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30 제 108 장 - 진혈의 뱀파이어 =========================================================================
그는 지체 없이 몸을 돌려 연회실 양문을 잠그고는 긴 막대기로 걸어버린다.
“넌 뭐야?”
뒤에서 뱀파이어 한 놈이 자신을 보고 소리치자 소울은 다시 몸을 돌렸다.
그의 눈에 광란으로 치닫고 있는 뱀파이어들의 축제가 한눈에 들어왔다.
화려한 샹들리에의 불빛이 밝게 드러난 연회장 안의 모습은 한 마디로 끔찍했다.
연회장 곳곳에 세워진 수십 개의 기둥에 발가벗겨진 젊은 남녀들이 묶여있고 그들의 온몸은 피로 가득하다.
피로 물들어 있는 남녀들의 몸을 핥거나 그들의 가랑이 사이로 들어가 허리를 마구 흔들어 대는 남녀 뱀파이어들이 보인다.
기분이 좋으면 그들의 살을 씹어 먹거나 피를 빨아댔고 그 고통에 참혹한 비명을 지르면 좋다고 웃음을 터트렸다.
수십 개의 소파에는 서로를 거칠게 탐닉하는 남녀 뱀파이어들의 모습이 보인다.
와인 잔에는 포도주 대신 붉은 피가 가득하고 살짝 냄새만 맡아도 몽롱해지는 연기가 나는 담배를 피워대며 쾌락과 환락에 잔뜩 빠져 있다.
‘매운 향신료를 이용한 공격은 실패군. 대마초 같은 건가? 아니야. 그것보다 몇 배는 강한 마약 종류겠지.’
최루탄 대용으로 사용한 매운 향신료 공격이 실패한 것이 조금 아쉬웠지만 그래도 상황은 나쁘지 않았다.
피와 쾌락 그리고 환락에 젖어 있는 뱀파이어를 잡아 죽이는 것은 소울에게 일도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야! 이 새끼가 왜 대답을 안 해? 그리고 누가 여기 들어오는데 갑옷을 입고 들어오라고 했어? 응?”
철썩!
툭 데구르르!
소울은 대답대신 클레이모어를 휘둘렀다.
몽롱한 표정으로 소울을 쳐다보며 큰소리를 치던 뱀파이어 한 마리가 그렇게 자신의 머리통을 잃어버렸다.
날카로운 비명이라도 지를 줄 알았는데 아무도 소울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어지간히 마약에 취해있는 모양이었다.
[까뮤, 일이 쉽겠다. 빨리 처리하자.]
[네, 주인님.]
그때부터 소울과 까뮤의 무시무시한 살육이 시작됐다.
진혈의 뱀파이어나 고위 뱀파이어가 나타나면 모를까 뱀파이어 전사도 아닌 이따위 일반 뱀파이어는 소울에게 한주먹 거리도 되지 않았다.
거기에다 이놈들은 축제랍시고 피와 마약에 잔뜩 취해있었다.
그러니 상대가 될 리 없었다.
비틀거리는 뱀파이어의 목을 베고 가슴으로 손가락을 쑤셔 넣는다.
두근거리는 뱀파이어의 심장이 느껴지자 그대로 힘을 주어 터트려버린다.
크아아아악!
참혹한 비명을 지르며 뱀파이어 하나가 재로 변해 흩어진다.
까뮤도 이에 질세라 뱀파이어의 몸에 스며들어 심장을 터트리고 기운을 한꺼번에 흡수해버린다.
시간을 수백 배, 수천 배로 빨리 돌린 것 같이 뱀파이어의 젊고 싱싱한 육체가 한순간에 족히 이백 살은 먹은 것 같은 할머니의 모습으로 변해서 죽어간다.
결국 재로 변해 흩어지자 바닥에 분홍빛 수정이 하나 떨어져 내린다.
백여 마리에 달하는 남녀뱀파이어들이 죽어나가는 것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죽어갈 때와는 달리 죽은 이후는 시체 하나 남기지 않고 사라지는 뱀파이어의 특성으로 인해 깨끗했다.
[생존자가 있는지 확인해봐.]
[대부분 죽어있고 살아있는 자들은 이미 뱀파이어에 의해 감염됐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모두 뱀파이어가 되어 미쳐 날뛸 것입니다.]
[할 수 없군. 모두 깨끗이 정리해. 굳이 증거를 남길 필요는 없다.]
[네, 알겠습니다.]
까뮤는 메시엘에서만 사용이 가능한 새로운 아공간을 열었다.
메시엘 행성의 관리자가 까뮤에게 기존의 아공간과는 별개의 아공간을 사용하라고 해서 완전히 분리된 새로운 아공간을 만들어냈다.
메시엘 행성의 관리자의 요구를 들어주자 아공간의 크기 제한이 없는 것을 발견했다.
일명 무한의 아공간을 얻게 된 까뮤는 나름 이득을 얻었다며 좋아했다.
까뮤는 죽은 시체를 모두 자신의 아공간에 쓸어 담았다.
나중에 땅에 묻어버리기 위해서다.
또한 감염된 생존자도 모두 깔끔하게 죽여 버렸다.
괜히 뱀파이어를 양산해낼 필요는 없었기 때문이다.
모든 일을 말끔하게 해치우자 까뮤는 소울에게 다가갔다.
[주인님, 전리품 수거는 안하나요?]
[전리품? 아! 그렇지. 전리품 수거해야지.]
[네, 그럼 뒤져볼게요.]
[그래.]
소울은 자신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까뮤가 지적해주자 웃음을 지었다.
이제는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의례 전리품을 챙길 줄 아는 알뜰한 까뮤였다.
까뮤가 지하창고와 저택의 금고들을 찾아 돌아다니는 사이, 소울은 연회장을 훑어봤다.
아무리 생각해도 연회장에 있던 뱀파이어들은 자신이 동굴에서 상대했던 뱀파이어들과는 달리 너무 약했다.
물론 그 당시, 소울은 보급형 리콜아바타를 사용하고 있어서 뱀파이어들의 합공에 벅찬 느낌이 들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반항 한번 못해보고 죽어간다는 것은 아무리 피와 마약에 취해있는 뱀파이어들이라고 해도 이해가 가지 않는 현상이었다.
‘보급형 리콜아바타를 쓰던 나를 죽였던 뱀파이어들은 이놈들과 계급이 다른가? 전사 계급이나 고위 뱀파이어라도 되는 건가? 그렇다면 그놈들을 추적할 단서를 찾아야해.’
그러나 연회장 안에서는 아무것도 찾아낼 수 없었다.
그는 연회장을 나와 지하실을 돌아다녔다.
밀을 비롯한 각종 곡물이 담긴 부대자루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창고를 찾아냈다.
그 옆에는 수천병도 넘는 각종 포도주 병이 잘 진열되어 있는 술 창고가 보였다.
위스키, 브랜디, 럼, 보드카, 맥주 등 온갖 종류의 술병과 술통도 가득했다.
‘우와, 이것만 가져가도 평생 먹을 걱정 마실 걱정은 안 해도 되겠네.’
소울은 까뮤에게 모두 챙기게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 다음 창고는 자물쇠로 단단히 잠겨있었다.
하지만 클레이모어에 기운을 집어넣어 세게 내려치자 그대로 잘리고 만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쇠 냄새와 기름 냄새가 진동을 한다.
‘여긴 무기고네. 그런데 웬 기름이 이렇게 많지? 기름 창고도 겸하고 있나?’
쇠로된 무기를 오래 쓰려면 기름으로 잘 닦아줘야 하니 기름도 많이 필요하다.
무기고에는 온갖 무기와 갑옷이 가득하다.
가만히 보고 있자니 본이 이끄는 언데드 부대가 생각난다.
언제까지 언데드 청동거미를 데리고 다닐 것은 아니니 스켈레톤 부대를 무장할 이런 무기와 갑옷도 필요하다.
무기고를 나와 다음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이번에는 온갖 종류의 옷들이 가득하다.
세탁소를 운영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웬 옷이 이렇게 많을까 생각을 해보다 가만히 머리를 흔든다.
그게 무슨 대순가?
그저 옷과 옷감을 다 챙기면 그만인 것을…….
그렇게 지하실을 다 구경하고 나자 계단이 하나 나타났다.
지하2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이다.
횃불이 밝혀져 있는 계단을 따라 아래로 내려가자 무거운 철문이 줄줄이 닫혀있다.
주먹만 한 쇠창살 사이로 안을 들여다보니 그 안에는 수백 개의 검은 관이 두 줄로 질서정연하게 늘어서있다.
[까뮤, 이리 와봐.]
[네.]
일단 까뮤를 불러들였다.
그때였다.
그르릉!
첫 번째 철문이 열리며 안에서 고색창연한 검을 든 큰 키의 사내가 걸어 나왔다.
“너는 누구냐? 신전에서 보낸 사냥개인가?”
“아니. 그러는 너는 누구지?”
“나는 지키는 자다.”
“병신아, 이름이 뭐냐고?”
“내 이름은 알칸소다.”
“너도 뱀파이어겠지?”
“뱀파이어? 우리 혈족은 그 이름을 사용하지 않는다.”
“어쨌든 흡혈귀가 맞잖아. 안 그래?”
“인간의 표현으로는 그 말이 맞다.”
뱀파이어 중에서도 이놈은 뭔가 좀 모자라 보인다.
하지만 검을 쥔 자세에는 조금의 빈틈도 없다.
“왜 기어 나왔지?”
“널 막기 위해서다.”
“날 막다니?”
“너에게서 우리 혈족의 피 냄새가 난다. 그리고 우리 혈족을 죽이려는 살기가 느껴진다.”
“예민한 놈이네?”
소울은 대거를 왼쪽 허벅지에 끼어 넣고는 두 손으로 클레이모어를 잡고는 살짝 들어 올렸다.
“나 알칸소는 너와 죽음의 결투를 신청한다. 네 이름이 뭐냐?”
“난 소울이라고 한다.”
마스터라고 말하려다 왠지 알칸소의 분위기가 그의 본명을 말하게 만들었다.
“소울, 너는 기사인가?”
“아니다.”
“그럼 선공을 양보하겠다.”
“지랄도 풍년이군. 어쨌든 고맙다.”
소울은 알칸소가 전형적인 기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선공을 양보해준다는데 그것을 거절할 생각은 없었다.
파앙!
주변의 공기가 찢어지는 소리가 났다.
소울의 몸이 엄청난 속도로 쏘아져 왔다.
알칸소는 빙글 검을 한번 돌리더니 그대로 대각선으로 검을 그었다.
싸아아!
소리도 싸아아! 했지만 뒷골도 싸한 느낌이 들었다.
더군다나 그의 검에는 마나가 맺혀 있었다.
검기(劍氣)라고 해야 하나? 확실히 오러 블레이드는 아니었다.
캉!
정면으로 달려든 소울의 클레이모어가 거세게 알칸소의 검에 부딪쳤다.
알칸소의 눈빛이 흔들리며 뒤로 다급히 두발이나 물러섰다.
자신의 생각보다 소울의 힘이 훨씬 강했던 것이다.
‘안 그래도 너무 쉬워서 찝찝했는데 잘됐다. 이놈에게 신나게 살풀이나 해야겠다.’
소울은 자신의 검을 막아낸 알칸소를 보며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그때부터 그는 알칸소에게 타이타닉 검법을 펼쳐 무시무시한 파상공세를 펼쳤다.
차차차창 차차창 창창창!
알칸소는 처음으로 후회를 했다.
괜히 선공을 양보한 것 같았다.
힘과 스피드 그리고 기교면에서 자신은 이미 상대가 되지 않았다.
정신없이 막고 피하다 보니 어느새 자신의 뒤는 또 다른 철문이었다.
‘살을 주고 뼈를 깎는다.’
알칸소는 이를 악물더니 방어를 도외시 하고 소울의 목을 노리고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알칸소의 변화를 소울은 이미 눈치채고 있었다.
소울은 그의 검을 피하는 대신 왼손으로 은으로 코팅한 대거를 뽑아 던졌다.
핑!
알칸소는 이미 방어를 도외시하고 있었기에 날아드는 대거를 무시했다.
하지만 그것은 그의 치명적인 실수였다.
대거는 쏜살같이 날아와 그의 이마에 박혔다.
순간 알칸소의 몸이 휘청거리며 동작이 뚝 끊겼다.
소울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알칸소의 오른팔을 클레이모어로 잘라버렸다.
휘익! 서걱!
쨍그랑!
알칸소는 왼팔로 자신의 이마에 박힌 대거를 뽑았다.
치이이익!
그의 왼손에서 검은 연기가 솟구치며 살이 타들어가고 있었다.
“기사도도 모르는 비겁한 놈.”
“비겁하다니? 나 기사 아니야. 그리고 내가 언제 너하고 기사로 결투한다고 했니?”
“이런.”
알칸소는 분통을 터트렸다.
그런 알칸소의 목을 향해 클레이모어가 부드러운 선을 그으며 휘둘러졌다.
서걱!
알칸소의 머리가 허공으로 떠올랐다.
까뮤가 떨어지는 대거를 잡아 알칸소의 심장에 쑤셔 박았다.
푸욱!
원망스런 눈빛을 하던 알칸소의 몸이 순간 재로 변해 스러졌다.
붉은 수정을 하나 떨어뜨려 놓고…….
기사도(騎士道).
무슨 사자가 풀 뜯어 먹는 소리인가?
기사도라는 것이 누구와 무엇을 위해 만들어졌는가?
음란한 귀족들과 왕족들이 환락에 지쳐 만들어낸 개지랄일 뿐이다.
목숨을 걸고 싸우는 결투에서 대거를 집어 던지면 안 된다고 누가 법이라도 만들었는가?
죽으면 그만이다.
당하는 놈이 병신이다.
그렇게 기사도를 잘 아는 놈들이 동굴에서 싸울 때는 왜 여러 놈이 한꺼번에 다가와 뒤치기를 했단 말인가?
씨알도 안 먹힐 헛소리일 뿐이다.
소울은 알칸소의 원망어린 소리를 이미 잊어버렸다.
죽은 놈의 원망 따위는 지나가는 똥개에게도 줄 수 없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무의미한 소리에 불과하다.
소울은 일단 까뮤를 불러 무거운 철문 안으로 들여보냈다.
안에서 문을 열기 위해서다.
열쇠가 없는 이상 문을 열수 있는 방법은 안에서 직접 여는 수밖에 없다.
끼리릭 끼리릭!
다행히 공간을 넘나드는 까뮤로 인해 이중삼중으로 막혀있던 무거운 철문들이 차례로 열렸다.
[잘됐다. 관 안에 들어있는 뱀파이어들을 모조리 죽여 버리자!]
[네, 주인님]
이상한 곳에서 잭팟이 펑펑 터지고 있었다.
전혀 기대하지 않은 곳에서 뱀파이어들을 만난 소울은 검은 금속으로 만들어진 관을 열고 뱀파이어들을 죽이려고 했다.
하지만 검은 금속은 무엇으로 만들었는지 쉽게 열리지 않았다.
‘뭐지 이건? 엄청나게 강한 금속이다. 혹시 신의 금속이라는 아다만티움은 아니겠지.’
소울은 스스로도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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