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58 제 115 장 - 아이란 전투 =========================================================================
마틴은 마족과 정신없이 얽히고설켜 돌아가고 있었다.
명검에 버금가는 날카로운 손톱과 발군의 스피드로 연신 마족을 몰아치고 있었는데 아직까지는 철저한 마족의 방어를 뚫지 못했다.
물론 시간만 넉넉하다면, 아니 방해만 없었다면 진즉에 결판이 났을지도 모른다.
카카캉 카카캉 카카캉!
결정적인 순간에 옥터퍼시 네 마리가 목숨을 아끼지 않고 끼어들어 지속적으로 마틴을 방해했다. 화간 난 마틴이 옥터퍼시의 머리통을 날카로운 손톱으로 쑤셔 죽여 버리면 어느새 대기하고 있던 옥터퍼시 한 마리가 들어와 빈자리를 채웠다.
마틴은 당장 뾰족한 수가 없어 조금 답답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서도 공격의 고삐를 조금도 늦추지 않았다.
‘이대로 가면 노스트라 원정대는 전멸이다. 당장 옥토퍼시, 아니 문어대가리들을 쓸어버려야 해. 그런데 어떻게 전멸시키지?’
소울은 열심히 클레이모어를 휘둘러 옥터퍼시의 대가리를 잘라내면서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개 같은……. 이놈의 문어대가리들을 전부 구워먹을 수도 없고. 구워? 문어라면 구워 먹어야지. 그런데 굽는다고 구워질까? 일단 구워봐?’
순간 소울의 머릿속으로 엄청난 상상력이 일어났다.
“오웬, 문어대가리들을 모두 구워버려!”
“네?”
“너 잘하는 화염방사기로 이놈들을 다 구워버리라고.”
“네, 형님.”
오웬은 꼬박꼬박 형님소리를 빠뜨리지 않고 대답사이에 끼어 넣었다.
그의 두 손에서 전에 없이 거대한 화염이 방사되어 주변을 휩쓸었다.
콰하아아아아아아!
쿠히이이익 쿠히이이익 쿠히이이익…….
거대한 화염은 순식간에 옥터퍼시 무리를 휩쓸었다.
놀랍게도 그렇게 강철 같은 다리를 가진 옥터퍼시들이 오웬의 강력한 화염에는 견딜 수 없었는지 금세 노릇노릇한 냄새를 피우며 타들어갔다.
마물이라는 것을 몰랐다면 소울은 아마 구워진 옥터퍼시를 맥주 안주로 삼아 맛보려고 했을 것이다.
“예스!”
소울은 그 모습에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마물의 약점은 불이다.”
“불을 피워라.”
“옥터퍼시를 불로 태워 죽여라.”
“답은 화공이다.”
약점이 드러난 마물은 더 이상 두려워할 대상이 아니다.
그저 새로운 사냥감일 뿐이다.
그리고 다이어울프와 블랙오크도 똑같이 불을 무서워했다.
화공(火攻)이 마물과 몬스터 양쪽 모두에게 잘 먹힌다는 말이다.
승기를 잡자 엘라즈라 왕국군과 용병들의 처절한 복수가 시작됐다.
야영을 하면서 늘 불을 피우는 자들이라 다들 불을 지르는 일에는 일가견이 있었다.
금세 횃불을 만들어 공격을 하고 불화살을 만들어 엘프 궁사들에게 보급을 했다.
그러자 아까와는 상황이 판이하게 달라졌다.
전황이 급변하자 베레스는 얼굴이 창백해졌다.
이대로 간다면 무리하게 마계소환진까지 해서 마물을 소환한 보람이 없어진다.
그는 즉시 옥터퍼시 네 마리에게 마틴을 공격하게 했다.
명령을 받은 옥터퍼시들은 죽음도 불사하고 전력을 다해 마틴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러자 잠시 마틴의 움직임이 부산해지며 그의 시선이 옥터퍼시 네 마리에게 쏠렸다.
옥터퍼시들로 마틴의 시선을 잠깐 막는 사이, 베레스는 바람처럼 달렸다.
그의 시선의 끝에 벤자민 왕세자가 걸렸다.
벤자민 왕세자는 벤허기사단의 기사들과 같이 다이아울프와 블랙오크를 막고 있었다.
기사들이 벤자민 왕세자의 옆에서 호위를 서고 있는 모습도 보였다.
하지만 벤자민 왕세자를 호위하고 있는 허접한 기사들이야 하급마족인 베레스의 상대가 될 리 없었다.
베레스는 얼마든지 기사들이 쌓아놓은 인의 장막을 뚫고 벤자민 왕세자를 죽일 자신이 있었다.
벤허기사단은 벤자민 왕세자에게 충성을 맹세한 기사들로 이루어진 기사단이다.
물론 대외적으로는 엘라즈라 왕실이 보유하고 있는 기사단 중 하나지만 실질적으로 이들이 충성을 바치고 있는 대상은 주군인 벤자민 왕세자다.
그래서 벤허기사단 소속 기사들은 항상 벤자민 왕세자의 안전을 최우선적으로 생각한다.
언제나 그의 곁에 호위를 두고 사방을 감시하게 한다.
이번에도 그런 호위 방식이 큰 효과를 보게 됐다.
“적이다.”
“막아라.”
무서운 속도로 달려드는 베레스를 본 기사 한명이 소리를 치자 즉시 호위를 서고 있던 기사들이 몰려와 벤자민 왕세자의 앞을 가로막고 방패를 세웠다.
순식간에 방패로 이뤄진 방어벽이 세워지자 벤자민 왕세자는 무슨 일인가 하고 뒤를 돌아봤다. 그의 시선에 눈부신 속도로 달려들고 있는 베레스의 모습이 보였다.
베레스는 기사들이 방패를 세워 벤자민 왕세자 앞에 방어벽을 만드는 모습을 보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달리는 속도에 박차를 가해 정면으로 부딪쳐갔다.
결국 베레스는 방패의 벽에 정면으로 거세게 충돌했다.
쾅!
으아악 아악 크악!
놀랍게도 풀 플레이트아머에 방패로 중무장을 한 기사들이 베레스의 차징(charging) 공격 한 번에 모조리 허공으로 비산되며 날아갔다.
순식간에 자신의 앞을 가로막고 있던 방어벽이 사라지자 벤자민 왕세자는 크게 놀랐다. 하지만 일국의 왕세자인 그는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억지로 검을 들어 자신의 앞에 세웠다.
그런 그의 모습에 베레스는 비웃음을 날리며 다시 신형을 날려 왔다.
파앙!
벤자민은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떡 삼켰다.
엄청난 속도로 다가오는 베레스의 위협에 자신도 모르게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그의 양옆에서 두 명의 기사가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하지만 그들은 베레스의 앞을 가로막기가 무섭게 위로, 옆으로 튕겨 나갔다.
20m, 10m, 5m, 1m
베레스가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모습이 선명해진다.
이제는 손을 뻗으면 바로 닿을만한 거리에 베레스의 얼굴이 보인다.
벤자민은 힘껏 검을 대각선으로 휘두른다.
캉!
무쇠덩어리를 후려치는 소리가 났다.
강력한 반발력으로 인해 절로 몸이 뒤로 튕겨나갔다.
검을 놓친 것은 물론이고 두 손은 벼락이라도 맞은 듯 찌릿 거리며 떨려온다.
순간, 세상이 느려지는 것 같은 기묘한 현상이 일어났다.
베레스가 사악한 미소를 짓고 날카로운 손톱을 세워 자신을 찌르는 모습이 생생하게 보인다.
절체절명의 위기를 앞에 두자 이런 현상을 느끼는 모양이다.
하지만 벤자민은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그저 사자 앞에 놓인 어린 양처럼 목을 길게 빼고 죽음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그의 눈에서 자신도 모르게 눈물 한 방울이 또르르 흘러내렸다.
쾅!
그때였다.
벤자민은 마치 마차에 치이기라도 한 듯 강력한 충격을 느끼며 몸이 날아가는 것을 느꼈다.
‘이렇게 죽는구나.’
저절로 눈이 감겼다.
그리고 당연히 죽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웬 걸?
땅바닥에 처박히자 곧 온몸이 부서지는 고통이 밀려들었다.
그제야 정신이 번쩍 났다.
죽었다면 절대 이런 고통은 없는 것이다.
바로 눈을 뜨고 어떻게 된 일인지 상황을 파악하려 애를 썼다.
자신이 서 있던 자리에 누군가가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는 바로 히어로 마스터였다.
벤자민의 입가에 드디어 희망의 미소가 떠올랐다.
“이 새끼가?”
“내가 네 새끼냐?”
베레스는 갑자기 나타난 소울의 방해로 결국 벤자민을 한 번에 죽이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굳이 소울과 상대할 마음이 없었다.
그의 목표는 어디까지나 벤자민 왕세자이기 때문이다.
고개를 돌려 땅바닥에 쓰러져 있는 벤자민 왕세자를 쳐다봤다.
고개를 돌리는 순간, 소우이 귀신처럼 움직여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어이 덩치! 네 상대는 나다. 우리 한번 신나게 어울려보자.”
“이런 하루살이 같은 놈이 있나?”
베레스는 절대 자신의 상대가 될 리 없는 소울을 향해 다가섰다.
그리고 날카롭게 주먹을 휘둘렀다.
한방에 산이 무너지고 바다가 갈라질 위력의 주먹이었다.
캉 카카캉 캉캉!
그러나 결과는 놀라웠다.
자신의 빠른 공격을 상대는 귀신처럼 막아내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 비단 공격만 막은 것이 아니었다.
순간적으로 날아오는 반격은 분명 자신의 목이 날아갈 정도로 아찔했다.
전력을 다 하지 않는다면 반드시 후회를 하게 될 것이다.
베레스는 자신의 앞길을 막고 있는 소울부터 반드시 죽여야겠다고 작심했다.
그는 온몸에서 풀 파워로 힘을 끌어올렸다.
그리고 막 소울을 향해 공격을 하려던 순간 허겁지겁 뒤로 물러서야했다.
스슥!
베레스는 기겁을 하며 급히 몸을 움직였다.
어느새 마틴이 자신의 옆구리를 찔러오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젠장, 시간을 너무 잡아먹었구나.’
베레스는 자신의 일을 방해한 소울을 철천지원수를 보듯 쳐다보며 이를 갈았다.
소울만 없었다면 방금 충분히 벤자민 왕세자의 심장에 구멍을 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마틴, 죽이지는 마라.]
[네, 주인님. 수고하셨습니다. 이제부터는 제가 맡겠습니다.]
마틴이 나서자 소울은 뒤로 천천히 물러섰다.
그리고는 벤자민 왕세자 앞으로 걸어가 손을 내밀었다.
“이제 그만 일어나시죠?”
“마스터, 감사합니다.”
“천만에요.”
벤자민 왕세자가 일어나자 그의 주변으로 다시 기사들이 몰려와 인의 장막을 쳤다.
소울은 조금도 아쉬워하지 않고 가만히 몸을 돌렸다.
전황은 크게 달라진 것 같지 않았다.
여전히 노스트라 원정대의 안팎으로 위험이 존재했다.
다이어울프를 탄 블랙오크 기병들은 끈질기게 몰려와 짐마차로 만들어 놓은 원형방어진의 외각을 공격하고 있었다.
아니 전보다 몬스터의 숫자가 훨씬 더 많아진 것 같았다.
하지만 소울은 이 전투가 곧 끝나리라고 확신했다.
원형방어진의 내부에서 소환된 옥터퍼시들이 빠르게 그 숫자를 줄여가고 있었고, 마틴도 베레스를 압도하며 무자비한 공격을 퍼붓고 있었기 때문이다.
카카카캉 카카카캉 카카카캉!
슈슈슈슉 슈슈슈슉 슈슈슈슉!
마틴의 몸이 베레스를 향해 정면으로 밀려가며 빠르게 발차기가 이어졌다.
무릎만을 사용해서 이뤄지는 발차기는 베레스의 강철 같은 몸에 끝도 없이 부딪쳐왔다. 거기에 마틴의 날카롭게 빛나는 손톱이 쉴 새 없이 베레스의 목을 노리고 들어왔다.
쇠와 쇠가 부딪치는 소리가 들리고 마틴의 몸이 마치 허공에 1m 정도 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겉으로 보기엔 별것 아닌 것처럼 보였지만 당하는 베레스의 입장에서는 혼비백산할 정도로 빠르게 퍼부어지는 공세였다.
베레스의 눈알이 팽팽 돌아갔다.
아래 위에서 동시에 쏟아져 들어오는 집중포화를 정신없이 막아대다 보니 일어나는 현상이었다.
그는 한순간도 방심하지 못했다.
단 한 번의 공격으로 목이 날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수많은 공격을 일일이 막아내며 언제까지나 버틸 수는 없었다.
퍽 퍼퍼퍽!
컥!
결국 베레스는 마틴의 발차기를 허용하고 말았다.
손톱을 허용하면 당장 목이 잘릴 것 같은 기세에 맞더라도 발차기를 맞는 것이 낫겠다 싶었다.
하지만 그것은 베레스의 착각이었다.
마틴의 발에 배를 가격 당하자 순간적으로 몸에 힘이 쭉 빠지며 다리가 후들거렸다.
배를 가격할 때 마틴은 단순히 물리적 타격만을 한 것이 아니다.
피의 권능을 이용해 베레스의 내장에 흐르는 피를 일시적으로 역류시켜버렸다.
베레스는 갑자기 피가 역류하는 현상에 기겁을 했다.
아무리 마틴이 자신보다 클래스가 진혈의 뱀파이어라고 하지만 설마 마족의 몸 안에 흐르는 피에까지 권능을 발휘할지는 몰랐기 때문이다.
카카카캉 퍼퍼퍼퍽 카카카캉 퍼퍼퍼퍽!
베레스는 정신없이 뒤로 밀렸다.
단 한순간도 승기를 잡을 수 없었다.
자신의 몸 안팎에서 일어나는 말도 안 되는 공격에 그도 어찌할 바를 몰랐다.
점점 막아내는 것보다 쥐어 터지는 소리가 늘어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레스는 악착같이 마틴의 손톱공격을 막아냈다.
이건 단 한번이라도 허용하면 바로 목이 잘릴 날카로운 공격이기 때문이다.
베레스는 선택을 해야 했다.
여기서 도망을 가던가 아니면 목숨을 걸고 모험을 하던가?
하지만 그 어느쪽도 마틴은 허락하지 않았다.
베레스가 자신의 공격에 나름 익숙해지자 곧바로 공격패턴을 변화시켰기 때문이다.
마틴은 베레스에 대한 공격을 유지하면 좌우로 몸을 이동했다.
그러자 베레스는 더욱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위아래로 들어오는 공격에 좌우공격까지 이어지자 마치 세 명의 적과 싸우는 기분이었다.
결국 하급마족 베레스는 파국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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