풍 같은 검기를 뿌려냈다.
카카카캉 캉캉캉!
서걱!
“크악!”
뱀파이어의 팔 하나가 허공으로 떠오르자 고통에 찬 비명소리가 튀어나왔다.
소울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뱀파이어들 사이로 파고들었다.
왼 주먹으로는 최상급 몽크의 체술, 크루세이더 얼티밋을 써서 뱀파이어의 머리통을 박살내고 오른손으로는 타이타닉 검법으로 뱀파이어들을 베어나가며 쉐도우 스텝을 밟으며 질풍노도처럼 갈 지(之)자로 미끄러져갔다.
비록 로열형 리콜아바타에 리콜스킬로 등록되어 있지는 않았지만 이미 머리로 기억하고 몸에 숙달되어져 있는 스킬들이라 사용하는데 큰 문제는 없었다.
퍼퍼퍽 퍽퍽!
서걱서걱 캉 카카캉!
“크아악, 크악!”
뱀파이어 한 놈의 머리통이 터져 나가며 눈알이 앞으로 툭 튀어 나왔다. 반대편의 뱀파이어의 팔다리가 잘려나가며 피가 분수처럼 솟구쳐 올랐다.
스팟!
소울은 순간이동 스킬을 이용해 뿜어져 나오는 피를 피하고 뱀파이어 한 놈의 뒤로 돌아가 클레이모어를 힘차게 아래로 그었다.
철썩!
촤아아악 철퍽 찰파닥!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붉은 실선이 그어지더니 곧바로 반쪽으로 잘려 양옆으로 쫙 쪼개졌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뜨끈한 내용물들이 바닥이 왈칵 쏟아져 내리는 모습이 정말 그로테스크하다.
“이놈이 감히?”
“죽어라!”
동료가 죽자 뱀파이어들의 살기 찬 목소리가 동굴을 울렸다.
그렇다고 이미 몸이 풀려버린 소울의 무자비한 공격을 막아낼 수는 없었다.
뱀파이어 넷은 순간적으로 터지고 깨지고 잘리고 묵사발이나 바닥에 쓰러져 내렸다.
파앙, 파앙, 파앙, 파앙!
이번에는 처음부터 붉은 선 네 개가 동시에 날아왔다.
힐끗 동굴 입구를 보니 붉은 로브를 입은 뱀파이어들이 수십이나 다가오고 있었다.
아무래도 오늘은 한참 피를 봐야할 것 같았다.
뱀파이어들은 소울을 포위하더니 일제히 파상공세를 펼쳤다.
아까처럼 죽어라고 공격을 하는 것이 아니라 동료들이 더 몰려올 때까지 시간을 끌려는 느낌이었다.
그 덕에 소울은 마틴과 싸우고 있는 뱀파이어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마틴, 이놈들 뭐야?]
[진혈의 뱀파이어, 마블과 그의 추종자들입니다.]
[마블!]
소울은 마틴에게 마블이라는 이름을 듣자 곧 강적이 나타났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블과 마틴의 싸움이 백중지세로구나. 내가 나머지 뱀파이어들만 잘 막고 있으면 최소한 지지는 않을 것 같다. 카렌과 알렉스를 빠르게 대피시키기를 잘했군.’
그는 오늘 자신의 눈앞에 나타난 뱀파이어들을 모조리 죽여 버리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마음을 먹고 막 클레이모어의 손잡이에 힘을 주고 앞으로 튀어나가려는 순간, 소울은 갑자기 뒷골이 서늘해지며 불길한 예감이 강하게 들었다.
‘순간이동!’
스팟!
그는 망설이지 않고 순간이동을 이용해 뒤로 물러났다. 1m 뒤로 이동한 그는 곧바로 최대한 빠르게 뒤로 물러섰다.
쾅 콰콰쾅!
아니나 다를까?
자신이 서 있던 자리로 온갖 공격이 쏟아지며 연속적으로 폭음이 일어났다.
불덩이가 떨어지고 얼음창이 바닥을 뚫었다. 날카로운 바람의 칼날이 땅바닥에 깊게 패더니 오선지를 그려놓았고 번쩍거리는 전격이 벼락같이 떨어져 연신 스파크를 만들어냈다.
그 위로 초승달 모양의 마나 크레센트가 차례로 땅바닥 깊숙이 파고들었다.
소울이 만약 뒤로 물러서지 않았다면 바로 몸이 걸레짝으로 변할만한 일제공격이었다.
“아깝다.”
“거 새끼 눈치 한번 기가 막히게 빠르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바로 해치워버리자.”
“좋아. 다시 간다.”
고개를 돌린 소울의 두 눈을 믿을 수 없다는 듯 동그랗게 변했다.
뱀파이어들의 뒤로 제3요새의 5강(强)인 프로이드, 재칼, 니체, 하이들러, 오마하의 모습이 보였던 것이다.
그들은 소울과 대화할 생각이 전혀 없는지 곧바로 다시 무섭게 공격을 날려댔다.
‘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왜 히어로가 같은 히어로를 공격하는 거야?’
그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자신을 죽이려고 다가오는 공격을 그냥 보고만 있을 수는 없다.
소울은 쉐도우 스텝을 극성으로 펼치며 미친 듯이 회피기동을 펼쳤다.
그의 몸이 동굴 사방으로 이리저리 흔들리듯 움직였다.
“이 쥐새끼 같은 놈!”
“한꺼번에 공격해!”
히어로들은 소울이 자꾸 자신들의 공격을 피해내자 마구 욕을 하며 화를 냈다.
그들은 도대체 그에게 무슨 원한이 있는지 아주 작심을 하고, 기필코 소울을 죽이려고 달려들었다.
그때, 뱀파이어 몇 놈이 동굴 안으로 달려가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을 막고 싶었지만 지금은 이들의 공격을 회피하는 것만으로도 숨이 벅찰 지경이었다.
‘까뮤가 잘 막아내겠지.’
소울은 동굴 안으로 달려간 놈들을 까뮤가 잘 처리해줄 것이라 믿었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었다.
생각해보니 이들이 자신을 죽이려고 마음을 먹었다면 이유야 만들기 나름이었다.
시기나 질투 또는 개인적인 욕심이 있었을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뭔가 냄새를 맡고 자신들을 몰래 따라왔을 것이다. 이유야 어떻든 간에 이놈들이 지금 자신을 죽이려고 한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제기랄, 이렇게 외통수에 딱 걸려버리다니…….’
소울은 이를 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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