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11 제 103 장 - 리콜(Recall) =========================================================================
병사들이 성문 위에서 화살을 날려대자 몬스터들은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며 하나둘씩 쓰러졌다.
그런데 몬스터의 외형이 아무리 봐도 여자들 같았다.
그것도 뽀얀 가슴을 덜렁거리며 움직이는 것을 보니 나체의 여자들이었다.
“그런데 저거 몬스터 맞아?”
“네, 몬스터 맞습니다. 마인족의 한 종류로 위밍이라고 부릅니다. 팔다리가 검고 털이 나있으며 날카로운 이빨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인족, 위밍?”
“이곳에 오신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맞습니까?”
“맞아.”
“역시 그랬군요. 비슷한 질문을 하시는 히어로 분들이 한둘이 아니셨습니다. 저놈들이 가끔 팔다리의 털을 밀고 잡아먹은 여인들의 옷으로 위장해 도시 안으로 들어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지금이야 들어오기 전에 이빨을 검사해서 그런 일이 더 이상 안생기지만 처음에는 위밍의 위장전술에 당한 도시들이 하나둘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수다를 떨어대는 병사는 가만히 놔두면 하루 종일 떠들 기세다.
하지만 낮잠을 거하게 자고 난 후라 소울은 굳이 샤를의 집에 돌아가서 처박혀있을 생각이 없었다.
적당히 맞장구를 쳐주면 알아서 여러 가지 요긴한 정보를 쏟아내는 자니 친해져서 나쁠 것은 없을 것 같았다.
“네 이름이 뭐지?”
“심슨입니다.”
“심슨? 참으로 좋은 이름이구나.”
“하하하, 그걸 어떻게 아셨죠? 원래 제 이름은 엔펠에서도 상류층이나 그 어원을 알고 있습니다. 엔펠이 엘라즈라 왕국에 편입되기 한참 전의 일이니까…….”
소울은 그의 이름이 만화의 주인공과 같아서 좋은 이름이라고 했는데 심슨은 정말 자신의 이름에 대해 침을 튀어가며 열변을 토해냈다.
이렇게 가다가는 30분은 그의 이름의 유래와 역사를 들어야 할 것 같았다.
그는 중간에 적당히 끊고 궁금한 것을 물어봤다.
“심슨, 사실은 몇 가지 궁금한 점이 있어서 그런데 좀 물어봐도 될까?”
“물론입니다. 혹시 시간되시면 저하고 저기 펍(pub)에 가서 한잔 하시겠습니까?”
“그것도 나쁘지 않겠군. 그런데 이거 어쩐다. 내가 사실은 오늘 이곳에 와서 돈이 없는데?”
“헉, 오늘 오셨다고요? 이거 정말 영광이네요. 괜찮습니다. 어차피 시원한 맥주나 몇 잔 하려고 한 건데요, 제가 내지요. 히어로님은 앞으로 돈 많이 버시게 될 테니 나중에 거하게 한잔 쏴주세요.”
“그러지.”
심슨은 화끈했다. 당연히 소울은 그의 화통한 성격이 마음에 들었다.
그는 성문의 상황을 확인해보더니 미련 없이 교대를 해버리고 퇴근한다고 나왔다.
제법 인심이 있고 끗발이 높아서 아무도 그를 제지하는 자는 없었다.
“위밍은 어떻게 됐지?”
“30마리로 지들이 뭘 어떻게 하겠습니까? 모조리 화살에 꼬치처럼 꾀여 몰살을 당했습니다. 제가 보기엔 저놈들이 단체로 뭘 잘못 처먹은 모양입니다. 보통은 이렇게 무식하게 안쳐들어 오는데 말이에요.”
“하긴 그렇긴 하군. 아무리 몬스터가 미련하다고 해도 저런 식으로 공격을 해오는 것은 좀 상식 밖이야.”
“원래 몬스터라는 놈들이 상식 밖의 존재가 아니겠습니까? 어서 빨리 펍으로 가서 시원한 맥주 맛이나 보시지요. 잘하면 오늘 수지라는 년이 히어로님을 모신다고 설쳐댈 수도 있습니다.”
“수지?”
여자 얘기가 나오자 남자인 소울도 호기심이 생겼다.
“하하하, 있습니다. 가슴이 달덩이 같은 예쁜 웨이트리스지요. 마음에 드는 놈은 가끔 돈도 안 받고 그냥 주기도 한답니다.”
“그래?”
그의 말을 들어보니 이곳은 성적으로 무척 개방적인 곳 같았다.
“마스터, 오셨군요?”
그때 그의 앞으로 샤를이 나타났다.
“샤를, 여기 있었군.”
“몬스터는 어떻게 됐습니까?”
“성벽 위로 올라가보니 내가 할 일이 하나도 없던데?”
“왜요? 성문에 위밍이 30마리는 나타났다고 하던데요?”
“병사들이 활로 다 잡아 죽이더라고.”
“네에? 그럼 그걸 보고만 계셨단 말입니까?”
샤를은 소울의 말에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지으며 쳐다봤다.
“그럼 어떻게 해?”
“당연히 성문으로 뛰어 내려서 위밍을 잡아 죽이셨어야죠.”
“내가 왜?”
“예에?”
이번에는 소울이 샤를을 쳐다보며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지었다.
소울과 샤를은 이렇게 서로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샤를은 어떻게든 몬스터를 잡아서 돈을 벌기 원했고, 소울은 병사들이 잡고 있는 몬스터를 굳이 자신이 나서서 잡으려고 하지 않았다.
“휴우, 알겠습니다. 이번에는 제가 그냥 넘어가지요. 원래 제가 먼저 이런 상황에 대해 설명을 드렸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집에 가서 전부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래, 나중에 내가 집에 가면 얘기하자고.”
“어? 마스터께서는 지금 집으로 안가십니까?”
“술 한 잔 하러 펍에 간다. 그러니까 먼저 집에 가 있어.”
“네에?”
샤를은 눈을 크게 뜨고 황당해했다.
오늘 막 소환 된 히어로가 몬스터는 잡을 생각을 않고 술부터 마시려고 하다니 정말 기가 막혔다.
그것도 높은 등급의 히어로라면 말할 필요도 없이 자신이 대접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최하급 중에서도 최약체로 보이는 히어로가 앞으로 어떻게 하려고 저러는지 그는 전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샤를, 나중에 보자.”
“…….”
소울은 굳이 샤를의 대답을 듣지 않았다.
심슨은 샤를의 눈치를 보다가 잽싸게 소울의 옆으로 따라붙었다.
“이런, 감히!”
그때, 소울의 걸음이 딱 멈췄다.
그리고는 바로 몸을 돌리고는 샤를에게 다가왔다.
“너 지금 뭐라고 말했어?”
“네? 아무 말도 안했는데요?”
샤를은 당황해서 얼굴을 붉혔다.
소울은 눈을 가늘게 뜨고는 그를 노려봤다.
“아무래도 너와 나는 상성이 좋지 않은 것 같다. 맘에 들지 않으면 우리 이쯤에서 서로 계약파기하자. 응?”
“네? 아닙니다. 저는 전혀 불만 없습니다. 계약파기라니요? 절대 그럴 일 없습니다.”
“그래? 그럼 앞으로 주둥아리 좀 함부로 놀리지 마라. 나 뒤에서 개소리 하는 것 무척 싫어하거든. 그럼 조심히 집에 가라.”
“네, 마스터.”
소울은 몸을 돌려 심슨을 향해 걸어갔다.
하지만 얼굴은 얼음장처럼 차가워져 있었다.
샤를이 하는 말을 그는 분명히 들었다.
‘하아, 이거 뭔가 처음부터 단단히 꼬였네. 샤를과의 궁합이 전혀 안 맞잖아? 아니 궁합이 문제가 아니라 상극이나 마찬가지네. 앞으로 어떻게 하지?’
그는 샤를과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하지만 기왕 여기 온 것 맥주 맛이라도 보고 정보라도 좀 얻어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샤를은 얼굴을 푸들푸들 떨면서 집으로 혼자 걸어갔다.
빚은 산더미 인데 소환된 히어로는 최약체에 컨트롤이 전혀 되지 않는 위인이다.
자신이 비록 말실수를 하긴 했지만 계약파기라는 말을 먼저 꺼내는 것을 보면 성질도 엿 같은 놈이 분명했다.
‘아무래도 제임스와 의논을 해봐야겠어. 정 안되면 암흑의 상인에게 팔아치우는 수밖에…….’
세상에는 참 다양한 사람이 산다.
그중에는 인육을 즐기고 사람의 피를 마시는 것을 좋아하는 변태들도 있었다.
뱀파이어들이 히어로의 피를 좋아해서 비싼 값에 정보를 산다는 루머도 있었다.
들키지만 않으면 단박에 손해를 만회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들키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우헤헤헤헤!”
심슨은 정말 기분이 좋았다.
귀족들도 하늘처럼 떠받드는 히어로와 이렇게 대작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가 않았다.
그래서 그는 거나하게 취한 채 마구 웃음을 터뜨리고 있었다.
“푸하하하하!”
소울도 간만에 얼큰하게 취해서 기분이 좋았다.
본신이었다면 술을 아무리 먹어도 바로 몸에서 분해를 시켜버리는 통에 취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바닥까지 떨어진 신체능력은 커다란 맥주잔을 몇 번 비웠더니 바로 정신이 몽롱해지고 기분이 하늘 끝으로 붕 뜨는 것 같이 좋아졌다.
쉽게 말해 취했다는 것이다.
두 사람의 묘한 조합은 결국 펍 안에 주당들까지 끌어 모아 한 무리가 됐고 이후에는 온갖 음담패설과 말도 안 되는 루머들을 쏟아내며 축제분위기를 만들었다.
펍의 주인인 분위기가 올라가며 매상이 급증해서 얼굴에 가득 미소를 지었고 웨이트리스도 기분파가 되어 팍팍 쏘아대는 손님들의 팁에 절로 목소리가 간드러졌다.
그중의 백미는 역시 가슴이 달덩어리만 하다는 웨이트리스 수지였다.
그녀는 소울의 무릎 위에 올라앉아 잔뜩 달아오른 얼굴로 연신 키스를 해대며 그의 몸을 쓰다듬었다.
소울이 아무리 최약체의 히어로라고 해도 명색이 히어로인데 몸이 빈약할리 없다.
겉으로 보기에는 날렵해 보이지만 막상 손으로 만져보면 탄탄한 근육이 빨래판처럼 쫙쫙 갈라진 놀라운 신체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마스터, 정말 여자를 한 번도 접하지 않으셨어요?”
“그렇다니까. 난 아직 동정이야.”
소울의 본신은 아니지만 소울의 리콜아바타는 엄연히 동정의 몸이다.
“어머 그럼 오늘 제가 천상의 경험을 시켜드릴까요?”
“천상의 경험?”
소울의 말에 심슨이 손뼉을 치며 소리쳤다.
“수지, 너 어디서 되도 않는 수작을 부리는 거야? 우리 히어로님, 아니 마스터께서 너에게 성은을 내려줄 군번이시냐? 어디 하늘같은 마스터님을 털도 안 뽑고 그냥 냠냠하려고 들어?”
“아이, 참! 왜 자꾸 방해를 하고 그래요? 마스터님의 그것은 뭐 금으로 만들었나요? 나라고 히어로님과 하면 안 된다는 법 있어요?”
“푸하하하하, 수지! 네가 아주 발정이 났구나. 이거 너무 들이대는데?”
“크하하하, 미치겠다. 우리 펍의 요정! 수지가 마스터님에게 아주 반해도 단단히 반했구나?”
심슨을 비롯한 주당들은 수지의 돌 직구에 좋다고 박장대소를 터뜨렸다.
소울은 얼큰하게 취한 김에 못이기는 척하고 한번 즐겨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펑퍼짐한 엉덩이와 터질 것 같은 풍만한 가슴을 제외하고도 수지는 얼굴만으로도 제법 예쁜 여자였다.
금발에, 푸른 눈에, 새하얀 피부에, 글래머한 몸까지…….
더구나 수지는 지금 자신에게 맛탱이가 확 가있어서 원한다면 당장 홀라당 벗고 다 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리콜 첫날부터 이렇게 보내는 것은 좀 곤란한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일이라는 것이 언제나 자신의 생각대로만 흘러가는 것은 아니었다.
“아이고, 머리야.”
아침에 눈을 뜨자 머리가 깨질 것처럼 아파왔다.
오랜만에 숙취라는 놈을 만나자 반갑기 보다는 죽여 버리고 싶었다.
두 손으로 머리를 잡으려고 하는데 손에 뭔가 꽉 차면서 말캉말캉한 것이 쥐어졌다.
눈을 뜨고 고개를 옆으로 돌리자 수지가 입에 침을 흘리면서 자고 있는 것이 보였다.
자신의 손은 그런 수지의 가슴을 한가득 쥐고 있었다.
“헉, 뭐야 이거? 결국 어제 내가 사고 친 거야?”
기억이 나지 않았다.
한마디로 필름이 뚝 끊긴 것이다.
그는 돌덩이처럼 무거운 수지의 머리를 옆으로 치우고 팔을 빼냈다.
피가 안통해서 그런지 저릿저릿한 것이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고, 마치 남의 팔 같았다.
한참을 주물러대자 겨우 팔에 감각이 돌아왔다.
벌컥벌컥!
침대 옆에 주전자가 보이자 주둥이를 입에 대고 통째로 마셨다.
“카아!”
위장에 찬 물이 들어가자 정신이 좀 돌아오는 것 같았다.
자신과 수지는 어제 거사를 치렀는지 둘 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고 있지 않았다.
아무래도 자신의 동정을 수지가 기어코 뺏어간 모양이다. 못된 년!
그는 그런 수지가 그리 밉지 않았다. 아니 당돌하기 짝이 없는 수지의 적극적인 행동에 오히려 호감이 생겼다.
말랑말랑!
탱 탱 탱!
소울은 잠시 정신이 깨기를 바라며 수지의 탄력 있는 가슴을 손으로 주물럭거리며 장난을 쳤다.
아침이라서 그런지 이미 우뚝 서서 주인을 보며 건방지게 껄떡이는 녀석의 대가리가 보였다. 무척 건방진 태도다.
하지만 옆에 홀딱 벗고 대자로 뻗어 있는 수지의 새하얀 몸을 보자 그게 또 녀석을 의지해 시원하게 살풀이를 한번 해야 할 것 같기도 했다.
건방진 녀석보다 더욱 한심하고 줏대 없는, 깃털 같은 주인이다.
수지는 전혀 깰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니 이젠 살짝 코까지 골아댔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소울은 깨끗이 운우지락을 포기하고 옷을 주어 입었다.
바닥에 내팽개쳐진 갑주를 걸치고 침대 밑에 굴러다니는 검과 대도를 전부 챙긴 소울은 수지의 입술에 가볍게 키스를 한번 해주고는 밖으로 나왔다.
“마스터!”
“샤를, 꺼어억!”
어떻게 알았는지 펍의 2층에서 내려와 밖으로 나오자 샤를이 그를 맞이했다. 하지만 때마침 튀어나온 트림에 샤를은 자신의 코를 막고는 오만인상을 다 써댔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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