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49 제 113 장 - 뱀파이어들의 습격 =========================================================================
“보상하겠습니다. 뭐든지 보상을 하겠어요.”
“정말?”
클레이모어를 높이 치켜든 소울이 슬그머니 눈을 내리고 노예상인을 쳐다봤다.
아직 살기를 푼 것이 아니라서 개기름이 낀 노예상인의 얼굴은 부들부들 마구 떨어대고 있었다.
“네, 물론입니다. 뭘 얼마나 원하시는지 말씀만 하세요. 당장 대령하겠습니다.”
“그래? 그럼 나한테 엘프와 드워프를 비롯한 수인족을 구해다줘.”
“그거라면 제 전문입니다. 당장이라도 원하는 만큼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정말이지?”
“네, 정말입니다.”
“좋아. 그럼 얘도 덤으로 줘.”
“네?”
“싫어? 그럼 말고. 에잇!”
소울은 다시 클레이모어를 번쩍 하늘로 들었다.
“아, 아닙니다. 드리겠습니다. 무슨 병에 걸렸는지도 모를 년 하나를 제가 드리지 못하겠습니까?”
“그렇지? 그럼 계약하자.”
“네?”
계약하자는 말에 노예상인은 크게 당황했다.
“너 지금 나한테 말로만 사기쳐놓고 그냥 내빼려고 했지?”
“아, 아닙니다. 그럴 리가 있습니까? 절대 그런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생각을 했다.
귀신같은 놈이라고 욕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소울은 이미 다 알고 있으면서도 모른 척 했다.
대신 품속에서 재빠르게 계약서를 꺼냈다.
계약서에다가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마구 갈겨썼다.
“자, 서명해.”
“네.”
“내 말이 끝나기 전까지 서명을 안 하면 없던 일로 하고 네 목을 잘라주겠다.”
“서명했습니다.”
노예상인은 아직 죽을 운명은 아닌가보다.
계약서에다 눈부신 속도로 이름을 쓰고 서명을 해버렸다.
“따라와! 너희들도 따라오고……. 참 레이첼에게 로브 하나 주도록 해.”
“네, 히어로님.”
노예상인과 용병 둘은 그의 말에 재까닥 움직였다.
레이첼은 감격한 표정으로 소울의 뒤를 따랐다.
용병이 가방에서 로브를 꺼내주자 레이첼은 아무 말 없이 로브를 입고는 모자까지 깊숙하게 덮어썼다.
“내놔!”
“네?”
“이 여자 주인인장 내놓으라고.”
“네, 여기 있습니다.”
소울은 일단 레이첼의 주인인장을 확보했다.
늙은 귀족이 레이첼을 반품을 했을 때에 이미 노예인장은 풀렸을 것이다.
이제 주인인장을 손에 넣었으니 이대로 마탑에 가서 미키만 만나면 레이첼은 자신의 노예가 된다.
하지만 소울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더 좋은 방법이 있었기 때문이다.
왕궁 앞에 도착한 소울은 경비병을 손짓으로 불러 말했다.
“장페리를 불러라.”
“네, 히어로님.”
노예상인은 얼굴이 사색이 되어 소울을 쳐다봤다.
“히어로님, 혹시 여긴 왜 왔습니까?”
“계약서를 공증 받으려고 왔지. 네 말만 믿을 수는 없잖아? 너도 좋지? 왕궁의 관리가 공증을 해주면 서로 믿을 수가 있으니까 말이야.”
좋긴 개뿔!
생명의 위협을 느끼면서 작성된 계약서다.
당연히 협박에 의한 계약서는 무효처리가 된다.
하지만 이렇게 왕궁의 공증을 받는다면 그건 빼도 박도 못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계약서가 무효라고 말을 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된다면 당장 자신의 목이 날아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엘라즈라 왕국에 오는 게 아니었는데…….’
노예상인은 후회가 막심했다.
하지만 후회는 아무리 빨리해도 늦는 법이다.
‘이놈이 당장 목을 쳐버릴까 하다가 살려줬더니 자기 생명 귀한 줄 모르는군.’
소울은 노예상인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하는 것을 보고는 실소를 흘렸다.
“마스터, 반갑습니다.”
“장페리, 나도 반가워.”
장페리가 나오자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이런 일에 능숙한 장페리는 기존의 계약서 대신 법에 조금도 문제가 되지 않는 문구를 이용해 새롭게 계약서를 작성하고 공증까지 해버렸다.
노예상인은 새로 작성되어 공증 받은 계약서를 보고는 치를 떨었다.
아까보다 훨씬 더 혹독해진 조건이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소울에게도, 장페리에게도 아무 말을 하지 못했다.
“덕분에 시원하게 계약서를 작성했군.”
“축하드립니다.”
소울과 장페리의 말에 노예상인은 똥 씹은 표정을 지었다.
“혹시라도 야반도주를 하게 되면 엘라즈라 왕국과 이웃 왕국들에게 범죄자 수배를 내리고 용병길드에는 현상수배를 할 것이니 딴 맘 품지 않도록 해라.”
“네, 여부가 있겠습니까?”
장페리가 소울과 상대할 때와는 달리 근엄한 표정을 지으며 말하자 노예상인의 얼굴이 순간 주인 앞의 개처럼 변해버렸다.
장페리는 노예상인에게 있어서 소울과는 다른 또 다른 절대 갑이라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저는 계약서대로 빨리 이행하기위해 그만 가보겠습니다.”
“그래. 가봐.”
노예상인과 용병 둘이 떠나가자 장페리는 즉시 경비병을 불러 뭐라고 귓속말을 했다.
그러자 안에서 창 대신 검을 찬 두 명의 경비병이 즉시 밖으로 튀어나와 노예상인의 뒤를 따라갔다.
“뭐야?”
“그냥 간단한 보험을 하나 들어뒀습니다. 노예상인들이 원래 한 성격하거든요.”
“그냥 죽여 버릴 것을 그랬나?”
“하하하하!”
장페리는 소울의 차가운 말에 자신도 모르게 식은땀을 흘렸다.
“오늘 여러모로 고맙다. 수고해.”
“네, 마스터. 안녕히 가십시오.”
장페리에게 더 이상 볼일이 없자 소울은 즉시 몸을 돌렸다.
레이첼이 혹시라도 놓칠세라 부지런히 그를 쫓아왔다.
소울은 마탑으로 돌아가 미키를 찾았다.
레이첼에게 새롭게 노예인장을 찍어주기 위해서다.
미키는 능숙한 솜씨로 레이첼의 주인인장을 소울의 주인인장에 하나로 합치고 그녀의 팔에 새롭게 노예인장을 다시 찍어주었다.
비용을 지불하고 북문의 주둔지로 돌아오자 어느새 서산에 해가 기울고 있었다.
꼬르르륵!
레이첼의 얼굴이 순간 홍당무처럼 변했다.
“밥 안 먹었어?”
“네.”
모기가 앵앵대는 것보다 작은 목소리로 대답을 한다.
“밥은 먹고 살아야지.”
그는 까뮤를 불러 부드러운 빵을 하나 꺼내줬다.
그리고는 1층 응접실로 가서 앉았다.
레이첼은 맞은편에 앉아 말없이 빵을 뜯어 먹으면서 소울의 눈치를 살폈다.
“얼굴 좀 보자.”
“네.”
레이첼이 머리까지 푹 쓴 로브를 벗었다.
아직도 얼굴과 몸에는 붉은 반점이 가득했다.
“뭘 썼어?”
“고향에서 나는 밀레라는 풀을 말려서 먹었어요.”
“그걸 쓰면 온몸에 붉은 반점이 나나보지?”
“네, 접촉하면 접촉한 대상까지 붉은 반점이 생겨요.”
아주 간단한 방법을 사용했다.
“늙은 귀족이 만만치가 않았을 텐데 용케 호굴(虎窟)에서 빠져 나왔군.”
“좀 의심을 하긴 했지만 당장 가려워서 미칠 것 같으니 결국 인내심에 한계가 왔나 봐요.”
“도중에 날 안 만났으면 노예상인에게 죽을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럴 수도 있었겠죠. 하지만 치욕을 당하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생각했어요.”
“네 눈을 보니 절대 죽을 생각은 없어 보인다.”
“…….”
레이첼은 자신의 마음속까지 다 뚫어 보는 것 같은 서늘한 소울의 눈동자에 감히 뭐라고 대답을 할 수 없었다.
“무슨 꿍꿍이속으로 나한테 왔는지 모르지만 네가 내 노예라는 사실은 꼭 기억해둬.”
“당연히 히어로님은 제 주인님이십니다.”
“야망이 큰 여자군.”
소울은 그 말을 마지막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틴!”
“네, 마스터.”
“레이첼에게 방하나 내줘.”
“네, 마스터.”
소울이 응접실 밖으로 나가면서 말하자 마틴이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따라와라.”
“네.”
마틴은 무표정한 얼굴로 레이첼을 데리고 2층으로 올라갔다.
그는 맨 끝의 방을 레이첼에게 보여주고는 몸을 돌렸다.
레이첼은 마틴에게 뭔가 얘기를 하려고 하다가 그가 몸을 돌리자 그만 손을 내리고 말았다.
그녀는 방안으로 들어가 살펴보더니 욕실이 보이지 미소를 지으며 조심스럽게 문을 닫고 문고리를 걸었다.
화가 될지 복이 될지 모를, 조금은 위험해 보이는 미녀 레이첼이 이렇게 소울의 여정에 합류했다.
* * * * *
철컹 철컹 촤라라라라라락!
황금빛으로 빛나는 바이오 갑주가 얼굴을 제외한 전신을 뒤덮었다.
클레이모어를 한번 빼서 날의 상태를 확인한 소울은 등에 맨 검집에 집어넣고는 방을 나섰다.
“주인님, 딱 맞게 나오셨군요.”
“준비됐지?”
“네, 저는 이미 모든 준비를 마쳤습니다.”
마틴은 어디서 났는지 핏빛으로 물을 들인 것 같은 새빨갛게 붉은 전신갑주를 장비하고 있었다.
소울과 마틴의 갑주는 색깔은 서로 달랐지만 몸에 딱 붙은 정교한 갑옷이라는 점은 다르지 않았다.
파칭!
그때였다.
뭔가 단단한 막을 긁는 것 같은 묘한 공명이 건물 밖에서 울려 퍼졌다.
“오오오! 이런, 가려고 했더니 그새를 못 참고 직접 와버렸네?”
“의외로군요. 선제공격을 하려는 생각을 하다니 말입니다.”
“그러게 말이야. 결국 그동안 우리를 몰래 지켜보고 있었다는 말이 되는군.”
“그래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물론 그렇겠지.”
소울과 마틴은 느긋하게 건물 밖으로 걸어 나갔다.
그 사이 누군가 북문 훈련장을 침입한 것을 발견한 포리너스 부대는 즉시 무장을 갖추고 1층 로비로 몰려나왔다.
포리너스 부대의 사령관인 소울이 없을 때, 부 사령관인 다이애나가 부대를 통솔한다.
다이애나는 미리 언질 받은 비상사태 매뉴얼대로 오웬과 카렌 그리고 소냐를 부르고 즉시 카렌, 수지, 세라, 루안을 데려와 지하실 창고에 숨겼다.
레이첼은 에밀리 왕국의 공주였다는 것도 무시된 채, 샤를과 같이 알아서 지하실 창고로 달려가야 했다.
그제야 레이첼은 자신이 지금 소울에게 어떤 존재와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이렇게 다이애나를 비롯한 124명의 포리너스 부대가 지하실로 가는 입구와 1층 정문 사이를 철통같이 지키고 있을 때, 건물 밖에서는 수백의 뱀파이어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이게 누구신가? 진혈의 뱀파이어 마틴 아니신가?”
“딜란!”
“푸하하하하! 다행히 내 이름은 기억하고 있었군.”
마틴은 달을 쳐다보며 이를 갈았다.
보아하니 둘 사이에 뭔가 악연이 있는 모양이었다.
[누구지?]
[제 가족을 죽이고 저를 뱀파이어로 만든 놈입니다.]
[전투력은?]
[저와 막상막하입니다.]
[오늘 저녁은 땀 좀 빼야겠군.]
[죄송합니다.]
[딜란인지 띨빡인지 저놈 놓치지 말고 반드시 죽여 없애도록 해.]
[네, 주인님.]
소울과 마틴 사이에 빠른 결정이 내려졌다.
휘이이이잉!
암흑의 커튼이 드리워진 세상은 어둡기만 하다.
다행히 하늘에는 달이 떠 있어 한줄기 구원의 빛을 내리고 있다.
고개를 들어 자세히 살펴보니 달빛 속에 두 날개를 활짝 펴고 떠 있는 딜란의 모습이 보인다.
아무런 움직임도 없이 저렇게 달빛을 받으며 허공에 떠 있는 모습만 봐도 얼마나 강력한 적인지 알 것 같았다.
하지만 딜란은 마틴이 상대하기로 정해졌다.
서로 의논을 해서 결정을 내린 것은 아니지만 무언의 합의가 이루어졌다.
그건 소울과 마틴 그리고 딜란 모두 이미 잘 알고 있었다.
소울은 까뮤를 허공으로 올려 보내 어둠속에 숨어있는 다른 뱀파이어들을 찾게 했다.
그때, 눈앞에서 어둠이 세로로 쫙 갈라지더니 안에서 뱀파이어 한 마리가 튀어나왔다.
날카로운 손톱이 소울의 목을 노리고 들어왔다.
휘익! 카강!
순간적인 기습에 몸을 비틀어 흘리자 뱀파이어의 손톱이 소울의 갑옷을 스치듯 때리고 지나갔다.
얼른 뒤로 한 발짝 물러서며 갑옷을 살펴봤다.
조금의 흠집도 없이 멀쩡하게 황금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소울은 그 모습에 입 꼬리를 위로 살짝 들어올렸다.
휘익! 창창창!
이번에는 그의 뒤쪽 어둠이 갈라지더니 날카로운 손톱 공격이 들어왔다.
한발을 앞으로 내뻗고 몸을 돌리면서 클레이모어를 들어 막자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낸 살기 찬 뱀파이어의 붉은 눈이 눈앞에서 어른 거렸다.
그런 식으로 몇 번 이들의 공격을 받아보자 소울은 자신감이 생겨났다.
생각보다 뱀파이어들과 싸울 만했던 것이다.
물론 뱀파이어들의 날카로운 손톱이 갑주를 쉽게 뚫지 못한다는 믿음이 크게 작용을 했다. 하지만 뱀파이어들의 힘과 스피드 그리고 그들이 주로 사용하는 날카로운 손톱 공격은 충분히 감당할 만한 것이었다.
문제는 이런 뱀파이어가 하나 둘이 아니라는 것이다.
슬쩍 하늘을 쳐다보니 달 위를 뛰어다니며 마틴과 딜란이 치열한 접전을 보이는 모습이 보인다.
‘이대로 내가 소강상태에 빠지면 결국 숫자의 우위를 가진 뱀파이어들이 크게 유리해진다. 다른 수를 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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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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