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OULNET-466화 (466/492)

00466  제 117 장 - 제3요새  =========================================================================

“이번엔 일을 아주 크고 화끈하게 벌이셨네요?”

“하하하, 어쩌다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벤자민 왕세자의 앞에 앉은 소울은 얼굴이 조금 화끈거리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특유의 철면피신공을 이용해서 속내를 감추고 태연한 척 했다.

“테크니컬 한 문제가 좀 남아있긴 하지만 그래도 잘하셨어요.”

“네?”

벤자민의 의외의 말에 소울의 철면피신공이 그대로 깨지고 말았다.

뭐라고 욕을 잔뜩 얻어먹을 것 같았는데 벤자민은 오히려 잘했다며 웃고 있다.

“노스트라 시에서 악명이 자자했던 놈들이었습니다. 안 그래도 원성이 극에 달해있었는데 화끈하게 한방에 해결됐으니 잘 된 셈이지요. 단지 방법론에서 좀 과격했다는 것이 문제의 여지를 남기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그럼 그 문제의 여지는 알아서 잘 해결해주실 줄 믿겠습니다.”

“네에?”

이번에는 벤자민이 놀라고 말았다.

“설마 히어로인 내가 그런 사소한 문제에 연루되어 곤욕을 치러야 한다는 말씀은 아니시겠지요?”

“푸하하하하! 절묘한 수가 나왔네요. 전가의 보도인 히어로 드립을 꺼내시다니…….”

“사실이니까요.”

벤자민은 소울의 말에 기분이 유쾌해진 듯 웃음이 가득했다.

“하지만 조금은 귀찮아질 가능성이 있어요. 그건 어쩔 수 없으니 이해해주시기 바래요.”

“네, 봐서요.”

“하하하, 절대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으시네요.”

“제가 좀 까다로운 히어로라서 말이지요.”

“마스터 정도면 그리 까다로운 히어로는 아닙니다.”

벤자민과 소울은 의외로 죽이 잘 맞았다.

아니 소울에게 벤자민이 잘 맞춘다고 해야 할까?

어찌됐던 두 사람은 상성이 잘 맞는지 대화가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의 즐거운 대화도 그리 오래가지는 않았다.

노스트라 시청 회의실은 그들만의 전유물은 아니었던 것이다.

벤자민 왕세자는 제3요새로 출발하기 전, 노스트라의 귀족들과 히어로들을 초대했다. 벤자민 왕세자가 노스트라 시의 귀족들에게 ‘이제부터 나는 공식적인 활동에 들어가겠다.’고 선언을 한 셈이다.

사람이 살고 있는 곳이라면 어디나 권력투쟁이 있기 마련이다.

노스트라를 비롯한 엘라즈라 왕국 북부도 왕당파와 귀족파로 나눠져 암투를 벌이고 있었다.

물론 이곳은 몬스터의 침입을 막는다는 대의명분이 강하게 작용하는 곳이라 왕당파의 세력이 귀족파에 비해 압도적으로 컸다.

그렇다고 벤자민 왕세자의 말을 호락호락 다 들어주는 것도 아니었다.

그들이 충성을 맹세한 사람은 현재의 국왕이지 벤자민 왕세자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히어로들을 초대한 것은 귀족들을 부른 이유와는 또 달랐다.

서로 얼굴을 확인하고 안면을 좀 익혀보자는 의도였는데, 특히 제3요새의 5강(强)으로 꼽히고 있는 다섯 명의 히어로를 초대한 것은 앞으로 잘 좀 부탁한다는 의미가 진하게 담겨있었다.

우르르르르!

시청 회의실로 한껏 멋을 낸 귀족들이 몰려들었다.

그들의 뒤로 이마에 히어로 크리스털이 영롱하게 빛나고 있는 히어로들이 걸어 들어왔다.

그는 귀족들을 아예 쳐다보지도 않았다.

별로 신경 쓰지도 않는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히어로들은 달랐다.

그들은 동종업계 동업자이기도 하고, 경쟁자인 관계라 하나씩 들어오는 모습을 주의 깊게 살펴봤다.

‘히어로 크리스털이 파란색도 있네. 그렇다면 B 클래스의 히어로인 셈인가? 로열형 리콜아바타라고 해도 성장이 거의 한계에 다다른 자들이로구나.’

히어로라는 것이 100% 클래스만으로 우열이 판가름 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클래스는 히어로를 판별하는데 무시할 수 없는 명백한 판단기준이 된다.

거 왜 클래스는 영원하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렇게 생각해보면 이곳에 참석한 히어로 중 소울보다 클래스가 낮은 히어로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모두 자리에 착석해주십시오.”

시장인 다무스 백작이 소리치자 귀족들과 히어로들은 각자 자신의 이름이 써져있는 자리를 찾아가 앉았다.

벤자민 왕세자가 상석에 앉고 왼쪽에는 귀족, 오른쪽에는 히어로들이 앉아 있었다.

다무스 백작은 벤자민 왕세자의 바로 옆에 앉아 있었는데 소울을 지그시 바라보고 있었다.

소울은 다무스 백작을 향해 미소를 지으며 손을 한번 들어줬다.

그러자 다무스 백작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더니 이내 표정을 감추고 고개를 돌렸다.

“나는 엘라즈라 왕국의 벤자민 왕세자입니다. 초대에 응해주신 노스트라의 귀족들과 히어로 여러분들께 감사의 인사말을 전합니다.”

“노스트라에 오신 왕세자 전하를 환영합니다.”

벤자민이 가볍게 고개를 숙이면서 말하자 다무스 백작이 환영의 인사를 하며 답을 했다. 벤자민은 수도인 라이라에서 닳고 닳은 고위 귀족들을 많이 상대해 봐서 그런지 혀가 아주 매끄럽게 돌아갔다.

“엘라즈라 왕실의 전통에 따라 나는 내일 제3요새로 가서 몬스터 사냥을 시작할 것입니다. 여러분의 많은 협조와 응원을 부탁드립니다.”

“오히려 저희들이 잘 부탁드려야지요.”

이번에도 다무스가 벤자민의 말을 받아 대답했다.

다른 귀족들이나 히어로들도 다무스가 하는 말을 듣고 당연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것으로 다무스는 노스트라 귀족들의 실세라는 것을 드러냈다.

벤자민과 다무스는 마치 미리 입을 맞추고 나오기라도 한 것처럼 물이 흐르듯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대화를 이어갔다.

온갖 미사여구와 정치적인 수사를 동원해가며 노스트라의 귀족들을 띄워주고 또한 벤자민 왕세자를 띄워줬다.

시간이 좀 지나자 히어로들은 지루한 표정을 하며 고개를 돌리고 딴청을 피웠다.

소울을 쳐다보는 자도 있었고 눈을 감거나 멍 때리는 자도 있었다.

다행히 벤자민은 눈치가 빨라서 곧 형식적인 대화를 끝내버리고 곧바로 연회장으로 사람들을 유도했다.

“이제 모두 옆의 연회장으로 자리를 옮겨서 같이 만찬을 즐기도록 합시다.”

“네, 전하.”

벤자민의 말에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연회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연회장 안은 집사와 하녀들에 의해 아담하게 꾸며져 있었다.

중앙에는 하얀 식탁보가 깔린 긴 탁자가 있었고 한쪽 벽에 붙은 테이블 위에는 벤자민이 수도에서 데리고 온 왕실요리사가 만든 온갖 맛있는 요리들이 즐비했다.

연회장에 들어온 귀족들은 살짝 감탄성을 발하며 자리에 앉았다.

히어로들도 내가 언제 지루해했냐는 듯 눈빛을 빛내며 군침을 삼켰다.

그 모습에 벤자민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소리쳤다.

“만찬이 준비됐으니 이제 식사를 하도록 합시다.”

“네, 전하.”

벤자민의 제안에 모두 한마음으로 대답을 했다.

귀족과 히어로들은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요리가 즐비한 테이블로 다가갔다.

식사는 하녀들이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라 뷔페식이었다.

각자 먹고 싶은 요리를 자신의 접시에 담아서 가져와 먹으면 되는 것이다.

라이라에서 이미 이런 요리들을 질리게 먹어본 소울이라서 굳이 먼저 음식을 가지러 나가지 않았다. 자신이 앉아 있는 테이블 위에 놓인 음료수를 컵에 따라 조금씩 마셨다.

그때 그의 앞으로 다무스 백작이 나타났다.

“히어로 마스터!”

“다무스 백작!”

두 사람의 눈빛이 허공에서 부딪치며 스파크가 일어나는 듯 했다.

“어제는 좀 심하셨습니다.”

“뭐가 말입니까?”

“노스트라 시내에서 수백 명을 도륙해버린 것 말입니다.”

“아! 쓰레기 청소 한 것 때문에 그러시구나?”

다무스는 소울의 말에 미간에 내 천(川) 자를 그려냈다.

“앞으로는 좀 자제해주세요.”

“뭘 말입니까?”

“노스트라에서 문제를 일으키지 말아달라는 말입니다.”

“아! 그러니까 다무스 백작이 뒤를 봐주면서 상납금을 챙기고 있는 고리대금업자들과 깡패새끼들을 내버려두라는 말씀이시군요?”

“아, 아니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겁니까?”

“무슨 말을 하다니요? 이 장부책에 나온 진실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 그런.”

다무스와 소울이 언성을 높이자 주변의 귀족들과 히어로들이 일제히 두 사람을 쳐다봤다.

소울은 생글거리며 한손에 손바닥만 한 장부책을 흔들었다.

장부책을 쳐다보는 다무스의 얼굴에 놀라움과 당혹감이 서린다.

다무스는 금세 얼굴이 벌겋게 변하더니 두 주먹을 부르르 떨고는 아무 말 없이 몸을 돌렸다.

“적당히 좀 합시다.”

“으으으!”

다무스는 소울의 말에 잠깐 걸음을 멈췄다가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혹 떼려다 혹 붙인 격이 된 다무스는 공개적인 자리에서 개망신을 당하는 바람에 연신 차가운 냉수를 벌컥댔다.

‘병신 새끼! 아주 개지랄을 떠네. 노스트라 귀족들의 실세나 되는 놈이 체면도 없나? 더럽고 추잡한 돈까지 가리지 않고 다 받아 처먹고 있구나.’

소울은 다무스를 마치 해충을 보는 듯한 눈빛으로 보고는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우와, 이거 아주 꼴통이 하나 들어왔네?”

“그러게 말이야.”

“앉아도 되지?”

“반가워.”

“빈자리 많네.”

그때였다.

갑자기 소울이 앉아 있는 테이블로 제3요새의 5강(强)으로 불리는 다섯 명의 히어로가 나타나 합석했다.

“반갑다.”

소울은 다섯 명의 히어로가 편하게 말하자 자신도 그들에 맞춰 편하게 말했다.

“벤자민 왕세자와 같이 온 히어로가 누군가 했더니 자네였군. 앞으로 자주 볼 것 같은데 서로 통성명이나 하자.”

“좋아.”

소울은 먼저 다가온 히어로들에게 적대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오히려 귀찮지 않게 한꺼번에 다가와 줘서 고맙기까지 했다.

“난 니안의 히어로 프로이드야.”

“난 재칼이다. 토로의 히어로지.”

“니체다. 라라와 함께하고 있어.”

“하이들러다. 숀의 히어로다.”

“티미의 오마하다.”

다섯 명은 각자 개성에 맞게 자기소개를 했다.

소울은 그들이 소개하는 방식에 맞춰 자신을 소개했다.

“카렌의 히어로 마스터다.”

“마스터가 이름인가?”

“다들 그렇게 부르고 있다.”

“그럼 우리도 그렇게 부르지.”

소울의 눈이 다섯 명의 히어로를 차례로 살펴봤다.

제일 먼저 프로이드를 쳐다봤다. 금발에 푸른 눈을 가진 멋진 신사의 모습을 한 자가 바로 프로이드다.

그 옆에 앉은 호리호리한 사내, 재칼은 사파리를 나온 사냥꾼을 연상케 했다.

니체는 붉은 색의 커다란 콧수염이 인상적인 히어로였고 하이들러는 9:1 가르마를 한 전형적인 모범생의 모습을 한 사내였다.

오마하는 윤기가나는 매끄러운 살결을 지닌 흑인이었는데 굉장히 키가 컸다.

그들의 뒤쪽을 보니 다른 테이블에 히어로 다섯 명이 더 앉아 있었다.

하지만 존재감이 눈앞에 앉아있는 다섯 명의 히어로를 능가하지는 못했다.

“마스터가 어제 한 일로 지금 노스트라가 아주 시끄러워졌어.”

“난 단순히 내 동료를 납치해간 놈들을 응징했던 것뿐이야.”

“사정은 대충 들었다. 하지만 너무 튀는 행동은 자제해줬으면 좋겠어. 괜히 사건사고에 엮이기 싫어서 그래.”

프로이드가 대표로 하는 말에 소울은 얼굴을 차갑게 굳혔따.

“지금 나에게 명령이나 무슨 경고를 하고 있는 거야?”

“아니야. 부탁을 하는 거야. 나를 포함한 히어로들은 이곳에서 마나석과 젬스톤을 얻는 것 외에는 크게 관심이 없거든. 너도 그것 때문에 온 거 아니야?”

“난 겸사겸사해서 왔어.”

소울의 말에 히어로들의 눈빛이 빛났다.

“아쉬울 게 없는 히어로였군. 무척 드문 케이스야.”

“그게 무슨 소리지?”

프로이드의 말이 이해가 가지 않았던 소울이 바로 질문을 했다.

“말 그대로야. 이곳에 오는 히어로들은 대부분 유희를 위해서 오는 것이 아니라 주로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서 오거든. 우리와 입장이 다른 히어로가 나타나서 놀랐을 뿐이야.”

프로이드의 눈빛에서 숨길 수 없는 부러움이 스쳐지나갔다.

소울은 그 눈빛이 이상하게 불길했다. 그래서 서둘러 말을 조금 바꿨다.

“크게 입장이 다르지는 않아. 나도 마나석과 젬스톤이 주목적이니까. 다만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이 짓을 좀 즐기면서 하자는 주의야.”

“그럼 다행이고.”

프로이드의 표정이 전보다 조금 풀리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그의 말을 다 믿는 것 같지는 않았다.

소울도 프로이드의 말을 곧이곧대로 다 믿는 것은 아니니 결국 피장파장이었다.

“제3요새는 우리 다섯과 저기 뒤에 보이는 다섯 명의 히어로를 합쳐 총 스무 명의 히어로가 있어. 특별히 무슨 조직을 만들어서 운영하는 것은 아니지만 히어로들의 친목도모를 위해 정기적으로 모임을 가지고 있어.”

“그 모임에 내가 꼭 들어야 하는 거야?”

“그런 것은 아니야. 하지만 모임에 참여하지 않은 히어로는 없다는 것을 유념해줬으면 좋겠어.”

“그렇다면야 나도 참가해야지.”

“아주 좋아. 그럼 제3요새에 도착하면 모일 장소와 시간에 대해 알려주도록 하지.”

“고마워.”

“천만에.”

프로이드와 소울은 서로의 손을 잡고 굳게 악수를 했다.

============================ 작품 후기 ============================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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