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10 제 103 장 - 리콜(Recall) =========================================================================
“샤를이 똥 밟았군.”
“그러게 말이야. 어떻게 소환을 해도 등급이 제일 낮은 최하급 히어로를 소환했냐?”
“저 정도면 투자 대비 가치가 현저하게 떨어지겠는데?”
“히어로를 언제 키워서 써먹지?”
“앞으로 고생 좀 하겠구먼.”
“차라리 계약을 해지하는 게 오히려 돈이 더 적게 들 거야.”
“그럴지도 모르지.”
솔직히 기분이 좋지 않았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달려가서 아가리를 함부로 놀린 놈들의 옥수수를 털어버리고 팔다리를 분질러 놓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정말 그런 짓을 해버리면 애써 여기까지 리콜을 온 보람이 없다.
아직까진 불쾌감을 사람들에게 드러낼 정도로 화가 나진 않았다.
특히 얼굴에 드러내놓을 정도로 그의 내공이 약하지도 않다.
‘어딜 가나 역시 힘이 있어야 대접을 받는군. 리콜도우미가 말한 불쾌한 일을 당할 수 있다는 말이 바로 이런 것을 두고 한 말인가?’
생각해보니 정말 기가 막힌 일이다.
자신들이 아쉬워서 신전에서 히어로가 소환되기를 간절히 빌어놓고, 막상 좀 약할 것 같은 히어로가 나오니까 실망할 것은 뭐란 말인가?
더군다나 소울이 가져온 스킬은 그의 주력 스킬인 소환이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태에서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는 샤를을 보고 소울은 크게 실망하며 속으로 혀를 찼다.
“여깁니다. 오늘은 이곳에서 편하게 푹 쉬십시오.”
“그러지.”
몰락귀족도 귀족은 귀족인지 생각보다 번듯한 저택을 가지고 있다.
그를 안내한 방을 보니 무척이나 공을 들여 꾸민 티가 났다.
깨끗한 시트가 깔린 푹신한 침대에 고급스런 소파가 놓여 있고 방 한쪽에는 개인 욕실과 화장실까지 갖춰져 있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방안에 인형이 세워져 있고 겉에 몬스터의 가죽으로 만든 것으로 보이는 갑주와 잘 정련된 무기가 걸려있다는 점이다.
‘나보고 이걸 입고 싸우라는 말이군.’
소울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샤를은 많이 실망했는지 그를 방으로 안내하고는 곧바로 밖으로 나가버렸다.
차라리 잘 됐다는 생각에 소울은 보급형으로 만들어진 리콜아바타, 즉 자신의 몸을 살펴봤다.
본판 자체가 그를 본 딴 복제품이니 팔다리의 근육만 만져 봐도 대충 어느 정도인지 감이 온다.
탁 탁탁탁 탁탁탁!
훅 후욱 훅훅 후욱!
복싱자세를 취하고 가볍게 스텝을 밟아봤다. 원투 스트레이트를 날리며 펀치와 스피드를 가늠했다.
살짝 위로 점프를 해보기도 하고, 팔 굽히기를 해서 근력도 측정했다.
갑주를 입고 검과 대도(大刀)를 들어 차례로 휘둘러 봤다.
스킬을 사용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머릿속에 고스란히 담겨있는 각종 최상급의 무공과 전투경험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흐음, 아주 나쁘진 않군. 하지만 그래봐야 메시엘 행성의 기사에 비해 특별히 잘난 것도 없는 몸이로구나.’
소울은 다시 갑주를 벗고 무기를 제자리에 가져다 놓았다.
몸에서 가볍게 열기가 느껴지는 것을 보니 적당한 운동은 된 모양이었다.
“상태창!”
소울은 상태창을 외쳤다.
그러자 눈앞에 자신만 볼 수 있는 반투명한 창이 나타났다.
“역시!”
혹시나 했는데 역시 소울넷의 상태창은 자신을 실망시키지 않는다.
소울넷 시스템은 몸과는 상관없이 그의 영혼에 새겨져 작동하는 것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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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태창·소울넷 상급 인터페이스·리콜 모드
이름: 이소울
칭호: 풋내기 히어로(근력+1)
등급: 최하급 히어로
직업: 샤를의 히어로
카르마: 100
싱크로율: 0.1%
스탯: 근력 21(20+1), 민첩 22, 체력 19, 지혜 23
스킬: 소환
소울넷 포인트: 100,00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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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상 상태창을 열자 그는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동안의 경험을 토대도 분석해본 자신의 스탯은 그리 아름답지 못했다.
건강한 성인이 가지고 있는 평균 스탯을 10으로 잡았을 때 딱 두 배인 20 정도를 가지고 있었다.
아무리 싸움은 기술이라고 하지만 강한 힘과 신체를 가지고 있다면 기술의 우위를 상쇄할 수 있다.
이 정도면 분명히 자신보다 훨씬 강한 하드웨어를 가진 기사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리콜의 대가로 카르마 100을 받긴 했는데 이것은 어디에 사용하는 용도인지 알 수가 없다. 싱크로율도 형편없었고, 구체적으로 뭘 의미하는지도 정보가 없어 파악이 불가능했다.
이제 자신이 기대볼 수 있는 것은 소환 스킬과 소울넷 포인트뿐이다.
“소울넷 상점! 엥?”
하지만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소울넷 상점은 아예 열리지도 않았다.
“이런, 그럼 결국 소환뿐인가?”
소울은 일단 까뮤를 소환해봤다.
“까뮤 소환!”
스팟!
소울은 허공에 나타난 검뎅이 숯 같은 것을 보고는 기절할 듯 놀랐다.
“까뮤, 아니 이건 까망이잖아?”
“규!”
“이런 제기랄!”
그는 절로 욕이 나왔다.
자신이 처음 까망이를 소환할 때를 생각하자 화가 두 배로 치솟았다.
그제야 싱크로율이 뭔지 대충 알 것 같기도 했다.
‘설마 본신의 능력이나, 소환 스킬로 부른 소환수의 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척도를 말하는 건가?’
자신이 생각이 맞는다면 소환스킬을 선택한 것은 최악의 패였다.
혼자라면 예전처럼 어떻게 든 살아남아 성장을 하겠지만 지금 자신은 샤를의 히어로로 리콜 되어 온 것이다.
당연히 샤를은 자신의 찌질한 모습을 원하는 것이 아닌 강대한 힘을 발휘하는 히어로를 원하고 있다.
지금의 능력으로는 샤를을 보호하면서 같이 몬스터를 사냥하거나 적군과 싸울 자신이 없었다.
“까뮤 소환해제! 푸티나 소환!”
스팟!
까뮤가 사라지고 푸티나가 소환됐다.
소울은 절로 고개를 흔들었다.
푸티나는 아직 제대로 눈도 뜨지 못하는 아기곰의 모습이었다.
“푸티나 소환해제! 렉시 소환!”
스팟!
“케엑!”
렉시는 정말 답이 없었다.
불새가 아니라 아예 알 상태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제기랄, 렉시 소환해제! 본 소환!”
스팟!
마지막으로 본까지 소환해봤다.
“깍!”
“이런 개 같은…….”
이제 확실한 결론이 났다.
자신은 지금 개뿔도 없는 말만 히어로다.
스스로 최고라고 여기고 선택한 소환 스킬은 이곳에선 최악의 선택이었다.
해골과 뼈로 된 본이 뼈검과 뼈방패를 들고 있는 모습을 보자 이보다 더 확실할 순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아, 이럴 줄 알았다면 스킬을 구매하거나 소울 크리스털을 사는 것을 좀 늦추고 고급형 리콜아바타를 살 걸 그랬네. 실버형만 되도 어디 가서 무시를 당하지는 않았을 텐데…….’
후회는 아무리 빨리해도 늦는 법이다.
그래도 그나마 본이 제일 전투력이 있어보였다.
하지만 그래봤자 언데드 중 가장 허접한 편에 들어가는 스켈레톤 일뿐이다.
“본, 소환해제!”
스팟!
누가 볼세라 소울은 얼른 본을 소환해제 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자신의 소환수 중 하나를 소환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일이다.
그리고 아직은 완전히 실망할 단계가 아니었다.
리콜히어로는 소환자와 같이 성장을 하는 시스템이라고 들었다.
서로 힘을 합친다면 처음에는 좀 힘들어도 분명히 빠르게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가만, 그런데 리콜은 어떻게 해제하지?’
문제는 그게 아니다.
그는 가장 중요한, 돌아가는 방법을 모르고 있었다.
죽으면 리콜펜타곤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런 식으로 죽어서 돌아가는 것은 말 그대로 죽기보다 싫었다.
‘혹시 귀환?’
귀환을 생각하자 즉시 자신의 눈앞에 말풍선이 나타났다.
-귀환하시겠습니까? 소환자의 동의 없이 귀환하게 되면 대량의 페널티를 받습니다.
“이런 젠장.”
말풍선이 뜨자 좋아하다가 소환자의 동의 없이 귀환하게 되면 대량의 페널티를 받는 다는 글을 보자 뭔가 똥 밟은 기분이 들었다.
“에라 모르겠다. 일단 좀 두고 보자.”
소울은 침대 위로 점프를 해서 대자로 누워버렸다.
골치 아플 때는 그냥 잠을 자는 것도 좋다.
긴장을 풀고 여기서 잠 좀 잔다고 누가 와서 죽일 것도 아니다.
그리고 설사 자신이 죽는다고 해도 죽는 것이 진짜 죽는 것도 아니다.
그저 자신이 산 보급형 리콜아바타가 부서질 뿐이다.
부서진 리콜아바타는 리콜펜타곤에 가서 고치면 된다.
그러니 소울넷 포인트만 넉넉하면 사실 이곳에서 뭔 짓을 저질러도 두려울 것이 없다.
쿨쿨쿨!
그는 정말 오랜만에 아무런 걱정 없이 단잠을 잤다.
엘리스, 서머너즈 길드, 차원의 균열, 가족 등 모든 부담을 다 벗어버린 그의 모습은 평화롭기만 했다.
쾅쾅쾅!
하지만 곧 그의 평화로운 잠은 누군가에 의해 방해를 받았다.
“뭐야?”
소울의 입에서 살짝 짜증 섞인 고함소리가 터져 나왔다.
“마스터, 큰 일 났습니다. 몬스터가 쳐들어왔습니다.”
“뭐야?”
방문 밖에서 샤를의 떨리는 소리가 들려오자 소울은 잠이 확 깼다.
“알았다. 금방 나가지.”
“네, 마스터. 빨리 나와 주세요.”
소울은 벌떡 일어나 눈을 비볐다.
인형에 입혀진 갑주를 보자 즉시 벗겨서 자신의 몸에 걸쳤다.
신기하게도 갑주는 미리 맞춘 것처럼 자신에게 딱 맞았다.
갑주는 팔을 제외한 상체를 가린 가죽갑옷과 무릎까지 내려온 스커트 같이 생긴 가죽바지 그리고 얼굴이 드러나는 투구가 한 세트였다.
가죽부츠에 쇠로 된 징을 박은 전투화를 신고 두꺼운 몬스터 가죽으로 만든 팔목 보호대까지 착실하게 챙긴 소울은 좀 짧은 듯 느껴지는 검을 등에 차고 대도(大刀)를 손에 들었다.
묵직한 대도의 무게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
‘이제 가볼까?’
쾅!
그는 발로 문을 걷어차 열어버리고는 정문을 통해 저택의 밖으로 나갔다.
“마스터, 빨리 가십시다. 몬스터들이 엔팔의 외성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그래. 알았다. 어서 가보자.”
샤를은 자신의 소환에 응한, 이 마스터라는 이름의 히어로가 영 미덥지 못했다.
이마의 한가운데 자리한 히어로 크리스털은 분명히 옅은 연녹색으로 빛나고 있다.
그것은 최하급 히어로 중에서도 가장 약한 축에 들어가는 히어로라는 걸 증명해주고 있다.
하지만 이제 와서 어쩌겠는가?
그는 자신의 소환에 처음으로 응한 히어로다.
그동안 자신만의 히어로를 소환하려고 신전에 가져다 바친 재물이 결코 적지 않았다.
만약 이번에 이 히어로가 응답하지 않았다면 자신은 이미 파산을 선언해 깡통을 찼을 것이다.
샤를은 통통한 몸매에도 불구하고 정말 열심히 달려갔다.
이마에는 땀이 줄줄 흘러내렸고 몸에서는 쉰 냄새가 진동했다.
그러나 샤를을 따라가는 소울은 느긋하기만 하다.
처음에는 샤를이 호들갑을 떨어서 당장 자신이 있는 엔팔이라는 도시가 몬스터 무리에 함락이라도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엔팔에는 높고 단단한 성벽을 두른 내성과 외성이 존재한다.
몰락귀족도 귀족은 귀족이라 내성의 끝자락에 샤를의 집이 있다.
내성은 안전하다.
내성 밖으로 나가자 멀리 외성이 보인다.
외성으로 가는 길에도 몬스터가 침입한 흔적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그제야 소울은 샤를의 성정이 작은 것에도 쉽게 놀라고 호들갑을 떠는 놈이라는 것을 눈치 챘다.
샤를이 통통한 몸으로 뛰어가는 속도보다 소울이 걸어가는 속도가 훨씬 더 빠르다는 것도 알게 됐다.
소울은 여유를 되찾았다.
‘소환수가 아무리 강해도 소환사가 약골이면 대책이 없는 법인데……. 이놈은 아예 운동하고는 담을 쌓았군. 내 앞에 첩첩산중으로 깔린 고생길이 보이는구나.’
절로 한숨이 새어나왔다.
“헤엑, 헤엑, 마스터, 저기가 외성입니다.”
“알았다. 너는 여기서 좀 쉬고 있거라.”
“네, 감사합니다.”
소울은 더 이상 샤를과 같이 가봐야 도움이 안 될 것 같아 그냥 여기서 쉬고 있으라고 내버려뒀다.
그는 한손으로 대도를 들고는 외성 벽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타고 빠르게 성벽 위로 올라갔다.
“아!”
성벽 위에서 본 엔팔 외부의 모습은 한마디로 장관이었다.
끝없이 펼쳐진 진한 녹색의 수해(樹海)가 보기만 해도 가슴을 시원하게 만들었다.
잠시 밖을 구경하다가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리는 성문 쪽으로 다가갔다.
“어? 히어로께서 오셨다.”
“수고가 많다. 몬스터가 침입했다고?”
“아닙니다. 침입한 것은 아니고 외성의 성문을 공격하는 것을 퇴치중입니다.”
“그래?”
병사들은 소울의 이마를 쳐다보더니 히어로인 것을 확인하자 친절하게 설명해줬다.
소울은 그들에게 가볍게 미소를 지어주곤 몬스터가 어디를 공격하고 있는지 살펴봤다.
‘에게, 겨우 30마리잖아?’
소울은 몬스터라는 놈들의 숫자를 빠르게 세어보곤 입맛을 다셨다.
외성 성문을 지키고 있는 병사만 해도 세 자리 숫자가 넘어가니 굳이 자신이 나설 일은 없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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