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OULNET-421화 (421/492)

00421  제 106 장 - 돌아온 히어로  =========================================================================

리콜도우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무래도 또다시 정곡이 찔린 모양이다.

“하하하, 알았어. 네가 잘하면 나도 협조할게.”

-가, 감사합니다.

“그런데 계속 리콜도우미라고 부르기에는 좀 그렇지 않나? 진짜 이름이 뭐야?”

-그건 규정위반입니다.

“그래? 그럼 이참에 이름 하나 짓자. 리콜도우미니까 니콜 어때?”

-니콜이요?

“마음에 안 들어?”

-아닙니다. 마음에 듭니다.

“좋아. 그럼 앞으로는 리콜도우미라고 하지 않고 니콜이라고 부를게.”

-네, 감사합니다.

그렇게 리콜도우미는 ‘니콜’이 됐다.

니콜은 홀로그램으로 소환사 리스트를 띄워줬다.

하나같이 어느 나라의 국왕, 왕자, 공주, 귀족, 귀족의 후계자와 영애들뿐이었다.

로열형 리콜아바타를 가지고 있으니 당연히 상대할 급수도 차원이 달라졌다.

놀라운 것은 리콜을 하면 받을 수 있는 카르마가 무려 평균 만 단위라는 것이다.

국왕과 왕자의 경우는 각각 백만과 오십만 이었다.

“니콜, 하나 물어보자.”

-네, 말씀하세요.

“카르마가 뭐지?”

-카르마는 달리 말하면 일종의 인과율입니다.

“인과율!”

소울은 머리에서 횃불이 번쩍이는 것 같았다.

분명히 어디선가 들어본 말이다.

인과율로 인해 지구를 침략하는 세력이 정도 이상의 침략행위를 할 수 없다는 소리를 들은 것 같다.

촉이 예민하게 움직였다.

인과율, 아니 카르마는 자신에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래서 소울은 한 나라의 국왕을 선택하려고 했다.

그런데 가슴에서 뭔가 간질간질 거리는 것이 있었다.

‘국왕을 선택하게 되면 과연 앞으로 계속 카르마를 얻을 수 있을까? 권력의 앞잡이 노릇밖에 못하는 것 아닐까? 유희하러 왔다가 오히려 스트레스만 잔뜩 받을 것 같은데…….’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때 갑자기 소울의 뇌리에 카렌이 떠올랐다.

“니콜, 엔팔 신전에 혹시 카렌이라고 있는지 살펴봐.”

-카렌 말씀이십니까? 여기 한 명 있습니다.

“소환을 신청한 사람 맞지?”

-네, 그렇습니다. 7시간 전에 소환의 돌에 손을 대고 히어로를 소환해달라고 소원을 빌었습니다.

“그래?”

카렌이 자신이 생각한 그 카렌이 맞는 것 같다.

자신에게는 일주일이지만 메시엘의 시간으로는 7시간 밖에 되지 않으니 말이야.

-특이사항이 하나 있네요.

“뭔데?”

-카렌이 마스터를 콕 집어서 자신의 히어로가 되게 해달라고 빌었습니다. 그것도 틈날 때마다 소환의 돌에 손을 대고 빌고 있네요.

“그래?”

놀라운 일이다.

자신은 그저 카렌의 죽은 어머니의 시신을 신전에 맡겨 장례를 치르게 하고 카렌을 잘 돌봐달라고 늙은 사제에게 돈을 주고 살짝 살기를 흘렸을 뿐이다.

그런데 카렌은 그것을 은혜로 생각하나보다.

-혹시 카렌의 히어로가 되겠다는 것은 아니시겠죠?

“왜? 카렌의 히어로가 되면 안 될 일이라도 있어?”

-그건 아닙니다. 다만 히어로가 되어도 카르마를 거의 받을 수 없어서 그렇습니다.

“카르마는 어떻게 생기는 거지?”

-리콜아바타가 히어로로 메시엘에 현신을 하면 그 행동에 따라 카르마를 받을 수 있습니다. 몬스터를 잡아도 되고 메시엘에 좋은 영향을 끼치면 됩니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카르마를 받습니다. 이 경우는 네거티브 카르마를 받게 됩니다.

어느 쪽이던 카르마를 받는다는 말이다.

-또 한 가지는 소환사가 자신의 카르마를 양도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건 나쁘지 않군.”

카르마를 양도한다.

누구의 아이디어인지 모르지만 참 재미있는 발상이다.

“싱크로율이 뭐야?”

-싱크로율은 말 그래도 동기화 비율입니다. 보급형 리콜아바타는 일률적으로 0.1%입니다. 소환사와 히어로가 경험을 쌓아 성장을 하고 레벨업을 하면 비율은 올라갑니다. 또한 둘 사이의 친밀감이 높아져도 올라갑니다.

“그럼 고급형 리콜아바타는?”

-당연히 보다 높은 싱크로율을 보장합니다. 고급형 중 실버형은 1%, 골드형은 2%, 로열형은 3%나 됩니다.

말로는 실감할 수 없었다.

일단 카렌의 히어로가 되어봐야 정확히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카렌이 내게 줄 수 있는 카르마가 얼마지?”

-3 입니다.

“뭐야? 카르마가 겨우 3 이라고?”

-거지였다가 이제는 고아가 된 카렌에게 3 이면 적지 않은 수치입니다.

“흐음, 하긴 그렇지. 카렌이 세상에 미치는 영향력이 그 정도밖에는 되지 않을 거야. 아니 니콜의 말대로 그 정도면 많은 수치겠군.”

-그렇습니다.

소울은 잠시 머릿속으로 생각해봤다.

정말 카렌의 소환에 응할 것인가?

국왕과 왕자, 귀족들의 소환을 뿌리치고 천애고아가 된 카렌의 히어로가 되어도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나?

‘내가 리콜을 한 목적이 뭐지? 유희다. 우울증에 걸린 내 인생을 변화시켜보겠다고 시작한 짓이야. 굳이 여기까지 와서 부귀영화를 누려보겠다고 설쳐대는 것은 큰 의미가 없어. 차라리 카렌 같은 아이를 도와주며 같이 성장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야.’

소울은 결정했다.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말이다.

그의 가슴은 고아가 된 카렌을 향하고 있었다.

“결정했어. 카렌의 소환에 응하겠다.”

-축하드립니다. 새로운 히어로가 되셨군요. 히어로로 가시기전에 리콜스킬 두 개를 구입하셔서 가져갈 스킬을 지정해주세요.

“크음, 알았어.”

큐브코인이 아깝긴 했지만 소환 스킬을 포기할 순 없다.

스킬 하나는 아직 결정을 못했으니 조금 더 상황을 지켜본 다음에 결정하기로 했다.

큐브코인으로 리콜스킬 두 개를 소울넷 상점에서 구입했다.

그중에 하나에 소환 스킬을 지정하고 그는 카렌의 소환에 응할 준비를 끝냈다.

-준비가 끝나셨습니까?

“응.”

-카렌의 소환에 응해 그녀의 히어로가 되시겠습니까?

“그렇다.”

-이제 이소울 마스터께서는 카렌의 히어로가 되셨습니다. 즐거운 여행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화아아악!

리콜펜타곤에서 눈이 멀어버릴 것 같은 환한 빛이 터져 나왔다.

소울은 자신의 의식이 로열형 리콜아바타로 빠르게 옮겨지는 것을 느꼈다.

깜빡!

눈을 한번 깜빡할 사이에 자신은 이미 로열형 리콜아바타로 들어와 있다.

기하학적인 도형이 그려진 문에서 환한 빛이 쏟아져 나오자 곧 자신의 로열형 리콜아바타가 부드럽게 문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렇게 소울은 다시 한 번 메시엘 행성의 히어로가 됐다.

* * * * *

‘이렇게 메시엘의 창조주께 간절히 기도합니다. 제발 마스터를 제 히어로로 보내주세요. 그리고 저를 지키게 해주세요. 전 이제 엄마도 없어요. 이 세상에 오직 나 혼자 남았어요. 너무 무서워요. 의지할 데도 없고 얼마나 더 여기에서 살 수 있을지 모른답니다. 간곡하게 소원합니다. 부디 제 기도를 들어주세요.’

카렌은 정말 간절히 기도했다.

혼신의 힘을 다해 정말 결사적으로 소원을 빌었다.

신전의 늙은 고위사제가 지금은 저렇게 자신에게 먹을 것을 주고 입을 옷과 잠자리를 제공하지만 그 호의가 결코 오래가진 않을 것이라는 것을 카렌은 잘 알고 있었다.

이 세상은 보호자도 없는 고아가 홀로 잘 살아갈 수 있을 만큼 만만하지 않다.

이미 세상의 박한 인심과 차가운 냉대는 이력이 날 정도로 겪어봤다.

당장 자신을 구원할 수 있는 것은 신(神) 밖에 없었다.

그게 아니라면 신이 보내주는 히어로면 또 모를까?

그래서 그녀는 자신이 아는 유일한 히어로인 마스터의 이름을 몇 백, 몇 천 번을 더 외우고 중얼거린다.

자신에게 히어로가 생긴다면 정말 지극정성으로 모실 것을 스스로 굳게 다짐하고 맹세했다.

지성(至誠)이면 감천(感天)이라고 했다.

정말 그녀의 기도가 하늘에 닿았음인가?

히어로의 신전에서 밝은 빛이 터지기 시작하더니 이내 신전 전체를 찬란하게 밝혔다.

“우와, 히어로가 현신했다.

“누구의 히어로지? 설마 내가 소원해서 히어로가 현신하신 것은 아니겠지?”

그녀의 옆에서 기도하고 있던 아이들이 기대가 가득한 얼굴로 일제히 밖으로 뛰어나갔다.

카렌은 히어로가 소환되었다는 말에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그들의 뒤를 따라갔다.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놓인 아이들이지만 그래도 이들은 신전의 뒤에 있는 논과 밭을 경작하면서 살아가는 신전 소속의, 농노의 신분이다.

신전에 딸린 기숙사에서 먹고 자고 입을 수 있는 자격이 있었다.

얇은 튜닉이 펄럭이며 차가운 공기가 옷 사이를 파고들어 금세 카렌의 몸을 차갑게 식힌다. 오들오들 떨면서도 카렌은 신전의 앞마당으로 가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고개를 빼들고 앞을 보자 ‘히어로 신전’에서 황금빛 찬란한 갑옷을 입고 당당하게 걸어 나오는 히어로의 눈부신 모습이 보인다.

“와아아아아!”

아이들은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입고 있는 갑옷의 모습만 봐도 상당한 등급의 히어로라는 것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뒤늦게 늙은 사제가 정신없이 뛰어 나와 고개를 숙인다.

“메시엘을 구원하러 오신 히어로님을 환영합니다.”

하도 많이 얘기를 해서 그런지 입에 붙은 것처럼 매끄럽게 말을 한다.

“늙은 사제, 또 보는 구나?”

“네?”

“너 나 누군지 몰라?”

“호, 혹시?”

“그래. 나다.”

“어떻게 이런 일이…….”

늙은 사제는 소울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놀란 눈을 데굴데굴 굴린다.

소울은 미소를 지으며 늙은 사제의 앞으로 다가갔다.

“내가 시킨 일은 잘 하고 있지?”

“네? 아! 물론입니다.”

“데리고 와.”

“네?”

“데리고 오라고. 카렌을 데리고 오란 말이야.”

“아, 알겠습니다.”

늙은 사제는 혼이 다 빠진 얼굴로 급히 젊은 사제들을 시켜서 카렌을 데리고 오게 했다.

아이들의 뒤에서 구경을 하고 있던 카렌은 사제들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자 떨리는 가슴으로 앞으로 나갔다.

“아! 카렌! 여기 있었구나. 빨리 저리 가봐.”

“네.”

카렌은 멀리서 소울의 모습을 보고는 긴가민가했다.

너무 눈부시게 빛나는 황금의 갑옷 때문에 오히려 소울의 얼굴이 제대로 안보였기 때문이다.

“카렌!”

“어? 설마?”

그때였다.

히어로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자 카렌은 즉시 어디서 많이 들어본 목소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니 꿈에도 그리던 히어로, 마스터가 돌아온 것을 알 수 있었다.

카렌은 순간 깨달았다.

마스터는 이미 다른 사람의 히어로여서 절대 자신의 히어로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왜 그것을 못 깨달았을까?

아니다.

이미 깨닫고 있었다.

단지 인정하고 싶지 않아 신에게 떼를 쓰고 있었을 뿐이다.

그래도 마스터가 자신을 찾아와 준 것이 고마웠다.

카렌은 그래서 힘차게 달려가서 소울에게 안겼다.

소울은 카렌이 자신을 보자마자 눈이 그렁그렁해서 자신에게 안겨오자 가슴이 뭉클했다.

잠시 그녀가 진정할 수 있도록 꼭 안아주었다.

차가운 갑주가 이럴 땐 조금 원망스러웠다.

“안녕하셨어요?”

“그래. 난 잘 지냈다. 너는 잘 지냈니?”

“네, 마스터 덕분에 잘 지내고 있어요.”

소울은 놀랐다.

카렌이 너무나 예쁘고 귀여운 여자 아이가 됐기 때문이다.

열 두세 살 정도는 되었을까?

땟물이 줄줄 흐르던 거지 아이를 깨끗이 씻겨 놓으니 마치 환골탈태이라도 한 것처럼 바뀌어져 있었다.

하지만 이내 속에서 열불이 났다.

입고 있는 튜닉을 보니 얇고 허접한 싸구려 튜닉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소울이 살짝 고개를 돌려 인상을 쓰자 늙은 사제는 놀라서 어깨를 크게 들썩이고는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이 새끼가 분명히 내가 경고를 했는데도 이 따위 짓을 하네?’

다 늙어서 죽을 날이 얼마 남지도 않은 것 같은데 욕심은 더럽게 많은 놈이었다.

소울은 카렌 모르게 한숨을 쉬며 그녀의 발을 쳐다봤다.

다 낡아빠진 샌들이다.

차가운 날씨로 인해 발은 퍼렇게 멍이 든 것처럼 보였다.

카렌의 팔다리를 살펴보자 얼마나 못 먹었는지 뼈다귀 밖에 없었다.

이 정도면 사람이 아니라 스켈레톤 이라고 불러야 할 것 같다.

그런데도 카렌은 정말 눈부시게 예쁘고 귀여웠다.

아마 카렌이 이렇게 예쁘고 귀엽지 않았다면 벌써 신전 밖으로 쫓아냈을 지도 모를 일이다.

“늙다리 사제, 너 지금 나한테 안 물어보냐?”

“네?”

“지난번하고는 좀 다르다?”

“아, 죄송합니다. 그럼 제가 감히 히어로님에게 묻겠습니다. 누구의 소환에 응답하셨습니까?”

“나는 카렌의 소환에 응답했다.”

와아아아아!

남자아이들이 소리를 질렀다.

여자아이들은 탄식을 했다.

늙은 사제는 침을 꿀꺽 삼키고는 몸을 벌벌 떨었다.

“마스터! 정말이에요? 제 히어로가 되어 주시는 거예요?”

“그럼. 당연하지. 그러기 위해서 내가 현신한 거야.”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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