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OULNET-403화 (403/492)

00403  제 101 장 - 악어의 눈물  =========================================================================

처음으로 싸웠다.

처음으로 엘리스가 자신에게 크게 화를 내며 소리치는 모습을 봤다.

처음으로 집에서 쫓겨났다.

지금 대체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소울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미들급 통합 챔피언인 자신더러 복싱을 그만두라니…….

1대에 115만 달러나 되는 슈퍼카, 멕라렌 P1을 타고 샌프란시스코의 고속도로를 달리는 소울의 눈에 눈물이 흘렀다.

멀리 금문교가 보이자 그는 핸들을 오른쪽으로 돌려 바다를 향했다.

바닷가에 외따로 떨어진 카페 하나가 그의 눈에 띄자 차를 그리로 몰았다.

카페 주차장에 차를 주차시켜 놓고 안으로 들어가자 조용한 분위기 위에 부드러운 재즈음악이 타고 흐른다.

창가를 빼고 테이블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그는 창가에 난 빈 자리에 앉아 잠시 멍하니 금문교를 바라봤다.

인기척이 나서 고개를 옆으로 돌리자 단정한 차림의 웨이트리스 한 명이 그의 앞에 서 있다.

“주문하시겠어요?”

“맥주 한 병과 버팔로윙 주세요.”

그는 메뉴도 보지 않고 간단히 주문을 했다.

그때, 그의 뒤에서 청아한 여자의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여기 맥주 한 병 더 주세요.”

누군가 하고 고개를 돌리는 순간, 소울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까뮤!”

그토록 보고 싶어 찾던 까뮤가 드디어 자신의 눈앞에 나타난 것이 믿기지가 않았다.

소울은 우울했던 마음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반가운 마음에 그는 한꺼번에 질문을 쏟아 냈다.

“마스터, 안녕하세요?”

“까뮤, 도대체 이게 얼마만이야? 어서 이리로 좀 앉아봐. 갑자기 왜 사라졌던 거야? 그동안 어디에서 뭘 하고 있었어?”

“시간 넉넉하니까 한 가지씩 물어보세요.”

“아! 미안, 내가 조금 성급했지?”

“괜찮아요.”

소울은 사과를 하면서 까뮤의 손을 꼭 잡았다.

까뮤는 그의 행동에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그의 옆자리에 다소곶이 앉았다.

웨이트리스가 작은 병맥주 두 병을 가져오자 병맥주의 뚜껑을 옆으로 돌려 따고는 목을 축였다.

“보고 싶었어.”

“알아요.”

“정말?”

“네, 저도 항상 보고 싶었는걸요?”

소울은 까뮤의 말에 가슴이 뭉클했다.

엘리스에게 놀란 마음이 진정이 되지 않았는데 이렇게 까뮤에게 위로를 받게 될지는 몰랐다.

“그런데 그동안 왜 내 앞에 나타나지 않았어?”

“개인적으로 해결해야할 문제가 있었어요.”

개인적인 문제라면 물어보기가 좀 곤란했다.

“그렇구나. 그럼 그 문제라는 것은 잘 해결했어?”

“실마리는 찾았어요. 이제 해결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생각해요.”

“정말 다행이다.”

소울은 까뮤의 말에 진심으로 기뻐했다.

웨이트리스가 버팔로윙을 가져왔다.

맛있는 냄새가 났지만 소울과 까뮤는 맥주만 좀 더 시키고는 손도 대지 않았다.

다만 서로를 뜨거운 눈빛으로 쳐다봤다.

쪽!

까뮤가 소울에게 가볍게 입맞춤을 했다.

그 한방에 소울은 그동안 까뮤가 자신을 떠난 모든 섭섭함이 단박에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그동안 어디서 뭘 하고 지냈어?”

“판타지 소설을 하나 썼어요. 책을 내볼까 싶어서요.”

“까뮤가 책을 썼다고? 정말이야?”

“왜요? 안 믿겨지세요?”

소울이 놀라자 까뮤는 귀여운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들이밀었다.

“아니 그게 아니라 그냥 좀 신기해서. 어떤 내용의 소설인데?”

“한번 읽어보실래요?”

“까뮤가 쓴 거라면 당연히 읽어봐야지.”

“그럼 마스터가 제 소설을 읽어준 첫 번째 독자가 되는 셈이네요.”

까뮤는 무척 즐겁다는 듯 환한 미소를 지며 자신의 가방에서 원고지 뭉치를 꺼냈다.

소울은 손에 든 맥주병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고 등을 의자에 기댔다.

그녀는 그의 가슴에 자신의 머리를 기대고는 무릎에 원고지를 올려놓았다.

그는 까뮤의 정수리에 키스를 한번 하고는 원고지 첫 장을 넘겼다.

“제목이 독특하네?”

“내용은 더 독특해요.”

까뮤가 쓴 판타지 소설의 제목은 우연인지 몰라도 자신의 이름이 들어간 ‘소울넷(SOULNET)’ 이었다.

소울은 제목부터 뭔가 마음을 사로잡는 것을 느끼며 천천히 원고지를 넘겼다.

스토리는 현실에서 절대 일어날 수 없는 판타지 소설다웠다.

자신의 이름과 똑같은 주인공이 우주의 가장 고차원의 상위 지성체들이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낸 영혼의 유희 시스템인 소울넷에 접속하면서부터 본격적인 이야기는 시작됐다.

차원의 균열을 통해 밀려드는 몬스터로 인해 세계는 큰 혼란에 빠지게 되고 어느 날인가부터 각성한 능력자들이 나타나 초능력으로 몬스터를 무찌른다.

바닥을 치며 살아가던 주인공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된다.

하지만 고블린 웨이브가 일어나 입원한 병원에 고블린이 습격해와 목숨을 건 사투를 벌이다 끝내 탈출에 성공한다.

이 와중에 각성에 성공한 주인공은 소울넷에 접속을 하게 되고 소울넷에서 만난 영웅들의 삶을 통해 소환사의 삶을 시작하게 된다.

첫 번째 소환수인 까망과 함께 온갖 모험을 시작하게 된 주인공은 두 번째 소환수 푸티나, 세 번째 소환수 본, 네 번째 소환수 렉시를 차례로 소환하면서 점점 강해진다.

서머너즈 길드라는 소환사 중심의 길드를 만들고 유정아 박사를 만나 소울 메탈이라는 회사를 차려 힘과 부(富)를 동시에 손에 거머쥔다.

소울은 자신도 모르게 까뮤가 쓴 소설에 깊이 빠져들기 시작했다.

까뮤는 심심했는지 소울의 왼손을 잡아 가지고 놀면서 키스를 하거나 자신의 가슴 사이에 넣고는 꼭 껴안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울은 소설의 내용에 더욱 깊고 빠르게 빨려 들어갔다.

특히 주인공이 소울넷에 코어를 보고하여 큰 보상을 받게 되고 차원의 균열이 큐브로 바뀌게 되는 장면이 나오자 그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으음, 데자뷰(deja vu) 인가? 언제 이런 비슷한 일을 한번 겪은 기분이 드는데?”

“…….”

소울의 말에 까뮤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단지 그의 왼손에 부드럽게 키스를 해줬을 따름이다.

원고지는 계속 옆으로 넘어갔다.

주인공의 첫 번째 소환수인 까망이 탈태환골을 한 것처럼 성장해 까뮤라는 이름으로 거듭나자 소울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오라클의 만행으로 인해 첫 사랑의 감정을 느꼈던 민세경이 죽고, 주인공이 오라클을 죽이기 위해 지구를 반대로 돌아 쫓아가는 장면에는 조금씩 식은땀을 흘렸다.

주인공이 터키의 이스탄불로 텔레포트를 해서 오라클을 죽이려고 하는 순간에는 침을 꿀떡 삼켰다.

마지막으로 오라클에게 정신공격에 당해 인질이 되고 마는 장면이 나오자 그는 갑자기 자신의 머리를 두 손으로 움켜쥐었다.

“으윽! 머리가 어지러워. 아니 혼란스럽다. 갑자기 왜 이러지?”

고개를 들고 까뮤를 쳐다보자 어지러웠던 머리가 조금은 시원해지는 것 같았다.

“마스터, 장자의 꿈 얘기를 아세요?”

“장자의 꿈?”

“네, 장자의 제물론에는 장자가 꿈에 나비가 되어 날아다녔다는 꿈 이야기가 나와요.”

소울은 까뮤의 뜬금없는 장자의 꿈 얘기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장자는 꿈에 나비가 되어 들판을 돌아다니며 꽃구경도 하고 즐겁게 날아다녔어요. 한참을 날아다니다가 어떤 나무 밑에 한 사람이 낮잠을 자고 있는 것을 보고 내려갔더니 바로 장자 자신이었어요. 그때 장자는 꿈을 깼죠.”

“…….”

“장자가 말했어요. 나비가 된 꿈을 꿨는데 지금 깨어나 보니 틀림없는 내 자신이다. 그런데 꿈속에서는 분명히 나는 나비였다. 그렇다면 지금 나는 사람으로서 나비의 꿈을 꾸고 있는가? 아니면 내가 나비인데 사람이라고 꿈을 꾸고 있는 것인가?”

소울은 까뮤의 말이 머릿속으로 들어오자 아까보다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하지만 시간이 가면 갈수록 정수리가 시원해지면 정신이 맑아지는 것을 느꼈다.

그때 까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까뮤?”

“마스터, 아직은 때가 아닌가 보네요. 그녀가 오고 있어요.”

“응? 누가 온다고 그래?”

소울은 얼른 일어나 까뮤의 손을 꼭 잡았다.

까뮤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마스터, 나와 약속하신 것 있으시죠?”

“뭐? 까뮤를 잊지 말아달라는 것 말이야?”

“맞아요. 마스터는 역시 그걸 기억하고 계셨군요. 고마워요. 꼭 기억해주세요. 절대 나를 잊으시면 안돼요?”

“그거야 당연하지 내가 어떻게 까뮤를 잊겠어? 그런데 왜 나를 두고 자꾸만 떠나려고 그래?”

소울은 까뮤가 어딘가로 자꾸 가려고 한다는 것을 직감하고는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은 가지만 다시 돌아올게요. 약속드려요.”

“정말이지?”

“네, 정말이에요. 꼭 다시 올게요.”

까뮤는 소울의 손가락에 자신의 손가락을 걸고는 살며시 흔들었다.

그는 까뮤가 떠난다는 생각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까뮤는 발꿈치를 위로 살짝 들더니 그의 입술에 부드럽게 입맞춤을 하고는 떨어졌다.

뒷걸음질을 치며 천천히 뒤로 물러나는 그녀를 보자 그의 안구에 습기가 차올랐다.

그녀의 모습이 까페의 어둠속으로 들어가자 모습이 잘 보이지 않았다.

눈이 촉촉하게 젖은 소울은 손으로 눈을 급히 한번 비비고는 다시 돌아봤다.

하지만 어느새 까뮤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후였다.

털썩!

소울은 허탈한 마음에 그만 다리에 힘이 풀려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고개를 돌려 바다를 쳐다보면서 그는 길게 한숨을 쉬었다.

그런데 그때, 놀라운 장면이 눈에 띄었다.

두 명의 여자가 바다 위를 빠르게 달려가는 모습이 보였던 것이다.

한 명이 다른 한 명을 쫓는 듯한 모습인데 두 사람은 바다 위를 거침없이 달려서 금문교쪽으로 가고 있었다.

“어 저게 뭐지? 사람이 어떻게 물 위를 달릴 수 있지? 어라? 뒤의 여자는 엘리스를 닮았네? 혹시 엘리스는 아니겠지?”

소울의 말이 끝나는 순간, 갑자기 세상이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의 머리에 손을 대고는 옆으로 쓰러졌다.

작은 병맥주를 몇 병이나 마셨다고 이렇게 어지러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결국 급격한 어지러움에 서서히 정신을 잃어갔다.

쿵!

“소울, 소울, 눈 떠봐요.”

“어?”

멀리서 누군가 자신을 보고 눈을 뜨라고 소리치는 것이 보였다.

그는 천근처럼 무거운 눈꺼풀을 간신히 들고 자신에게 말하는 사람에게 초점을 맞췄다.

“엘리스?”

“이런 잠꾸러기 왜 이렇게 잠을 많이 자요?”

“잠을 잤다고?”

“그럼 침대에서 잠 안자고 뭘 했겠어요?”

“아!”

소울은 벌떡 몸을 일으켰다.

고개를 들고 이리저리 살펴보니 영락없는 자신의 우드사이드 집 침실이었다.

벽에는 두 사람의 거대하고 화려한 결혼사진이 걸려있었고 반대편에는 얼굴이 똑같이 생긴 아기 둘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웃고 있었다.

“존과 하이디가 드디어 아빠를 찾아요.”

“존과 하이디?”

엘리스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소울은 자신의 머릿속에 존과 하이디의 기억이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것을 느끼고는 절로 미소를 지었다.

“우리 쌍둥이가 벌써 말을 하는 거야?”

“네, 맞아요.”

소울은 덮고 있는 이불을 옆으로 확 치우더니 옆방으로 달려갔다.

아기자기하게 잘 꾸민 동화 속에나 나올 것 같은 아가방 침대에 얼굴이 똑같이 생긴 쌍둥이가 팔다리를 바동거리고 있었다.

“빠빠!”

“빠빠!”

아무리 들어도 아빠라는 소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소울의 귀에는 마치 천둥치는 소리처럼 그게 아빠라는 말로 들려왔다.

“이 녀석들, 드디어 이 아빠를 알아보는구나.”

“호호호, 나를 닮아서 역시 똑똑하네요.”

“그게 왜 당신을 닮은 거야? 날 닮은 거지?”

“이 아이들이 정말 당신 머리를 닮기 원하는 것은 아니겠죠?”

엘리스가 웃으면서 조금은 강하게 물어보자 소울은 섣불리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스탠포드 의대를 다니는 아내의 머리를 닮는 것이 슈퍼 미들급 통합챔피언인 자신의 머리를 닮는 것보다는 확실히 낫기 때문이다.

“크흠.”

“왜 대답이 없어요?”

“굳이 대답이 필요한가? 그냥 건강하게 잘만 자라면 되지.”

“치이!”

엘리스는 매번 자신이 이긴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굳이 말꼬리를 잡지 않았다.

“어디 우리 존과 하이디를 한번 안아볼까?”

소울은 조심스럽게 존과 하이디를 차례로 안아 들었다.

존은 왼쪽에 하이디는 오른쪽 들고는 양쪽을 번갈아 쳐다봤다.

존과 하이디는 눈을 말똥거리면서 입을 오물거리고 있었다.

자신을 올려다보는 이 귀여운 생명체들의 눈을 보자 그는 괜히 가슴이 먹먹해졌다.

============================ 작품 후기 ============================

이렇게 광참이나 하다 언제 장렬하게 전사할지 모르겠네요. ㅠㅠ (4연참이라니...)

'추천' 쾅쾅쾅쾅! 좀 박아주시고요. ^^

즐거운 시간 되시길 바랍니다.

선호작, 추천, 코멘트, 쿠폰, 후원에 감사드립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