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61 제 116 장 - 노스트라 =========================================================================
“이것들 전부 어디서 났어?”
“어디서 나긴? 북부대산맥에서 캤지.”
“북부대산맥 어디서?”
“그걸 어떻게 일일이 다 기억해? 저기 지도 있으니까 그 정도는 네가 직접 알아서 찾아봐.”
“중요한 정보를 너무 쉽게 넘기는 거 아냐?”
“내가 직접 캐는 것도 아니고 부하들이 알아서 캐고 있으니 굳이 내가 알바가 아니지.”
“부하들이라면? 몬스터를 말하는 거야?”
“메시엘에서는 그렇게 부르는 모양이더군. 뭐 꼭 부하가 몬스터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베레스의 말에 소울은 정작 가장 중요한 것을 물어보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틴을 대신해 이번에는 소울이 직접 베레스에게 물었다.
“벤자민 왕세자는 왜 암살하려고 한 거지?”
“그거야 화이트 공작이 제안을 했기 때문이지.”
“화이트 공작이? 뭘 받기로 했는데?”
“노스트라에 있는 요새 하나를 받기로 했어.”
“요새 하나를 넘겨주기로 했다는 말이야?”
“그래. 벤자민 인지 뭔지 하는 왕세자 놈을 죽여주면 북부대산맥에 엘라즈라 왕국이 지키고 있는 요새 하나를 넘겨주기로 밀약을 맺었어.”
“혹시 증거를 가지고 있나?”
“저기 마법계약서 있잖아.”
베레스가 눈짓으로 자신의 소지품을 가리키자 마틴이 양피지 하나를 찾아냈다.
끈을 풀어서 안을 살펴본 뒤 이상이 없자 소울에게 가져왔다.
베레스가 미소를 짓더니 은근하게 말했다.
“이거 내가 너무 밑지는 장사를 하고 있네.”
“왜 마음이 바뀌었어?”
“아니야. 그런 뜻이 아니야. 다음에 만나면 우리 서로 유익한 거래를 좀 하는 게 어떨까 싶어서.”
마틴은 소울을 쳐다봤다.
소울은 잠깐 생각을 해보고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서로에게 이득이 되는 일이라면 그리 나쁜 생각은 아니로군.”
“좋아. 그렇다면 노스트라에서 만나기로 하지.”
“고객이 될지도 모르니 깨끗하게 죽여주지.”
“그건 고마워.”
소울은 그 말을 마지막으로 마틴을 쳐다봤다.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자 어느새 베레스의 목이 잘려 허공으로 떠오르고 있었다.
정말 번개 같은 마틴의 솜씨였다.
그때까지도 베레스는 자신이 죽었다는 인식이 없었는지 눈을 깜빡 거리고 있었다.
[주인님, 너무 위험하지 않을까요?]
[베레스의 얘기 못 들었어? 내가 볼 때 이미 북부대산맥은 저놈들의 천국이 된 것 같아. 그렇지 않고서야 적의 심장부나 마찬가지인 노스트라에서 만나자는 얘기를 하겠어?]
[그렇군요.]
소울이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자 마틴은 그제야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갔다.
[단번에 뿌리 뽑지 못할 적이라면 차라리 가까이 두고 감시하는 것이 좋아. 그리고 어쩐지 저놈은 무척 의리가 없어 보이잖아?]
[하하하, 그건 맞습니다. 참 의리 없어 보이는 놈이었습니다.]
마틴은 소울의 말에 웃음을 흘리면서 먼지로 변해가는 베레스의 몸을 쳐다봤다.
툭!
바람이 불자 먼지가 날아올랐다.
한줌의 재로 변한 자리에는 베레스가 남긴 하급마족의 정수만 남아있었다.
마틴이 정수를 주어 소울에게 넘기자 곧바로 말풍선이 떠올랐다.
-하급마족의 정수를 획득하셨습니다.
소울은 잠시 검은 크리스털처럼 생긴 정수를 살펴보더니 곧 까뮤에게 넘겨 보관시켰다.
[돌아가자.]
[네, 주인님.]
소울과 마틴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 노스트라 원정대가 야영을 하고 있는 장소로 돌아왔다.
소울은 벤자민을 불러 베레스의 얘기를 전했다.
그가 믿건 말건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자신은 벤자민을 위해 중요한 정보를 전하는 것이니 그것으로 족했다.
벤자민의 얼굴이 심각해지자 그를 보좌하는 기사들이 걱정이 되는지 가까이 다가왔다.
소울은 벤자민을 그들에게 맡기고 자신의 마차로 돌아왔다.
어느새 야영장은 저녁식사에서 축제분위기로 바뀌어져 있었다.
“마스터, 어디 있다 온 거에요?”
“형님, 같이 한잔 합시다.”
“승리의 축배를 들어요.”
카렌과 오웬, 수지가 술병을 들고 소울에게 다가왔다.
그들의 뒤로 레이첼과 소냐가 발그레한 얼굴로 비틀거리고 있었다.
그 알딸딸한 모습에 소울은 그저 메마른 웃음만 흘리고 있었다.
* * * * *
“노스트라다!”
“어디, 어디가 노스트라야?”
누군가 전면을 향해 손을 뻗으면서 소리치자 노스트라 원정대는 크게 술렁였다.
길을 따라 뱀처럼 길게 늘어서서 가고 있는 행렬은 목적지가 눈에 보이자 마치 온몸에서 활기가 치솟는 것처럼 속도가 올라갔다.
“저 멀리에 높은 산 밖에는 안 보이는데…….”
“그게 바로 북부대산맥이야.”
카렌이 마차의 창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말하자 마차 안에서 오웬이 대답했다.
하지만 카렌의 신경은 온통 자신이 타고 있는 마차 앞에 있는 소울에게 가 있었다.
“도대체 하루 종일 마스터는 마차 안에서 뭘 하고 있을까?”
“하하하, 그걸 몰라서 물어?”
오웬이 웃자 카렌은 마차 밖으로 빼놓은 고개를 안으로 집어넣고는 새초롬한 표정을 지으며 그를 노려봤다.
“그럼 오웬은 잘 안다는 말이네요?”
“잘 알다마다. 뻔 한 것 아니야?”
“뭐가 뻔한 데요?”
카렌이 아직도 자신의 말을 못알아먹자 오웬은 답답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저 마차 안에 누가 타고 있지?”
“마스터와 마틴, 수지하고 레이첼이 타고 있지요.”
“마틴은 마부석에 앉아있으니 마차 안에 탄 것은 아니야. 그럼 마스터와 수지 그리고 레이첼이 타고 있겠지?”
“그, 그렇지요.”
카렌은 오웬의 말에 본능적으로 뭔가 거부감을 느꼈다.
“수지가 비록 옷을 평범하게 입어서 그렇지 꽤 미인이잖아.”
“그런가요?”
“우리 인정할 것은 인정하자.”
“난 별론데.”
“하하하, 그래 좋아. 그럼 레이첼은 어때?”
“…….”
카렌은 오웬의 질문에 대답을 하지 못했다.
레이첼은 자신이 봐도 정말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예쁜 수지와 아름다운 레이첼이 건강한 마스터와 함께 있는데 무슨 일이 일어나겠어?”
“무슨 일이 일어나는데요?”
“그거야 당연히 지극히 생산적인 일이 벌어지겠지.”
“그러니까 그 생산적인 일이 뭐냐고요?”
“진짜 노골적으로 얘기를 해줘야 아나? 그건 말이지? 이크!”
오웬은 자신의 가슴을 한번 치고는 까놓고 얘기를 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 순간 그의 뇌리 속으로 파고드는 음성에 놀라 즉시 입을 다물었다.
“왜 얘기하다가 말아요?”
“…….”
오웬은 두 손으로 자신의 입을 꽉 막고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소울이 더 이상 얘기하면 주둥아리를 찢어놓겠다고 협박을 했기 때문에 절대 입을 열수는 없었다.
카렌만 오웬을 닦달하며 빨리 얘기를 하라고 보챘다.
그녀의 옆에 앉아 있던 소냐가 절로 고개를 흔들며 실소를 터트렸다.
한편, 오웬의 수다스런 주둥이를 닥치게 만든 소울은 오늘도 수지와 레이첼의 사심어린 봉사를 받고 있었다.
흔들거리는 마차 안에 엎어진 그는 비몽사몽간을 헤매고 있었다.
나긋나긋한 손길과 여체의 향기, 적당한 흔들림으로 인해 그는 어느 때보다 기분 좋은 오수를 즐겼다.
중간에 오웬이 쓸데없이 입을 놀리지 않았다면 아마 이대로 쭉 노스트라에 도착할 때까지 게으름을 피우고 있었을 것이다.
그동안 수지와 레이첼은 많이 친해졌다.
서로 볼 것, 안 볼 것, 다본 사이니 친해지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레이첼은 수지를 통해 마사지의 새로운 기술을 배웠고, 수지는 레이첼에게 에밀리 왕실의 비전을 훔쳐 배울 수 있었다.
두 사람은 경쟁적으로 소울에게 자신이 익힌 기술을 시험해봄으로 인해 빠르게 마사지의 숙련도가 올라갔다.
소울이 느끼는 만족도에 따라 베풀어지는 까뮤의 정화와 클린 스킬로 인해 수지와 레이첼의 피부는 어린아이처럼 뽀송뽀송해졌고 옆에서 보면 광이 나는 것 같았다.
[주인님, 노스트라에 도착했습니다.]
[눈으로 보이는 거야?]
[네, 노스트라 시를 둘러싸고 있는 성곽이 보입니다.]
[그럼 이제 일어나야겠군.]
소울은 마틴의 말에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수지와 레이첼로 인해 온몸의 근육이 잘 풀어져 있어서 어느 때보다 몸이 가벼웠다.
“둘 다 수고했어.”
“아니에요.”
“천만에요.”
“노력에 대한 대가는 받는 것이 서로 편하고 좋아.”
소울의 말에 수지와 레이첼은 반사적으로 얼굴에 기대감이 드러났다.
까뮤가 소울의 말을 알아듣고 수지와 레이첼에게 정화와 클린 스킬을 난사했다.
전신이 가뿐하고 시원해지는 느낌이 들자 수지와 레이첼은 몸을 부르르 떨면서 미소를 지었다.
자꾸 받다보니 이게 은근히 중독이 되는 기분이다.
거기에다 얼굴과 피부가 확실하게 깨끗해지고 뽀송뽀송해지니 이제는 이걸 매일 받지 않으며 살아갈 수가 없을 것만 같다.
어쩌면 이미 둘은 중독이 된 것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생각을 해본다.
빰빠라밤 빰밤빰 빰빠라밤!
나팔소리가 노스트라 남문 성곽 위에서 울려 퍼졌다.
벤자민 왕세자와 벤허기사단을 시작으로 노스트라 원정대가 차례로 성문을 통과했다.
엘라즈라 왕국의 수도 라이라에서 북부대산맥에 접해있는 엘라즈라 왕국 북부 최대의 요새도시 노스트라 시(市)까지, 근 한 달 동안 이어진 여정은 결국 마침표를 찍었다.
……케말, 아타툴, 히타이트, 바흐체, 토카프, 보스폴, 갈락시아, 노스트라
그동안 거쳐 온 도시만 두 자리 수가 넘었다.
도중에 크고 작은 몬스터의 공격이 있었지만 아이란 남부평원에서 겪은 전투 외에는 크게 위협적인 도발은 없어 전체적으로 피해는 경미했다.
창문을 활짝 연 상태로 밖을 내다본 소울은 노스트라가 왜 엘라즈라 왕국 북부 최대의 요새도시인지 알 것 같았다.
높고 단단한 성벽이 이중, 삼중으로 세워져 있었고 대로를 따라 내성을 향해가는 보보마다 무장을 한 병사와 용병들이 수두룩했다.
다른 도시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던 히어로들도 이곳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언제라도 몬스터 무리가 쳐들어오면 들고 있는 창칼과 도검을 들고 뛰어 갈 것 같은 거친 사내들이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다니는 모습도 보였다.
술집이 몰려있는 골목은 대낮인데도 불구하고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길거리에는 풍만한 가슴을 드러낸 화장기 짙은 여자들이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사내들을 유혹했다.
호객행위를 하는 어린 꼬마들이 물주로 보이는 사내가 보이면 서너 명씩 달라붙어 그들의 손과 바지를 끌어댔다.
‘죽음과 가장 가까운 도시인데도 불구하고 활기가 넘치는 구나. 하긴 삶과 죽음은 겨우 한 끗 차이긴 하지.’
차분한 눈빛으로 마차 밖을 살펴보던 소울은 수지와 레이첼이 옷을 갈아입자 자신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목에 걸린 목걸이에 손을 대고 로열형 리콜아바타 전용의 무장을 장비했다.
철컥 철컥 촤라라라라라!
목걸이에서 금빛 갑주가 쏟아져 나오더니 순식간에 그의 전신을 휘감았다.
단번에 황금빛 갑주를 장비한 소울의 위용에 놀란 수지와 레이첼이 옷을 입다말고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 모습에 소울이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지으며 수지와 레이첼의 토실토실한 엉덩이를 손바닥으로 후려쳤다.
철썩, 철썩!
“꺄악!”
“꺅!”
수지와 레이첼이 연속적으로 비명을 지르자 그 소리가 마치 스테레오처럼 귀에 들려왔다.
바보처럼 낄낄대며 웃자 수지와 레이첼도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썩소를 지었다.
노스트라 원정대는 내성 성문을 통과하여 노스트라 시청 앞에 도착했다.
간단한 해단식을 가진 뒤 공식적으로 해산됐다.
와아아아아아!
용병들은 모두 두툼한 돈주머니를 하나씩 받고는 곧바로 술집을 향해 소리를 지르며 달려갔다. 그 모습에 엘라즈라 왕국군 정예병들이 노골적으로 부럽다는 시선을 보냈다.
하지만 곧이어 왕국군 정예병들에게도 하루 휴가가 떨어지자 그들도 자신의 돈주머니를 확인하고는 어디론가 쏜살같이 달려가기 시작했다.
노스트라 원정대에서 천여 명의 인원이 일시에 빠져나가자 이제 남은 것은 벤허기사단과 소울의 일행 그리고 포리너스 부대원들뿐이었다.
짐마차는 벌써 관리들이 인부들을 데리고 와서 창고로 가져갔다.
벤자민 왕세자는 노스트라 시장의 환대를 받으며 시청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한참 만에 벤허기사단장 버너와 같이 밖으로 나왔다.
마차 안에서 대기하고 있던 소울이 밖으로 나오자 벤자민이 먼저 사과를 했다.
“마스터, 미안합니다. 오래 기다리셨죠?”
“괜찮습니다. 뭐 살다보면 이렇게 기다릴 때도 있는 거죠.”
“하하하, 너무 마음에 담아두지 마세요.”
“네, 그러지요.”
소울의 목소리가 살짝 경직되어 있자 벤자민은 곤란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몸을 북쪽을 향해 돌렸다.
============================ 작품 후기 ============================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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