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OULNET-447화 (447/492)

00447  제 112 장 - 원정대  =========================================================================

“저는 궁내부 기획관리실장 장페리입니다. 히어로님, 어떻게 오셨습니까?”

“사흘 뒤에 있는 노스트라 원정대에 참여하려고 왔다.”

조금 비만인 오십대의 사내 장페리가 호들갑을 떨면서 그를 반겼다.

“아! 정말 잘 오셨습니다. 안 그래도 히어로님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바라고 있었는데 이렇게 직접 찾아주시다니 이번 원정대에 서광이 비추는 듯합니다.”

“내가 거느리고 있는 부하들의 숫자가 좀 되는데 주둔지를 제공해줄 수 있나?”

“몇 명이나 되는지 물어봐도 될까요?”

“130여명.”

장페리는 소울의 말에 눈을 크게 뜨더니 손뼉을 치면서 좋아했다.

“당연히 주둔지를 내드려야지요.”

“북쪽 성문 쪽으로 줬으면 하는데…….”

“북쪽 성문 쪽이라면, 주둔지로 쓸 만한 곳이 하나있습니다. 엘라즈라 왕국군에서 사용하던 곳인데 마침 비어있네요. 기병들이 훈련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넓고 시설이 좋으니 며칠 묵어가는 정도면 불편하시지는 않을 겁니다.”

“좋아! 그럼 거기로 하지.”

“탁월하신 선택이십니다. 그럼 원정대 참여에 관한 계약을 안내해드릴까요?”

장페리의 눈이 현장에서 10년 이상은 굴러먹은 베테랑 세일즈맨처럼 반짝거렸다.

* * * * *

여인의 것처럼 얇고 긴 새하얀 손가락이다.

피처럼 붉은 포도주 잔을 잡고 살짝 시계방향으로 휘돌리면서 창문을 향해 고개를 든다.

얼핏 보면 유약해 보이는 얼굴.

하지만 눈빛만큼은 온 세상을 다 불태울 정도로 뜨거운 욕망의 불길이 가득하다.

똑똑똑!

“들어와!”

차분한 목소리가 응접실을 울린다.

조용히 문이 열리고 나이가 지극한 집사가 안으로 들어와 정중하게 고개를 숙인다.

“예약한 손님이 오셨습니다.”

“들여보내.”

“네, 공작각하!”

집사는 살짝 고개를 숙이더니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다시 문이 열리자 거구의 사내가 성큼성큼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두 사람의 눈이 허공에서 맹렬히 부딪쳤다.

2m에 가까운 키, 옷 위로 느껴지는 우락부락한 근육, 자신감이 넘치는 눈빛에 거침없는 움직임…….

하지만 이에 맞서는 고품격의 정적인 사내는 아무런 말이 없다.

그저 묵묵히 상대를 쳐다볼 뿐이다.

거구의 사내가 살짝 입 꼬리를 위로 올리더니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한다.

“화이트 공작, 처음 뵙겠습니다. 위리놈 님을 모시고 있는 베레스라고 합니다.”

“그대가 위리놈이 보낸 전령이군. 마족인가?”

“그렇습니다.”

마족!

마족이란다.

마족이라면 지금 메시엘 행성의 인류를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몬스터와 마수들의 최상위 지배층이다.

서로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 나야할 마족과 공작의 두 눈에는 적개심이라고는 한 톨도 찾아 볼 수가 없다.

권력의 정점에 서 있는 화이트 공작의 저택에 마족이 도대체 무슨 일로 찾아왔을까?

“제안은?”

“받아들이시겠답니다.”

“함정이면 어쩌려고?”

“함정이면 어떻습니까?”

화이트 공작의 말에 베레스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대단한 자신감이군.”

“약속을 믿어도 되겠습니까?”

“물론이다. 너희들이 원하는 노스트라의 요새 하나를 내줄 것이다.”

“약속은 지키는 것이 좋을 겁니다.”

“그 말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이군. 약속을 지켜서 확실히 제거해줬으면 좋겠다.”

“연약한 인간의 목 하나를 자르는 것이 뭐 그리 어려운 일이겠습니까?”

“그 자신감이 대업에 큰 도움이 됐으면 좋겠군.”

“하하하하! 그렇게 될 것입니다.”

베레스가 기분 좋은 웃음을 터뜨리자 화이트 공작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미니바로 들어가 수정으로 된 와인 잔을 두개 꺼내 테이블 위에 놓았다.

벽에 놓은 수십 병의 와인 중에서 한 병을 골라 꺼내더니 코르크 마개를 땄다.

퐁!

코르크 마개가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허공으로 튀어 올랐다.

화이트 공작은 와인을 기울여 두 개의 와인 잔에 포도주를 반쯤 채웠다.

“파트너가 된 기념과 대업의 성공은 이것으로 하지?”

“좋습니다. 제법 운치를 아시는군요.”

베레스는 거침없이 다가와 와인 잔을 들었다.

챙!

가볍게 와인 잔을 부딪친 둘은 서로의 눈을 쳐다보며 와인을 마셨다.

탁!

와인을 단번에 비운 베레스가 와인 잔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그러자 화이트 공작이 품에서 잘 접힌 종이뭉치를 던졌다.

“노스트라 원정대에 대한 정보다. 도움이 됐으면 좋겠군.”

“굳이 이런 것을 주실 필요는 없었는데…….”

“자신감이 지나치면 만용이라고 부른다. 정보는 많을수록 좋은 것 아닌가?”

“그건 맞는 말입니다.”

“실패 없이 단번에 끝내는 것이 제일 좋지.”

“당신의 사위가 곧 엘라즈라 왕국의 왕세자가 될 것입니다.”

“그렇게 돼야지.”

화이트 공작이 아까 자신이 앉았던 자리로 돌아갔다.

그의 하얀 목이 옆으로 돌려졌다.

베레스는 화이트 공작이 바라보는 창문을 보면서 씨익! 미소를 지었다.

창문 밖으로 왕궁의 수려한 모습이 한아름 눈에 담겨오고 있었다.

* * * * *

“방진!”

주변을 쩌렁쩌렁 울리는 소리가 들리자 완전무장을 한 포리너스 부대가 무기를 들고 전방으로 튀어나갔다.

목표지점에 도착하자 그들은 방패를 앞세우고 빠르게 사각형의 밀집대형을 세웠다.

“원진!”

새로운 명령을 내리는 커다란 소리가 울려 퍼지자 포리너스 부대는 즉시 사각형의 밀집대형을 풀고는 조금 큰 원형의 진(陣)을 구축했다.

“추행!”

이번에는 원형의 진형을 쐐기모양으로 바꾸고 앞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학익!”

달려가던 포리너스 부대는 U자 모양으로 날개를 활짝 펴면서 포위대형을 구축했다.

“중첩!”

학이 날개를 활짝 편 모양이 바뀌면서 세 개의 열로 바뀌었다.

완전무장을 한 포리너스 부대는 드디어 몇 번에 걸친 진형변화를 완전히 숙지한 듯싶었다.

다이애나가 고개를 돌리고는 반짝이는 눈빛으로 소울을 쳐다봤다.

하지만 그들을 바라보는 소울의 표정은 잔뜩 굳어 있었다.

“부대 한쪽으로 정렬해서 앉히고 십부장들 다 모이라고 해!”

“네, 마스터.”

소울의 명령에 다이애나는 바짝 긴장한 표정으로 십부장들을 불러 모았다.

다이애나, 알렉스, 나비엘, 켄, 탈칸을 비롯해 새로 뽑힌 십부장들이 모두 소울 앞으로 모였다.

포리너스 부대의 총 인원은 124명이다.

십부장(十副長) 한 명과 십부장을 보좌하는 부장(副長) 한 명이 각각 부대원 열 명을 이끈다. 남은 네 명은 포리너스 부대의 참모이자 보급담당이다.

전투가 시작되면 누구하나 빠지는 부대원 없이 모두 전투원이 돼야 한다.

“일단 가장 기본이 되는 방진(方陣), 원진(圓陣), 추행진(錐行陣), 학익진(鶴翼陣), 중첩진(重疊陣)을 어떻게 만드는지는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그것이 훈련의 목적이 아니다.”

“…….”

포리너스 부대의 십부장들은 소울의 말을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궁내부 기획관리실장 장페리의 적극적인 협조로, 왕실무기고에서 무기와 갑주를 조달받아 완전무장을 한 채 집단전투훈련을 받은 지가 이제 겨우 하루 지났다.

당연히 실전에서 제대로 써먹을 정도의 훈련은 되지 않는다.

이렇게 진형을 그럴 듯하게 만들어내는 것만 해도 칭찬을 해줘야 마땅할 것이다.

하지만 소울의 욕심은 이를 용납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배운 진형의 본래 목적은 모두 잊어버린다.”

“네?”

소울의 말에 십부장들은 자신도 모르게 놀라는 소리를 냈다.

기껏 진형을 열심히 배웠더니 이제는 진형을 배운 목적을 잊어버리라니,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린가?

“지금 우리가 진형을 배우는 목적은 진형이 가지고 있는 본래 목적대로 움직이는 연습을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쉽게 말해서 우리 포리너스 부대는 처음부터 끝까지 원거리 타격만을 목적으로 한다.”

“그럼 엘프들만 활용하시겠다는 말씀이십니까?”

티거족의 전사 탈칸이 묻자 소울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포리너스의 모든 부대원들은 전원 원거리 타격무기를 최소한 하나 이상은 들고 다녀야한다. 우리는 적을 사냥하는 것이 목적이다. 우리가 다치는 것은 처음부터 철저히 배제한다.”

“그럼 어떻게 싸우라는 말씀이십니까?”

나쁜 머리로는 쉽게 이해가 안 되는지 울파족 전사 켄이 머리를 긁으면서 물었다.

“우리에게는 신궁(神弓)이라고 할 수 있는 엘프가 무려 36명이나 있다. 이들을 최대한 활용하는 전법을 사용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나머지는 그냥 손 놓고 손가락만 빨고 있으라는 말이 아니다. 냥족은 쇠뇌(석궁)를 쏘고 드워프는 손도끼를 던진다. 울파족과 티거족은 투창을 이용한다.”

장내는 소울의 파격적인 말에 금세 소란스러워졌다.

소울은 그것을 무시하고 계속 자신이 할 말만 했다.

“냥족, 울파족, 티거족은 모두 이빨과 발톱을 사용해서 공격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싸운다면 필연적으로 포리너스 부대에 피해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 난 포리너스 부대를 이용해 몬스터를 사냥할 생각이지 싸워서 죽게 만들고 싶지는 않다.”

“…….”

소울의 말에 그들은 다들 입을 다물고 눈을 빛냈다.

잠시 잊고 있었다.

그들은 지금 전쟁터에 끌려나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생존이 최우선이다. 다치면 너희들이 손해가 아니라 곧 나의 손해다. 드워프는 전투도끼를 들고 냥족은 샤브레를 들어라. 울파족은 메이스(철퇴)를 들고 티거족은 플레일(도리깨)을 들고 싸운다. 드워프와 울파족, 티거족은 각각 원형 방패와 사각방패를 들도록 하라.”

“충!”

“근접전투는 없다. 설사 적과 근접전을 벌이더라도 방어에 치중한다. 적을 죽이는 것은 방패 뒤에 있는 엘프와 냥족의 활과 쇠뇌다.”

“충!”

포리너스 부대의 부대원들은 그제야 소울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했다.

하지만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그것을 완전히 습득하고 체화시키는 것은 엄연히 다른 것이다.

소울은 시간단축을 위해 본을 이용하기로 했다.

“본, 이들에게 지금까지 내가 말한 내용을 시범으로 보여줘라.”

“예스, 마이로드.”

본은 소울에게 군례를 취하고는 즉시 80명의 스켈레톤 기병대를 이용해 한편의 멋진 무대를 선보였다.

124명의 포리너스 부대는 해골마에서 내린 80명의 스켈레톤 기병대가 보여주는 극적이고 다이내믹한 움직임에 모두 입을 떡 벌렸다.

그것은 처음부터 스켈레톤 궁병을 위한, 궁병에 의한, 궁병의 공격이었다.

와아아아아아!

본과 스켈레톤 기병대가 한편의 드라마와 같은 집단전투 시범을 보여주자 고등학교 교정을 연상케 하는 훈련장에 우레와 같은 함성이 터져 나왔다.

“정말 멋진 모습이다.”

“우리도 저렇게 할 수 있다는 말이잖아?”

“당연하지.”

“저 정도로 하려면 얼마나 훈련을 받아야 하는 거지?”

십부장들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각자 자신의 생각을 한마디씩 나눴다.

소울이 웃으면서 그들의 주의를 환기시켰다.

“본이 이끄는 스켈레톤 기병대처럼 굳이 똑같이 따라하려고 할 필요 없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면 된다. 쉽게 말해서 진형 자체에 너무 목을 매지 말고 자유롭게 움직이되 원거리타격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도록 철저히 엘프들을 보호하고 전투에 보조를 맞추면 된다는 말이다.”

“아!”

“그렇구나.”

소울의 말에 다들 뭔가 깨닫는 것이 있어보였다.

“그럼 가서 부대원들과 얘기를 나누고 집단전투 대형을 연습해보도록 하라.”

“충!”

다이애나를 비롯한 십부장들은 즉시 자신의 부대원들에게 가서 소울이 한 말을 그대로 전했다.

그들은 서로 활발한 토론을 하더니 이내 집단전투를 진형에 맞춰 연습을 했다.

놀랍게도 그들은 아까보다 훨씬 형편없는 모양의 진형을 이루며 움직였다.

하지만 소울은 오히려 환한 미소를 지었다.

포리너스 부대가 드디어 자신이 원하는 철저한 원거리타격 부대로 탈바꿈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진형의 모양을 굳이 눈에 보기 좋게 고정시킬 필요는 없지. 저렇게 자유롭게 움직여도 진형이 가지는 효과만 제대로 발휘되면 된다. 연약한 인간이야 오와 열을 칼 같이 맞춰 움직여야 하지만 신체능력이 인간에 비해 월등한 유사인류와 수인족은 굳이 그렇게까지 빡빡하게 움직일 필요가 없어.’

소울은 잠시 그들이 훈련을 하는 모습을 지켜보다 다이애나를 불러 몇 가지 지시를 하고는 물러났다.

“마스터, 장페리가 왔습니다.”

“그래? 만나보자.”

마틴이 옆으로 다가와 살짝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 작품 후기 ============================

즐겁게 읽어주시고 좋은 하루 보내세요.

선호작, 추천, 코멘트, 쿠폰, 후원에 감사드립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