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68 제 117 장 - 제3요새 =========================================================================
일반 길이 아니란 말에 소울은 순간 이해를 하지 못했다.
[그게 무슨 소리야?]
[땅 윗길이 아니라 아랫길이라는 소립니다.]
[그럼 혹시 지하 동굴?]
[네, 그렇습니다. 지하 동굴과 지하수맥를 타고 가야한다고 합니다.]
[미치겠군. 그건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소리잖아?]
[아직 100% 판독 작업이 끝난 것이 아니니 조금 더 시간을 두고 생각을 해봐야할 것 같습니다. 위치를 역으로 계산해서 정확하게 파악하면 굳이 위험하게 지하 동굴이나 지하수맥를 타고 가지 않아도 될지 모릅니다.]
[으음.]
광산을 개척하면서 지도를 제작해본 드워프가 있어서 지도를 판독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소울의 손에 들어온 두 개의 각각 다른 지도는 드워프들이 만든 일반 지도가 아니었다.
드워프의 조상들이 남긴 유산이라 100% 판독해내는 것이 마냥 쉽지만은 않았다.
쉽게 말해서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하다는 얘기다.
[할 수 없지. 기다려야 한다면 기다릴 수밖에……. 이런 일은 서두른다고 되는 일이 아니니 말이야.]
[잘 생각하셨습니다. 지도판독 작업이 완전히 끝나면 천천히 공략방법을 같이 생각해보도록 하시죠.]
[그래야겠어. 그런데 레이첼에게 접근하는 자는 없었나?]
[포리너스 부대원 중에 칩멍크족 하나를 감시자로 붙여 놓았습니다. 아직 접근해오는 자는 없었습니다.]
[칩멍크족이라면 다람쥐인간을 말하는 거야?]
[네, 그렇습니다. 전투력은 좀 떨어지지만 은밀히 정찰을 하거나 누구를 감시하는 데는 탁월한 능력을 가진 수인족입니다.]
[흐음, 그럼 믿고 맡겨도 되겠군.]
소울은 마틴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부지런히 요새 구석구석을 살펴봤다.
그가 제3요새의 사방을 빨빨거리며 돌아다니자 병사들은 소울을 한 번씩 쳐다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니 무척 신기하게 생각했다.
히어로들은 보통 제3요새의 북쪽 성벽에서 몬스터를 잡는데 몰두하지 이렇게 요새 안을 돌아다니며 구경하는데 열을 올리지는 않는다.
그런데 소울은 이마에 붉은 색 히어로 크리스털을 빛내며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뿌우우웅 뿌우우웅 뿌우우웅!
그때였다.
갑자기 요새 안에 세 번의 뿔 나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러자 병사들이 일제히 각자 자신의 자리를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소울만 이게 뭐가 하고 놀라서 그들이 하는 양을 쳐다봤다.
그러다가 자신의 바로 앞을 달려가는 병사 하나의 팔을 잡고는 물었다.
“무슨 일이지?”
“네? 아! 저 뿔 나팔 소리요?”
“그래.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소울이 다그쳐서 묻자 병사는 잔뜩 겁먹은 표정으로 빠르게 대답을 했다.
“몬스터웨이브, 혹은 마수웨이브가 일어났다는 소립니다.”
“고맙다.”
소울은 병사의 팔을 풀어주고는 즉시 북쪽 성루를 향해 뛰어갔다.
안 그래도 몬스터웨이브와 마수웨이브가 자주 일어난다는 소리를 듣고 그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궁금했었다.
그의 뒤를 마틴과 오웬이 빠르게 쫓아왔다.
제3요새의 성루로 올라가자 어느새 벤자민 왕세자를 비롯한 벤허기사단과 히어로들이 모두 모여서 북부대산맥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스터, 어서 오세요. 이쪽으로 와서 같이 봅시다.”
“네, 전하.”
소울의 등장에 벤자민 왕세자가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는 벤자민의 호의를 거절하지 않고 그의 옆으로 다가갔다.
벤허기사단 소속 기사들이 그를 보더니 가볍게 고개를 숙여왔다.
북부대산맥과 제3요새의 사이의 들판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아직 몬스터나 마수들이 이곳까지 도착을 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좌우를 돌아보니 무장을 한 병사들이 성벽 위에 가득했다.
그들은 부지런히 대 몬스터 전용병기에 날카로운 창을 걸고 전투준비를 하고 있었다.
소리 없이 빠르게 전투준비를 마치는 모습에 이들이 그동안 얼마나 훈련을 철저히 받아왔는지 알 수 있었다.
벤자민 왕세자 옆에는 엘라즈라 왕국군의 장군이자 제3요새의 사령관인 세토라가 서 있었다. 건장한 체격에 울퉁불퉁한 근육질을 가진 40대 중반의 남자였는데 눈이 부리부리한 것이 한눈에 봐도 범상치 않은 자였다.
“왕세자 전하, 아무런 걱정도 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몬스터웨이브와 마수웨이브는 제3요새에서는 늘 일어나는 일입니다. 제가 이곳에 부인한 이후, 제3요새는 단 한 번도 몬스터나 마수에게 점령당하지 않았습니다.”
“세토라 사령관의 위명은 이미 엘라즈라 왕국의 수도 라이라에서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습니다.”
“하하하, 그렇습니까?”
세토라는 벤자민의 칭찬에 기쁨을 숨기지 않고 크게 웃었다.
하는 짓을 보니 선이 굵고 거짓이 없는 자 같았다.
좋게 말하면 천생 무장이고 나쁘게 말하면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정치판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자였다.
잠시 소울이 세토라를 쳐다보고 있는 사이, 그들의 앞에 전령이 허겁지겁 달려와 무릎을 꿇었다.
“사령관 각하!”
“그래. 이번에 뭔가?”
“그리즐리 웨이브입니다.”
“그리즐리라……. 방어 전략을 그리즐리에 맞추도록 하자.”
“네, 각하.”
세토라가 북부대산맥을 바라보며 조용히 속삭이자 그의 뒤에 서 있던 부관들이 즉시 사방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즐리가 뭡니까?”
벤자민이 세토라를 쳐다보며 그리즐리에 대해 물었다.
“마수의 일종으로 커다란 검은 곰을 생각하시면 됩니다.”
“검은 곰이요?”
“그렇습니다. 하지만 일반 곰과는 차원이 다른 전투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신장이 3m 에서 4m 정도의 이족보행 마수입니다. 성격이 아주 포악하고 잔인한 놈입니다.”
“마수등급은 어느 정도나 됩니까?”
“굳이 비교를 하자면 D급 마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소울은 세토라의 말에 속으로 꽤 놀랐다.
최근에 간신히 턱걸이를 해서 B 클래스가 되긴 했지만, 로열형 리콜아바타로 처음 유희를 나왔을 때 클래스가 C 클래스였다.
그런데 마수웨이브를 이루는 객체 하나가 D 클래스라니, 이건 말이 되지 않았다.
‘설마 D급 마수가 지구처럼 수만에서 수십만이나 몰려오진 않겠지?’
스스로 상상해 봐도 그건 정말 끔찍한 일이었다.
“여긴 주로 어떤 몬스터나 마수가 많이 옵니까?”
“다양한 몬스터와 마수가 쳐들어옵니다. 하지만 가장 위협적인 놈을 꼽으라면 셋이 있습니다.”
세토라가 손가락 세 개를 펴서 보여주자 벤자민이 침을 꿀떡 삼키면서 그를 쳐다봤다.
세토라는 벤자민의 반응에 고무됐는지 연한 미소를 지으면서 신나게 설명을 해줬다.
“트로거, 미노트, 그리즐리입니다.”
“그리즐리는 방금 설명을 해서 알겠습니다만 트로거와 미노트는 뭔가요?”
“미노트는 미노타우로스와 비슷하게 생긴 마수로써 그리즐리와 비슷한 덩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미노트는 미노타우로스 보다 덩치가 조금 작지만 대신 빠른 스피드를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배틀엑스를 잘 써서 난전이나 1:1 전투가 되면 아주 위협적인 존재가 됩니다.”
“그러니까 미노트는 미노타우로스의 마수 버전인 셈이네요.”
“굳이 표현을 하자면 그렇습니다.”
“그럼 트로거는요?”
“트로거는 쉽게 말해서 트롤과 오우거를 합친 마수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트롤과 오우거를 합친 마수요?”
벤자민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라워했다.
놀라고 있는 것은 비단 벤자민 만이 아니었다.
소울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트로거는 트롤의 엄청난 회복력과 오우거의 강력한 힘이 합쳐진 마수로 북부대산맥에서 가장 위험한 마수의 한 종류입니다. 오우거보다 조금 덩치가 작은 이 놈은 번식력이 좋아서 무리의 숫자가 계속 늘어나고 있는 추세입니다.”
“아주 위험한 놈이군요.”
“사실 트로거 때문에 제3요새의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병력충원이 시급하다는 것이 트로거 때문이었군요?”
“그렇습니다. 지금은 히어로의 존재로 인해 어느 정도 방어가 가능하지만 이 상태로 계속 트로거의 숫자가 불어난다면 가까운 미래에 큰 위기를 맞을 수도 있습니다.”
세토라가 엄살을 부리는 건지 진짜 위협적인 건지 소울은 쉽게 판단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트롤과 오우거를 합친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 후자일 가능성에 절로 무게가 실렸다.
“옵니다.”
“온다.”
그때, 누군가가 북부대산맥 쪽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성루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고개가 북부대산맥이 시작되는 숲속을 향했다.
“그리즐리다.”
“역시 그리즐리가 맞네요.”
숲속 입구에서 수백 마리는 되어 보이는 검은 곰들이 나타나 슬금슬금 다가오고 있었다. 아직 거리가 멀긴 하지만 검은 곰 모양의 형체만 봐도 그리즐리라는 마수가 분명했다.
[주인님, 당장 포리너스를 동원해야 하지 않을까요?]
[조금 더 두고 보기로 하자. 한 번도 뚫린 적이 없다고 하니 당장 투입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알겠습니다. 그럼 일단 완전무장을 한 상태로 전투준비를 시켜 아래쪽에 대기시켜 놓겠습니다.]
[그게 좋겠다.]
[카렌 아가씨도 모시고 와야겠지요?]
[당연히 그렇게 해야지.]
[네, 주인님.]
소울의 허락이 떨어지자 마틴은 그에게 군례를 올린 후 성벽 아래로 뛰어 내려갔다.
카렌과 포리너스를 불러오기 위해서다.
“형님, 무슨 일입니까?”
“카렌과 포리너스를 데리러 갔어.”
“그렇군요.”
오웬은 소울의 말에 문득 자신의 신세가 참 처량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소울의 소환사인 카렌은 항상 그와 함께 동행 하고 있는데 자신의 소환사인 호세는 관에 갇힌 채 깊은 잠에 빠져있으니, 조금은 외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곧 고개를 흔들어 잡념을 털어버렸다.
자신이 메시엘에 온 이유는 소환사 때문이 아니었다.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서 온 것이다.
마나석과 젬스톤을 구해야 빚을 갚고 재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을 그는 잊지 않았다.
“마스터!”
“어, 카렌!”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뒤로 돌리자 카렌이 얼마나 열심히 뛰어왔는지 얼굴이 발갛게 상기 된 채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손을 한번 흔들어주자 카렌은 미소를 지으며 즉시 소울을 향해 걸어왔다.
하지만 성루는 직접적으로 몬스터와의 전투가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아 소환사들의 출입은 병사들에 의해 통제되고 있었다.
“소환사는 아래층 안전구역으로 이동해주시기 바랍니다.”
“아! 네.”
카렌은 아쉬운 마음을 접으며 병사의 안내를 따라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북부대산맥의 몬스터를 상대로 만들어진 어느 요새나 다름없이 제3요새도 소환사에 대한 안전구역이 준비되어 있었다.
주로 성루 아래쪽에 만들어 지는데, 일단 안전구역 안으로 들어가 문을 잠그면 오우거가 와도 열 수 없을 만큼 튼튼하게 놓았다.
북부대산맥 방향으로 손바닥만 한 구멍들이 나있어 소환사들은 그 누구보다 편하게 의자에 앉아서 전투를 잘 구경할 수가 있었다.
“히어로들은 각자 자신의 위치로 가주시기 바랍니다.”
“네.”
그리즐리 무리가 성벽 가까이 다가오자 세토라 사령관이 몸을 돌려 히어로들에게 정중하게 부탁했다.
히어로들은 매일 반복되는 세토라의 말에 가볍게 대답을 하고는 양쪽 성벽을 향해 흩어지기 시작했다.
아직 전투위치를 배정받지 않은 소울만이 남아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세토라 사령관은 소울을 한번 쳐다보고는 벤자민 왕세자에게 속삭였다.
“저 히어로가 왕세자 전하께서 데리고 오셨다는 그 히어로 입니까?”
“같이 온 것은 맞는데 내가 데리고 온 히어로는 아닙니다.”
“네? 그럼 여긴 어떻게?”
“노스트라까지 오는 여정의 호위를 의뢰하면서 알게 된 히어로입니다. 앞으로 이곳에서 몬스터 사냥을 하고 싶다고 해서 같이 왔습니다.”
“그렇군요.”
벤자민의 말에 세토라는 소울이 아직 자신의 거취를 정하지 않은 히어로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요즘 마나석과 젬스톤을 노리고 히어로들이 대거 북부대산맥으로 몰리고 있었다.
그런 히어로들을 노리고 왕당파와 귀족파가 치열한 영입경쟁을 벌이고 있다는 것은 노스트라에서 삼척동자도 다 알고 있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크와아앙 크와앙 크하아아아앙!
그리즐리들은 성벽 앞에 도착하자 일제히 포효했다.
기선을 제압하기 위해서인지 겁을 주기 위해선지 모르지만 나름 위협적이었다.
와아아아아아!
이번에는 성벽 위에 서있는 병사들이 일제히 함성을 질렀다.
그리즐리의 포효에 대한 응답인 셈이다.
그리즐리들은 병사들의 함성소리가 울리자 바로 입을 닫고는 곧바로 성벽을 향해 뛰어들었다.
============================ 작품 후기 ============================
* 종합건강검진을 시작했습니다. 이중 치과치료가 여전히 가장 무섭습니다. -.-;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선호작, 추천, 코멘트, 쿠폰, 후원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