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45 제 112 장 - 원정대 =========================================================================
그때 눈이 시리도록 예쁘게 생긴 엘프가 앞으로 나오더니 질문을 했다.
“사냥에 동참하면 노예와 뭐가 다릅니까?”
“노예로 대하지 않고 나의 사냥팀, 나의 부대의 일원으로 대우하겠다. 무장을 허용하고 매달 월급을 주겠다. 공을 세우는 자에게는 상금과 수당도 주고 몬스터의 사체를 팔면 거기에서 나오는 이득금도 나눠주겠다.”
“그게 정말이십니까?”
“정말이다. 내가 히어로라는 것은 잘 알고 있겠지?”
“네, 그렇습니다.”
“내가 너희들에게 굳이 이런 거짓말을 할 필요가 있을까?”
“아!”
엘프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탄성을 내자 드워프 중에서도 덩치가 제일 큰 드워프 하나가 앞으로 나섰다.
“만약 사냥에 동참하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너희들이 원하지 않으면 굳이 강요하지 않겠다. 하지만 평생 노예로 잡일이나 하다가 살아가겠지.”
“혹시 고향으로 돌아갈 수는 없습니까?”
“스스로의 몸값을 벌어서 내면 허락하겠다. 하지만 먼저 하나 묻겠다. 돌아갈 고향은 있는가?”
“아!”
소울의 말에 다들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노예상인에게 잡힐 때 그들이 살던 마을은 이미 초토화되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냥족, 울파족, 티거족에서도 한 명씩 나서더니 질문을 이어갔다.
“혹시 저희들을 몬스터를 잡기 위한 고기방패로 사용하시려는 건 아닙니까?”
“내가 그렇게 잔인하고 미련해 보이는가? 그리고 고기방패에게 뭐 하러 무장을 시키겠어?”
소울의 대답에 그들은 이상하게 소울이 절대 그렇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의 노예인장을 통해 흘러들어간 소울의 피와 스피릿파워가 서서히 그들의 인식을 변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소울은 이들을 굳이 노예로 데리고 있고 싶어 하지 않았다.
진심이 통할지는 모르지만 생각이 있는 놈들이라면 자신의 제안을 거절하지 않을 것이라 확신했다.
“앞으로 나온 너희들은 각 종족과 부족을 대표하는 자들이겠지?”
“그렇습니다.”
앞에 나선 엘프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소울은 그들을 향해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낮은 저음으로 말했다.
“일단 자기소개부터 하도록 하지?”
“네, 저는 위스피나 숲의 다이애나입니다.”
“전 강철망치 부족의 전사 알렉스입니다.”
“냥족 나비엘이에요.”
“울파족의 전사 켄입니다.”
“티거족의 전사 탈칸입니다.”
그들은 새로운 희망을 보여준 소울에게 적개심을 잠시 제쳐두고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노스트라로 가서 근거지를 마련하면 너희들이 모여 살 수 있는 마을을 만들어주겠다. 또한 너희들에게 꼭 필요한 것이 있다면 다 구해주겠다. 매달 월급을 받으면 그것으로 무엇을 사던지 어떻게 쓰던지 그것은 너희들의 마음이다.”
“정말 우리 부족이 모여살 수 있는 마을을 만들어 줄 겁니까?”
“그렇다. 히어로의 명예를 걸고 약속하지.”
“그럼 혹시 노예로 팔려간 부족을 구해 와서 같이 살아도 됩니까?”
“물론이다. 원한다면 이미 노예로 팔려간 너희들의 동족을 최대한 되찾아 오는데 힘을 아끼지 않겠다.”
“아!”
소울의 마지막 말이 결정타로 작용했다.
다들 감탄성을 터뜨리며 눈빛에 기대가 한 가득이다.
“잠시 시간을 내어줄 테니 서로 의논을 해보고 최종적으로 결정하도록 해라.”
“네.”
이미 분위기가 소울이 원하는 데로 흘러가고 있었다.
소울은 느긋한 마음으로 그들에게 결정할 시간을 내줬다.
그때 사비에르가 엘프들을 이끌고 소울에게 다가왔다.
“반갑다. 나는 사비에르다.”
“마스터라고 불러라.”
소울은 굳이 그에게 자신의 이름을 얘기하지 않았다.
“지금 혹시 무슨 일이 있어났지?”
“그건 두고 보면 저절로 알게 될 일이다.”
“좋아. 그럼 잠시 기다리도록 하지.”
히어로 사비에르는 굳이 서두르지 않았다.
그러나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호기심이 가득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사비에르의 옆에선 로브를 뒤집어쓴 소녀가 머리를 감싼 로브의 윗부분을 벗고 소울을 쳐다봤다.
소녀가 아닌가 생각했는데 키가 좀 작을 뿐이지 다 큰 처녀가 분명했다.
“너의 소환사인가?”
“그렇다.”
“안녕하세요? 도리스라고 합니다.”
“반갑다. 마스터라고 불러줘.”
“네, 그런데 라일라에 사는 분은 아닌 것 같네요.”
“노스트라로 가고 있다. 라일라는 잠시 들린 것뿐이야.”
도리스의 질문에 소울은 순순히 대답을 해줬다.
사비에르와 소울의 보이지 않는 담합은 이미 도리스도 얘기를 들어 잘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도리스의 눈에서 숨길 수 없는 호의와 호기심이 보였다.
“주인님, 결정했습니다.”
엘프들의 리더인 다이애나가 다가오며 말했다.
그녀의 뒤로 각 부족의 리더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다시 한 번 물어보겠습니다. 정말 저희를 노예로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내 사냥팀이나 부대에 들어온다면 노예로 생각하지 않고 동료나 부하로 생각할 것이다.”
다이애나는 엘프 종족 특성인 진실의 눈을 통해 소울이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했다.
그가 고개를 뒤로 돌려 각 부족의 리더를 보며 고개를 숙이자 그들도 모두 고개를 숙였다.
다이애나는 즉시 고개를 돌려 소울에게 한쪽 무릎을 꿇었다.
“위스피나 숲의 엘프 다이애나는 저를 포함한 엘프 열두 명의 목숨을 주군에게 의탁하겠습니다.”
“나 강철망치 부족의 전사 알렉스는 저를 포함한 부족의 드워프 스물두명의 목숨을 주군에게 바치고 충성하겠습니다.”
“냥족의 나비엘은 냥족 저를 포함한 열여덟 명의 냥이들의 목숨을 주군에게 의탁하겠습니다.”
“울파족의 전사 켄은 동족 스물여덟명의 목숨을 주군에게 바치며 충성을 맹세하겠습니다.”
“티거족의 전사 탈칸은 동족 열두명의 목숨을 주군에게 바치고 충성을 맹세합니다. 또한 저희에게 의탁한 여섯 명의 수인족을 대표해서 충성을 맹세하겠습니다.”
백 명의 유사인류와 수인족들은 차례대로 소울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으면서 충성을 맹세했다. 누구도 노예가 되고 싶어 하지는 않았나보다.
이들은 소울의 제안을 받아들여 동족을 구출하고 자신들만의 마을에 같이 모여 사는 밝은 미래를 선택했다.
쉽게 인간을 믿지 않는 유사인류와 수인족의 특성상 이 모습은 절대 흔하게 볼 수 있는 모습은 아니었다.
소울의 정체가 메시엘을 구하기 위해 신이 보냈다는 히어로인 점과 그가 피에 섞은 스피릿파워로 인한 친근감, 마지막으로 소울의 합리적인 제안이 진실했다는 여러 가지 복합요소가 시너지 현상을 일으켜 만든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정말 장관이네요.”
사비에르와 도리스는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리고 그들의 뒤에 서 있는 남자 엘프들도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모두 일어나라! 너희들을 나의 부대 포리너스로 받아들이겠다. 앞으로 나는 너희들을 남으로 생각하지 않겠다. 나의 부하이자 가족으로 생각하겠다.”
“와아아아아아!”
소울의 말에 백 명의 유사인류와 수인족 노예들이 일제히 함성을 질렀다.
‘우와, 이거 대박이다. 한 명 당 1~2 골드에 사서 외인부대를 만들어 내다니……. 역시 이 녀석들을 그냥 노예로 부리기에는 너무도 아까운 놈들이야.’
그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기쁜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그의 앞으로 사비에르와 도리스가 다가왔다.
“축하드려요.”
“고맙다. 그런데 나한테 원하는 게 뭐야?”
소울은 도리스의 말에 웃으면서 질문했다.
도리스는 사비에르를 한번 쳐다보더니 다이애나를 가리켰다.
“저기 저 엘프를 포함한 몇 명의 엘프를 구해주겠다고 약속했어요.”
“누구한테?”
“제 엘프 노예인 테라사한테요.”
도리스의 말에 다이애나가 급히 다가와 소울에게 고개를 숙이면서 말했다.
“주군, 죄송합니다만 잠시 대화에 끼어들어도 되겠습니까?”
“허락한다.”
소울의 말에 다이애나가 다시 한 번 소울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는 도리스를 보면서 말했다.
“내 동생 테라사가 그대에게 있나요?”
“그래요. 제가 테레사를 샀어요. 그리고 그녀에게 당신과 마을 사람을 구해주겠다고 약속했어요.”
“아! 다행이군요. 그럼 테레사를 저에게 데려다 주실 수 있으십니까?”
“그, 그건.”
도리스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사비에르가 얼른 앞으로 나섰다.
“다이애나라고 했지? 우리가 너를 마스터에게 사서 테레사에게 데려다 주겠다. 또한 너희 마을사람들도 같이 사서 한 곳에서 살게 해주지.”
다이애나는 사비에르의 말에 바로 고개를 흔들었다.
“아닙니다. 좋은 주인을 만난 것 같으니 전 그것으로 됐습니다. 저는 테레사 보다는 엘프 동족을 구하는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아, 그런.”
도리스가 무척이나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었다.
소울이 다이애나의 어깨에 손을 올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다. 이제부터는 내게 맡기지?”
“네, 주군.”
엘프는 자신이 약속한 것을 철저히 지키는 존재다.
이미 그녀의 입술에서 주군이라고 말이 나온 이상 소울은 그녀의 주군인 것이다.
다이애나가 한발 물러서자 소울이 웃으면서 사비에르를 쳐다봤다.
“사비에르, 하나 묻자!”
“좋아.”
사비에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엘프를 사서 데리고 가면 뭐가 달라지지?”
“우리는 노예로 부릴 생각이 없다. 도리스는 테레사를 친구로 생각하고 있어.”
“그게 다인가?”
“뭐?”
“그게 다냐고?”
“무슨 뜻이지?”
사비에르는 소울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한 채 고개를 갸웃거렸다.
“테레사라는 엘프가 도리스 친구라서 그녀의 부탁을 들어줬다. 같이 살게 해준다면 좋아하겠지. 하지만 그 이후는? 엘프들의 꿈은? 희망은? 결국 장소만 달라지고 좀 편하게 사는 것 외에 엘프들이 노예라는 생활에서 달라지는 것이 뭐지?”
“아!”
사비에르는 그제야 소울이 말하는 바를 이해할 수 있었다.
“스스로의 힘으로 부족과 동족을 구해야 그 노력이 값진 법이지. 남의 호의로만 먹고 사는 유사인류나 수인족도 아니고 말이야. 마음은 참 좋지만 방법이 틀렸다. 아직도 도리스는 테레사를 대등한 존재로 보고 있지 않은 것 같아. 마치 테레사를 자신의 인형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군.”
“아니에요.”
도리스가 크게 소리를 질렀다.
그녀는 입술을 꽉 깨물더니 고개를 마구 흔들었다.
“절대 그건 아니에요.”
“그래? 그럼 증명해봐. 테레사와 네가 구했다는 엘프들을 데리고 와서 이들에게 스스로 선택을 하라고 해봐. 그럼 알 수 있겠네?”
소울은 도리스를 거침없이 도발했다.
놀랍게도 도리스는 소울의 그런 도발에 홀딱 넘어가 버렸다.
참 쉽고 단순한 성격을 지니고 있는 도리스였다.
“좋아요. 누가 하라면 못할 줄 알아요?”
“그럼 난 여기서 기다리고 있도록 하지. 빨리 데리고 와라.”
도리스는 소울을 원망 섞인 눈으로 쳐다보더니 바로 몸을 돌렸다.
사비에르는 민망한 표정을 짓더니 곧 도리스의 뒤를 따라갔다.
“잠깐, 이들은 어떻게 할 거야?”
소울이 사비에르의 발걸음을 잠시 멈추고는 도리스와 사비에르가 데리고온 남자 엘프 12명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잠시만 데리고 있어줘! 곧 돌아올게.”
“알았다. 그 정도는 도와주지.”
남자 엘프 열두 명은 결국 도리스를 따라가지 않았다.
사비에르가 하는 말을 듣고는 반색을 하며 다이애나에게 달려갔다.
그들은 자신들의 언어로 빠르게 말을 하면서 서로 끌어안고 반가워했다.
‘남자 엘프 열둘이라……. 나쁘지 않아. 전력이 크게 오르겠군. 좋은 활만 구해준다면 엘프 만한 궁병도 없지. 푸하하하!’
소울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속으로 크게 기뻐했다.
사비에르가 도리스를 따라 잡고는 뭐라고 열심히 얘기를 했다.
하지만 도리스는 연신 고개를 가로젓고는 오히려 더 빨리 달려가기 시작했다.
사비에르의 유희도 그리 편치는 않은 모양이다.
[까뮤, 외인부대, 아니 포리너스에게 뱀파이어 저택 지하무기고에서 얻은 갑옷을 지급해라.]
[네, 주인님.]
까뮤는 아공간에 들어있는 갑옷을 꺼내 엘프와 드워프를 비롯한 수인족들 앞에 쌓기 시작했다.
갑자기 허공에서 갑옷이 쏟아져 나오자 모두 소울을 쳐다보고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약속한대로 너희들에게 지급하는 갑옷이다. 맞는 것이 없으면 나중에 따로 사던가, 맞춰주도록 하지.”
“장비와 공구만 있으면 맞춰 입는 것은 저희들이 얼마든지 알아서 할 수 있습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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