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OULNET-443화 (443/492)
  • 00443  제 111 장 - 라일라  =========================================================================

    소울과 일행은 내성 성벽을 향해 걸어갔다.

    내성 성벽을 사이에 두고 화려한 사치품이 가득한 명품가게 거리와 다양하고 풍부한 물자가 넘쳐흐르는 시장이 사이좋게 공존하고 있었다.

    “노스트라는 마나석과 젬스톤이 나오는 곳이라 최신 유행하는 사치품도 많이 팔리는 곳이에요. 그러니까 현재 라일라에서 유행하고 있는 옷과 장식품, 화장품과 액세서리 그리고 보석들을 구해야 해요.”

    “우린 상단이 아니야. 그렇다고 뻔히 대박을 칠 수 있는데 그걸 그냥 모른 척 넘어갈 수는 없지. 그러니 지금 말한 것은 적당히 챙겨.”

    “그럼 뭘 사 가려고 그러세요?”

    “지난번에 미리 얘기를 해줬잖아. 무기와 방어구, 식량과 의약품을 최대한 구매해서 가져간다고.”

    “알겠어요. 그럼 그쪽으로 좀 더 알아볼게요.”

    “잊지마. 그게 메인이야.”

    “네, 마스터.”

    소울은 수지와 생각이 달랐다.

    수지의 말도 일리는 있었지만 귀족들이나 살 사치품을 사서 노스트라로 가져가고 싶은 생각은 별로 없었다. 아예 안 사간다는 것이 아니라 적당히 사가지고 간다는 말이다.

    “무기와 방어구, 식량도 중요하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역시 의약품이야. 특히 포션을 최대한 구해가는 것이 좋을 거야. 이건 용병길드에서도 확인해준 확실한 정보니까.”

    “네, 마스터.”

    소울은 수지와 같이 다니는 것보다 따로 다니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그래서 마틴을 수지와 카렌에게 붙여주고 시장으로 보내버렸다.

    혼자가 된 소울은 이제 자유롭게 명품거리와 시장을 마음껏 돌아다녔다.

    “서두르자.”

    “노예 경매가 벌써 시작됐어?”

    “시간이 다 됐어. 이번에는 유사인류와 수인족도 나온다고 하더라.”

    “그럼 경매장으로 미리 가서 자리를 잡자.”

    “그래.”

    소울은 얼핏 들려오는 노예 경매라는 소리에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귀족의 자제로 보이는 젊은 남자 두 명이 어디론가 열심히 걸어가고 있었다.

    ‘노예 경매라? 한 번도 본적이 없는데……. 재미있겠다. 가서 구경해야지.’

    그는 깊이 생각하지 않고 호기심이 끌리는 데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들을 따라가 보니 경매장은 명품거리가 끝나는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라일라 경매장은 평상시에는 고서(古書), 명화(名畫), 보석(寶石) 등 진귀한 물건들을 경매로 팔지만 종종 전쟁으로 잡혀온 노예들이나 주변 왕국에서 넘어온 유사인류와 수인족을 경매로 팔기도 했다.

    “입장료는 1골드입니다.”

    소울은 더럽게 비싼 입장료에 인상을 확 썼지만 그렇다고 입장료를 내지 않을 수는 없었다. 오히려 비싼 입장료를 내고 나자 제대로 구경을 해야겠다는 의욕이 팍팍 생겼다.

    입장료를 낸 사람들에게는 숫자가 적힌 번호판을 줬는데 소울의 번호는 747번 이었다. 번호판은 원하는 물건이나 노예가 경매로 나왔을 때 경매에 참가하는 도구로 사용되는 것 같았다.

    “우와!”

    경매장에 들어가 앞쪽으로 자리를 잡고 앉자 절로 감탄이 나왔다.

    노예 경매!

    그것은 소울에게 있어 신세계나 다름없었다.

    중앙의 무대 위는 남녀 노예들로 가득했다.

    왼편에는 울퉁불퉁한 근육이 있는 건장한 남자 노예들이 서 있었고, 오른편에는 풍만한 가슴과 탱탱한 엉덩이를 자랑하는 젊고 아름다운 여자 노예들이 서 있었다.

    양편 모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나체로 서 있는 상태라 그들의 부끄러운 치부가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었다.

    특히 여자 노예들은 치모까지 깨끗하게 밀려 있어 혈기 넘치는 젊은 귀족들과 거상의 자제들의 음담패설의 주제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미 미래가 없는 여자 노예들은 누구하나 이런 장면에 크게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탁한 눈빛은 암울해하는 기운이 가득했고 얼굴은 인생을 포기해서 그런지 무표정 그 자체였다.

    “경매장을 찾아 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지금부터 노예 경매를 시작하겠습니다.”

    마침 시간에 잘 맞춰 왔는지 소울이 자리에 앉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노예경매가 시작됐다. 그는 경매장에서 무료로 제공되는 음료수와 과자를 먹으면서 느긋하게 노예경매를 구경을 했다.

    남자 노예부터 경매가 시작됐다.

    젊고 건강한 남자 노예들이 말 한필에도 미치지 못하는 가격으로 속속 팔려나갔다.

    가끔 호리호리하고 잘 생긴 남자 노예가 나오면 오히려 가격이 순간적으로 치솟기도 했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귀부인들의 손에 번호표가 들려있었다.

    ‘젊고 건강한 남자 노예들은 농장이나 경비대로 끌려가고, 잘 생긴 녀석들은 귀부인들의 욕망을 풀어줄 성노예로 팔려가는구나. 메시엘 행성은 남존여비(男尊女卑) 사상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여자들의 성에 대해서는 상당히 자유분방하게 풀어주고 있다는 느낌이 드네. 아무래도 전쟁과 몬스터로 인해 인류의 생존이 위협받고 있어서 그렇겠지?’

    경매는 빠르게 진행됐다.

    남자 노예들이 다 팔려나가자 이제는 여자 노예들이 경매되었다.

    젊고 건강한 여자 노예들은 남자 노예보다 더 싼 가격으로 팔려나갔다.

    그러나 얼굴이 예쁘고 몸매가 좋은 미녀노예들은 경쟁이 붙어 가격이 치솟기도 했다.

    사람이 같은 사람을 파는 행위를 계속 보자 살짝 입맛이 썼다.

    아무리 차원이 다르고 세상이 달라도 현대인의 교육을 받은 소울의 입장에서 노예를 파는 행위는 결코 좋게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노예 경매를 막고 경매장을 엎어버릴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단 기회가 오면 은밀하게 노예상인들을 싹 쓸어버릴 용의는 있었다.

    “이번에는 오늘 경매의 하이라이트인 에밀리 왕국의 레이첼 공주입니다.”

    와아아아아아!

    갑자기 경매장이 후끈 달아올랐다.

    망국(亡國)의 미녀 공주가 경매로 나온 것이다.

    귀족들의 욕망을 부추기고 사람들의 관심을 증폭시키는 최고의 소재가 등장한 것이다.

    지금까지는 아무리 아름다운 노예라고 해도 옷을 걸치고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노예 상인이 의도적으로 꾸미기라도 했는지 레이첼 공주는 머리에 아름다운 티아라를 쓰고 속이 훤히 비취는 망사로 된 야한 옷을 걸치고 나왔다.

    원래 홀딱 벗은 모습보다 적당히 가려주는 것이 더 사내들의 시선을 끄는 법이다.

    레이첼 공주는 고결하고 아름다웠다.

    매끄러운 살결에 하얀 피부, 보석처럼 빛나는 눈과 홍시처럼 붉은 입술, 조금도 아래로 쳐지지 않은 풍만하고 예쁜 가슴, 급격한 굴곡을 드러내는 몸매. 대리석처럼 곧게 쭉 뻗은 다리…….

    정말 어디 하나 나무랄 때 없는 완벽한 미의 여신이었다.

    그러면서도 감히 범접하기 힘든 고귀하고 품위가 느껴지는 분위기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숨이 탁 멎게 만들었다.

    ‘우와! 저 정도면 경국지색(傾國之色)이라고 할 수 있겠구나. 클래스가 거의 유정아 급인데?’

    소울도 남자라서 그런지 그녀의 절륜한 미모를 보자 절로 관심이 생기는 것이 느껴졌다.

    경매장은 곧 망국의 공주 레이첼을 사려는 남자 귀족들의 각축장으로 변했다.

    10골드에서 시작한 경매는 순식간에 50골드를 넘어가더니 이내 100골드를 돌파했다. 150골드에 이르자 드디어 어중이떠중이들이 떨어져 나갔고 200골드를 넘어가자 삼파전으로 변해버렸다.

    결국 나이가 지긋한 귀족 하나가 300골드를 부르는 강수를 써서 레이첼 공주를 쟁취했다.

    레이첼 공주는 자신이 팔려나가는 모습을 보자 세상이 다 무너진 것 같은 슬픈 눈으로 한숨을 쉬었다. 사람들은 그 모습에 절로 애간장이 끓어오르는 것을 느끼며 자신의 가슴을 부여잡았다.

    망국의 공주 레이첼의 경매를 마지막으로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노예 경매는 끝이 났다. 곧이어 유사인종과 수인족의 경매가 시작됐다.

    “엘프가 그렇게 예쁘다고 했지?”

    “아마 보면 눈이 홱 돌아갈 거야.”

    “그 정도면 나도 하나 사볼까?”

    “가격이 만만치 않아서 어림도 없을 거야. 그리고 엘프는 자신이 사랑하는 상대가 아닌 자에게 정절을 빼앗기면 자살을 하거나 폭주한다고 하더라고. 그런 사실이 밝혀지고 나자 가격이 거의 폭락했어.”

    “하긴 아무리 예뻐도 그 짓 한번하고 죽어버리면 투자한 돈이 너무 아깝겠다. 드워프는 어때? 좀 쓸 만한가?”

    “더럽게 고집이 세서 다루기가 아주 힘들다고 하더군. 수인족들도 마찬가지야. 예전에는 다들 그걸 모르고 신기하게 생각을 해서 비싼 값에 하나씩 샀는데 결국 주인을 죽이거나 폭동을 일으키는 일이 빈번해져서 노예상인들이 큰 곤욕을 치렀지.”

    “노예인장을 찍었는데도 그런 일이 벌어졌단 말이야?”

    “나도 그 이상은 잘 몰라. 마탑에서 이들을 위한 새로운 노예인장을 개발해서 괜찮아졌다고는 하는데 그걸 어떻게 믿겠는가?”

    소울은 시끄럽게 떠들어 대는 귀족들의 잡담을 통해 유사인류와 수인족의 가격이 크게 폭락했다는 정보를 듣고는 슬그머니 욕심이 났다.

    ‘엘프와 드워프 그리고 수인족을 사서 노예부대를 만들어볼까? 다루기는 힘들겠지만 일단 충성을 바치면 오히려 사람보다 더 믿을 수 있는 존재라고 하잖아.’

    소울넷의 영혼체험을 통한 경험으로 유사인류와 수인족의 성향에 대해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다고 자부하는 소울이었다.

    이들의 가격이 폭락한 이유는 아직 이들을 어떻게 다루는지 모르고 있기 때문에 나온 일시적인 현상일 것이다.

    나중에 방법이 알려지면 아마 이들의 가격은 다시 폭등할 것이 분명했다.

    “인간의 미를 초월하는 엘프 미녀가 나왔습니다. 가격은 1골드부터 시작하겠습니다.”

    드디어 유사인류의 경매가 시작됐다.

    제일 먼저 입에서 악 소리가 나올 정도로 아름다운 엘프 미녀가 끌려나왔다.

    남자 귀족들은 하나 같이 엘프의 미모에 놀라는 표정들이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번호표를 들려고 하지 않았다.

    엘프는 1회용이라는 악소문(?)이 이미 엘라즈라 왕국의 라일라 전체에 쫙 퍼졌기 때문이다.

    “1골드, 1골드입니다. 여러분, 이건 정말 거저입니다. 아무도 없습니까?”

    경매 진행자는 황당하기까지 한 초유의 사태에 크게 당황했다.

    무대 아래에 서 있는 노예상인들은 이미 어느 정도 예상을 했는지 인상만 구기고 있었다.

    그때였다.

    건장한 몸을 가진 잘생긴 미남 하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 사비에르가 사겠다.”

    와아아아아아!

    벌떡 일어나 번호표를 든 자의 이마에서 선명한 주황색의 히어로 크리스털이 빛나고 있었다.

    그제야 소울은 사람들이 왜 환호성을 질렀는지 알 수 있었다.

    사비에르는 자신이 히어로라는 것을 강조하여 경쟁자들이 나오는 것을 원천봉쇄했다.

    그때 반대편에서 번호표가 살짝 올라왔다.

    사비에르의 미간이 좁혀졌다.

    감히 누가 히어로의 행사에 초를 치려고 한단 말인가?

    사비에르가 번호표를 든 소울을 쳐다봤다.

    그러자 소울은 이마를 가리고 있는 두건을 즉시 벗어던졌다.

    우와아아아아!

    경매장 안의 귀족들과 상인들은 또 한명의 히어로가 경매에 참여하자 재미있다고 마구 소리를 질러댔다.

    사비에르는 소울의 이마에 보이는 히어로 크리스털을 보더니 흠칫 놀랐다.

    자신보다 클래스 높은 히어로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사비에르는 입술을 지그시 물더니 옆에 앉아있는 자신의 소환사를 쳐다봤다.

    로브를 입고 있어서 모습은 드러나지 않았지만 작은 체구와 여린 몸매를 보니 소녀가 아닌가 싶었다.

    [같은 히어로끼리 쓸데없이 경쟁을 해서 괜히 가격을 높이지 맙시다.]

    소울은 사비에르의 목소리가 뇌리 속으로 파고들자 깜짝 놀랐다.

    ‘어라? 전음을 보내네? 이건 어떻게 하는 거지? 저자의 능력인가? 아니면 내가 모르는 로열형 리콜아바타의 기능이 있었나?’

    생각해보니 로열형 리콜아바타의 매뉴얼을 읽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는 정신을 집중해서 사비에르를 노려봤다.

    그러자 시선의 오른쪽 상단부에 입과 귀 모양의 아이콘이 떠 있는 것이 보였다.

    입 모양의 아이콘을 주시하자 그가 기다리던 말풍선이 떠올랐다.

    -사비에르에게 전음을 보내시겠습니까?

    이번에는 귀 모양의 아이콘을 주시했다.

    -사비에르와 비밀대화를 하시겠습니까?

    소울은 원하던 것이 나오자 즉시 수락했다.

    -사비에르와 비밀대화를 시작합니다.

    [가격을 올리는 것은 나도 좋아하지 않아. 하지만 오늘 나오는 엘프와 드워프를 비롯하여 모든 수인족은 모두 내가 살 생각이다.]

    소울의 말에 사비에르는 즉각적인 반응을 보였다.

    [엘프와 드워프만 수십 마리는 될 텐데 그걸 살 돈이 있단 말인가?]

    [엘프와 드워프만이 아니라 수인족까지 다 산다니까.]

    ============================ 작품 후기 ============================

    ** 즐거운 연참입니다. 아낌없이 추천 쾅~쾅! 찍어주세요. ^^ 감사합니다.

    선호작, 추천, 코멘트, 쿠폰, 후원에 감사드립니다.

    새해 복 겁나게 받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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