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37 제 110장 - 여정(旅程) =========================================================================
소울은 카렌을 소피와 함께 있게 하고 모닥불 앞에 오웬과 단둘이 앉았다.
아무래도 지금부터 하는 얘기는 둘만 아는 것이 좋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앉아라.”
“고맙다.”
“먹으면서 얘기하자.”
“호의를 고맙게 받아들이겠다.”
오웬도 능력을 사용해 안 그래도 배가 좀 고픈 상태였다.
둘은 말없이 새끼 통돼지 바비큐를 뜯으면서 맥주를 마셨다.
시원한 맥주가 식도를 타고 흐르자 오웬의 얼굴이 한결 편해졌다.
어느 정도 배를 채우자 드디어 오웬이 자신의 얘기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오웬은 카이저 은하계의 알라모아나 행성 출신의 소울넷 상급 유저다.
아버지가 마운 제국의 고위귀족이었던 탓에 어릴 적부터 남부럽지 않게 풍요로운 환경에서 사랑을 가득 받으며 자라났다.
12살이 되자 아버지의 도움으로 소울넷에 처음 접속한 그는 신세계나 마찬가지인 소울넷의 영혼체험에 빠져 시간가는 줄 모르고 세월을 보냈다.
안타까운 것은 오웬도 소울처럼 재능이란 놈이 거의 없는 평범한 인간이었다는 것이다.
별의 별짓을 다 해봤지만 그는 결국 자신의 한 없이 평범한 재능에 두 손 두 발을 다 들고야 말았다.
만약 아버지가 그대로 고위귀족의 신분을 유지했다면 그래도 오웬의 삶은 나름 행복했을 것이다. 하지만 오웬의 아버지는 정적(政敵)들의 모함을 받아 귀족의 작위를 박탈당하고 재산까지 모조리 빼앗겨 버리고 말았다.
이제는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고 누군가의 노예로 팔려 나가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다행히 황제가 마지막 순간에 오웬의 가문이 오랫동안 제국에 충성한 점을 들어 그들을 변방으로 쫓아내고 평민으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길을 베풀었다.
그때부터 오웬의 고생길이 훤히 열렸다.
한순간에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동생들의 생계를 짊어지게 된 오웬은 정말 안 해본 짓이 없을 정도로 온갖 고생을 다해가며 가족을 부양했다.
하지만 그 혼자의 힘으로 가족을 부양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절망에 빠진 어머니를 위로하고 술만 찾으시는 아버지의 술값을 대고 불평불만으로 가득 찬 동생들의 미래를 위해 평민들을 위한 기사학교라도 보내려면 돈이 필요했다.
때마침 소울넷은 오웬에게 상급 유저라는 타이틀을 선사했다. 오랫동안 영혼체험을 즐겨온 것이 쌓여 유저 레벨이 드디어 승급한 것이다.
그는 그동안 벌어놓은 모든 소울넷 포인트를 투자하고, 퀘스트를 받아 실버형 리콜아바타를 구입했다. 사실 말이 좋아 퀘스트를 받고 표현한 것이지 결국은 이게 다 빚이나 마찬가지다.
어쨌든 청운의 푸른 꿈을 꾸며 오웬은 드디어 메시엘 행성에 히어로로 현신했다.
처음은 그래도 나름 잘나갔다.
어찌어찌 구한 아티펙트의 스킬을 리콜스킬로 인정받아 사용할 수 있게 되자 현실과는 전혀 다른 히어로 대접을 톡톡히 받으면서 살아갈 수가 있었다.
호세도 처음부터 망가진 놈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놈의 술이 문제였다.
술만 먹으면 사람이 180도로 돌변하는 통에 그동안 호세가 친 사고는 이루 말할 수도 없었다.
도둑질을 하다가 강도로 변하고, 사람을 칼로 찔러 숨지게 하더니 어느새 마적의 두목이 됐다. 그 뒤로 호세가 저지른 만행은 차마 입에 담기도 무서울 정도다.
그동안 오웬도 수도 없이 호세에게 화도 내고, 어르고, 달래봤지만 얘기할 때만 알았다며 반성하는 표정을 잠깐 지을 뿐이었다. 그리고 일단 단 한 방울의 술만 들어가면 그때부터는 여지없이 대형 사고를 쳐댔다.
“혼자 듣기는 참 아까운 스토리네.”
“휴우우! 듣는 거랑 직접 겪어보는 거랑 하늘과 땅차이야.”
“고생이 참 많았겠다.”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스토리가 짐마차로 열대는 더 남아있어.”
소울은 오웬의 말을 듣자 순수하게 그의 입장을 동정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그래서 내게 하려는 말이 뭐지?”
“나를 좀 도와달라는 거야.”
“뭘 어떻게? 그리고 내가 왜?”
소울이 차갑게 말하자 오웬은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북부대산맥을 향해 가고 있지?”
“응.”
“나랑 같이 가면 마나석과 젬스톤을 구하기가 훨씬 쉬워질 거야. 내 스킬이 공중을 날면서 지상으로 화염을 방출하는 폭격능력이기 때문이지. 여차하면 도망 다니기도 좋고.”
“그래봐야 허접한 체력으로 인해 몇 분 날아다니지도 못하잖아.”
“…….”
오웬은 소울의 말에 입을 딱 벌렸다.
소울이 정확하게 그의 약점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정적으로 내가 왜 너를 도와야하지? 너는 마적들과 같이 나를 죽이러 온 놈인데?”
“히어로가 있는 줄 알았다면 오지 않았을 거야.”
“히어로는 못 죽이지만 메시엘 행성의 사람들은 얼마든지 죽여도 상관이 없다는 말처럼 들리네?”
“꼭 그런 뜻은 아니야.”
“그리고 호세라는 저놈, 다룰 자신 있어? 알코올중독인 모양인데 저런 놈은 병원에 가둬놓고 치료해야해.”
“나도 그럴 생각이야.”
“마적질을 하면서 수도 없이 많은 사람을 죽이고 강간했을 텐데 왜 돌봐줘야 하지? 차라리 계약을 파기하던가, 안 그러면 그냥 네가 신고해서 감옥에 쳐 넣어버려. 돈 버는데 굳이 저놈을 데리고 다닐 필요는 없잖아?”
“나도 그런 생각을 해봤지만 소환사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으면 능력에 페널티가 붙어서 힘들어져.”
“정말 가지가지 하는군.”
소울은 아까보다 더욱 차갑게 말했다.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마적들의 본거지가 어디야?”
“몬스터들이 둥지를 틀지 않는 골짜기가 하나 있어.”
“그럼 내 소환수를 붙여줄 테니까 거기 좀 다녀와.
“아니 왜?”
“너를 죽이지 않으려면 몸값을 지불해야지. 안 그래?”
“끙.”
오웬은 자신이 아무리 불쌍하게 보여도 전혀 이빨도 들어가지 않는 소울을 보며 학을 뗐다. 그렇다고 여기서 포기하자니 집에 있는 가족들 생각에 도저히 포기가 되지 않았다.
소울은 자신의 일에 조금도 도움도 되지 않고 오히려 골칫거리가 될 것이 분명한 호세와 오웬을 떠맡을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콰하아아아아!
오웬이 하늘을 날자 그는 본을 소환해제하고 까뮤를 불러 오웬을 따라가게 했다.
잠시 후, 돌아온 까뮤는 소울에게 위치를 설명하고는 전리품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거지에요. 완전히 거지. 세상에 마적의 소굴이 어쩜 그렇게 쓸 만한 물건 하나 없는지……. 실망했어요.]
[수고했다.]
까뮤도 어지간히 열이 받았나보다.
하긴 전리품을 수거하러 가서 빈손으로 돌아온 적은 처음이 아닐까 싶었다.
정말 호세란 놈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놈이 분명하다.
소울의 눈빛이 다시 냉정하게 변했다.
“완전히 개털이라네. 이제 네 몸값을 당장 뭐로 갚을 거야?”
“뭐든지 할게. 이 몸을 잃으면 난 더 이상 돈 벌 방법이 없어. 내가 열심히 할 테니까 제발 나를 좀 도와줘.”
“좋아. 죽여 봤자 실버형 리콜아바타가 내 것이 되는 것도 아니니 살려주겠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부터 넌 내 말에 절대 복종해야해. 알겠어?”
“복종하겠어.”
“쓰읏!”
“아! 복종하겠습니다. 형님!”
“형님?”
“주인님이라고는 부를 수 없잖아? 명색이 히어로인데?”
“그건 그렇지. 어허, 또 반말이네?”
“헤헤, 그냥 좀 봐주면 안 될까? 대신 내가 깍듯이 형으로 모실게. 응? 형!”
“흐음.”
소울은 기가 막혔다.
어렸을 때부터 사랑을 많이 받고 자라나서 그런지 정말 구김살이 없는 놈이다.
본래 나이는 몇 살인지 모르지만 실버형 리콜아바타의 나이는 정말 어려 보였다.
어차피 유희라는 생각에 그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나중에 정식으로 계약을 하도록 하자. 문제없지?”
“당연하지. 살려줘서 고마워.”
“말만 잘 들으면 북부대산맥 가서 한목 단단히 떼어 줄 테니까 앞으로 알아서 잘 기어라.”
“예, 형님.”
일단 죽이지 않겠다고 하자 오웬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리고 북부대산맥에서 일이 잘 되면 한 몫 떼어준다니 이제 희망이 생겼다.
남은 문제는 호세였다.
“호세는 내가 알아서 해결할 테니 넌 앞으로 아예 신경 끊어라.”
“알겠어. 죽이지만 않는다면 난 상관하지 않을게.”
호세에게 어지간히 질린 모양이다.
고문을 할지도 모르는데 저렇게 얘기를 하는 것을 보니 말이다.
소울은 고개를 돌리며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까뮤, 마차 뒤에 뱀파이어 저택에서 가져온 검은 금속관 하나 꺼내놓고 호세를 거기에 집고 그냥 재워버려.]
[네.]
[안에서 열 수 없게 손잡이도 빼버려!]
[네, 주인님.]
이제 호세는 뱀파이어의 관 안에서 오랫동안 생활하게 될 것이다.
자고 먹고 싸는 것도 전부 관 안에서 해결해야한다.
공간을 격해 움직일 수 있는 까뮤가 있으니 가끔 먹을 음식을 주고 싸지른 똥과 오줌만 청소해주면 될 일이다.
그러다가 만약 죽게 되면 어떻게 하지?
간단하다.
그냥 본에게 넘겨서 스켈레톤 재료로 써먹으면 된다.
술만 먹으면 미쳐서 살인마와 강간마가 되는 놈이니 그 정도면 싸게 죄 값을 치르는 셈일 것이다.
이미 머릿속에 호세에 대한 걱정이 사라진 소울은 얼굴이 편해졌다.
그는 오웬과 의논을 하며 몇 가지 주의사항과 당부를 했다.
앞으로 오웬을 마구 부려먹을 것이다. 이번에 내지 못한 자신의 몸값을 두고두고 갚게 할 예정이다.
소울은 자신을 향해 칼을 세운 놈들을 그냥 웃으며 봐줄 정도로 관대한 인간이 아니다. 오웬은 아직 소울이 어떤 사람인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렇게 예정에도 없는 히어로 하나가 그의 파티에 끼어들었다.
* * * * *
“마스터, 엄청 커요.”
“마세도냐는 처음이지?”
“네.”
마세도냐 성문을 통과해 들어온 카렌은 시골에서 갓 올라온 촌놈, 아니 촌년처럼 정신없이 고개를 이리저리 두리번댔다.
소울은 그런 카렌을 보며 입을 가리고 소리 없이 웃었다.
하지만 사실 카렌만 시골촌뜨기처럼 굴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소냐와 그녀의 두 동생 루안과 세라도 카렌이 하는 행동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수지, 어디로 가야하지?”
“얼마나 머물 예정이세요?”
“내일 아침에는 다시 출발해야지.”
“그럼 마셀의 향기로 가요. 거기가 제일 평이 괜찮았어요.”
“그래?”
소울은 수지가 말하는 ‘마셀의 향기’라는 이름의 숙박업소를 찾았다.
상단과 용병길드의 평가는 물론 여행자들이 후한 점수를 주고 있는 마셀의 향기는 무척 깨끗하고 깔끔한 이미지였다.
“특실 하나와 일반실 2개를 얻도록 해.”
“네, 마스터.”
특실은 소울과 카렌, 수지가 쓰기로 했다.
소냐와 그녀의 두 동생이 방 하나를 쓰고 나머지는 오웬과 샤를이 쓰게 됐다.
당장 오웬에게 방값을 낼 돈이 없어 일단 외상장부에 달아두었다.
“그럼 모두 각자 자기 방으로 들어가서 좀 씻도록 해. 저녁식사 시간에 부를 때까지 개인휴식 시간이다.”
“네, 마스터.”
“예.”
마차를 타고 엔팔에서 마세도냐까지 고작 이틀을 달렸을 뿐이지만 그들의 행색은 이미 먼지로 가득했다.
엉덩이에 대못이 박힌 것 같고 척추가 흐느적거리는 느낌이었다.
지친 몸을 이끌고 소울과 카렌이 특실로 들어가자 소냐의 두 동생인 루안과 마틴도 배정받은 방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모두가 쉴 수는 없었다.
샤를은 마구간에 말을 맡기고 마차를 손봐야했다.
마틴은 마적들로부터 얻은 말들을 팔아치우기 위해 마(馬)시장을 찾았다.
수지와 소냐는 이틀 동안 소비한 식량을 보충하고 필요한 물건을 사기 위해 시장으로 가야했다.
특실은 어딜 가나 구조가 비슷하다.
문을 열자 정면에 응접실이 있고 양쪽에 방이 두 개 있다.
왼쪽 방으로 소울이 들어가자 카렌은 싱글 침대가 둘이 있는 오른쪽 방으로 들어갔다.
“어? 침대가 둘이네요?”
“하나는 수지가 쓸 거야.”
“네? 왜요? 따로 자면 안 돼요?”
카렌은 수지와 함께 자는 것이 불편했다.
여자의 직감으로 소울과 수지 사이에 그렇고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을 눈치 채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인의 질투인데 카렌은 아직 그 감정이 정확히 뭔지 구분은 못해내고 있었다.
“같이 지내면 수지에게 이것저것 배우는 게 많을 거야. 남자와는 달리 여자는 필요한 것이 좀 많거든.”
“네.”
소울의 말에 카렌은 얼굴을 붉히고는 자기 방으로 달려갔다.
특별한 얘기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카렌은 괜히 부끄러웠던 것이다.
카렌이 자기 방으로 가자 소울은 문을 닫고 황금빛으로 빛나는 갑주의 목 안쪽에 손을 댔다.
============================ 작품 후기 ============================
즐거운 연참입니다. 아낌없이 추천 쾅~쾅! 찍어주세요.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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