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14 제 104 장 - 함정 =========================================================================
수지의 돈을 떼어 먹을 생각은 없다.
아니 오히려 나중에 제대로 다 갚아줄 생각이다.
그래서 그는 당당하게 말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부끄러운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나보다.
다행히 필요한 것은 하나도 빼놓지 않고 모두 수지에게 사달라고 말했다.
“으음, 금화 30개는 있어야겠네요. 다른 것은 모르지만 힐링포션과 해독포션은 절대 가격이 만만치 않거든요. 단검은 제가 하나 가지고 있는 것이 있으니 빌려드릴게요.”
“그래?”
수지는 이제 잠이 다 깼는지 목소리가 또랑또랑하다.
그녀는 벌떡 일어나 소울에게 달려들었다.
“으읍!”
“좀 가만히 있어요.”
“이러면, 안……흡”
수지는 그의 입술을 욕심껏 탐닉했다.
입술이 부르틀 정도가 되고 나자 그제야 만족한 듯 소울을 놓아줬다.
그녀는 서랍에서 속옷을 꺼내 입고 옷장에서 겉옷을 입으며 외출 준비를 했다.
“필요한 것은 제가 다 사올게요. 여기서 기다리세요. 히어로나 되는 사람이 아침에 시장에 나타났다가는 아마 난리가 날 테니까요.”
“고마워.”
“천만에요. 그래도 제가 첫 정을 받은 여잔데 그 정도는 해줘야죠.”
첫 정이라는 말은 아마도 소울의 동정을 가져간 것을 말하는 것이리라.
소울은 의외로 수지가 저런 감상적인 면이 있는 것을 보곤 피식 웃음을 흘렸다.
수지가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자 소울은 길게 한숨을 쉬었다.
“휴우우우우, 이거 망신도 이런 개망신이 없네. 하룻밤 같이 잔 여자에게 돈을 꾸지를 않나? 동정심을 사지를 않나? 내가 너무 리콜을 쉽게 봤어. 그나저나 앞으로 수지의 기둥서방이라고 소문이 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네?”
불안한 예감은 틀리는 법이 없다는 것이 만고의 진리다.
새벽같이 펍 안으로 들어가는 소울을 보고 벌써부터 주변 시장을 중심으로 묘한 소문이 퍼져나가고 있었다.
그것은 역사상 최초의 ‘히어로 기둥서방’에 관한 루머였다.
* * * * *
엔팔 시(市)의 남쪽 성문을 통해 이두마차 한 대가 빠져 나왔다.
마차는 길을 따라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다가닥 다가닥 다가닥!
트르르르르릉!
“마스터, 점심식사는 어떻게 하셨습니까?”
“대충 때웠어.”
“그럼 되겠습니까? 다음부터는 밖에서 드시지 마시고 집으로 오십시오.”
“알았다.”
소울은 샤를의 질문에 심드렁하게 대답을 했다.
샤를이 주는 밥이 얼마나 대단한지 모르지만 수지가 시장에서 사다준 군것질거리보다는 맛이 없을 것 같았다.
그는 힐끗 마차를 몰고 있는 용병들의 뒷모습을 쳐다봤다.
용병길드에서 고용했다는 두 명의 용병은 근육을 갑옷처럼 몸에 두르고 있다.
한 눈에 봐도 꽤 등급이 높은 놈들이다.
‘역시 몰락귀족도 귀족인가? 돈이 어디서 계속 나와서 이런 놈들을 고용했지? 확실히 요상한 냄새가 나네.’
소울은 용병을 고용한 샤를의 의도를 알 수 없었지만 결코 자신에게 유리한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가닥 다가닥 다가닥!
드르르르르륵!
마차는 빠른 속도로 달리다가 갑자기 급격히 속도를 줄였다.
“샤를 남작님! 앞에 위밍이 있습니다.”
“그래? 그럼 당장 잡아 죽여라.”
“네, 활로 쏴죽이겠습니다.”
소울은 그들의 말에 호기심이 생겼다.
그래서 엉덩이를 살짝 들고 고개를 위로 치켜들어 앞을 내다봤다.
다 낡아빠진 로브를 걸친 채 길을 따라 걸어오고 있는 여자의 모습이 보였다.
“저건 위밍이 아니라 그냥 여자 아닌가?”
“여기는 사람이 살고 있지 않은 지역입니다. 히어로께서는 오신지 얼마 안 되어 잘 모르시겠지만 이 지역은 위밍이 자주 출몰하는 지역입니다.”
“맞습니다. 절대 사람이 혼자 걸어 다닐만한 곳이 아닙니다.”
“로브를 입은 것도 위장을 한 겁니다.”
소울의 의문에 두 용병은 자신들의 가슴을 주먹으로 탕탕 치며 위협적으로 대답했다.
아마 그들도 소울의 히어로 등급이 바닥이라는 것을 어디서 주워들은 모양이다.
기분이 좀 나쁘긴 했지만 그들의 말이 사실이라면 자신이 나설만한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들었던 엉덩이를 내리고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옆을 바라보니 샤를은 뭔가 못마땅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다.
주먹으로 한 대 패주고 싶긴 했지만 꾹 참고 다시 시선을 앞으로 돌렸다.
두 용병 중 한 명이 활을 꺼내 화살을 시위에 걸었다.
천천히 달리고 있는 상태에서 몸을 꼿꼿이 세우더니 로브로 위장한 위밍을 향해 활을 쏘았다.
핑!
으아악!
화살을 맞은 위밍이 픽 쓰러졌다.
“이건 위밍의 비명소리가 아니잖아?”
“어? 그런가?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위밍이 비명까지 위장한 거야.”
두 용병은 마차를 쓰러진 위밍의 가까이에 댔다.
그때, 쓰러진 위밍을 향해 정신없이 달려오는 거지 아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엄마!”
용병의 화살에 맞아 쓰러진 것은 위밍이 아닌게 확실했다.
위밍이라면 아이가 엄마라고 소리를 지르며 달려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런, 위밍인줄 알았는데…….”
“에이 재수 없어. 그냥 빨리 처리하고 가자.”
“그래. 알았어.”
두 용병은 침을 탁 뱉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활을 쥔 용병이 화살 하나를 꺼내 활시위에 걸고는 엄마의 주검 위에서 오열하는 거지 아이를 겨냥했다.
“야! 너 지금 뭐하는 거야?”
“네?”
소울이 벌떡 일어나 소리치자 두 용병은 오히려 놀란 표정으로 그를 쳐다봤다.
“뭘 하다니요? 후환을 없애고 있지 않습니까?”
“후환을 없앤다고? 네가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엄한 사람을 활로 쏴 죽여 놓고 무슨 개소리를 하는 거야?”
“아니 이거 왜 이러십니까? 우리 모두를 위해서 하는 일인데?”
“맞습니다. 괜히 저대로 놔두면 나중에 피곤한 일이 생깁니다. 그러느니 차라리 지금 깨끗이 처리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것들이 정말 단체로 미쳤나?”
소울은 두 용병들의 행태에 화가 났다.
고개를 돌려 샤를을 쳐다봤다.
명색이 귀족이니 이 정도를 구분할 이성은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웬걸?
샤를은 아까보다 더욱 못마땅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니 이제는 거의 인상을 구기고 있었다.
말만 안했을 뿐이지 용병들의 생각과 다를 바 없다는 표정이다.
“샤를도 같은 생각이야?”
“마스터, 이런 일은 그냥 저들에게 맡겨두시는 것이 좋습니다. 지체 높으신 분이 끼어들 일이 아닙니다.”
“이것들이 정말 지랄을 세트로 해쳐먹고 있네?”
소울은 드디어 화가 폭발했다.
그는 마차에서 훌쩍 뛰어내려다.
도저히 더 이상은 두고 볼 수 없었다.
“너희 둘 이리 내려와서 두 사람을 이 마차에 태워라! 당장 그 활 안내려?”
소울의 두 눈에서 새파란 살기가 줄기줄기 뻗어 나오자 두 용병들은 순간 몸을 움찔했다. 그의 살기에 몸이 굳어 제대로 말을 듣지 않고 있는 것이다.
썩어도 준치라고 아무리 신체능력이 바닥을 긴다고 해도 S클래스까지 올라간 소울이다. 샤를이 비싸게 돈을 주고 고용한 용병들이지만, 용병 둘을 감당하지 못할 소울도 아니었다.
“샤를 남작님!”
그들은 즉시 샤를을 쳐다봤다.
히어로가 미쳐 날뛰면 답이 없다.
샤를이 소환사이니 당연히 히어로를 제어해줄 사람은 샤를이다.
“마스터, 고정하십시오. 그리고 당장 이리로 돌아오세요.”
“너 지금 용병들 앞이라고 나한테 명령 하냐?”
“네?”
“이 새끼가 정말 보자보자 하니까 나를 완전히 호구로 보네? 소환사와 계약한 히어로가 명령으로 움직이는 것 봤어? 부탁을 해도 들어줄까 말까 한데 너 나한테 지금 명령질이야?”
“그, 그런?”
샤를도 주변 귀족들이 히어로를 어떻게 대하는지 잘 안다.
소환수라면 명령을 내려서 부리겠지만, 리콜 히어로는 상전을 모시듯 해야 한다.
누가 갑이고 누가 을인지 이미 그 관계는 명확하다.
샤를도 머리가 있어서 자신이 소울을 낮춰보고 명령조로 말을 하는 실수를 저질렀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천한 용병들 앞에서 무안을 주니 그게 또 쉽게 넘어가기 힘들었다.
리콜 히어로는 소환을 한 주체를 절대 해칠 수 없다.
샤를은 이를 악물고 지금 이 절대원칙을 꼭 부여잡고 있어야만 했다.
소울은 샤를이 입을 조개처럼 꾹 닫고 있자 더 이상 그를 쳐다보지 않았다.
대신 두 용병을 잡도리했다.
“너희들 이름이 뭐야?”
“저 말씀이십니까?”
“야! 이 새끼야! 네 이름 물어보잖아? 내가 지금 어려운 문제 냈어?”
“아, 아닙니다. 제 이름은 라테입니다.”
“넌?”
“모카입니다.”
“꼭 어디서 커피 이름을 따온 것들이 까불고 지랄을 하네. 당장 따라와.”
“네.”
“예.”
사람을 부리는 대는 이미 도가 튼 소울이다.
용병은 힘이 우선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닫고 그는 기세로 용병들을 찍어 눌렀다.
단순하고 무식한 용병들이라 힘이 센 자에게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숙인다.
“가서 확인해봐!”
두 용병이 달려가더니 로브를 위로 벗겼다.
병색이 완연한 중년 여자의 얼굴이 보였다.
“이미 늦은 거야?”
“네.”
“그럼 마차 뒤로 모셔라.”
“네.”
거지 아이는 이를 악물고 눈물을 흘리면서도 두 용병의 거구에 겁을 먹었는지 한 마디도 하지 못했다.
소울은 땟물이 좔좔 흐르는 거지 아이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는 물었다.
“저 두 용병이 네 어머니를 몬스터인 위밍으로 착각하고 활을 쏴서 돌아가시게 했다. 미안하다. 알았다면 내가 막았을 텐데 사실 나도 미처 몰랐어.”
“흐윽!”
소울의 따뜻한 위로의 말에 아이는 그만 오열을 하고 말았다.
“어디 갈데는 있니?”
아이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소울은 잠시 생각을 해보더니 아이를 신전에 데려다 주기로 했다.
신전에서 운영하는 고아원이 있다는 소리를 얼핏 들은 것 같았다.
“이름이 뭐지?”
“카렌이에요.”
“좋은 이름이구나. 네 어머니의 장례를 위해서도 엔팔로 가야겠다.”
“전 거기 못 들어가요.”
카렌이 급히 소울의 팔을 붙잡았다.
“아니 왜?”
“거지는 못 들어가요.”
“괜찮아. 내가 도와줄게.”
소울은 썩은 냄새가 풀풀 나는 카렌의 몸을 번쩍 안아 들고는 마차로 가서 뒤쪽에 태웠다.
모카와 라테가 이미 여인의 시신을 마차 뒤에 실은 상태라 아이는 죽은 자신의 어머니 옆에서 또다시 눈물을 펑펑 쏟았다.
소울이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그리고는 샤를을 노려보며 싸늘히 말했다.
“샤를, 엔팔로 돌아간다.”
“마스터, 던전 탐사는 어떻게 하고 엔팔로 돌아갑니까?”
“아이를 엔팔에 데려다주고 다시 오면 되잖아?”
“아, 알겠습니다.”
소울의 한 마디에 마차는 기수를 돌려 다시 엔팔을 향했다.
“모카, 라테!”
“네.”
“예.”
소울이 두 사람의 이름을 부르자 그들의 몸이 움찔하며 큰 소리로 대답을 한다.
“돈주머니 내놔!”
“네?”
“좋은 말할 때 가진 거 다 내놓으란 말이야.”
어째 소울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가 강도들이 하는 레퍼토리와 비슷했다.
“사람을 죽였으면 목숨으로 갚아야지. 안 그래?”
“네에?”
“그렇다고 네 두 놈을 당장 쳐 죽여 봤자 무슨 유익이 있겠냐? 그러니까 이 아이에게 보상금이라도 내놓으란 말이야. 싫으면 대신 네놈들의 머리를 잘라주던가.”
“아, 아닙니다. 보상금을 줘야지요.
“맞습니다. 당연히 드려야지요.”
모카와 라테는 결국 소울에게 돈주머니를 통째로 빼앗기고 말았다.
“샤를도 내놓아야지.
“네? 제가 왜요?”
샤를은 소울의 청천벽력 같은 말에 크게 놀라 몸을 뒤로 쭉 뺐다.
“왜라니? 샤를이 두 용병을 고용한 고용주잖아? 애초에 내말대로 두 용병을 말렸다면 이런 일이 아예 벌어지지도 않았을 거 아냐? 괜히 용병들에게만 책임을 떠넘기려 하지 말고 돈 주머니 내놔!”
“아니 그런.”
“왜? 싫어? 그럼 앞으로 나 사냥 안할 거야. 맨날 술이나 먹고 놀란다. 술집에서 술값 갚으라고 독촉을 하면 샤를이 시켰다고 할 거야.”
“알겠습니다. 드리겠습니다.”
샤를은 소울의 말에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 바로 꼬리를 내렸다.
돈주머니에서 금화 한 개를 꺼내려는 샤를을 보며 소울은 번개처럼 샤를의 돈주머니를 낚아채 안에 들어있는 금화 열 개를 몽땅 챙겼다.
“그게 전 재산인데…….”
“시끄러워.”
소울은 샤를의 투정을 단칼에 잘라버렸다.
마차는 빠르게 달려 엔팔의 남문을 통과했다.
“어디로 갈까요?”
“신전으로 가자.”
“네.”
마차는 곧바로 신전을 향해 달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신전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신전에 도착하자 소울은 자신을 소환했을 때 봤던 신전의 그 늙은 사제를 찾았다.
알고 보니 엔팔 신전에서 지위가 가장 높은 고위사제란다.
“에이지라고합니다. 저를 찾으셨다고요?”
소울은 늙은 사제의 눈을 한번 지그시 쳐다봤다.
아주 깨끗하지도 아주 탁하지도 않았다.
그는 아무 말 없이 모카와 라테 그리고 샤를로부터 챙긴 돈을 몽땅 그에게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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