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OULNET-439화 (439/492)

00439  제 110장 - 여정(旅程)  =========================================================================

“제가 궁금해서 그러는데 질문을 하나 드려도 되겠습니까?”

“허락한다.”

시라크 시장이 냉막한 표정으로 말하자 소울이 유들유들한 얼굴로 질문을 했다.

“법을 어겼다고 말씀하셨는데 도대체 우리가 어떤 법을 어겼는지 구체적으로 법조항을 말씀해주십시오. 또한 마적의 말을 팔게 되면 마적이 된다는 법이 엘라즈라 왕국법 어디에 존재합니까? 마지막으로 우리가 마적들을 물리치고 얻은 전리품으로 얻은 말인데 그걸 팔면 문제가 된다는 법은 들어본 적도 없습니다.”

“뭐시라?”

“아니 뭐야?”

미테랑과 시라크가 동시에 소리를 쳤다.

세상에 그 딴 말도 안 되는 법이 어디 있겠는가?

그냥 코에 걸며 코걸이고 귀에 걸면 귀걸이지.

대충 이렇게 엄포를 해놓으면 아무리 귀족이라고 해도 당장 협상을 요청한다.

미테랑은 협상에서 소냐와 수지를 달라고 요구할 것이고, 시라크는 적당히 뇌물을 받고 일을 무마시켜주면 된다.

누이 좋고 매부 좋은, 모두에게 다 좋은 일이다.

물론 그들의 입장에서 볼 때만 그렇다.

그런데 어디서 듣도 보도 못한 귀족의 일행으로 보이는 자가 대뜸 엘라즈라 왕국법을 들먹이고 나온다. 이상하다. 느낌이 싸 하다.

시라크는 바짝 긴장한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라일라에서 오셨소?”

“우리가 라일라에서 왔다면 뭐가 크게 달라지는 겁니까?”

소울의 지나치게 당당한 말에 시라크는 살짝 헷갈린다.

엘라즈라 왕국의 수도인 라일라에서 왔다면 문제가 생기지만 그게 아니라면 시라크는 겁먹을 일이 없다.

다른 곳은 모르지만 마세도냐에서만큼은 자신이 곧 신이고 법이기 때문이다.

시라크는 자신에게 조금의 위협이 된다고 생각하면 일단 신중해진다.

어떤 자는 그가 너무 소심하다고 욕을 하지만 시라크의 이런 소심함이야말로 그의 부귀영화를 가늘고 길게 이어주는 원동력이다.

“카렌 남작 일행의 말을 듣고 보니 당장 들어가서 법조항을 좀 찾아봐야겠소. 그동안은 여기 미테랑 자작과 얘기하도록 하시오.”

시라크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시청 청사 안으로 휑하니 들어가 버렸다.

한마디로 깨끗하게 발을 빼낸 것이다.

미테랑 자작은 입을 딱 벌리고 놀라워했다.

그것은 소울도 마찬가지였다.

‘저 새끼 위기관리능력이 완전 초인 급이네. 눈치가 귀신 같이 빠르다.’

황당한 표정으로 시라크가 들어간 시청 청사를 쳐다보다가 미테랑의 얼굴로 시선을 돌렸다.

미테랑은 화가 많이 났는지 얼굴이 울그락푸르락 하다.

미테랑 자작도 알고 보면 마세도냐 시에서 시라크 시장 못지않은 힘과 권력을 가지고 있는 귀족이다. 시라크가 자신을 무시하는 것 같은 태도를 보이자 그는 좀 열이 받았다.

미테랑은 카렌을 쳐다봤다가 수지와 소냐를 쳐다본다.

눈동자를 이리저리 돌리면서 나름 뭔가 고민을 하고 있다.

그냥 끝까지 물고 늘어지자니 명분이 떨어지고, 이대로 덮자니 귀족체면이 말이 아니게 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점점 가슴만 답답해져가고 있다.

미테랑의 고민에 종지부를 찍은 것은 오히려 소울이었다.

그야말로 이렇게 그냥 끝내는 것을 원치 않았다.

오는 것이 있으면 가는 것이 있게 마련이다.

이대로 시청 앞까지 와서 ‘미안하다. 오해했다.’ 이런 한 마디로 끝내기엔 이미 자신은 너무 많이 와 있었다.

“미테랑 자작, 시장까지 한 발 물러난 것을 보니 귀하의 실수가 분명한 것 같소이다. 정중히 사과하고 재발방지 약속과 배상을 해주시오.”

“뭐시라?”

미테랑은 소울이 말하는 태도와 그가 말하는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 그리고 배상이란 소리에 바로 뚜껑이 열려버렸다.

“네 이놈! 어디서 감히 요망한 주둥아리를 함부로 놀리느냐? 마적의 말을 몰래 마시장에 판 것을 보면 마적의 잔당이 틀림없다. 여봐라! 뭣들 하느냐? 저들을 체포해라.”

“네, 자작님.”

경비대를 맡고 있는 직속상관의 명령이다.

경비대 소속 병사 수백 명이 일제히 소울 일행을 포위하며 다가왔다.

“미테랑, 이 통돼지 같은 새끼야. 내가 아까 말했지? 말은 마적을 물리치고 얻은 전리품이라고.”

“뭐, 뭐시라? 통돼지?”

“미안, 아니다. 넌 통돼지도 과해. 그냥 통만두 같은 놈이라고 하자.”

“통만두? 이런 씹어 먹을 놈의 새끼? 모두 저놈들을 잡아 쳐죽여라.”

끝내 미테랑은 소울의 자극적인 욕으로 인해 이성을 잃어버렸다.

태어나서 한 번도 이런 쌍욕을 들어본 적이 없이 나름 고귀하게만 살아왔던 미테랑이다.

그런 그에게 이런 식의 욕은 엄청난 모욕이자 수모로 다가왔다.

“푸하하하하하하하하!”

소울은 고개를 위로 치켜들고는 시원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데 그의 웃음소리가 점점 커지더니 주변 건물에 큰 진동을 줄 정도가 됐다.

그제야 미테랑은 얼굴이 핼쑥해지며 정신이 번쩍 들었다.

“미테랑, 이 잡놈의 새끼야. 너 분명히 나를 죽이라고 했겠다.”

웃음을 멈춘 소울이 자신의 안면가리개를 위로 올려 이마를 드러냈다.

히어로 크리스털이 백주대낮, 만천하에 드러나자 주변에서 창을 겨누던 병사들이 제일 먼저 기겁을 했다.

“허억, 히어로다.”

“으엑, 히어로가 나타났다.”

“이럴 수가? 히어로네?”

미테랑의 얼굴이 흑색으로 변했다.

그의 얼굴이 곧바로 뒤로 돌아갔다.

항상 그의 뒤쪽에서 고급스런 옷을 입고 따분한 표정을 지으며 사과를 씹어 먹던 청년이었다.

청년은 소울의 히어로 크리스털을 보자 한손을 들고 환하게 웃었다.

“반가워. 나도 히어로야.”

소울은 갑자기 친한 척을 하는 청년이 자신의 이마를 보여주자 인상을 팍 썼다.

“뭐? 그래서 어쩌라고?”

소울의 말에 당황한 청년은 우물쭈물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제 딴에는 친근감을 표현한 것인데 소울에게 단칼에 거부를 당하자 크게 당황한 것이다.

소울은 청년의 이마에서 빛나는 녹색의 히어로 크리스털을 보고는 등급이 딱 오웬과 같은 것을 알게 됐다.

어차피 이런 곳에 제대로 된 히어로가 있을 리 없다.

메시엘로 히어로가 되어 오는 이유는 대부분 같다.

바로 마나석이나 젬스톤을 얻어 부자가 되려는 목적이다.

그게 아니라면 정말 유희를 즐길 줄 아는 상급 유저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루틴, 나를 도와서 저 히어로를 물리쳐주시오.”

“그건 좀 곤란해. 같은 히어로를 공격하는 것은 좋지 않아.”

“이번 한번만 도와준다면 원하던 것을 주겠소.”

“정말? 정말 줄 거야?”

“그렇소.”

루틴이라고 불린 히어로는 너무도 간단히 미테랑에게 넘어갔다.

“미테랑, 지금 히어로에게 대항을 하겠다는 건가?”

“그렇다. 너만 히어로냐? 여기도 히어로가 있다. 루틴은 너보다 훨씬 강해.”

“하하하,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는 놈이군.”

소울은 미테랑의 말에 웃음을 흘렸다.

“경비대 소속 병사들은 즉시 뒤로 물러나라. 이 싸움은 나와 미테랑의 싸움이다. 이 사이에 끼는 놈은 모조리 죽여 버리겠다.”

소울이 살기를 뿌리며 말하자 놀란 경비대 소속 병사들은 급히 뒤로 허겁지겁 물러났다.

하지만 모두 물러선 것은 아니다.

미테랑의 양옆에서 그를 지키는 기사 둘과 그들의 주구로 일했던 50여명의 병사들은 아직도 소울 일행을 포위한 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미안해. 나도 싸우기는 싫은데…….”

“루틴, 너 병신이냐? 히어로가 히어로를 대적하다니?”

“그, 그게 말 못할 이유가 좀 있어.”

“후후후, 알았다. 그게 네 뜻이라면 존중해주도록 하지.”

“고마워. 그럼 당장 물러가도록 해. 내가 나중에 꼭 이 은혜를 갚을게.”

루틴이라는 놈은 아무래도 뭔가 좀 부족한 놈 같았다.

“루틴, 내가 언제 물러간다고 했어? 네 의사를 존중해주겠다고 했지.”

“뭐야? 그럼 결국 나와 싸우겠다는 뜻이야?”

루틴이 환하게 웃다가 물러갈 뜻이 없다고 하자 곧바로 자신의 능력을 끌어올린다.

쩌저적 쩌정 쩡쩡!

루틴의 몸에 하얀 서리가 끼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가 서 있는 땅이 급속히 냉각이 되어 쩍쩍 갈라지기 시작했다.

역시 루틴은 좀 모자란 놈이다.

저렇게 자신의 능력이 뭔지 대놓고 보여주다니 말이다.

와아아아아아!

루틴의 능력을 본 미테랑과 두 기사 그리고 50명의 병사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하지만 그들의 환호성은 3초도 넘기지 못하고 경악성으로 바뀌었다.

“흥, 스킬이 얼음이나 냉기군. 오웬!”

“아씨, 왜? 또 나야.”

화르르르륵!

소울의 말에 오웬이 앞으로 나섰다.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머리와 두 손에서 뜨거운 화염이 치솟기 시작했다.

루틴은 오웬을 보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라워했다.

둘의 능력은 극과 극인 것이다.

서로에게 상극이자 치명상을 주고받을 수 있는 최악의 상대였다.

“미테랑, 오늘 너 사람 잘못 만났어.”

단지 그것만으로 끝난 것이 아니다.

소울은 이제 시작일 뿐이었다.

[까뮤, 소환해제. 본 소환!]

[부르셨습니까? 마이로드.]

[저기 있는 미텔랑을 포로로 잡고 그의 옆에 선 기사 둘과 포위를 하고 있는 50명의 병사를 잡아 죽여라.]

[예스, 마이로드!]

명령을 받은 본이 즉시 입을 열고 연막을 쏟아냈다.

연막 속에서 그의 스켈레톤 부대가 마구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엔팔에 있는 뱀파이어 저택 지하무기고에서 챙긴 풀 플레이트 아머를 장비하고 왼손에는 방패, 오른손에는 검을 든 스켈레톤 기병이 해골마를 타고 나타나자 장내는 경악성이 터져 나왔다.

“억, 저건 뭐야?”

“스켈레톤 기병들 아냐? 히어로가 소환 능력을 가지고 있나봐.”

“저게 다 몇 명이야?”

“몇 명이 아니라 몇 기(騎)냐고 말해야지. 내가 보니 80기는 되겠다.”

미리 뒤로 물러선 병사들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리고 그들은 곧 자신들이 방금 전에 한 선택이 신의 한수였음을 깨닫게 됐다.

“으아악!”

“크아악!”

“아악!”

80기의 스켈레톤 기병들은 소울 일행의 주변을 돌면서 무서운 속도로 50명의 병사를 쓸어버렸다.

팔다리가 잘리고 목이 잘려 머리통이 데굴데굴 굴러다녔다.

심장이 갈리고 심지어는 상체와 하체가 분리되거나 정수리에서 사타구니까지 반으로 잘려 뜨끈한 내장이 쏟아져 나왔다.

그 기세가 얼마나 살벌한지 루틴과 오웬은 감히 싸움을 시작도 하지 못했다.

“오웬, 쳐라!”

“네.”

보다 못한 소울이 명령을 내리자 그제야 오웬은 자신의 두 손을 앞으로 뻗어 루틴에게 화염공격을 쏟아냈다.

워낙 가까이서 쏘아낸 화염공격이라 루티은 피할 수가 없었다.

루틴은 즉시 냉기를 뿜어내 화염공격에 맞섰다.

치이이익 치이이이!

화염과 냉기가 만나는 소리가 들려오며 그들의 위로 거대한 수증기가 쏟아져 올랐다.

“으헤에엑!”

미테랑은 깜짝 놀라 뒤로 쓰러져 엉덩방아를 찧었다.

본과 스켈레톤 나이트들이 어느새 그의 심복 기사 둘의 목을 잘라버리고 있었다.

제대로 몇 번 반항도 못해보고 기사 둘의 머리가 허공으로 떠올랐다.

피가 분수처럼 쏟아지며 주변을 붉게 물들였다.

땅에 떨어진 기사 둘의 머리통을 본이 미테랑을 향해 발로 쳐서 굴렸다.

눈을 뜨고 죽은 기사들의 머리통이 굴러와 자신의 발아래에 멈춰 서자 미테랑은 자신도 모르게 뒤로 물러나며 기겁을 했다.

죽은 기사들이 자신을 원망하는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마이로드, 임무를 완수했습니다.]

[미테랑의 오른팔을 잘라라.]

[예스, 마이로드.]

본은 지체 없이 미테랑의 오른팔을 대검으로 잘라버렸다.

“으아아아악!”

미테랑의 참혹한 비명소리에 놀란 루틴의 고개가 절로 옆으로 돌려졌다.

하지만 그것은 루틴의 치명적인 실수였다.

안 그래도 오웬에게 밀리고 있는 상황에서 신경을 분산시킨 대가는 그의 죽음으로 이어졌다.

“크아아아악!”

루틴의 몸이 오웬이 쏟아내는 화염에 의해 순식간에 불에 타버렸다.

그의 몸에서 환한 빛이 한번 쏟아지자 곧 허공에 빛의 가루를 날리며 사라져갔다.

감당할 수 없는 데미지에 역소환이 된 것이다.

‘저거 복구하려면 소울넷 포인트 좀 들어가겠구나.’

소울은 속으로 루틴을 동정하고는 오웬에게 말했다.

“수고했다.”

“천만에요. 한주먹 거리도 안 되네요.”

“그동안 못된 짓만 하고 다니더니 실력이 좀 늘었구나.”

“아이고 형님, 왜 갑자기 그 얘기를 여기서 꺼내세요? 남의 흑역사는 이제 언급하지 않기로 합시다.”

“창피한 줄은 아는구나?”

“아이 참…….”

오웬은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 작품 후기 ============================

* 손님들이 어제 오늘 계속 밀려오네요.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선호작, 추천, 코멘트, 쿠폰, 후원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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