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OULNET-405화 (405/492)

00405   제 102 장 - 리턴(Return)  =========================================================================

세월은 유수(流水)처럼 흐른다.

사람은 어머니의 자궁에서 태어나 아기가 되고 아무 걱정도 없이 젖을 빨고 무럭무럭 자란다.

몸을 뒤집고 기기 시작하다가 어느새 걷고 뛰어다닌다.

유치원을 거쳐 초등학교, 중고등학교에 가서 공부를 하고 운동을 배우고 세상의 지식을 습득한다.

운명의 상대를 만나 사랑을 하고 때론 이별의 아픔을 겪기도 하고 때론 결혼에 성공하기도 한다.

사회로 바로 나와서 돈을 벌거나 대학을 나와서 직업전선에 뛰어든다.

아이를 낳고 가정을 부양하고 은행에서 대출을 해서 집을 장만한다.

그렇게 열심히 살다가 보면 어느새 아이들은 다 커버리고 다시 사랑하는 아내와 자신, 둘만 남게 된다.

이 모든 것이 마치 흐르는 물과 같이 빠르게 지나가지 않는가?

엊그제 학교를 졸업한 것 같은데 어느새 명퇴를 하고 나서 아내의 눈치를 보고 사는 가장들이 세상에는 차고도 넘친다.

하지만 소울은 엘리스와 연인이 된지 30년이 넘도록 그런 구박 비슷한 것조차 한번 받아보지 않고 행복한 결혼 생활을 누려왔다.

복싱과 종합격투기 모두 각각 5체급씩을 석권하고 통합챔피언이 되어 엄청난 명예와 부를 거머쥐었다.

이제는 현역에서 은퇴를 해 복싱과 종합격투기의 양성화와 부흥을 위해 젊고 능력 있는 선수들을 스카우트하여 유명 프로모터로 활약하고 있다.

최근에 그가 손을 댄 선수들이 빅 매치에서 모두 대박을 터트리는 바람에 소울은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엘리스도 스탠포드 의대를 무사히 졸업하고 인턴과 레지던트를 거쳐 내과전문의가 됐다. 그녀가 병원에서 받는 돈도 꽤 되지만 소울이 이미 벌어 놓은 돈에 비하면 새 발의 피라 그녀가 번 돈은 그녀의 용돈개념으로 사용되고 있다.

“허니, 존과 하이디도 이제 제짝을 찾았으니 한 시름 놨어요.”

“그러게 말이야?”

“우리 이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여행을 다녀올까요?”

“여해? 좋지. 안 그래도 좀 쉴까 생각 중이었어. 그동안 너무 열심히 달려왔거든.”

그의 말에 엘리스는 조금도 늙지 않는 얼굴을 소울의 어깨에 기댄 채 그의 팔에 팔짱을 끼었다.

여전히 아름다운 그녀의 모습에 소울은 가볍게 키스를 해주곤 정든 우드사이드의 집에 잘 꾸며진 정원을 바라봤다.

양쪽 집을 구매해서 넓게 터버린 상태라 그의 집은 유난히 정원이 넓었다.

커다란 흔들의자에 앉아 있는 그들의 눈에 아름다운 정원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당신을 만나서 행복했어요.”

“나도 당신을 만나서 행복해.”

“당신은 내가 밉지 않으세요?”

“왜 내가 당신을 미워해?”

소울이 말도 안 된다는 듯한 표정을 짓자 엘리스는 고개를 가만히 흔들더니 물어왔다.

“만약에 제가 당신에게 씻지 못할 죄를 저질렀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거예요.”

“당신이 왜 나한테 죄를 져?”

“아잉, 만약에 말이에요.”

“글쎄. 과연 그런 일이 생길까?”

소울은 엘리스가 오늘 왜 이러나? 하며 그녀의 얼굴을 쳐다봤다.

그러고 보니 오늘따라 그녀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했다.

“무슨 고민 있어?”

“아니에요. 고민 없어요. 그저 당신이랑 이렇게 30년을 넘도록 같이 살아 온 나날들이 너무나도 감사해서 그래요.”

“사실은 나도 비슷한 생각을 했어. 그런데 혹시 말이야 다음 생에 우리 다시 만나면 당신은 나와 또 결혼을 할 거야?”

“물론이죠. 전 몇 번을 다시 태어나도 당신과 꼭 결혼 할 거예요.”

엘리스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확신에 찬 말투로 대답을 했다.

“왜?”

“그거야 난 당신을 사랑하니까 그렇죠.”

“그렇구나.”

소울은 만족한 미소를 지었다.

이번에는 엘리스가 물었다.

“당신은 어떻게 할 거예요?”

“흐음, 잘 모르겠어. 그때가 돼봐야 알 것 같아.”

“뭐라고요? 이런 나쁜 사람!”

“아얏! 꼬집지 마. 아프다고.”

“빨리 제대로 대답 안 해요?”

소울은 엘리스의 꼬집기 신공에 결국 항복을 하고 말았다.

“하하하, 알았어. 알았다고. 다음 생애에 다시 만나면 꼭 당신과 결혼할게.”

“고마워요.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어요.”

“죽기는 무슨? 앞으로 나와 백년해로해야지.”

“내가 그렇게까지 오래살 수 있을까요? 아니 전 그렇게 오래살고 싶지 않아요. 난 그저 당신이 나를 사랑하는 모습만 기억하다 죽고 싶어요.”

“오늘 정말 이상하네. 왜 자꾸 이상한 소리를 해.”

“그건 그녀가 곧 올 시간이 됐기 때문이에요.”

“그녀라니?”

“까뮤라고 알고 계시죠?”

“헉, 당신이 까뮤를 어떻게 알아?”

엘리스는 처연한 미소를 지었다.

“그걸 왜 모르겠어요. 당신은 언제나 그녀를 생각하며 살고 있는데요.”

“알고 있었구나.”

“당신에 대해 내가 모르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요. 당신을 조금만 일찍 만났다면 내 인생은 정말 달라졌을 거예요.”

“그건 또 무슨 말이야?”

소울의 안색이 조금씩 굳어갔다.

정말 오늘 그녀의 행동은 이상하기 짝이 없었다.

“아! 왜 이렇게 졸리죠? 잠이 마구 쏟아져요.”

“내 무릎에 누워서 잠을 좀 자도록 해. 잠이 들면 내가 침대로 옮겨줄게.”

“고마워요. 그리고 소울, 사랑했어요. 죽는 날까지 내 마음은 절대 변하지 않을 거예요.”

“나도 당신을 사랑해. 알지?”

“네, 잘 알아요. 그리고 미안해요.”

“뭐가?”

“그냥 모든 것이 다 미안해요.”

“허어, 참 오늘 정말 실없는 소리를 많이 하네. 피곤해서 그런가 보다. 그냥 눈 감고 여기에 누워.”

“네.”

엘리스는 소울의 무릎을 베게삼아 누웠다.

그리고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잠에 빠져 들었다.

소울은 잠에 빠진 엘리스의 얼굴을 가만히 손으로 어루만졌다.

그때 그녀의 얼굴에 그늘이 만들어졌다.

고개를 들자 환한 미소를 짓고 있는 까뮤가 눈앞에 서 있었다.

“까뮤?”

“마스터!”

“오랜만이야.”

“과연 그럴까요?”

“그럼 아닌가?”

소울이 고개를 갸웃하자 까뮤는 그의 옆에 앉았다.

엘리스가 누워있는 자리에 앉으려고 하자 소울이 그녀를 말리려고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하지만 엘리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어, 어디 갔지?”

“원래부터 그녀는 거기 없었어요.”

“그게 무슨 소리야?”

“마스터, 이제 돌아갈 시간이에요. 정말 긴 시간동안 고생하셨어요. 제가 능력이 부족해서 오라클의 고유능력을 흡수하는데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고야 말았어요. 긴 시간을 이곳에 갇혀 지내게 만든 점,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까뮤가 그에게 깊숙이 고개를 숙였다.

“까뮤, 난 지금 까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모르겠어.”

소울이 고개를 좌우로 흔들자 까뮤는 소울의 얼굴을 가만히 두 손으로 잡더니 자신의 입술을 가져왔다.

쪽!

살짝 입맞춤을 한 까뮤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사실은 마스터도 이미 눈치 채고 계셨죠?”

“뭘?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야?”

소울은 까뮤의 말에 크게 당황해했다.

“제가 하나도 늙지 않았잖아요.”

“까뮤가 늙을 이유가 어디 있어?”

“그렇죠? 전 당신의 소환수인데 어떻게 늙겠어요?”

“으음.”

소울은 까뮤의 돌 직구에 침음성을 흘렸다.

“그럼 엘리스는 왜 늙지 않았을까요?”

“그, 그거야…….”

궁색한 변명은 더 이상 통하지 않을 것 같다. 결국 소울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녀의 질문은 계속됐다.

“꿈에서 하는 사랑이 정말 사랑일까요? 꿈에서 한 약속이 전부 진실한 약속일까요? 그것도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꿈의 세계에서 말이에요.”

“…….”

그의 눈에서 굵은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까뮤는 소울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보자 더 이상 보채지 않았다.

“마스터! 돌아갈 시간이에요. 하지만 마스터가 돌아가길 원하지 않으신다면 전 얼마든지 이곳에 같이 있어 드릴 수 있어요. 그것이 50년이 됐던 100년이 됐던 상관없어요. 지금의 마스터의 모습을 보면 나름 행복해보이기도 하니까 말이에요.”

“아!”

소울의 고개가 위로 향했다.

눈이 시리게 파란 하늘이 그의 두 눈을 가득 채웠다.

하지만 흐르는 눈물은 점점 더 굵어져만 갔다.

“저는 당신의 소환수 까뮤입니다. 환상과 진실의 사이에서 어디로 가야할지 결정을 내리는 것은 오롯이 마스터의 몫입니다.”

“그만.”

소울이 소리를 질렀다.

“알겠어. 잠깐만, 아주 잠깐만 내게 시간을 줘.”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소울은 손으로 눈물을 닦고는 집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한참 만에 자신의 마음을 가다듬고는 당당히 걸어 나왔다.

“준비되셨나요?”

“그래. 돌아가자.”

“네, 마스터. 명령에 따르겠습니다.”

딱!

까뮤가 손을 들어 손가락을 튕겼다.

순간 세상이 그대로 멈춰버렸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세상이 모래처럼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소울은 정수리가 시원해지는 느낌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세상이 무너지는 모습에 어지러운 느낌이 들었다.

세상이 무너져 내리자 우주의 그것처럼 검은 어둠만이 존재했다.

자신의 의식이 지저 깊숙한 곳에서 표층으로 솟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소울은 천천히 자신의 눈을 떴다.

번쩍!

눈을 뜬 순간 그의 정수리에 있는 스피릿 파워가 꿈틀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단전에서 점점 기세를 올리고 있는 오러홀과 이제는 제법 힘을 잘 내고 있는 마나홀의 움직임도 느껴졌다.

자신의 몸을 돌고 있는 내단으로 인해 온몸이 다 시원하고 상쾌했다.

휘이이익!

바람이 불어왔다.

소금기가 느껴지는 바닷바람이다.

고개를 옆으로 돌려보니 30여년을 살았던 우드사이드의 자신의 정원이 아니라 처음 보는 누군가의 요트 안 침대 위다.

“마스터의 귀환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까뮤!”

소울은 가볍게 몸을 일으켰다.

순간, 그의 코에 진한 피비린내가 느껴졌다.

“엘리스, 아니 오라클은 어떻게 됐지?”

“그녀는 자신이 소원한 대로 좋은 꿈을 꾸고 있어요.”

“죽이진 않은 건가?”

“아직은……요. 하지만 어차피 헬나이프에 당해서 저주로 인해 오래 살진 못할 거예요. 마스터께서 직접 처리하시겠어요?”

“…….”

소울은 까뮤의 물음에 대답하지 못했다.

아무리 환상이라고는 하지만 30여년을 같이 산 아내를 도저히 자신의 손으로 죽일 수는 없었다.

“30년이 절대 짧은 시간은 아닐 거예요. 하지만 현실의 시간으로는 72시간 밖에 되지 않습니다.”

“뭐? 겨우 3일이 지났단 말이야?”

“네, 정확히 말하면 3일도 채 지나지 않았어요.”

소울은 까뮤의 말에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눈빛이 급격히 흔들리고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좀 이상했다.

10년, 20년, 30년이 지나도 엘리스의 얼굴은 처음 만난 그대로의 젊음을 유지하고 있었다.

말도 안 되는 현상이다.

사람은 시간이 지나면 늙고 병들게 마련이다.

그것이 창조주가 만들어 놓은 세상의 당연한 법칙이다.

하지만 가끔 그의 눈에 띄는 까뮤의 얼굴도 엘리스와 마찬가지로 조금도 늙지 않고 젊음을 유지하고 있었다.

둘은 마치 세월의 법칙을 벗어난 존재처럼 그에게 느껴졌다.

아마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자신이 진짜 자신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을 받은 것이 말이다.

특히 복싱을 할 때, 종합격투기 시합을 할 때, 몸을 움직일 때,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어쩌면 자신은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외적인 존재일 수도 있다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했을 때는 이미 20년도 넘는 긴 세월이 흘러간 상태였다.

결정적으로 그는 자신이 있는 곳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

아니 어렴풋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감을 잡고는 있었지만, 그렇다고 존과 하이디의 엄마이기도한 엘리스를 자신의 손으로 직접 죽일 수는 없었다.

“마스터, 귀환을 축하드립니다.”

“고생하셨어요.”

“빠아!”

그때 소울에게 그의 소환수들이 다가왔다.

본, 푸티나, 렉시!

소울은 자신의 소환수들이 모두 모이자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그들의 머리를 말없이 한 번씩 쓰다듬어주자 푸티나가 그의 슬픔을 느꼈는지 가만히 그를 자신의 가슴으로 안아주었다.

소울은 자신도 모르게 울컥했다.

그때, 그의 귀로 심하게 떨리는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울, 내가 처리했어.”

“정아!”

유정아의 목소리가 들리자 반사적으로 고개가 돌아갔다.

순간, 그의 눈이 왕방울만큼 커졌다.

유정아의 손에 붉은 피가 흐르는 단검이 쥐어져 있고, 그녀의 두 눈에서 닭똥 같은 눈물이 하염없이 흐르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이렇게 광참이나 하다 언제 장렬하게 전사할지 모르겠네요. ㅠㅠ (4연참이라니...)

'추천' 쾅쾅쾅쾅! 좀 박아주시고요. ^^

즐거운 시간 되시길 바랍니다.

선호작, 추천, 코멘트, 쿠폰, 후원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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