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OULNET-448화 (448/492)
  • 00448  제 112 장 - 원정대  =========================================================================

    안 그래도 장페리를 만나서 무기와 장비를 더 뜯어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노스트라에 도착하면 원정대에 무구(武具)를 반납을 해야 되지만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해볼 문제였다.

    넓은 훈련장을 빠져 나와 짧은 계단을 타고 내려오자 3층 건물에 보인다.

    1층 응접실에 도착하자 장페리가 차를 마시고 있다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히어로님.”

    “마스터라고 불러라.”

    “마스터! 반갑습니다.”

    “앉지?”

    “네, 감사합니다.”

    두 사람은 고풍스런 작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그래 무슨 일이지?”

    “운영하고 계신 부대가 130명이라고 들었는데, 지금은 전체 인원수가 200명으로 늘어났다고 하더군요.”

    무슨 얘기인가 했더니, 포리너스 부대와 스켈레톤 기병대가 같이 훈련을 하는 모습을 보고 온 모양이었다.

    “내가 은밀하게 운영하는 부대까지 합치면 그렇게 되겠지.”

    “괜찮으시다면 재계약을 하도록 하죠. 그들도 같이 포함해서 말이지요. 제대로 값을 치르겠습니다. 모든 지원도 아끼지 않겠습니다.”

    “으음, 그건 좀 생각해봐야겠는데…….”

    소울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지만 겉으로는 별로 관심이 없는 듯 행동했다.

    “그러지 마시고 이번에 원정대를 위해 크게 힘 한번 써주십시오. 벤자민 왕세자께서도 좋아하실 겁니다.”

    “벤자민 왕세자께서?”

    아무래도 소울의 얘기가 벤자민 왕세자에게 들어간 모양이었다.

    하긴 소울은 히어로에다가 전부 합치면 200명이 넘는 부대를 거느리고 있으니 험난한 여정이 될 노스트라 원정대를 위해 꼭 잡으려고 드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나저나 마틴과 수지는 만나봤지?”

    “네, 만났습니다.”

    “혹시 우리가 작성한 물품리스트 봤어?”

    “네, 봤습니다. 재계약만 해주시면 그 정도는 제선에서 충분히 만족스런 가격과 품질로 맞춰드리겠습니다. 시장에서 번잡하게 구매하는 것보다 최고의 품질로 왕실창고에 납품되는 물건들을 세금 혜택까지 받으면서 저렴하게 대량 구매하는 것이 마스터에게는 훨씬 이득이 될 것입니다.”

    “좀 넉넉히 사려고 하는데 괜찮겠어?”

    “물론입니다. 왕실창고를 다 털어서라도 수량을 맞춰드릴 테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흐음, 그렇게까지 말한다면야 재계약을 안 할 수가 없군.”

    “감사합니다.”

    장페리는 당장 자리에서 일어나 90도로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장페리는 이때는 몰랐다.

    정말 왕실창고가 텅 빌 정도로 소울이 엄청나게 물건을 사들일 줄은 말이다.

    “재계약에 감사드립니다. 벤자민 왕세자께서 무척 기뻐하실 겁니다. 시간이 되시면 출발하기 전에 한번 뵙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보다시피 내가 좀 바빠서 그러니까 출발할 때 보자고.”

    “네, 그럼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장페리는 다시 한 번 허리가 부러져라 숙이고는 환한 미소를 띠며 사라졌다.

    “마틴, 다 들었지?”

    “네, 주인님.”

    “우리가 조사한 시장가격과 장페리가 말하는 가격에 차이가 있나?”

    “네, 최소 10%, 최대 30%의 가격차이가 납니다.”

    “더 저렴하다는 말이겠지?”

    “그렇습니다. 중요한 것은 장페리를 통해 왕실창고의 물건을 받으면 품질 걱정을 안 해도 된다는 이점이 있습니다.”

    “하긴 왕실에 납품을 하는 물건이니 어련하겠어?”

    마틴은 조심스럽게 소울에게 물었다.

    “그런데 물건을 도대체 얼마나 구매하실 생각이십니까?”

    “가지고 있는 재물을 다 털어서 사가려고. 뱀파이어들에게 턴 것을 이번에 다 써버릴 생각이야.”

    “아! 그럼 수량이 좀 되겠네요.”

    “그래봤자 까뮤의 아공간으로 밀어 넣으면 그만이지.”

    “그렇군요. 그럼 일단 물건을 이쪽으로 모두 사서 옮겨와야겠습니다.”

    마틴은 속으로 건물 뒤쪽의 대형 창고를 미리 치워놓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렇게 해. 참! 마탑은 가봤어?”

    “결계가 있어서 직접 들어가진 못했습니다.”

    “결계? 썩어도 준치라고, 다 쓰러져 가는 것도 마탑은 마탑이라 이거군.”

    “죄송합니다.”

    “아니야. 됐어. 내가 지금 당장 가보도록 하지. 포션을 대량구매하려면 내가 직접 가서 사오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

    소울은 몸을 돌려 밖으로 걸어갔다.

    마틴이 번개처럼 다가와 문을 열어줬다.

    “이쯤해서 수지는 시장에서 식료품과 향신료를 구매하는 것을 맡기고 빼도록 해. 옆에서 보니까 역량부족이더라.”

    “네, 알겠습니다.”

    “오웬이 놀고 있으니까 그놈 데리고 가서 부려먹어. 참 샤를은 뭐하고 있어.”

    건물 밖으로 나가면서 빠르게 말하자 마틴도 그의 움직임에 보조를 맞춰 걸었다.

    “뒤쪽 마구간에서 말을 돌보고 있습니다. 마차 청소도 하고 있고요.”

    “소냐와 두 동생들은?”

    “카렌 아가씨와 같이 시내구경을 갔습니다.”

    “시내구경이라고 읽고 쇼핑이라고 쓰는 거 아니야?”

    “뭐 비슷합니다.”

    소울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내일모레면 당장 라일라에서 출발해야해. 어제는 바빠서 넘겼지만 오늘 저녁은 꼭 처리하도록 하자.”

    “네, 자정에 시작하도록 하지요.”

    “그럼 이따 보자고.”

    “네, 주인님.”

    마틴은 정문 입구까지 따라 나와 소울을 배웅했다.

    소울이 시야에서 멀어질 때까지 지켜보고 있던 마틴이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거기에는 마치 작은 성을 방불케 하는 거대한 저택이 한 채 서 있었다.

    북문 훈련장 바로 옆에 그들이 노리고 있던 라일라의 뱀파이어 근거지가 붙어 있었던 것이다.

    마틴의 눈에서 서릿발 같은 살기가 스쳐지나갔다.

    * * * * *

    신전과 마탑은 히어로들에게 항상 활짝 열려있다.

    특히 마탑은 그동안 죽어나간 고위마법사들의 명맥이 끊기려는 상황이라 히어로에게 더할 나위 없이 깍듯했다.

    “어서 오십시오. 히어로님. 미키를 불러드릴까요?”

    “아니, 오늘은 포션을 사러왔어.”

    “그럼 이쪽으로 오십시오.”

    로브를 입은 견습마법사 한 명이 친절하게 소울을 2층으로 안내했다.

    허접한 마법 아이템이 있는 1층과는 달리 2층은 그래도 나름 쓸 만한 마법 아이템들이 보였다.

    뭐 그래봐야 하급 아티펙트에 불과하지만 말이다.

    “포션은 여기서부터 여기까집니다.”

    “하나씩 꺼내서 보여줘.”

    “네.”

    진열대의 한쪽이 전부 포션이었다.

    하지만 막상 꺼내서 살펴보니 제대로 된 포션은 몇 개 보이지도 않았다.

    진짜 포션이라고 할 수 있는 것도 큐브에서 사용하는 것과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포션을 대량으로 사려고 했는데…….”

    “히어로님, 왜 포션을 저희들에게서 사려고 합니까? 히어로들은 자체적으로 포션을 사는 상점이 있다고 하던데요.”

    “으음.”

    가만히 생각해보니 견습마법사의 말이 옳았다.

    스피어 시스템에 접속이 됐다면 당연히 스피어 상점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스피어 포인트도 벌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것이 분명했다.

    ‘가만 그런데 왜 난 스피어 상점이 열리지가 않지? 레벨이 너무 낮아서 그런가? 오웬에게 한번 물어봐야겠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느라 가만히 포션을 만지작거리며 서 있자 견습마법사는 조심스럽게 다시 말을 이었다.

    “사실 히어로들이 포션을 넉넉하게 사서 쓰고 남은 것들을 저희 마탑에 팔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러나 그것도 노스트라를 비롯한 북부대산맥 근처에서나 일어나는 일이지요.”

    견습마법사의 말을 들어보자 대충 감이 잡혔다.

    분명히 스피어 상점은 존재한다.

    스피어 상점은 어떤 조건을 충족시키면 바로 나타날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스피어 레벨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

    ‘이렇게 되면 괜히 카렌만 밀어줬나? 앞으로는 나도 레벨업을 위해 정수를 복용해야겠다.’

    결국 소울은 마탑에서 포션을 사는 것을 포기했다.

    트롤의 피를 직접 받아 생산을 해서 쓰는 소울이다.

    큐브상점에서 사서 쓰는 것도 아니고 약초와 치료수를 적절히 섞은 것에 불과한 마탑의 포션은 그의 기준에서는 불량품에 가까웠다.

    그는 마탑에서 나와 신전으로 향했다.

    포션을 만들 수 있는 것은 마탑만이 아니다.

    신전이 원래 포션 제조는 원조라고 할 수 있다.

    “포션이 없다고?”

    “네, 그렇습니다. 히어로님.”

    신전에 도착한 소울은 황당한 소리를 들어야했다.

    신전상점에 포션이 없다는 소리였다.

    “혹시 여긴 포션 안 만들어?”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신전인데 당연히 포션을 만들지요. 하지만 지금 당장은 없습니다. 노스트라 원정대에서 모두 싹 긁어갔습니다.”

    “아! 노스트라 원정대!”

    그제야 이해가 갔다.

    제길 한발 늦었다.

    노스트라에 포션을 팔 생각은 자신만 할 수 있는 생각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렇게 되면 곤란한데……. 역시 그 스피어 레벨을 올려서 스피어 상점을 여는 수밖에는 없다는 건가?’

    소울은 실망한 표정으로 북문을 향했다.

    “어? 저놈은?”

    그때였다.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사내가 다가오고 있었다.

    가만히 살펴보니 경매장에서 봤던 노예상인이었다.

    노예상인은 지금 굉장히 화난 표정을 지으며 씩씩대고 있었는데 그의 뒤에는 커다란 덩치의 용병들이 막대기로 툭툭 밀고 있는 여자가 걸어오고 있었다.

    “레이첼 공주?”

    얼굴과 몸에 붉은 반점이 가득한 여자는 에밀리 왕국의 공주 레이첼이었다.

    뭘 잘못 먹기라도 했는지 울긋불긋 해진 그녀의 피부를 보자 사람들이 질색을 하고 옆으로 피해갔다.

    “여어?”

    “어? 히어로님 아니십니까?”

    노예상인은 소울을 보자 고개를 90도로 꺾으며 인사를 했다.

    “여기서 또 보는군. 그런데 저건 뭐야?”

    “아! 레이첼 공주, 아니 저년 말씀이십니까?”

    “그래. 피부가 왜 저래? 꼭 성병이라도 걸린 것처럼?”

    “그러게 말입니다. 뭘 잘못 처먹었는지 피부에 저런 것이 나서 반품 처리됐습니다.”

    반품처리 됐다는 말에 소울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반품도 있어?”

    “물건에 하자가 있다고 무조건 반품하겠다고 하니 저희도 답이 없지요.”

    노예상인은 그의 앞에서 굉장히 불쌍한 척을 했다.

    그때 레이첼이 갑자기 달려와 그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졌다.

    “히어로님, 제발 절 좀 살려주세요. 지금 가면 전 죽은 목숨입니다.”

    “야! 이거 안 놔?”

    “아니 이년이?”

    레이첼이 소울의 다리를 꽉 끌어안자 소울이 노예상인을 보면서 눈을 부라렸다.

    노예상인은 급히 용병들을 시켜 떼어내라고 했지만 그들도 전염병에 걸리기 싫은지 자꾸 미적댔다.

    그때 레이첼이 자신을 떼어내려고 하는 소울의 귀에 작게 속삭였다.

    “저 병 안 걸렸어요. 절 데려가주세요. 제발 부탁드립니다.”

    소울은 그녀의 말에 흠칫했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상황인지 모르지만 그녀의 말을 토대로 살펴볼 때 뭔가 수작을 부린 것 같았다.

    “야! 노예상인! 너 죽고 싶어? 감히 어디서 이런 전염병 걸린 년을 나한테 붙여 놓는거야?”

    스르렁!

    소울은 레이첼의 목을 잡아 옆으로 던져 놓더니 클레이모어를 꺼냈다.

    “이 개새끼. 너 나 죽이려고 일부러 그런 거지?”

    “허억! 아닙니다. 절대 그런 거 아닙니다.”

    “아니긴 뭐가 아냐? 당장 이리 모가지 길게 빼! 안 그래도 오늘 기분이 나빴는데 잘 만났다.”

    “히어로님, 오해십니다. 정말 오해라고요. 제발 고정하십시오.”

    클레이모어를 꺼내 들고 살기등등한 표정으로 다가오자 노예상인은 얼굴이 새파랗게 변해버렸다.

    상대는 메시엘의 절대 갑인 히어로다.

    백주대낮, 그것도 왕도인 라일라의 내성(內城) 대로 한 복판에서 클레이모어를 뽑아들고 자신의 목을 치려고 하는 미친 히어로다.

    일반 사람이었다면 귀족이라도 벌을 받겠지만 히어로는 다르다.

    그냥 목을 베어버리고 ‘이번에는 내가 좀 심했네. 다음번에는 주의할게!’하고 한 마디만 던지고 가면 끝이다.

    노예상인은 시시각각 다가오는 히어로를 보면서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옆에서 가만히 서있는 용병들에게 어떻게 좀 해보라고 눈짓을 했지만 그들이라고 목숨이 중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괜히 히어로의 앞을 막았다가는 자신들부터 모가지가 잘려나갈지도 몰라 살짝 고개를 모로 돌리고 모르쇠로 일관했다.

    ‘저런 쳐 죽일 놈의 새끼들!’

    애초에 의리도 없는 저런 용병 따위를 믿는 것이 아니었다.

    자신을 위해 목숨을 바칠 호위를 진즉에 키웠어야했다.

    그러나 그것도 당장 살아야 할 수 있는 일이다.

    “히어로님, 제발 살려주십시오.”

    “살려주긴 뭘 살려줘? 너 살려줬다가 나 전염병에 걸리면 누가 보상이라도 해줘?”

    노예상인의 귀에 보상이란 단어가 들리자 그는 뭔가 머릿속에서 불이 번쩍했다.

    ============================ 작품 후기 ============================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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