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29 제 108 장 - 진혈의 뱀파이어 =========================================================================
소울은 급히 머리를 흔들어 털어버리고는 카렌을 쳐다봤다.
“이제 카렌 엘리자베스가 됐네?”
“마스터, 감사합니다.”
“그래. 앞으로는 카렌 남작님이라고 불러야겠다.”
“아니에요. 그냥 카렌이라고 불러주세요.”
소울은 자신도 모르게 길게 한숨을 내쉬면서 속으로 당장 특실을 옮겨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러고 보니 카렌의 키가 조금은 더 커진 것 같기도 했다.
에이, 아니겠지.
“히어로님!”
밖으로 나가려는데 귀족청 관리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민다.
“왜?”
“그게, 저 수수료를 내셔야해서요.”
소울의 눈앞에 청구서가 보였다.
‘이런 도둑놈의 새끼들!’
그는 이를 뿌드득 갈고는 어쩔 수 없이 돈주머니에서 금화를 꺼내준다.
고작 서류 몇 장 꾸미는데 받아 처먹은 금화가 몇 개인지 모른다.
거기에다 성(姓)까지 새로 만든다고 추가요금까지 냈다.
‘이거 내가 괜한 짓을 했나? 아니야. 지금 엔팔 시(市)에서는 큰 변화를 못 느끼겠지만 북부대산맥으로 가면 분명히 귀족이란 직위가 나름 효과를 낼 거야,’
소울은 자신의 판단을 믿었다.
그는 당당히 귀족청을 걸어 나갔다.
그가 손을 잡아주지 않자 카렌이 얼른 다가와 그에게 팔짱을 꼈다.
밋밋한 가슴이 느껴진다.
이게 어디가 성인이란 말인가?
하지만 이미 나이를 확인한 소울은 예전처럼 카렌을 대할 수는 없었다.
팔을 뺄까하다가 그래도 팔짱을 끼는 정도까지는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메밀꽃 쉼터로 돌아온 소울은 즉시 다른 특실을 알아봤다.
다행히 같은 층에, 입구는 하나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각각 방이 독립적으로 분리되어 있는 특실이 하나 비어있었다.
“303호로 특실로 옮기시겠습니까?”
“응.”
“추가요금을 내셔야 합니다.”
“알겠다.”
소울은 또다시 금화를 퍼줘야만 했다.
카렌도 소울의 눈치를 보면서 말없이 가만히 서 있다.
“저녁식사는 어떻게 할까요?”
그러고 보니 저녁식사를 하지 않았다.
이것도 다 잘 먹고 잘 살려고 하는 짓인데 절대 저녁식사를 거를 수는 없다.
“당장 준비해줘. 여기계신 카렌 남작님과 같이 식사를 하고 올라가겠다.”
“네.”
소울은 카렌과 같이 테이블에 앉았다.
카렌이 귀족이라는 말에 웨이트리스는 놀란 눈을 하고는 카렌의 손가락을 쳐다본다.
그녀의 손가락에 귀족의 인장이 보이자 웨이트리스의 태도가 더욱 공손해진다.
“넌 여기 왜 앉아? 저리로 찌그러져.”
“네.”
은근슬쩍 합석을 하려던 샤를은 소울의 호통에 바로 입구 쪽에 있는 테이블로 옮겨갔다.
“저놈에게 식당에서 제공하는 하우스 디너 1인분을 주도록 해.”
“네, 알겠습니다.”
웨이트리스가 대답을 하며 소울과 카렌에게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식당에서 제공하는 하우스 디너는 일반 평민들이 먹는 싸구려 저녁식사다.
대량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 목적인바, 맛은 보장할 수 없다.
하지만 충분히 배부르게 먹을 수 있다.
소울과 카렌이 앉은 테이블 위의 요리는 푸짐했다.
주방장에게 건넨 거대개미의 알도 넉넉했고, 이틀간의 사냥으로 더 이상 돈에 구애받지 않는 상황이라 얼마든지 맛있는 저녁식사를 즐길 여력이 됐다.
멀건 스프에 고기인지 비갠지 모를 것이 둥둥 떠 있는 것을 보며 딱딱한 방을 찍어 먹고 있는 샤를은 그만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엊그제만 해도 먹는 것만큼은 남부럽지 않게 먹었던 것을 추억하며 샤를은 난생 처음으로 눈물의 빵을 먹어본다.
카렌은 신이 난다.
히어로가 자신의 소환에 응하고 나자 인생이 확 바뀌었다.
무엇보다 더 이상 굶지 않게 된 것이 너무나 다행스러웠다.
온갖 요리가 테이블을 푸짐하게 채우고 자신은 배가 터지도록 원하는 별미를 맛볼 수 있다. 천국이 뭐 별건가? 이곳이 천국인 것 같다.
극에서 극으로 변한 두 개의 인생의 중심에는 소울이 있었다.
저녁식사 후에 만나볼 고리대금업자, 아니 뱀파이어들을 위해 미리 든든히 저녁을 먹고 있다.
그의 입가에는 사악한 미소가 한아름 걸려있다.
두 개의 테이블에서 극단적으로 차이가 나는 저녁식사가 끝났다.
소울은 카렌을 특실로 올려 보냈다.
그리고 샤를을 앞장세워 고리대금업자를 찾았다.
“고리대금업자는 어디에 살지?”
“외성 북문 끝에 삽니다.”
“그거 이상하군. 돈을 많이 벌었으면 내성에 살아야 정상이 아닌가?”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상한 일이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들이 왜 외성 북문 끝에 사는 지 알 것도 같았다.
‘뱀파이어 새끼들이 하려는 짓이야 뻔하지. 위험하다 싶으면 튀려고 구석때기에 아지트를 마련한 것이겠지. 은밀하게 못된 짓을 벌이려고 해도 성안보다는 성 밖이 편할 것이고……. 이놈들 어딘가에 쥐구멍을 만들어놓고 있을 것 같은데.’
소울은 나름 머릿속으로 뱀파이어들이 어떻게 살고 있을지 짐작을 해봤다.
“저깁니다.”
“으음.”
샤를이 가리키고 있는 곳을 바라본 순간, 소울은 만만치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성인데도 불구하고 성벽에 착 달라붙어 지어진 건물이 어느 저택 못지않았다.
아니 저택이라기보다 작은 성 같았다.
“너는 그만 가봐라.”
“저…갈 데가 없습니다. 돈도 없고요.”
“휴우우우!”
샤를의 말에 절로 한 숨이 나온다.
그는 주머니에서 금화 하나를 꺼내 던져줬다.
“메밀꽃 쉼터로 가 있어.”
“네, 히어로님.”
샤를이 좋다고 뒤를 돌아 달려갔다.
아무래도 자신이 준 금화는 술값으로 날릴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샤를의 뒷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소울은 어둠 속으로 스며들었다.
[까뮤!]
[네, 주인님.]
[저기가 고리대금업자가 사는 곳이라고 한다. 냄새가 나지?]
[그러네요. 지나치게 크고 화려하네요.]
[가서 정찰 좀 해봐. 그리고 성밖으로 빠져나가는 쥐구멍도 있을 것 같으니 조사해보고.]
[네.]
까뮤가 소울의 명령에 따라 빠르게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가 저택을 살피는 사이 소울은 저택 외각을 살펴봤다.
신기하게도 저택과 맞닿은 집이 단 한 채도 없었다.
일부러 그렇게 지었는지 아니면 무서워서 다들 피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뱀파이어들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저택은 외부와 철저히 분리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런 특이한 외형을 가지고 있는 저택이 이런 곳에 떡 하니 만들어져 있는데 엔팔 내성의 권력자들이 가만히 내버려둔다는 얘기는 분명히 뭔가 받아쳐먹는 것이 있거나 아니면 이미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이겠지. 길게 끌면 유리할 것이 없겠군. 대가리부터 빠르게 쳐 없애야겠다.’
그렇게 생각을 하며 소울은 새로 장만한 은으로 코팅을 한 대거(dagger, 단검)를 꺼내 들었다.
소설이나 영화, TV 미니시리즈 등에 등장하는 뱀파이어를 보면 마늘, 햇빛, 은, 성수 등이 이들의 약점이다. 흐르는 물을 건너지 못하고 초대받지 못하는 집에는 들어가지 못한다던가, 심장에 말뚝을 받으면 죽는다.
그럼 메시엘의 뱀파이어는 어떤가?
아직 소울도 정확히는 모른다.
다만 한번 싸워본 경험에 의해 어느 정도 짐작은 하고 있었다.
일단 뱀파이어를 만나면 무조건 머리를 베고 은으로 코팅한 대거로 심장을 뚫어 버릴 생각이다.
마늘, 햇빛, 성수는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 확인을 할 수도 없고 굳이 그럴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다.
‘소설과 영화에서 나오는 지구의 뱀파이어와 메시엘의 뱀파이어는 비교 자체가 불가능한 차원이 다른 몬스터이다. 이놈들은 실제로 메시엘에서 하나의 종족을 이루며 살아가고 있다. 생명체라면 머리가 잘리고 심장이 박살나면 절대로 살 수 없다. 만약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지 않는다면 그건 더 이상 생명체가 아니라 고스트나 스펙터 같은 영체 몬스터일 것이다.’
[주인님, 다녀왔습니다.]
[그래. 수고했다.]
까뮤는 소울에게 인사를 하고는 저택의 상황을 상세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소울은 까뮤의 말을 다 들어보고는 눈을 깜빡거렸다.
[생각보다 많네. 엔팔 시에 인구가 얼마나 있다고 백 마리가 넘게 있어?]
[유리한 점도 있습니다. 굳이 일일이 찾아다니지 않고 한꺼번에 처리가 가능하잖아요?]
[하하하, 그래. 그건 네 말도 맞다.]
[오늘이 뱀파이어들에게는 무슨 축제 같은 날인가 봅니다. 저택 지하실에 모여서 사람의 피와 살로 축제를 벌이고 있습니다. 지하실은 들어가는 입구를 막아 버리면 도망칠 곳이 전혀 없습니다.]
[이놈들이 박쥐로 변해서 도망갈지도 모르니까 환기통도 막아버리자.]
[네, 그러는 것이 좋겠어요.]
소울은 지하실로 들어가 안쪽에서 문을 잠그기로 하고 까뮤는 환기통을 바위로 막고 폐쇄시키기로 했다.
[까뮤, 이것을 가져가라. 아주 매운 향신료야. 최루탄 대용으로 쓰면 될 거야.]
[아, 그러니까 환기통을 막고 이걸 지하실에다 뿌리라는 말씀이시죠?]
[바로 그거야.]
[네, 알겠어요.]
[자, 그럼 작전을 시작해볼까?]
[네, 주인님.]
소울과 까뮤는 즉시 각자 자신이 맡은 곳을 향해 달려갔다.
까뮤는 환기통으로 직행했고 소울은 저택의 정문을 향해 다가갔다.
거대한 저택의 입구는 단단한 철문으로 막혀있고 사람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다.
저택의 담장은 3m 도 넘게 세워져 있어 어지간한 도적은 감히 넘을 생각도 못할 것 같다.
하지만 소울은 담벼락을 한번 발로 차고는 부드럽게 담을 넘어 갔다.
척!
가볍게 바닥을 찾지 하자 근처에 경비병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겉보기와는 달리 안은 경비병들이 철저하게 경비를 서고 있었던 것이다.
소울은 품속에서 마스크를 꺼내 쓰고는 목걸이를 툭 쳤다.
차라라라라라락 철컥 철컥 철컥!
그가 찬 목걸이에서 마치 살아있는 생체갑주처럼 로열형 리콜아바타 전용갑주가 쏟아져 나와 순식간에 그의 전신을 뒤덮었다.
황금빛으로 빛나는 전신갑주, 풀 플레이트 아머를 장비한 소울은 즉시 클레이모어를 꺼내 오른손에 쥐고 왼손에는 은으로 코팅한 대거를 잡았다.
“거기 누구냐?”
어둠속에서 경비병 하나가 소리를 듣고 다가왔다.
휙 철썩!
창을 들고 있는 경비병의 머리가 허공으로 붕 떴다.
소울이 지체하지 않고 클레이모어로 목을 쳐버린 것이다.
붉은 피가 분수처럼 쏟아져 나오고 경비병의 몸이 뒤로 넘어갔다.
소울은 그 틈을 노리고 달려들어 경비병의 심장에 대거를 박아 넣었다.
푹!
퍽!
은으로 코팅한 대거가 심장을 뚫자 경비병의 몸이 순간 재로 변해서 사라져갔다.
툭!
잿더미 위로 연한 분홍빛의 수정 하나 떨어져 내렸다.
소울은 손가락을 수정을 집어 들었다.
-뱀파이어의 정수를 획득하셨습니다.
예외 없이 말풍선이 떠올랐다.
소울은 주머니 속에 뱀파이어의 정수를 집어넣으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복수도 하고 정수도 얻고, 도랑 치고 가재 잡고…….
일거양득(一擧兩得)이다.
경비병이 쓰러지는 소리를 들은 다른 경비병이 다가왔다.
팡!
소울은 공기를 찢어발기듯 쏘아져 갔다.
놀란 경비병이 창을 소울 쪽으로 향하더니 세차게 내질렀다.
아주 훈련이 잘 된 경비병이다.
하지만 상대가 나빴다.
휙! 퍽!
푸칵!
경비병의 이마에 소울이 던진 대거가 박혔고 곧이어 그의 심장에 클레이모어가 쑤시고 들어와 짓이겨놓았다.
경비병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무너져 내렸다.
소울이 대거와 클레이모어를 회수하자 경비병의 몸이 재로 변해갔다.
그는 지체하지 않고 즉시 저택 안으로 뛰어들었다.
다행히 저택 안에는 지금 그들만의 축제로 인해 경비병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수십 년 동안 이곳에서 벌어진 축제일 동안 말썽 한번 일어나지 않았으니 경비병을 많이 세울 일이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오늘 그들은 경비병을 충분히 세우지 않은 천추의 한을 남기게 되었다.
소울은 계단을 타고 지하실로 내려갔다.
저택의 화려함에 눈길이 가기도 했지만 지금 그는 전혀 그런 것에 관심이 없었다.
지하실로 내려가자 정면에 커다란 양문이 보인다. 연회장으로 들어가는 문이다.
안에서 음악과 참혹한 비명이 동시에 들려온다.
[까뮤! 도착했다.]
[환기통을 폐쇄했습니다. 매운 향신료도 이미 뿌렸습니다. 지금 들어가시면 됩니다.]
[오케이. 그럼 작전을 시작하자.]
[작전이 뭐였죠?]
[뭐긴 뭐야? 지하실 안에 있는 뱀파이어 놈들을 다 죽이는 거지.]
[아아! 네, 알겠습니다.]
소울은 연회장 양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피 냄새가 진동을 한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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