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62 제 116 장 - 노스트라 =========================================================================
“저쪽이 북부대산맥입니다. 그리고 마스터와 일행들이 머물 장소는 노스트라 시의 북부에 있는 저택입니다. 여기 버너 기사단장이 마스터를 안내해드릴 겁니다.”
“그 저택을 쓰라는 말이시군요.”
“그렇습니다. 이제 그 저택은 마스터의 소유입니다. 며칠 안으로 소유권을 이전절차를 밟을 테니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당연히 기다려야지요.”
소울은 바로 얼굴이 확 펴지더니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냥 집도 아니고 저택을 준다니 이정도 기다리는 것쯤은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일국의 왕세자가 저택이란 단어를 썼으니 꽤나 큰 집, 아니 저택이 분명하다.
“마스터, 따라오시지요. 제가 안내해드리겠습니다.”
“그래요. 버너 기사단장.”
소울은 버너 기사단장을 따라 시청을 한 바퀴 돌아 북쪽으로 올라갔다.
벤자민은 그가 안 보일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남들이 보면 연인인줄 알 공산이 커서 소울은 절대 마차 밖으로 얼굴을 내밀지 않았다.
귀족들이 타는 화려한 마차 두 대와 짐마차 열대 그리고 완전무장을 한 포리너스 부대원들이 전투마를 타고 갔다.
길 양옆을 걸어가는 노스트라 시민과 병사들은 모두 소울 일행을 호기심에 가득한 표정으로 쳐다봤다.
“여깁니다.”
“아! 멋진 저택이군요.”
“정문에 이집을 관리해줄 집사와 하녀들이 대기하고 있을 겁니다. 그럼 편히 쉬십시오.”
“고마워요.”
벤허기사단장 버너가 말 위에서 인사를 하고는 기수를 돌렸다.
소울은 버너와 기사들이 돌아가자 곧바로 마차를 움직여 안으로 들어갔다.
커다란 저택을 앞뒤 포위하고 있는 넓은 정원이 눈에 들어왔다.
그에 맞게 널찍한 도로가 마음에 들었다.
저택은 석조 건물로, 중세의 귀족들이 머물 것 같은 고풍스러운 멋이 흘러넘쳤다.
저택의 중앙 전면에 있는 분수대 앞으로 가자 집사로 보이는 나이 지긋한 집사가 90도 각도로 고개를 숙인다.
가볍게 같이 고개를 끄덕이며 마차를 세우자 이번에는 집사의 뒤에 서 있던 수십 명의 하녀들이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일제히 고개를 숙인다.
“마스터와 포리너스 부대를 환영합니다.”
“고개를 들어라.”
“네, 마스터.”
규율과 절도가 칼 같은 것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집사의 눈과 얼굴을 보니 첫인상도 썩 나쁘지 않았다.
물론 사람의 마음을 첫인상으로 좌우할 수는 없지만 올곧은 성미가 느껴졌다.
“레이첼!”
“네, 주인님.”
“오늘부터 이 저택은 네가 관리한다.”
“네? 아! 네.”
레이첼은 깜짝 놀랐다.
평생을 노예로 살줄 알았는데 노스트라로 들어오자마자 이런 대저택의 관리를 맡기다니 정말 감동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레이첼은 두 손을 가슴에 모으고 얼굴을 상기시킨 상태로 눈을 반짝반짝 빛내고 있었다.
‘명색이 일국의 공주였으니 이런 저택 하나 관리하지 못할 리 없다. 내가 귀찮게 저택이나 관리할 수 없으니 당연히 레이첼을 부려먹어야지.’
소울은 저택관리를 누구에게 시킬까 생각하다가 레이첼을 선택한 것 뿐이었다.
그녀의 생각과는 거리가 좀 멀긴 했지만 어쨌든 인사(人事)가 곧 만사(萬事)라고 성공적인 발탁으로 자부하고 있었다.
“집사의 이름이?”
“제 이름은 어네스트입니다.”
“어네스트! 좋은 이름이다.”
“감사합니다.”
“오늘부터 이 저택은 내 소유다. 알고 있지?”
“네, 그렇습니다.”
“여기 레이첼이 나를 도와 저택을 관리할 것이다. 앞으로 레이첼 총관의 지시를 받도록 해라.”
“네, 마스터. 레이첼 총관님 잘 부탁드립니다.”
“레이첼이에요. 잘 부탁해요.”
어네스트는 레이첼과 대화를 해보더니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
레이첼이 귀족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혼자만의 오해다.
나중에 레이첼이 공주였다는 것을 알면 아마 크게 놀랄 것이다. 아니 소울의 노예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기절하게 될지도 몰랐다.
본관 이층은 소울과 마틴, 카렌과 레이첼이 쓰기로 했다.
본관 일층에는 수지, 소냐, 세라, 루안이 각각 방을 배정 받았다.
별관 전체는 포리너스 부대가 쓰기로 했다. 다만 위스피나 숲 엘프 다이애나, 강철망치 전사 알렉스, 냥족 나비엘, 울파족 전사 켄, 티거족의 전사 탈칸은 마스터와의 소통을 위해 항상 1층 회의실에서 돌아가며 대기하기로 했다.
어네스트 집사와 하녀들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소울 일행과 포리너스 부대는 빠르게 자신의 거처를 배정받아 쉬러 들어갔다.
하지만 모두가 같은 시간에 전부 쉴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저택의 1층, 중앙 로비의 왼쪽에 있는 응접실에는 소울과 레이첼, 마틴과 수지가 소파에 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다.
“어네스트!”
“네, 주인님.”
“앞으로는 마스터라고 부르도록 해.”
“네, 마스터.”
“이 저택은 누가 쓰던 저택이지?”
소울은 어네스트 집사가 가져다준 차를 홀짝거리며 쳐다봤다.
어네스트 집사는 잠시 고개를 돌려 창문을 한번 쳐다보고는 이내 차분하게 설명을 했다.
“이곳은 지금까지 엘라즈라 왕실 소유의 저택이었습니다. 이번에 벤자민 왕세자께서 마스터에게 소유권을 양도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내 말은 전에 쓰던 주인이 누구였냐는 말이야.”
“수많은 노스트라의 귀족들이 이 저택의 주인이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몬스터와의 전투에서 돌아가시고 결국 엘라즈라 왕실로 소유권이 넘어갔지요.”
저택의 주인들이 대부분 죽었다는 말에 소울은 왠지 가슴이 뜨끔했다.
“이 저택이 얼마나 비워져 있었지?”
“그동안 노스트라 시의 시장이신 다무스 백작께서 사용하고 계셨습니다. 저와 하녀들은 다무스 백작께서 고용하셨습니다.”
“그럼 어네스트 집사와 하녀들은 모두 다무스 백작의 사람이라 돌아가야 하는 건가?”
“그렇진 않습니다. 비록 다무스 백작께서 저를 고용하셨지만 백작의 가신은 아닙니다. 또한 하녀들도 다무스 백작과는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제가 직접 면접을 봐서 고용했기 때문입니다.”
“그럼 이번에 이 저택이 나에게 넘어올 때 고용인들까지 모두 같이 넘어온 셈이군.”
“그렇게 보셔도 무방합니다. 마스터만 괜찮으시다면 저와 하녀들은 모두 계속 이곳에서 근무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어네스트 집사가 살짝 불안한 눈빛으로 소울을 쳐다봤다.
하지만 소울은 그의 시선을 피하고 대신 레이첼을 바라봤다.
레이첼은 소울과 시선이 마주치자 살짝 고개를 숙이더니 어네스트 집사를 향해 담담히 말했다.
“어네스트 집사와 하녀들은 모두 마스터께서 고용하실 예정입니다. 그러니 너무 불안해하지 않아도 됩니다.”
“감사합니다. 총관님.”
“그러나 선결조건이 하나 있어요.”
“말씀하십시오.”
“저와 같이 차를 한잔 마시도록 해요.”
“영광입니다.”
어네스트는 레이첼이 하는 말을 듣고 직접 면접을 보겠다는 뜻으로 이해했다.
그 정도는 이미 예상한 수순이라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아니 오히려 적극적으로 권하고 싶은 일이었다.
고용주가 고용인들과 한명씩 만나보고나면 다들 고용불안에 시달리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저택에 관한 문제는 나중에 레이첼 총관과 어네스트 집사가 따로 만나서 얘기하도록 하고 지금은 내가 몇 가지 물어볼 것이 있어.”
“네, 말씀하십시오. 마스터.”
“저택의 창고를 안내해주고 라이라에서 가져온 물건들을 판매할 수 있도록 조언을 부탁해.”
“라이라에서 어떤 물건들을 가져오셨습니까?”
“무기와 방어구, 식량과 의약품 등이야.”
“오오오! 그런 물건이라면 아마 오늘 밤이라도 노스트라의 상인들이 몰려와서 싹 쓸어갈 것입니다.”
“아무리 급해도 오늘은 안 돼. 다들 지쳐서 오늘밤은 푹 쉬도록 하자고.”
“알겠습니다. 내일 노스트라의 상인 길드에 연락해서 상단과 상인들을 불러오도록 하겠습니다.”
“그 문제는 여기 옆에 있는 마틴과 상의해서 했으면 좋겠어. 마틴은 내 개인비서이자 포리너스의 집사나 마찬가지야.”
“네, 마스터. 마틴 비서님과 상의해서 일을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소울은 레이첼과 어네스트를 밖으로 내보내고 수지를 쳐다봤다.
“지금 밖으로 나가려고?”
“네, 부모님과 동생이 너무 보고 싶어서 못 견디겠어요.”
“내일 새벽, 날이 밝는 대로 나가는 게 좋지 않을까?”
“아니에요. 외성 동문까지는 그리 멀지 않아요. 걸어서 금방이에요.”
소울은 더 이상 수지를 말릴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마틴을 쳐다봤다.
“제가 같이 가보겠습니다.”
“그래. 마틴이 같이 간다면 안심이 될 것 같군. 마차를 내줄테니 몰고 다녀오도록 해. 둘만 가지 말고 포리너스 부대원 몇 명도 같이 데리고 가서 길을 익히라고 해.”
“네, 마스터.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마틴이 일어서서 소울에게 정중히 고개를 숙이자 수지도 얼떨결에 같이 일어서서 고개를 숙였다.
“마스터, 고마워요.”
“고맙긴 내가 더 고맙지. 조심해서 다녀와. 그리고 혹시 무슨 일 있으면 가족들을 이곳으로 데리고 와도 괜찮아. 방 많으니까 가족 숫자대로 내줄게.”
“마스터!”
수지는 소울의 따뜻한 말에 눈물이 핑 돌았다.
엔팔에서 노스트라까지 귀족들이 타고 다니는 호화로운 마차를 타고 온 것도 고마운데 끝까지 챙겨주는 그의 모습에 수지는 절로 감격했다.
눈이 붉어지자 소울은 일어나 그녀의 어깨를 한번 툭 쳐주고는 마틴과 같이 내보냈다.
[까뮤!]
[네, 주인님.]
[저택의 창고로 가자.]
소울은 까뮤를 불러 같이 저택의 창고를 찾아 나섰다.
어네스트가 응접실 밖에 대기시켜놓은 하녀를 따라 본관 후문으로 나가자 작은 숲이 나왔다.
평평한 돌을 깔아놓은 길을 걸어가자 울창한 수풀사이로 커다란 창고가 세워져 있는 것이 보였다.
[이거 저택의 규모가 생각보다 아주 큰데?]
[그러게요. 포리너스가 주둔할 수 있을 정도로 큰 별관과 훈련장, 대형 마구간과 소형 대장간, 거기에다 이렇게 큰 창고들까지……. 이걸 공짜로 얻었다는 것이 믿기지가 않아요. 역시 주인님은 능력자세요.]
[하하하, 뭐 그렇게까지 띄워 주고 그래?]
[전 언제나 진실만을 얘기하는 것 아시잖아요.]
[푸하하하.]
소울은 까뮤의 말에 좋아 죽었다.
참을 수 없는 파안대소가 터져 나왔다.
사실 자신이 생각해도 이런 대저택을 은화 하나 주지 않고 손에 넣었다는 것이 대견하기만 했다.
[까뮤, 여기 대형 창고가 여러 개라서 몇 번 나눠서 채우면 라이라에서 가져온 물건들은 다 동나겠다.]
[그 많은 물건들을 다 팔면 금화가 몇 자루는 나오겠네요.]
[금화로 안 받을 거야.]
[그럼 미스릴화로 받으실 건가요?]
[아니, 마나석과 젬스톤으로 받을 거야.]
[아!]
까뮤는 소울이 뭘 노리는지 알 것 같았다.
마나석과 젬스톤을 긁어모아 소울넷 포인트를 올리려는 것이 분명했다.
까뮤는 창고의 문을 활짝 열고 자신의 아공간에 들어있는 무기와 방어구, 식량과 의약품 등을 차례로 꺼내 창고를 가득 채웠다.
특히 각종 곡물이 담긴 자루는 부피가 커서 몇 개의 창고로도 다 채울 수 없었다.
왕실창고를 탈탈 털어왔으니 그럴 만도 했다.
창고를 다 채운 소울은 창고의 문을 닫고 별관으로 향했다.
아무래도 저택을 경비할 경비병을 따로 구하기 전까지는 포리너스 부대원 일부를 경비로 삼아 창고를 지키게 해야 할 것 같았다.
별관을 몽땅 차지한 포리너스 부대원들은 처음으로 가져보는 넓은 방과 깨끗한 침대에 감동했다.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고 따뜻한 빵과 스프 그리고 입에 살살 녹는 고기로 배를 채우자 천국이 따로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엘프들은 정원과 숲속을 산책했고, 드워프들은 대장간을 찾아내 화로에 불을 지폈다.
냥족은 별관의 지붕으로 올라가 별을 보며 누워서 수다를 떨었고 울파족은 달을 보며 노랗게 눈을 빛냈다.
티거족은 기운이 뻗치는지 달밤에 훈련장에서 서로 달리기 시합을 하며 놀고 있었다.
“참, 스태미나가 넘치는 놈들이군.”
그들의 활기찬 모습에 소울은 절로 감탄해마지 않았다.
“마스터, 오셨어요?”
“다이애나!”
별관 앞에 소울이 등장하자 제일 먼저 나타난 것은 위스피나 숲의 엘프 다이애나였다.
그녀는 소울이 별관을 향해 걸어오자 진즉에 알고 있었다.
그래서 엘프 몇을 불러 대기를 시켰다.
분명히 이유 없이는 오지 않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왜 푹 쉬시지 않고 나오셨어요?”
“창고를 지킬 경비가 없어서.”
“안 그래도 저택을 지키는 경비가 없어서 어떻게 할까 생각은 하고 있었어요. 포리너스 부대원으로 저택을 경비하도록 할게요.”
“그래주면 고맙고.”
다이애나의 말에 소울은 만족한 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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