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67 제 117 장 - 제3요새 =========================================================================
소울이 모임에 참석하겠다는 말에 다섯 명의 히어로들은 만족해했다.
동업자이면서 경쟁자인 관계라 수직적인 조직을 만들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아예 모임까지 없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그도 히어로들의 친목도모를 위한 모임이라면 참석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아니 꼭 참석해서 인맥도 만들고 필요한 여러 가지 정보를 얻기로 했다.
“다무스 백작은 나한테 불만이 많은 모양이네.”
“그럴 만도 하지 매달 짭짤하게 챙기던 알짜배기 수익 라인 하나가 마스터 때문에 박살이 났으니 기분이 좋을 리는 없겠지.”
“그럼 결국 저놈이 몸통이었단 말이야?”
“자잘한 귀족 놈들 몇 명이 더 있지만 결국 다무스 백작의 하수인에 불과하지.”
프로이드는 소울이 궁금해 하는 정보를 정확하게 집어서 얘기했다.
역시 다무스 백작은 날 잡아서 한번 손을 봐줘야 할 것 같다.
재칼이 돌연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마스터, 넌 어디서 왔어?”
“엔팔에서 왔어.”
“아니 그런 뜻이 아니라 출신 행성이 어디냐고 묻는 거야?”
재칼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묻는 말에 소울은 자신도 모르게 지구에서 왔다고 말할 뻔 했다. 하지만 입을 떼려는 순간, 뭔가 느낌이 좋지 않아 다시 입을 조개처럼 다물고 가만히 침묵했다.
‘히어로들끼리 서로의 출신 행성에 대한 묻는 것이 일반적인 일일까?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설사 그렇다고 해도 굳이 내가 그런 정보를 공개적인 석상에서 까발릴 필요는 없지.’
소울은 재칼을 비롯한 그 누구에게도 자신이 어디에서 왔는지 어느 행성출신인지 말해주지 않기로 결정했다.
따로 친분이 있는 것도 아니고, 생사를 같이한 전우도 아닌 녀석들에게 굳이 자신이 먼저 말해줄 이유가 없는 것이다.
다섯 명의 히어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서 재칼을 바라보는 소울의 행동에 은근히 서로 눈치를 살폈다. 특히 재칼은 소울의 눈을 슬쩍 피하며 아예 딴청을 부렸다.
그의 행동을 통해 소울은 자신이 결정한 행동이 옳았다는 것을 확신했다.
‘이 녀석이 나를 떠본 거였군. 아니면 호구로 보고 한번 간을 봤던가?’
당장 그의 의도를 확인해볼 수는 없었지만 분명히 재칼에게 뭔가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도대체 갑자기 왜 출신행성에 대해 물어봤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히어로들의 행동을 조심스럽게 관찰했다.
가만히 살펴보니 제3요새에서 5강(强)이라 부르는 프로이드, 재칼, 니체, 하이들러, 오마하는 서로 무척 친해 보였다.
하지만 벤자민 왕세자가 초대한 나머지 다섯 명의 히어로들과는 데면데면한 사이인 것 같았다.
이것으로 유추해볼 때, 히어로들 사이에 혹시 파벌이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거기까지 생각을 미치자 확실히 그들 사이에 뭔가 미묘한 기류가 흐르고 있는 것 같았다.
“다들 내일 제3요새로 가는 거야?”
이번에는 소울이 재칼에게 물어봤다.
그러자 재칼 대신 프로이드가 대답했다.
“응. 맞아.”
“거길 가면 보통 얼마나 머물지?”
“1주일에서 2주일 정도 몬스터 사냥을 해.”
“몬스터 사냥을 하는 시간이 따로 정해져 있는 거야?”
“그렇진 않아. 각자 자신의 상황에 맞춰서 하면 돼. 다만 제3요새 사령관이 최소한 히어로 다섯 명 이상으로 항상 전력을 유지해달라고 부탁을 하는 바람에 우리도 거기에 맞춰서 언제나 다섯 명은 제3요새에서 머물고 있지.”
결국 히어로 다섯 명씩 팀을 짜서 교대로 돌리는 것이 관행이라는 말이다.
물론 소울은 전혀 그러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자신은 따로 해야 할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소울이 히어로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 사이 만찬은 자연스럽게 끝나갔다.
주최자인 벤자민 왕세자는 내일 아침 일찍 제3요새로 출발하는 것을 이유로 만찬을 길게 끌지 않았다.
귀족들과 만찬을 즐기면서 적당히 안면을 트고 얘기를 나누고 나자 곧 자리를 떴다.
볼일을 다 본 귀족들도 벤자민 왕세자가 떠나자 미련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인공인 벤자민 왕세자와 귀족들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자 히어로들도 곧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소울은 자리에서 일어나자 곧바로 다른 히어로들이 있는 테이블로 가서 인사를 했다.
기왕 이렇게 만났으니 안면을 트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에서다.
나머지 히어로 다섯 명과 통성명을 하자, 먼저 찾아온 소울을 좋게 봤는지 그들도 반가운 얼굴로 맞아주었다.
그런 소울의 모습을 프로이드를 비롯한 다섯 명의 5강(强) 히어로들은 묘한 표정을 지으며 지켜보고 있었다.
* * * * *
북부대산맥은 메시엘 행성에서 가장 높고 광활한 산맥이다.
수십 미터의 거목들로 이루어진 울창한 수해(樹海)가 융단을 깐 듯 끝없이 펼쳐져 있고 산맥의 정상에는 하얀 물감으로 고이 칠해놓은 만년설이 고고한 자태를 드러내고 있다.
수많은 생명체를 아우르고 있는 북부대산맥!
그냥 보기만 해도 왠지 대자연의 아름다움과 위대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러나 막상 저 안으로 들어간다면 그런 감상 따위는 사치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북부대산맥 안에는 셀 수 없이 많은 몬스터와 마수들이 들끓고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요새의 문을 열어라.”
“네.”
제3요새의 성루에서 누군가가 크게 소리를 지르자 철문이 쇳소리로 몸살을 앓으며 조금씩 틈을 벌리기 시작한다.
끼이이익 끼이이익!
거대한 요새의 철문이 양옆으로 천천히 갈라지자 미리 대기하고 있던 벤허기사단 기사들이 말을 몰고는 요새 안으로 쏜살같이 달려간다.
우두두두두!
하얀 백마를 타고 있는 벤자민 왕세자와 검은 말을 탄 다무스 백작이 담소를 하며 그 뒤를 쫓자, 그 뒤로 오백 명의 엘라즈라 왕국군 정예병이 기치창검을 높이 세우고 진입한다.
이십 여명의 히어로들이 그들의 뒤를 따라 말없이 요새 안으로 들어가고 있다.
‘흐음, 잘 만들어진 요새로군. 튼튼하다 못해 웅장한 요새야.’
제3요새의 첫인상은 나쁘지 않았다.
북부대산맥에서 쏟아져 나오는 몬스터를 온몸으로 막아내는 북부 대장벽의 핵심적인 요새답게 커다란 돌로 세워진 요새는 크고, 높고, 단단해 보였다.
행렬의 마지막에 위치한 소울과 포리너스는 제3요새의 성문을 통과하며 연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다른 부대 같으면 그런 모습에 지휘관이 호통을 치기도 하겠지만 포리너스는 특별히 그런 것을 가지고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다.
일단 부대의 사령관인 소울부터 자유로운 영혼이라 포리너스 부대원들이 호기심을 가지고 두리번거리는 모습에 딴죽을 걸지 않았다.
“우와, 요새 한번 튼튼하게 생겼다.”
“규모가 엄청나네.”
“역시 인간들은 이렇게 비효율적으로 무식하게 크고 높게 짓는 것을 좋아하는군.”
“요새 안에 나무가 별로 없다. 마음에 들지 않아.”
포리너스 부대원들이 다들 한마디씩 던지고 지나가자 금세 부산스러운 느낌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문을 지키는 병사들은 포리너스 부대원들을 무시하지 못했다.
포리너스는 잘 무장된 기병들이었기 때문이다.
제3요새는 밖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규모가 컸다.
수천 명의 병사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모습은 마치 작은 요새도시를 보는 것 같았다.
몬스터웨이브나 마수웨이브가 일어나 설사 포위된다고 할지라도 최소한 몇 달은 농성을 하면서 버틸 수 있는 기반시설이 잘 갖춰져 있었다.
‘북부대산맥을 향해 세워진 성벽은 높고 단단하다. 대 몬스터 전용무기도 성벽 위에 잘 배치된 것을 보면 병사들만으로 충분히 몬스터방어가 가능하겠구나. 그렇다면 히어로들은 어디서 몬스터사냥을 하지? 설마 북부대산맥 안으로 직접 들어가서 몬스터 사냥을 하는 건가?’
소울은 당장 이런 의문이 생겼다.
아무리 히어로가 강한 존재라고 해도 북부대산맥 안으로 들어가면 생사를 장담할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의 의문은 성벽 위로 올라가 북부대산맥을 향해 시선을 돌리자 바로 풀렸다.
제3요새 남쪽 성문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한 모습이 북부대산맥과 요새의 성벽 사이에 존재하고 있었다.
북부대산맥과 제3요새 사이에는 꽤 넓은 들판이 펼쳐져 있었다.
그 사이에는 누가 만들었는지 모르지만 묘한 시설이 하나 갖춰져 있다.
요새의 성벽 중앙에서 시작한 또 하나의 성벽이 완만한 경사를 이루며 세로로 길게 늘어서 있는 것이다.
북부대산맥을 향해 세로로 뻗은 성벽의 제일 끝에는 그리 크지 않은 원형의 작은 요새가 연결되어 있었다.
아마 그곳이 바로 히어로들의 전장이 아닐까 싶었다.
문제는 저 원형의 작은 요새가 몬스터나 마수들에게 함락되면 세로로 늘어 세워진 성벽을 따라 곧바로 성벽을 향해 진입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덜컹!
하지만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소울이 생각해낸 문제가 해결됐다.
세로로 만들어진 성벽 중간에 설치된 기관 장치에 의해 바닥이 밑으로 푹 꺼져 버린 것이다.
세로 성벽의 중간에 약 10m에 달하는 바닥이 사라져 버리자 아무리 점프력이 뛰어난 몬스터나 마수라 할지라도 쉽게 넘어오기는 힘들어 보였다.
아니 설사 뛰어서 넘어온다고 하더라도 몬스터나 마수 몇 마리로는 성벽위에 설치된 대 몬스터 전용무기의 공격을 뚫고 진입하기 어려울 것 같았다.
소울은 성벽 위에서 충분히 주변을 살펴본 후 아래로 내려왔다.
“마스터의 주둔지는 동쪽 끝에 있는 저 이층건물입니다.”
“고맙다.”
그때를 기다렸는지 병사하나가 잽싸게 달려와 소울에게 주둔지를 확인시켜줬다.
그가 가리킨 곳으로 가보자 넓고 허름해 보이는 건물이 보였다.
하지만 그래도 돌로 만들어진 곳이라 무척 튼튼해 보이긴 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먼저 넓은 로비가 보였다.
사각형의 단순한 구조에 널찍한 방들이 양쪽으로 늘어서있는 것이 무척 효율적이었다.
중앙에는 넓은 식당이 있었고 건물 뒤쪽에는 훈련을 위한 공터와 마구간이 따로 세워져있었다.
“다이애나, 포리너스 부대원들에게 가서 짐 풀게 하고 식사를 챙겨줘라.”
“네, 마스터.”
소울의 말에 다이애나는 즉시 군례를 올리고 십부장들을 불러 모았다.
이제는 제법 능숙하게 지휘를 해내는 다이애나다.
그녀의 아름다운 옆모습을 잠시 지켜보던 소울은 이내 몸을 돌렸다.
제3요새를 조금 더 둘러보기로 한 것이다.
그의 옆으로 마틴과 오웬이 조용히 따라붙었다.
“한 바퀴 둘러보자.”
“네, 형님.”
오웬을 힐끔 한번 쳐다본 소울은 걸어가면서 마틴과 조용히 대화를 시작했다.
[노스트라의 저택은 잘 돌아가고 있겠지?]
[그렇습니다. 레이첼이 생각보다 잘 해주고 있습니다. 그냥 맡겨놓아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이족노예들은?]
[노예상인들로부터 꾸준히 사들이고 있습니다.]
[얼마나 사들였지?]
[벌써 서른 명이나 됩니다.]
[앞으로의 전망은?]
[아마 곧 포리너스를 하나 더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예상됩니다.]
[노예상인들이 그동안 이족들을 사냥해서 많이도 팔아먹었군.]
[그런 것 같습니다.]
생각보다 이족노예들의 숫자가 빠르게 불어나고 있었다.
포리너스 부대원 몇 명을 저택에 두고 이족노예들을 사들여 훈련시키고 있었는데 조만간 굳이 참견을 하지 않아도 자체적으로 해결이 가능할 것 같았다.
[라이라에서 구매한 물건들은?]
[우리가 필요한 물건들을 제외하고는 거의 다 팔렸습니다. 덕분에 마나석과 젬스톤을 꽤 모았습니다.]
[그건 큰 수확이군.]
마나석과 젬스톤은 큐브상점이나 스피어상점 양쪽 모두에서 적극적으로 구입해가는 아이템들이다.
특히 소울넷 포인트로 바로 교환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아이템이기도 했다.
결정적으로 마나석과 젬스톤 거래는 소울넷 유저의 등급을 올리는데 필요한 업적 포인트를 준다.
소울이 라이라에서 가져온 물건들을 팔고 물건의 대금을 마나석과 젬스톤으로 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또한 마나석과 젬스톤은 그 자체로 이곳에서 화폐역할을 하고 있었다.
마나석과 젬스톤을 모으는 것은 아무리 많아도 지나치지 않다.
[수지와 그녀의 가족은?]
[당분간 저택에 머물기로 했습니다. 저택에 일손이 부족한 것을 잘 알고 있는 레이첼이 그녀의 가족들을 모두 고용하기로 했습니다.]
[잘됐군.]
[소냐는 저택의 경비대장을 맡겼습니다. 말씀하신대로 세라와 루안에게도 방 하나씩 제공했습니다.]
[이것으로 소냐와 한 약속은 지켰군. 지도 판독 작업은 어떻게 됐어?]
[드워프들 말에 의하면 일반 길은 아닌 모양입니다.]
============================ 작품 후기 ============================
* 부산으로 손님이 내려와서 이틀 동안 무지하게 바빴습니다. 저녁에 KTX를 태워 서울로 보내고 나니 이제야 조금 시간이 나는군요. 내일부터 다시 슬슬 달려볼까 생각합니다. ^^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선호작, 추천, 코멘트, 쿠폰, 후원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