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13 제 104 장 - 함정 =========================================================================
“그리고 나 지금은 진짜 생각 없어. 아니 생각은 있는데 당장 지금 하려는 맘은 없어.”
“그래요?”
수지는 참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 가슴만 살짝 들어내도 발정난 개처럼 달려드는 놈들이 펍에 수두룩하다.
그런데 지금 다 벗고 주겠다는데도 사양하겠다는 소울을 보자 확실히 히어로는 좀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수지는 펍에 일하는 웨이트리스지만 헤프진 않다.
아니 오히려 줄 듯 말 듯 밀당을 잘해서 그런지 펍에 손님이 항상 가득하다.
자신의 마음에 드는 사내에게는 굳이 돈을 받지 않고 즐기기도 한다.
성에 대해 나름 관념이 확고부동한 수지다.
하지만 어제는 좀 달랐다.
소울을 보자마자 그냥 한눈에 반해버렸다.
왜 그런지는 자신도 모른다.
그냥 막 끌렸다.
그가 히어로라는 것과 동정(童貞)이라는 사실도 자신을 흥분시키는 이유 중 하나였다.
펍에 살다시피 하는 단골주당들이 내기를 걸었고, 또한 미션을 주자 더욱 확실한 동기부여가 됐다.
결국 원하는 대로 히어로를 침몰시켰고 천상을 오르내리는 기쁨을 맛봤다.
앞으로 히어로는 무조건 프리패스다.
“그럼 혹시 돈 꾸러왔어요.”
“뭐?”
“그렇잖아요. 제 몸이 아니면 제 돈을 원하는 것 아니겠어요?”
“수지야 넌 좋겠다.”
“왜요?”
“참 단순하게 사니까 말이야.”
“어차피 사는 한 평생, 즐겁고 기쁘게 살아야죠. 머리가 복잡하면 즐기면서 살 수 없어요.”
“그래 너 참 잘났다.”
소울은 혀를 차며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니 자신이 지금 수지를 보고 이럴 때가 아니었다.
“수지야, 너 이리로 좀 앉아봐.”
“왜요?”
소울은 수지를 자신의 앞인 침대 끝에 앉혔다.
그리고 궁금한 것을 물어보기 시작했다.
창가로 환한 빛이 가득 들어오고 있다.
속옷 하나 걸치지 않고, 벌거벗은 채 침대 위에 편하게 한쪽 다리를 세우고 앉아 있는 그녀의 살결이 눈이 부시다.
수지의 은밀한 곳이 적나라하게 다 보이자 도대체 눈을 어디에다 둬야할지 모른다.
하지만 진지하게 그의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수지의 화장기 없는 청순한 얼굴을 보자 점차 민망하고 부끄러운 생각은 사라져간다.
‘아! 수지는 전혀 가식이 없구나. 오히려 가식적인 것은 내가 아닐까?’
조금은 수지를 아래로 내려다본 것이 미안했다.
그런 생각이 들자 소울은 가식의 껍데기를 즉시 벗어버렸다.
수지의 몸을 번쩍 들어 자신의 무릎에 올려놓았다.
놀란 눈을 하고 쳐다보는 그녀의 풍만하고 부드러운 가슴을 만지작거린다.
애플 힙의 탱탱한 엉덩이도 쓰다듬는다.
그제야 수지는 ‘그러면 그렇지.’하는 표정으로 미소를 짓더니 소울을 정상적인 남자로 보고 안심을 하는 듯 했다.
뭔가 자신의 의도와는 살짝 핀트가 빗나간 것 같았지만 그래도 수지의 얼굴이 편안해지자 그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그러니까 뭐에요? 지금까지 얘기는 막상 히어로로 왔는데 히어로에 대해서 아는 게 하나도 없는 상태라는 거예요?”
“응, 맞아. 그것뿐이 아니라 이 세상에 대한 지식도 거의 없어. 엔팔은 물론이고 엘라즈라 왕국, 몬스터에 대한 것도 아직 잘 몰라.”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히어로는 전능한 존재라고 하던데…….”
“누가 그래?”
“신전의 젊은 사제가 그랬단 말이에요. 그리고 실제로 몬스터 몇 마리는 무기도 들지 않고 때려죽이는 것을 내가 직접 봤어요.”
“누가 몬스터를 손으로 때려 죽여?”
“누구긴요? 당연히 엔팔에 사는 히어로지요.”
“그래?”
일단 엔팔에 다른 히어로도 있는 모양이다. 좋은 정보다.
하긴 여기 온지 아직 하루밖에 안됐으니 다른 히어로가 있는지 없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혹시 샤를에 대해 아는 거 있어?”
“샤를? 혹시 그 몰락했다는 샤를 남작을 말하는 거예요?”
“응, 샤를이 내 소환사야.”
“그리 썩 좋은 소문은 없어요. 한때 엔팔을 쥐고 흔들 정도로 영향력 있는 귀족가문이었지만 뭔가 투자를 잘못해서 폭삭 망했다는 소문을 들었어요. 돈과 여자 욕심이 많고 부인이 셋에다 첩도 있다고 하더군요.”
정확한 정보인지는 나중에 확인을 해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전혀 접촉점이 없는, 제 3 자인 수지가 이런 말을 한다는 것은 그녀의 말이 사실일 가능성이 높았다.
“혹시 몬스터의 종류는 알아?”
“그거야 책방에 가면 몬스터 백과사전이 있으니까 빌려보면 알 수 있지 않을까요?”
“그렇지.”
“책방에 펍에 자주 오는 단골이 있으니 내가 이따 빌려다 드릴게요.”
“고마워.”
소울은 진즉에 왜 이런 생각을 못했는지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고 싶었다.
히어로가 되자 머리가 급격히 나빠진 것은 아닌지 좀 의심스러웠다.
“혹시 히어로들이 특별히 뭘 구한다는 소문은 못 들었어?”
“으음, 히어로와 소환사들이 마나석과 젬스톤을 찾는데 열을 낸다는 얘기는 들었어요.”
“뭐시라, 메시엘에서 마나석과 젬스톤이 나온다고?”
그는 깜짝 놀랐다.
마나석과 젬스톤은 쉽게 구할 수 없는 귀하디귀한 자원이었다.
“전에 젊은 사제에게 들었는데 히어로들이 사는 세상보다 우리가 사는 이곳에 마나석과 젬스톤이 훨씬 더 많이 나온다고 하네요. 그래서 히어로를 소환하는데 성공한 소환사들은 모두 큰돈을 벌기위해 북쪽으로 몰려가는 거예요.”
“북쪽에 뭐가 있는데?”
“어머, 그것도 모르시나보네. 북부대산맥이 있잖아요. 거기 가면 크고 작은 스피어가 아주 많아요.”
“스피어!”
소울은 정신이 번쩍 났다.
‘이제 보니 소울넷 상급 유저들이 메시엘에 그저 유희를 위해 오는 것이 아니었구나. 북부대산맥에 스피어가 많이 있다는 말은 그쪽에 마나석 광산과 젬스톤 광산이 있다는 말이겠지. 물론 스피어가 많은 만큼 몬스터들도 많이 몰려 있겠구나.’
마나석과 젬스톤이 귀한 것은 누구보다 소울이 더 잘 알고 있다.
S클래스에 등극하자 그는 제일 먼저 S클래스 무구를 구하려고 소울넷 상점을 뒤졌다.
그런데 상급 또는 최상급 마나석이 박힌 무구나 젬스톤이 박힌 무구의 가격이 천문학적이었다.
마나석은 워낙 유명해서 굳이 설명할 필요조차 없는 귀한 물건이다.
마나를 품고 있는 돌로 마나를 쉽게 끌어다 쓸 수 있고, 텅 빈 마나석은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마나가 채워진다.
마법사에게는 필수아이템으로 마나석에 환장하지 않는 마법사는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수요에 비해 공급이 형편없이 딸리기 때문에 마나석은 정말 더럽게 비싸다.
그런데 마나석보다 더 귀한 돌이 있다. 바로 젬스톤이다.
젬스톤은 마나석과 비슷한 성질을 가지고 있는 돌이지만 뚜렷한 속성을 가진다.
무구에 마법진을 그려넣고 그 가운데 젬스톤을 박아 넣으면 젬스톤의 속성을 활용할 수 있다.
무기에 박으면 속성 데미지가 붙고 갑주에 박으면 속성저항력이 생긴다.
상급 이상의 젬스톤 중에는 근력, 민첩, 체력, 지혜 등 기본 스탯을 늘려주거나 퍼센테이지 단위로 증폭을 시켜주는 유니크 젬스톤도 있다고 한다.
이런 유니크 젬스톤 하나만 찾아내도 평생을 호의호식하면 살아갈 수 있는 거부가 될 수 있다.
‘메시엘 행성에 마나석과 젬스톤이 나온다면 이건 더 이상 단순한 유희가 아니다. 투자 개념으로 접근해야한다. 수지 덕분에 정말 좋은 정보를 얻었군.’
수지는 소울이 자신을 쳐다보며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는 지도 모른 채, 젬스톤을 구하면 꼭 예쁜 목걸이를 만들어서 목에 차고 다니겠다는 야심찬 헛소리를 한다.
정말 수지의 목에 젬스톤으로 된 목걸이가 걸리면 그녀는 며칠 못가서 모가지가 잘리게 될 것이라는데 소울은 자신의 전 재산을 걸 수 있다.
“그런데 마스터는 몬스터 잡으러 안가세요? 아참 등급이 엄청 낮다고 했지? 연두색인 것을 보면 최하급 히어로니까 북부대산맥 근처로 못가겠네요.”
“크윽.”
잘나가다가 수지는 소울의 가슴에 비수를 쑤셔 박았다.
그렇다고 사실을 얘기하는데 화를 낼 수도 없고 소울은 쥐구멍이 있으면 당장 들어가 숨고 싶어졌다.
“안 그래도 샤를이 나보고 남쪽의 동굴에 있는 던전을 탐사하자고 그러더라.”
“남쪽 동굴이요? 거긴 던전 탐사가 끝난 지 20년도 더 됐는데요?”
“엥, 그래?”
“네, 확실해요. 지금은 아마 최하급 몬스터들이 그 속에 들어가 살고 있을 거예요. 그런데 거긴 몬스터 사냥이라면 모를까 던전 탐사는 영 아니라고 봅니다. 이미 숟가락 한 개 남은 것까지 다 털렸다고 하던데요.”
수지의 말에 소울은 갑자기 등골이 서늘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시추에이션이지? 던전 탐사가 끝난 지 20년도 더 된 곳을 샤를은 왜 나보고 몬스터 사냥을 하러 가자고 하지 않고 던전 탐사를 하러 가자고 했을까?’
뭔가 아주 지저분하고 더러운 예감이 들었다.
만에 하나, 이게 샤를이 앙심을 먹고 꾸민 흉계라면 이대로 가만히 있는 것은 위험하다.
그러나 한편으론, 설마 소환사가 자신의 히어로에게 그렇게까지 못된 짓을 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도 만사불여튼튼이라고 미리 최악의 상황에 대비를 해놓는 것은 나쁠 것이 없다.
“수지야, 혹시 시장에 매운 고추나 코로 맡으면 재채기가 나는 것 없니?”
“뭐에다 쓰시게요? 아! 그거 혹시 호신용으로 치한의 얼굴에다 뿌리게요?”
“뭐? 호신용으로 얼굴에 뿌려?”
호기심을 내비치자 수지는 별거 아니라는 듯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그게 요즘 엘라즈라 왕국에서 유행하는 치한퇴치법이잖아요. 매운 향신료를 골라 모아서 작은 봉지에 넣고 다니다가 치한이 나타나면 얼굴이 확 뿌려버리는 것 말이에요.”
“오호!”
그는 점점 수지가 마음에 들었다.
어째 하는 말마다 하나같이 자신에게 꼭 필요한 정보만 쏟아내고 있었다.
“그것 좀 구할 수 없을까 가능하면 아주 독하고 매운 놈으로 말이야.”
“얼마나 필요하신대요?”
“작은 동굴 하나를 꽉 채울 정도라고나 할까?”
“그 정도면 시장에 가서 사야해요.”
“그래? 그럼 시장에서 사다주면 안되겠니?”
“알았어요. 돈 주세요.”
“크흠.”
소울은 수지가 자신을 향해 손을 내밀자 무안한 마음에 살짝 고개를 돌리면서 헛기침을 했다.
“이거 너무하시는 거 아니에요? 마스터가 제 기둥서방도 아니고…….”
“수지야, 정말 미안하긴 한데 나 좀 도와주면 안 되겠니? 내가 몬스터 잡아서 꼭 갚을게. 그리고 너도 알겠지만 히어로가 어디 가서 돈 떼먹고 도망갔다는 소문 들었어?”
“아, 그렇구나. 그런 소문을 들은 적은 없네요. 마스터처럼 빈털터리 히어로를 처음 봐서 제가 순간 흥분했어요. 까짓것 그동안 제가 번 돈 화끈하게 빌려 드릴 테니까 이자 제대로 쳐서 꼭 갚으셔야 해요?”
“그, 그래. 알았다. 꼭 갚을게.”
소울은 ‘빈털터리 히어로’라는 말에 큰 상처를 받으며 고개를 숙였다.
수지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욕실 겸 화장실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가더니 문을 꼭 잠갔다. 그리고는 잠시 후, 손에 한가득 금화를 쥐고 나타났다.
“뭐가 필요한지는 잘 모르지만 이 정도면 원하는 물건을 다 사실 수 있을 거예요.”
“그렇겠구나. 그런데 수지야?”
“네?”
“설마 그 이자라는 것 복리는 아니겠지?”
“네? 복리가 뭐예요? 혹시 사채업자나 고리대금업자들이 말하는 그 이자계산법을 말하는 거예요?”
“아니다. 됐다.”
수지는 절대로 남에게 돈을 빌리지 않는다.
특히 사채업자나 고리대금업자, 뒷골목의 깡패새끼들에게는 절대로, 죽어도 돈을 빌리지 않았다.
이런 놈들에게 돈을 빌렸다가 신세를 조진 웨이트리스들을 그녀는 지금까지 너무도 많이 봐왔기 때문이다.
소울은 수지가 복리라는 말조차 모른다는 것을 알고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아무리 돈을 빌려도 OO캐시, XX머니 등에서 돈을 빌리는 것은 정말 무서운 일이다.
특히 복리이자에 걸리면 원금과 이자가 정말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다행히 수지는 그런 쪽과는 거리가 멀어보였다.
“필요한 것이 뭔지 말씀해보세요. 대충 예산 좀 세워보게.”
“음, 일단 아까 말한 맵고 독한 향신료를 좀 사야겠다. 코와 입을 막는 마스크도 필요하고, 이마를 가릴 두건도 필요하겠네. 혹시 모르니 힐링포션과 해독포션도 하나씩 꼭 있어야해. 비상용으로 사용할 육포와 수통도 필요 하고, 로프와 작은 단검도 하나 있으면…….”
소울은 창피함을 무릎 쓰고 수지에게 돈을 빌려 당장 급한 것들을 사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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