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53 제 114 장 - 레이첼 =========================================================================
숲속에서 최고의 전투력을 자랑한다는 유사인류가 엘프다.
하지만 그게 엘프가 가진 능력의 전부는 아니다.
엘프라는 종족은 동물과 교감을 나눌 수 있기에 전마와도 금세 친해졌다.
그들은 예민한 말들이 지금 뭐가 불편하고 뭐가 필요한지 당장 알아서 해결해줬다.
그것만으로 전마들의 기분이 무척 좋아지고 스트레스가 사라져 사기가 올라갔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직은 아무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아마 실제 전투가 일어나면 엘프 기병의 진가(眞價)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노스트라 원정대가 다가옵니다.”
“우리도 나가자.”
“네. 출정(出征)!”
와아아아아아!
포리너스의 커다란 함성이 다시 한 번 훈련장을 울렸다.
그리고 소울이 탄 마차부터 차례대로 훈련장의 넓은 정문을 나가기 시작했다.
와아아아아아!
라이라 시의 중앙대로변에는 수많은 인파가 모여서 환호성을 지르고 있다.
시민들은 꽃을 뿌리고 처녀들은 꽃목걸이를 만들어서 노스트라를 향해 출정하는 노스트라 원정대 병사들의 목에 걸어주었다.
엘라즈라 왕궁 앞에서 출정식을 마친 노스트라 원정대는 번쩍이는 황금빛 갑옷을 입고 멋진 백마를 탄 벤자민 왕세자를 선두로 속속 내성을 빠져 나왔다.
벤자민 왕세자를 보필하는 벤허기사단의 기사 백 명도 은빛으로 빛나는 갑옷을 입고 기치창검을 높이 든 채 말을 타고 주변을 날카로운 눈빛으로 살폈다.
벤자민 왕세자를 중심으로 주변을 물샐틈없이 철통같이 호위하면서 지나가는 기사들의 뒤를 이어 엘라즈라 왕국군 정예병사 오백 명이 오와 열을 맞춰 걸어 나왔다.
이들의 모습이 지나갈 때마다 사람들은 마구 소리를 지르고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북부대산맥의 거친 몬스터를 상대하러 가는 이들의 장도(壯途)에 행운이 있기를 기도하는 사람들의 모습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북부대산맥의 몬스터를 줄이는 것이 자국의 안정을 지키는 첩경이라는 것을 이제는 모든 엘라즈라 왕국민이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엘라즈라 왕국군 정예병이 지나가자 그 뒤를 이어 줄을 안 맞추는 것은 물론이고 전혀 군기가 잡히지 않은 용병들이 우르르 떼거리로 몰려나갔다.
엘라즈라 왕실에서 고용한 크고 작은 용병단과 용병 오백 명이었다.
그들의 뒤로 수많은 짐마차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노스트라 원정대가 북문에 이르자 행렬의 중앙으로 소울의 마차가 끼어들었다.
포리너스 부대가 완전무장을 하고 전마까지 타고 나타나자 용병들은 ‘뭔가?’하고 호기심을 나타냈다.
하지만 포리너스 부대원들은 모두 투구의 안면가리개를 내려 철저히 자신의 얼굴을 숨겼다. 굳이 자신들이 유사인종과 수인족이라는 것을 소문낼 필요는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의 정체는 밝혀지겠지만, 용병들이 겁도 없이 갑주로 완전무장을 하고 전마까지 타고 있는 포리너스 부대원들을 함부로 건드리지는 못할 것이다.
노스트라 원정대가 라일라를 나와 들판에 이르자 곧바로 행군순서를 조정했다.
벤자민 왕세자와 벤허기사단이 선두에 서고, 중앙에 노스트라로 가져가는 짐마차를 놓고 엘라즈라 왕국군이 옆에서 따라가기로 했다.
그 뒤를 소울과 포리너스가 받치고 맨 마지막에 용병들이 따라온다.
이 행렬의 순서를 볼 때 원정대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바로 벤자민 왕세자와 노스트라로 가져가는 짐마차였다.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는 궁금하지 않았다.
소울의 소환수 까뮤의 아공간에는 원정대가 가져가는 짐마차의 몇 배에 해당하는 양이 들어있었다.
[마틴, 첫 번째 목적지가 어디지?]
[에릭클리입니다. 그 다음이 스르마, 카이수, 아이란, 네슬레, 콘얄루……]
[그만, 됐다.]
[네, 주인님.]
마틴의 열거하는 도시들을 다 들을 생각이 없었던 소울은 중간에서 그를 말렸다.
귀족들이 타는 사치스런 마차답게 소울이 탄 마차는 넓고 호화롭고 편안했다.
그래도 사람이라는 것이 서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어진다.
소울은 망설임 없이 넓은 자리에 누워 눈을 감았다.
“제가 발을 정리해드릴게요.”
“그러던지.”
수지의 말에 소울은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수지는 이미 소울과 속살을 맞춰본 여자답게 그의 반응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녀는 소울의 신발을 벗기고 양말을 벗겼다.
항상 까뮤가 정화와 클린 스킬을 써줘서 그의 발은 전혀 더럽거나 냄새가 나지 않았다.
수지는 소울의 두 발을 들고 자리에 앉더니 자신의 허벅지 위에 그의 발을 올려놓았다.
미리 준비한 따뜻한 물에 깨끗한 수건을 적셔 꼭 짠 후, 발을 꼼꼼히 감쌌다.
뜨끈뜨끈한 게 수건이 발을 덮자 소울의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돌았다.
이어지는 서비스는 고운 줄로 발톱을 가는 것이다.
아무리 까뮤가 정화와 클린 스킬을 남발한다고 해도 자라나는 손톱과 발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스스로 자르거나 누군가 정리를 해주기 전까지는 계속 자라나는 것이다.
조심스럽게 발톱을 갈아서 정리를 마치자 이번에는 발에 꼼꼼히 귀한 향유를 바르기 시작한다.
향유를 다 바르자 수지는 손으로 정성껏 발마사지를 시작한다.
손바닥으로 누르고 손가락을 밀고 주물러대자 그동안 받은 스트레스가 한꺼번에 다 날아가는 듯 했다.
한참동안 발마사지를 한 수지는 다시 뜨거운 물로 수건을 적신 후에 소울의 발을 깨끗하게 닦아줬다.
그리고 미리 준비한 새 양말과 새 신발을 신겼다.
“다 됐어요.”
“수고했어.”
“아니에요.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인데요 뭐.”
수지가 콧잔등에 난 땀을 닦으면서 예쁘게 웃자 소울은 그 모습에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가볍게 한번 키스를 해준 그는 수지의 엉덩이를 톡톡 두드리고는 까뮤를 불렀다.
[까뮤, 수지의 몸에 정화와 힐 스킬을 걸어줘! 나 발마사지 한다고 땀도 흘렸으니 몸과 옷도 클린 스킬로 깨끗하게 해주고.]
[네, 주인님.]
까뮤는 소울의 말에 즉시 수지에게 정화와 힐 스킬을 넣었다.
그리고 그녀의 몸과 옷에 클린 스킬을 난사했다.
“아!”
수지는 즉각적으로 까뮤의 행동을 느끼고는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꺄뮤의 정화와 힐 스킬이 들어오자 피곤이 사라지고 지친 몸이 너무나도 상쾌해졌다.
또한 자신의 깊은 계곡에 땀이 차서 조금 찝찝했는데 순식간에 뽀송뽀송하게 변해 기분도 좋아졌다.
물론 이런 것을 노리고 한 일은 아니지만 수지는 자신이 한 행동에 충분한 대가를 받고 있었다. 정화와 힐은 수지의 건강과 피부미용에 엄청난 효과가 있었기 때문이다.
수지가 소울에게 칭찬과 보상을 받자 이를 지켜본 카렌이 조심스럽게 나섰다.
“마스터, 제가 어깨 주물러드릴까요?”
“그래? 그렇게 해.”
카렌의 말에 소울은 절대 거절을 하지 않았다.
이런 것은 경쟁을 붙여서라도 장려되어 마땅하다.
수지는 카렌이 지금 어떤 마음으로 어깨를 주물러 준다고 하는 지 충분히 짐작을 하고는 건너편으로 자리를 옮겨줬다.
소울이 몸을 뒤집어서 눕자 카렌이 옆으로 다가왔다.
조막만한 손으로 열심히 소울의 어깨를 주무르자 소울과 수지는 동시에 소리 없이 웃었다.
마사지라는 것이 보기에는 쉬워보여도 혈을 누르고 근육을 풀어주려면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작업이다.
괜히 자격증을 따고 기술을 익히는 게 아닌 것이다.
그것도 모르고 소울에게 사랑을 받고 싶어서 달려든 카렌은 지금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열심히 누르고 주무르기는 하는데 소울에게 아무런 반응도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20분 만에 땀을 삐질삐질 흘리더니 뒤로 물러났다.
“헤엑 헤엑!”
“보기보단 쉽지 않지?”
“그, 그러네요.”
수지의 말에 카렌이 얼굴을 붉혔다.
소울은 어지간해서는 그냥 넘어가려고 했지만 카렌이 괜히 어깨와 등 근육을 자극해놓아서 그냥 넘어가기가 좀 뭐했다.
“수지! 가능하겠어?”
“물론이죠.”
“그럼 부탁해.”
“기대하세요.”
“하하하, 그래. 기대하고 있어.”
카렌은 소울과 수지의 말에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봤다.
그리고 그날 카렌은 진정한 마사지의 고수의 화려한 테크닉을 보게 됐다.
툭 투두둑 우두두둑!
“어이, 시원하다.”
“여기가 좀 뭉치셨네요.”
“그래. 아주 잘 아네.”
수지는 자신의 몸과 체중을 이용해서 그리 어렵지 않게 소울의 어깨에서 등 그리고 허벅지까지 마시지를 하고 뼈까지 맞췄다.
“보통 솜씨가 아니네.”
“먹고 살자니 이런 것도 배우게 됐네요.”
“아무래도 수지를 내 전문마사지사로 초빙해야겠어.”
“정말요?”
“그럼. 내가 언제 헛소리 하는 거 봤어?”
“안 그래도 노스트라 가면 뭘 해먹고 사나 했는데 이렇게 쉽게 직장을 구했네요.”
“수지와 가족들이 먹고 사는데 지장 없게 해줄 테니 마사지나 확실하게 해줘.”
“그거야 당연하죠.”
카렌은 둘의 대화에 질투심이 용솟음쳤다.
하지만 밋밋한 자신의 가슴을 보자 그 마저도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아직 자신은 수지의 상대가 안 될 것 같다.
자신도 모르게 카렌은 수지의 가슴을 쳐다봤다.
그녀는 자신의 가슴을 소울의 등에 대고는 마사지를 하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저건 마사지가 아니라 연인들이 하는 애무같았다.
하지만 소울이 계속 시원하다고 좋아하자 카렌은 자꾸 헷갈렸다.
마사지가 끝나자 소울은 잠이 들었다.
그리고 바로 수지에게 보상이 떨어졌다.
“아!”
수지의 얼굴이 전에 비해 훨씬 더 하얗고 뽀얗게 변한 것 같았다.
그녀는 기분이 좋은지 소울의 뺨에 뽀뽀를 한번 하더니 마차를 침대로 바꾸고는 그의 옆에 바짝 몸을 붙이고 누웠다.
두 사람이 꼭 붙어서 잠이 들자 카렌은 괜히 서러워졌다.
그때 까뮤가 카렌에게 클린 스킬을 사용했다.
다행히 소울이 카렌이 한 노력을 잊지 않았던 것이다.
카렌은 자신의 몸과 옷이 깨끗해지자 기분이 좋아졌다.
그래서 수지가 누워있는 곳의 반대편으로 가서 눕고는 소울의 팔을 꼭 끌어안았다.
출발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소울이 탄 마차 안은 이른 낮잠으로 고요해졌다.
마차바퀴가 굴러가는 소리만이 자장가처럼 그들의 단잠을 평안으로 이끌어 가고 있었다.
* * * * *
노스트라 원정대의 행렬은 일주일 동안 큰 사고 없이 안정적으로 이동했다.
중간에 정신 나간 몬스터가 달려들어 학살당하는 일을 제외하고는 너무나도 순조롭고 편한 여행길이었다.
에릭클리, 스르마, 카이수를 지나 아이란을 향하는 원정길은 그렇게 순항을 거듭하고 있었다.
하지만 야영을 하고 있는 원정대 중앙에 소울이 탄 마차는 묘한 경쟁이 붙어 다들 후끈 달아오르고 있었다.
“제가 해볼게요.”
“안 돼! 아직 나 안 끝났어. 그리고 마스터는 남자가 마사지하는 것 별로 안 좋아하신단 말이야.”
루안의 말에 세라가 당돌하게 받아치자 소울은 얼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눈을 꼭 감고 못들은 척 했다.
‘역시 아이들은 브레이크가 없구나.’
소울의 마음을 귀신처럼 알아차린 수지가 루안을 향해 말했다.
“루안, 너는 지금 마사지를 배울 때가 아니야. 사내는 역시 힘을 길러야지. 나가서 기초검술을 닦는 데 힘을 다하도록 해.”
“네.”
루안은 수지의 말에 바로 고개를 숙이더니 마차 밖으로 나갔다.
“세라, 그만하면 됐다. 아직 나이가 어리니까 조금 더 힘이 세지면 더욱 잘 할 수 있을 거야.”
“네.”
수지는 예쁘게 웃는 무서운 소녀 세라도 내보냈다.
마차 밖에서 까뮤의 정화와 힐을 받은 세라가 기쁨의 환호성을 터트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살짝 미소를 지은 수지는 고개를 돌려보니 옆을 봤다.
소냐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활활 타오르는 시선으로 수지를 쳐다보고 있었다.
“휴우, 소냐! 진짜 할 거야?”
“네, 정말 잘할 자신 있어요.”
소냐는 수지의 말이 끝나자마자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수지는 가늘게 한숨을 쉬고는 카렌을 쳐다봤다.
수지가 마스터에게 마사지를 해주고 나서 얼굴이 예뻐지고 피부가 고와졌다는 정보는 카렌의 싼 입을 통해 흘러나왔던 것이다.
카렌은 수지의 눈초리에 슬쩍 엉덩이를 들더니 밖으로 나갔다.
“나 바람 좀 쐬고 올게요.”
“그래.”
수지는 굳이 나가겠다는 카렌을 잡지 않았다.
“그래 기회를 줄 테니 한번 잘해봐.”
“감사합니다.”
소울은 몸을 뒤집어 똑바로 누웠다.
어깨는 카렌과 세라가 많이 주물러서 충분했다.
이제는 허벅지와 종아리를 풀어줘야 할 때다.
수지의 허벅지에 머리를 올린 소울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마스터,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응.”
소냐는 마치 전투를 하기 전에 제사를 드리기라도 하는지 엄청 진지하게 전의(戰意)를 다지고 있었다. 그녀의 모습에 살짝 불안해지기 시작하는 수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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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유쾌한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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