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OULNET-444화 (444/492)

00444  제 111 장 - 라일라  =========================================================================

소울은 사비에르를 보면서 품속에서 돈주머니를 꺼냈다.

그리고는 손을 집어넣어 한 움큼 미스릴화를 꺼내 보여줬다.

“우와, 미스릴화다.”

“저 히어로 엄청 부자네?”

“장난 아닌데?”

미스릴화를 보여준 것은 사비에르를 포함한 경매장의 귀족과 상인들의 기를 꺾기 위해서였다.

엘라즈라 왕국을 비롯한 메시엘 행성의 각국은 은화인 실버, 금화인 골드, 미스릴화인 미스릴로 이어지는 실물통화체계를 유지하고 있다.

각 대륙회의를 통해 정해진 정확한 함량에 의해 만들어진 일명 대륙화폐는 대략 1실버에 만원, 1골드(100실버)에 100만원, 1미스릴(100골드)에 1억 원 정도의 가치를 가진다.

물론 지구의 화폐가치와 메시엘의 대륙화폐의 화폐가치가 달라 절대비교를 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했다.

엘프는 욕망의 1회용 상품, 드워프는 타협이 없는 대표적인 말썽쟁이, 수인족은 언제 주인을 물어 죽일지 모르는 잠재적인 사고뭉치라는 인식이 강하게 박혀 있는 지금 이때가 아마 이들을 가장 저렴하게 살 수 있는 기회가 아닐까 싶었다.

[생각보다 대단한 부자였군.]

[몇 마리나 필요하지?]

[엘프와 드워프는 물론 수인족까지 다 산다고 했으니 협조하겠다. 나중에 우리가 필요한 몇 마리만 넘겨줬으면 좋겠다.]

[적당한 가격에 넘겨주도록 하지.]

[고맙다.]

소울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메시엘 행성에서 히어로의 위치는 절대 갑이다.

그렇다고 히어로가 전능한 것은 아니다.

특히 돈이 걸린 이런 경매장에서는 히어로라는 타이틀이 오히려 부담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히어로 둘이 서서 서로를 노려보는 가운데 진행되는 유사인류와 수인족 경매는 오히려 경매장에 있는 사람들의 흥미를 크게 유발했다.

소울과 사비에르의 의도대로 착착 진행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2골드에 747번 손님에게 낙찰됐습니다. 다음은 드워프입니다. 1골드부터 시작합니다.”

경매진행자는 소울과 사비에르가 의도적으로 끌어올리는 살기와 기세 가운데에서 어쩔 줄을 모르고 빠르게 경매를 진행했다.

일촉즉발의 분위기 속에 경매장은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경매가 시작되면 사비에르가 번호표를 든다. 그럼 바로 소울이 번호표를 들고 사버린다.

반대로 소울이 번호표를 들면 사비에르는 인상을 찌푸리며 살기를 줄줄 흘린다.

경매장에 앉아 있는 귀족들과 상인들은 소울과 사비에르가 일으키는 기세에 영향을 받아 슬슬 자리를 이동해 두 사람의 근처에서 멀어졌다. 하지만 그 누구도 밖으로 나가려고 하지 않았다.

히어로와 히어로가 싸움을 벌일지 모르는 이런 기가 막히게 좋은 기회를 누구도 놓치려고 하지 않았다.

미모가 뛰어난 여자 엘프들의 경매가 끝나자 근육질의 짜리몽땅한 드워프들이 끌려나왔다. 묘인족을 연상케하는 가족 단위의 냥족이 경매에 붙여지고 그 다음은 늑대인간이 아닐까 의심이 되는 울파족의 전사들이 경매됐다.

유사인류와 수인족의 거의 3분의 2가 소울에게 낙찰되자 그제야 경매장에서 이제나 저제나 싸움이 시작될까 지켜보던 귀족들과 상인들이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 챘다.

경매장이 술렁거리기 시작하자 이번에는 사비에르가 바로 나섰다.

[남자 엘프들과 티거족의 경매가 남았다. 이제부터는 내가 구매하겠다.]

[좋도록 해.]

온라인 게임의 영향인지 남자 엘프에겐 전혀 관심이 없는 소울은 사비에르의 말에 바로 찬성했다. 하지만 티거족의 경매가 시작되자 그들의 호쾌한 모습에 반한 소울이 갈등을 했다.

소울이 전부 다 사버릴 것 같더니만 분위기가 변해 사비에르가 가격을 올려 구매를 하자 경매장은 다시 분위기가 싸해졌다.

그 모습에 소울이 서서히 살기와 기세를 더욱 끌어올렸다.

그러자 분위기는 아까처럼 다시 일촉즉발의 상황으로 돌아갔다.

[사비에르, 남자 엘프들로 만족해라. 티커족은 내가 사겠다.]

[좋다. 단 1골드라도 가격을 내릴 수 있다면 협조하겠다.]

소울이 기세를 올리자 사비에르는 손으로 이마의 땀을 닦는 시늉을 하더니 옆에 놓아둔 검을 집어 들었다.

검집에서 검을 뽑지는 않았지만 무기를 들었다는 것 자체로 분위기는 더욱 살벌해졌다.

경매진행자는 소울과 사비에르가 일부러 흘리는 압박에 벗어나기 위해 최대한 빠르게 경매를 진행하고 있었다.

“티거, 한 마리입니다. 시작은 1골드입니다. 747번이 응찰했습니다. 셋을 셀 동안 응찰을 하지 않으면 바로 낙찰됩니다. 셋, 둘, 하나, 747번에게 낙찰됐습니다.”

경매는 소울과 사비에르가 원하는 대로 잘 흘러갔다.

하지만 경매장의 모든 사람들이 소울과 사비에르의 연기에 속은 것은 아니었다.

당하는 입장인 노예상인은 그제야 뭔가 당했다는 것을 알고 분통을 터뜨렸다.

그러나 두 명의 히어로를 상대로 내놓고 불만을 터뜨릴 정도로 그들은 무모하지 않았다.

“쓸데없이 시간낭비하지 말고 남은 유사인류와 수인족을 한꺼번에 무대로 올려라. 어차피 747번 히어로가 다 사갈 것 같으니까.”

“네.”

노예상인의 결단에 마지막 경매는 한꺼번에 수십 명의 유사인류와 수인족이 올라 피날레를 장식했다.

당연히 소울은 1골드에 그들 모두를 사버리는 쾌거를 이뤘다.

그 모습에 뒤늦게 귀족들과 상인들이 무척 배 아파했다.

사비에르도 이게 어떻게 돌아가는 일인지 몰라 당황했을 정도였다.

경매가 끝나자 소울은 노예상인을 불렀다.

노예상인은 즉시 무대로 나와 소울에게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부르셨습니까? 히어로님.”

“네가 이들을 경매에 올린 장본인인가?”

“네, 그렇습니다.”

“마지막은 아주 인상적이었다. 이건 수고비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소울은 100골드의 가치가 있는 미스릴화 하나를 꺼내 그에게 던져줬다.

노예상인은 혹시나 하고 저지른 자신의 의도가 제대로 먹혔다는 것을 알고는 고개를 90도로 깊숙하게 숙이며 몇 번이나 감사인사를 했다.

그러나 노예상인을 바라보는 소울의 눈빛은 여전히 차갑기만 했다.

미스릴화 하나로 인해 노예상인이 이득을 본 것인지 아니면 나중에 스스로 목이 조이는 작용을 할지는 좀 더 두고 봐야 알 것이다.

“상품 인수를 위해 뒤쪽으로 가야합니다. 제가 모시겠습니다.”

“그래. 앞장서라.”

소울은 노예상인을 따라 무대 뒤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철장에 갇혀 있던 노예들은 이미 각각 분류가 끝났는지 새로운 주인이 된 귀족들과 상인들을 따라 경매장을 나서고 있었다.

노예상인의 뒤를 따라 걸어가던 소울은 노예들의 모습을 예리한 눈초리로 살펴보고 있었다.

나이가 지긋한 귀족의 뒤를 따라 걸어가는 망사 가운만 걸친 레이첼 공주의 모습도 보였다.

그는 노골적인 시선으로 레이첼 공주를 쳐다봤다.

그녀도 소울의 시선을 느꼈는지 고개를 돌려 소울을 쳐다봤다.

두 사람의 시선이 공중에서 마주쳤다.

소울의 이마를 보고는 히어로라는 것을 알게 된 레이첼은 순간 눈빛이 반짝였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이미 자신의 몸은 팔린 상황이고, 얼마 지나지 않아 늙은 귀족의 노리개로 전락할 것이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본인이 더 잘 알고 있었다.

자조적인 미소를 짓자 그녀의 얼굴을 보고 있던 소울이 흠칫했다.

괜히 가슴이 아리고 심쿵사(死) 할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멀어져가는 레이첼 공주의 육감적인 뒤태를 보면서 소울은 괜히 입맛을 다셨다.

뭔가 뭔지 모를 묘한 기분이 들어 자꾸 그녀를 보게됐다.

“이쪽입니다.”

기다리던 노예상인의 말에 퍼뜩 정신을 차린 소울은 고개를 살짝 갸웃거렸다.

‘레이첼 공주, 아니 이제는 노예 레이첼인가? 어쨌든 그녀와는 왠지 다시 만날 것 같은 기분이 드네.’

소울은 그렇게 한번 생각을 하고는 바로 고개를 돌렸다.

고개를 돌린 순간, 이미 그의 머릿속에서는 레이첼에 대한 생각이 사라져 있었다.

“숫자가 좀 되는군.”

소울은 커다란 철장 몇 개를 가득 채우고 있는 엘프와 드워프를 비롯한 냥족, 울파족, 티거족 등 수인족을 보면서 말했다.

“여기 구매 리스트가 있습니다. 딱 100마리입니다.”

여성 엘프 12

드워프 24

냥족 18

울파족 28

티거족 12

기타 6

소울은 노예상인이 준 리스트를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지금 당장 노예인장을 찍으시겠습니까? 이번에 새롭게 개발한 노예인장은 절대 주인을 공격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안심하셔도 좋습니다.”

“그렇게 하지.”

“그럼 노예인장 비용까지 합쳐서 모두 202골드입니다.”

“2골드는 떼고 200골드로 깔끔하게 계산하도록 하지? 2미스릴이면 되겠네.”

“네, 좋습니다.”

소울은 노예상인의 손에 미스릴화 두 개를 올려줬다.

노예상인은 깊이 고개를 숙이더니 이내 노예인장을 활성화시켜줄 마법사를 데리고 왔다.

“안녕하세요? 미키라고 합니다.”

“반갑다.”

“노예인장을 활성화시키기 위해서는 주인의 피가 필요합니다.”

미키가 품속에서 하얀 종지를 꺼내 내밀자 소울은 자신의 손가락을 내밀었다.

[까뮤, 노예인장을 보니까 어째 우리가 쓰는 충성의 인장과 비슷한데?]

[그렇습니다. 제가 봐도 비슷하네요. 혹시 스피릿파워를 섞으면 어떨까요? 더욱 완전해지지 않겠습니까?]

[그럴지도 모르지.]

소울은 자신의 피에, 아니 로열형 리콜아바타의 피에 스피릿파워 조금 섞어 넣었다.

적당히 피가 모이자 마법사는 품속에서 녹색의 마법의 가루를 꺼내 피에 섞더니 조그만 붓 같은 것을 꺼냈다.

건장한 용병들에 의해 엘프와 드워프를 비롯한 수인족들이 차례로 끌려오자 미키는 어깨에 찍혀있는 노예인장의 중앙에 조그만 붓으로 일일이 피를 찍어 넣으면서 노예인장 활성화 주문을 외쳤다.

“חותם הפעלה(인장 활성화)!”

화아악!

제일 먼저 노예인장이 활성화된 엘프 하나가 인상을 썼다.

노예인장에서 퍼져나간 뜨거운 기운이 전신으로 퍼지더니 뇌와 심장을 화끈하게 달궜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통은 그렇게 오래가지 않았다.

곧 뇌와 심장으로 안착된 기운들이 가라앉자 엘프의 얼굴이 평안해졌다.

미키의 이마에 땀이 흘러 내렸다.

백 명이나 되는 유사인류와 수인족의 노예인장을 활성화하는 것도 보통 일은 아닌 것 같았다.

“수고했다.”

“감사합니다.”

소울은 미키에게 금화 몇 개를 꺼내서 넘겨줬다.

노예상인과 계약을 맺었기 때문에 숫자에 따라 돈을 따로 받겠지만 그렇다고 수고한 미키를 그냥 돌려보내기에는 그가 너무 지쳐있었다.

아마도 그가 가진 마나가 바닥을 기고 있는 모양이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말이 딱 어울리는 상황이다.

“이것은 지금 노예인장이 활성화된 노예들을 쉽게 다룰 수 있게 만든 아티펙트입니다. 반지처럼 차고 계시면 됩니다.”

미키는 소울에게 묘한 마법진이 새겨져 있는 반지 하나와 사용법이 적힌 작은 종이를 건넸다. 소울은 슬쩍 한번 훑어보고는 품속에 집어넣었다.

“혹시 노예들을 인수하시기 불안하시면 용병들로 댁까지 데리고 가겠습니다.”

“아니다. 이제부터는 내가 알아서 하겠다.”

“네, 그럼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노예상인은 소울의 말에 두 번 물어보지 않고 바로 인사를 하고는 사라졌다.

줄 것 주고, 받을 것 다 받았으니 더 이상 서로에게 볼 일이 없었던 것이다.

“일단 모두 나를 따라와라.”

“네.”

소울의 말에 그의 노예들은 한목소리로 대답을 하고는 그의 뒤를 따라나섰다.

경매장 밖으로 나가자 소울은 노예들을 데리고 내성 성벽 쪽의 공터로 갔다.

경매가 끝난 상황이라 공터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자신에게 노예들의 시선이 모이자 소울은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내 이름은 이소울이다. 하지만 그냥 마스터라고 부르면 된다.”

“네.”

노예들이 한 목소리로 말하자 소울은 조금 더 부드러운 목소리로 상냥하게 말했다.

“사실 나는 너희들을 단순히 노예로 취급하고 싶지 않다. 너희들도 나름 사정이 있어서 노예상인에게 잡혀 왔을 것이라는 것쯤은 이미 짐작하고 있다.”

“네에?”

다들 소울의 말에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나는 곧 라일라를 떠나 북부대산맥이 있는 노스트라로 갈 것이다. 그곳에서 몬스터를 사냥하면서 마나석과 젬스톤을 얻을 계획이다. 그래서 너희들에게 제안을 하나 하려고 한다. 나와 같이 몬스터를 잡아 죽이는 사냥에 동참을 하든지 아니면 계속 이런 식으로 노예로 살든지 각자 선택을 해줬으면 좋겠다.”

소울의 말에 다들 입을 딱 벌리고 놀라워했다.

============================ 작품 후기 ============================

** 즐거운 연참입니다. 아낌없이 추천 쾅~쾅! 찍어주세요. ^^ 감사합니다.

선호작, 추천, 코멘트, 쿠폰, 후원에 감사드립니다.

새해 복 겁나게 받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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