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74 제 119 장 - 지하수맥 =========================================================================
물론 그래봐야 이미 소울의 눈에 다 보였지만 말이다.
“난 에밀리 왕실 비밀창고 따위에는 별 관심이 없어. 중요한 것은 마나석과 젬스톤 광산의 위치야.”
“알고 있습니다.”
“그걸 개발하려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지. 안 그래?”
“맞습니다. 절대 쉽지는 않을 겁니다.”
“그래. 그러니 우리 급하게 서두르지 말고 차분차분하게 하나씩 해결해나가자고.”
“네, 말씀에 어떻게 하시던지 따르도록 하겠습니다.”
레옹은 어차피 자신의 힘으로는 왕실의 비밀창고로 가서 문을 열수도 없고 마나석과 젬스톤 광산을 개발할 수도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소울이 하자는 대로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소울이 갑, 자신이 을이라는 것을 어린 나이에 바로 깨달은 것이다.
‘이놈 제법 머리가 빨리 돌아가네. 결정력도 있고 정치 감각이 뛰어난 건가?’
소울은 레옹의 태도에 피식 웃음을 흘렸다.
재미있는 것은 레옹이 뭐라고 말을 해도 그의 두 기사인 리차드와 윌리암이 가만히 듣고만 있다는 것이다.
확실히 무력이 뛰어난 것 같기는 한데 지략은 없어 보였다.
그의 곁에 뛰어난 군사(軍師)가 있다면 좀 더 유리하게 얘기가 진행되었을 텐데 아쉽게도 레옹에게는 아직 믿을 만한 지낭(智囊)이 없어 보였다.
“여기 준비한 지도가 있습니다. 이걸 보시면 위치를 파악할 수 있을 겁니다.”
“지도를 확인하고 나서 다시 얘기하도록 하자.”
“네, 알겠습니다.”
“어머니와 누나들의 소재는 은밀하게 수소문하고 있다. 조만간 소재가 파악되면 내가 노예로 있는 그들을 사들이도록 하겠다.”
“잘 부탁드립니다. 마스터.”
“난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야겠다. 레이첼과 얘기나 좀 나누다가 돌아가도록 해라.”
“감사합니다.”
소울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마틴이 레옹의 손에서 지도를 받아들고 그를 따라 나왔다.
응접실의 문이 닫히자 레이첼과 레옹은 맘 편하게 그들만의 얘기를 할 수 있었다.
소울과 마틴은 원하기만 하면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다들을 수 있었지만 굳이 그렇게까지는 하고 싶지 않았다.
“어? 이건!”
“왜 그래?”
지도를 펴서 살펴보던 마틴이 갑자기 제자리에 서더니 놀란 소리를 냈다.
“마스터, 이걸 한번 보십시오. 뭔가 눈에 익지 않습니까?”
“흐음, 이 지형 어디서 많이 본 것도 같은데…….”
“혹시 드워프의 지도에서 본 것은 아닐까요?”
“마틴의 말을 듣고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한데?”
“이럴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 확인하러 가는 것은 어떻습니까?”
“좋아. 당장 가서 확인해보도록 하자.”
소울과 마틴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둘은 로비를 통해 저택의 본관을 나왔다. 그리고 별관을 향해 이어지는 길을 따라 걸어갔다.
멀리서 포리너스 2기 부대원들이 열심히 땀을 흘리며 훈련을 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알렉스!”
“마스터!”
강철망치족 전사 알렉스가 소울을 쳐다보더니 가슴에 주먹을 대고 살짝 고개를 숙이는 군례를 올렸다.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뭘 좀 물어보려고 왔다. 포리너스 2기 생들의 훈련은 어떻게 되고 있어?”
“계획대로 잘 진행되고 있습니다. 앞으로 2주 정도면 실전에 투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행이군. 일단 안으로 좀 들어가지?”
“네, 마스터.”
알렉스는 소울과 마틴이 뭔가 할 말이 있는 것을 알고는 별관 2층의 사무실로 안내했다.
소울과 알렉스가 소파에 앉자 마틴은 즉시 품속에서 지도 하나를 꺼내 탁자에 활짝 펼쳤다.
“이번에 새로 입수한 지도다. 한번 살펴봐라.”
“네, 마틴님.”
알렉스는 조심스럽게 지도를 살펴보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지하수맥을 표시한 것 같습니다.”
“지하수맥을?”
소울은 알렉스의 말에 조금 실망했다.
지하수맥이라면 이 지도는 자신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자면 예전에 거대한 지하수맥이 지나갔던 자리를 표시해놓은 것입니다. 지금은 아마도 물이 흐르지 않는 지하동굴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래?”
소울의 표정이 알렉스의 한 마디에 극과 극으로 변했다.
알렉스는 얼굴이 활짝 핀 소울을 보더니 곧 캐비넷을 열어 두 장의 지도를 가져왔다.
아니 정확히 말해서 이미 한 장이 되어버린 두 장의 지도였다.
“이걸 보십시오. 여기와 여기가 닮았지요? 축적의 차이가 좀 있지만 이건 여기에서 여기까지 연결됐다는 말입니다.”
“혹시 이것도 드워프의 지도인가?”
“아닙니다. 이건 인간들이 사용하는 지도입니다. 하지만 해석하는 것 자체는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아무리 암호를 사용해봤자 근본적인 지형 자체를 왜곡시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마법을 썼다면 몰라도…….”
소울은 알렉스의 말에 눈에서 빛이 반짝였다.
“그럼 결론이 뭐야?”
“결론은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됐다는 말입니다. 이 지도가 정확하다면 이제 북부대산맥 센트랄 고원 지하 대공동 노천광산까지 바로갈수 있습니다.”
“그게 정말이야?”
“네, 제 목을 걸고 보장하겠습니다.”
알렉스가 강한 자신감을 보이며 얘기를 하자 소울은 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평생을 산에서 광산을 일구며 살아가는 드워프의 말을 못 믿는다면 센트랄 고원 지하 대공동 노천광산행은 아예 접는 것이 좋을 것이다.
“알렉스가 보장한다면 믿지 않을 수가 없겠군.”
“그동안 목적지까지 약 3분의 1의 길을 지상으로 이동해야한다는 것 때문에 시간을 끌었던 것입니다. 혹시 다른 방법이 없는지 연구를 하면서 말이지요. 하지만 이 지도를 이용해 몬스터나 마수들을 피해 지하로 빠르고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게 됐습니다.”
“좋아, 내일 당장 출발하겠다.”
“저도 가겠습니다.”
“알렉스도?”
소울은 알렉스의 말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하하하, 광산을 가는데 드워프를 데리고 가지 않으실 생각이었습니까?”
“흐음, 생각해보니 그건 또 말이 안 되는군. 좋아. 알렉스를 데리고 가기로 하지.”
“탁월하신 선택이십니다.”
소울은 알렉스를 한번 쳐다보고는 마틴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나와 마틴, 알렉스, 카렌, 이렇게 넷이 내일 새벽 은밀하게 출발한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준비하겠습니다.”
마틴이 두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기회가 생겼을 때 빠르게 움직이는 것이 좋다. 괜히 미적거렸다가 정보가 새면 아주 곤란해.’
소울은 알렉스에게 몇 가지 일을 당부하고는 마틴과 같이 별관을 나왔다.
본관에 도착한 소울은 카렌, 오웬, 레이첼, 다이애나를 차례로 불렀다.
카렌에게 내일 새벽 일찍 길을 떠날 것을 알리고 미리 짐을 챙겨두라고 말하자 그녀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소울과 같이 여행을 한다는 것이 좋았던 모양이다.
오웬을 불러 사정을 얘기하자 그는 걱정 말라는 듯 자신의 가슴을 치면서 저택의 안전을 장담했다.
레이첼에게 며칠 외출을 할 생각이니 저택을 잘 관리하라고 당부하자 그녀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은근한 미소를 지으며 그를 유혹했다.
마음 같아서야 밤새도록 운우지정을 나누고 싶었지만 새벽에 먼 길을 떠나는 관계로 그녀의 제의를 부드럽게 거절했다.
다이애나를 불러 만일의 사태를 경계하고 저택경비를 철저히 할 것을 지시하자 그녀는 조금도 얼굴표정을 바꾸지 않고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다이애나의 태도가 왠지 더 믿음직스러웠다.
일찍 저녁을 먹고 잠자리에 들었다.
눈을 잠깐 감았다가 떴는데 어느새 새벽이 되어 있었다.
[까뮤, 생각보다 긴 여행이 될지도 모른다. 필요한 물품을 넉넉히 챙기도록 해.]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아주 단단히 준비를 잘해 놓았습니다.]
[그래? 잘했어. 역시 까뮤야!]
[호호호, 감사해요.]
소울은 세면을 하고 양치질을 했다.
가볍게 몸을 한번 풀고는 전신이 가려지는 회색의 로브를 걸쳤다.
[마틴, 가자.]
[네, 주인님.]
방을 나서서 본관 뒤쪽으로 걸어갔다.
저택의 뒷문에 도착하자 벌써 카렌과 알렉스가 떠날 준비를 끝낸 채 소울을 기다리고 있었다.
“좋은 아침, 아니 좋은 새벽이야.”
“어서 오십시오. 마스터.”
“마스터, 새벽부터 보니 반가워요.”
그들은 간단히 서로 인사를 나누고는 곧바로 저택 뒷문을 통해 밖으로 나왔다.
“어디로 가지?”
“일단 북문을 통해 노스트라 시를 빠져 나가야 합니다.”
“좋아. 그럼 마틴이 앞장서!”
“네, 마스터, 이쪽으로 오십시오.”
소울의 명령에 마틴이 앞장서서 걸었다.
그러자 나머지 일행들도 그의 뒤를 졸졸 따라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새벽이라 사방은 어두운 암흑의 장막이 쳐져 있는 듯 했다.
고요한 적막의 세계에 오직 네 명의 발자국 소리만이 귀를 울린다.
부지런히 걸어가자 얼마 지나지 않아 외성 북문의 모습이 보인다.
미리 기다리고 있던 성문지기가 마틴을 보자 환한 미소를 짓더니 손을 흔들었다.
“때맞춰 잘 오셨습니다.”
“나갈 준비는?”
“준비할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저야 그저 저렇게 쪽문을 열어두면 그만이지요.”
“수고했다.”
성문지기가 한손으로 반쯤 열린 쪽문을 가리키자 마틴은 그에게 악수를 하는 척 하면서 돈주머니 하나를 슬쩍 넘겨줬다.
묵직한 돈주머니의 무게에 성문지기는 회심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90도로 꺾고 인사를 했다.
“좋은 여행 되십시오.”
“다음에도 종종 부탁하자.”
“언제든지 말씀만 하십시오.”
성문지기의 목소리를 뒤로 하고 소울과 마틴, 알렉스와 카렌은 쪽문을 통해 노스트라 시(市)의 북문을 빠르게 빠져나갔다.
북쪽으로 난 길을 따라 약 10분 정도 걷자 작은 숲이 보였다.
마틴은 그들을 숲속으로 이끌었다.
나무 사이로 들어가 몸이 안보일 때쯤 되자 작은 공터에 사두마차 한 대와 마부가 보인다.
“어서 오십시오.”
“준비는?”
“네, 여행에 필요한 물품은 모두 마차 뒤에 실어 놓았습니다.”
“수고했다. 그럼 부탁하자.”
“네.”
마부는 마틴에게 인사를 하더니 바로 마부석으로 올라갔다.
그는 절대 소울 일행을 쳐다보지 않았다.
뭔가 은밀한 일을 할 때는 절대 보여도 봐서는 안 되고 들려도 들어서는 안 된다는 진리를 잘 알고 있는 듯 했다.
그 모습에 소울은 이 마부가 명이 길겠다는 생각을 했다.
소울과 카렌, 마틴과 알렉스가 모두 마차 안으로 들어가자 마차가 곧 출발했다.
마부는 마차를 빠르게 몰아서 북으로 뻥 뚫린 대로를 신나게 달려갔다.
카렌은 창문을 살짝 열고는 밖을 쳐다보며 미소를 지었다.
어느새 태양이 떠오르는 지 사방이 점점 밝아지고 있었다.
그녀는 소울과 같이 여행을 한다고 하니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계속 같은 풍경이 반복되자 그녀는 어느새 병든 닭처럼 꾸벅꾸벅 고개를 끄덕이며 졸기 시작했다.
“일단 제3요새와 제4요새 사이로 가겠습니다. 대장벽이 나오면 마차를 돌려보내고 바로 넘어가겠습니다.”
“그때부터는 도보로 가야한다는 말이군.”
마틴의 말에 소울이 이해를 하고 알렉스가 뒷말을 이었다.
“반나절 정도 걸으면 지도에 표시되어 있는 동굴이 나옵니다. 거기까지 갈 동안은 마스터와 마틴님께서 힘을 써주셔야 합니다.”
“몬스터나 마수가 나오는 지역인가?”
“그리즐리와 미노트의 영역이 겹치는 곳입니다.”
“그러니까 두 마수의 영역이 겹치는 그 사이로 빠져나간다는 말이지?”
“맞습니다.”
알렉스의 말에 소울은 잠시 생각을 해보더니 마틴과 은밀하게 대화를 했다.
[마틴, 혹시 나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무조건 카렌을 챙겨서 튀어.]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만약에 감당할 수 없는 사태가 터지면 나를 신경 쓰지 말고 카렌을 챙기란 말이야.]
[그게 명령이시라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당연히 명령이지.]
[으음, 알겠습니다.]
마틴은 소울의 명령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그 표정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났다. 하지만 소울은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미리 이 정도는 대비를 해놓아야 했다.
북부대산맥에는 그리즐리와 미노트만 사는 것이 아니다.
어떤 괴랄한 몬스터와 마수가 튀어나와도 이상하지 않는 곳이 몬스터와 마수의 땅 북부대산맥이다.
소울 일행은 마차 안에서 미리 준비한 샌드위치로 아침을 먹고 물을 마셨다.
그리곤 다들 마차 벽에 기대서 잠을 청했다.
비몽사몽간을 헤매던 끝에 마차가 도착하자 다들 기지개를 펴면서 마차 밖으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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