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02 제 101 장 - 악어의 눈물 =========================================================================
“시청자 여러분, 지금부터 WBA, WBO 미들급 챔피언 플래시 소울과 WBC, IBF 미들급 챔피언 케네디 골프의 미들급 통합 챔피언 타이틀 매치를 시작하겠습니다.”
MNM 그랜드 가든 아레나 링 바로 앞에 자리를 잡은 HBQ 방송국의 아나운서가 카메라를 바라보며 방송을 시작했다.
“오늘 결과를 어떻게 예상하십니까?”
“승부를 예측할 수 없다고 말해야겠지만 라스베이거스의 유명한 도박사들은 대부분 4:6의 확률로 케네디 골프 선수의 승리를 예상하고 있습니다.”
“양 선수의 전적을 말씀해주시죠?”
“플래시, 소울 선수는 그동안 몇 차례의 방어전을 1라운드 KO로 승리하여 15전 15승 15KO라는 놀라운 기록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15전 연속 KO승은 사실 케네디 골프 선수도 가지고 있는 세계기록이 아니겠습니까?”
“맞습니다. 케네디 골프 선수 정말 놀라운 선수입니다. 현재 전적이 33전 33승 30KO 이거든요. 그런데 현재 연속 15KO 승을 거두고 있습니다.”
“그것도 기라성 같은 선수들과 미들급 타이틀매치를 치렀죠?”
“맞습니다. 오늘 누가 이기던 간에 이긴 선수가 이제 새로운 세계기록을 세우게 되는 겁니다.”
“그렇다면 이 경기가 두 사람에게는 무척 중요한 경기가 되겠습니다.”
“각자 가지고 있는 두 개의 챔피언벨트를 걸고 싸우는 것이니 이기는 사람이 명실상부한 미들급 통합 챔피언이 되는 것이죠.”
“과연 오늘 누가 이 링 위의 승리의 주인공이 될지 정말 궁금합니다.”
뎅!
드디어 미들급 통합 타이틀매치가 시작됐다.
세계 4대 복싱기구의 미들급 챔피언벨트가 걸린 시합이라 대전료와 중계권이 천정부지로 치솟아 있었다.
러시아 아버지와 한국계 어머니의 사이에서 태어난 케네디 골프 선수가 천천히 소울을 향해 다가왔다.
소울은 케네디의 주변을 사이드 스텝을 밟으면서 돌기 시작했다.
강력한 인파이터 전술을 구사하는 케네디는 방어력이 뛰어났고 힘과 맷집 그리고 펀치력에서 조금도 소울에게 뒤지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래서 그런지 조금도 서두르지 않고 조금씩 소울에게 다가와 주먹을 휘둘렀다.
하지만 스피드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소울이라 케네디의 주먹은 그의 근처에도 오지 못하고 계속 허공을 치고 있었다.
그동안 타이틀매치와 방어전을 치루면서 소울의 복싱기량이 절정에 올라있어 어지간한 공격은 그에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팡 파파팡 팡팡!
소울이 갑자기 옆으로 빠르게 돌면서 케네디의 안면에 잽을 집어넣었다.
케네디는 순간 눈을 크게 뜨고는 두 손을 올려 방어를 했다.
인파이터라서 그런지 그 자리에 서서 방어를 하고 있는 모습이 자신을 더 패달라는 것처럼 보여 소울은 살짝 미소를 지었다.
퍽퍽퍽 퍽퍽퍽!
그리고 결국 소울의 핵주먹이 케네디의 양쪽 복부와 안면으로 쏟아졌다.
케네디는 이를 악물며 버텼다.
아니 고통과 압박을 참고 오히려 소울에게 다가와 양쪽 훅을 휘둘렀다.
휙 휘익!
하지만 소울은 숄더롤과 위빙더킹을 이용해 제자리에 서서 그의 공격을 모조리 피하고 비켜 흘렸다.
공격에 실패하면 찬스가 나오는 법이다.
소울은 기회가 오자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라이트 스트레이트를 시작으로 연타를 날렸다.
그런데 놀랍게도 안면에 펀치를 맞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케네디는 강력한 라이트 훅을 소울의 안면에 작렬시켰다.
소울은 크게 놀랐다.
이렇게 맞아가면서 주먹을 휘두르는 투지를 가진 선수를 별로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분명히 정타가 들어갔는데도 이미 휘두른 펀치가 정확하게 들어온다는 것은 어지간한 정신력과 훈련을 가지고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누구보다 소울이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의 왼쪽 얼굴에 케네디의 라이트 훅이 들어오는 순간, 소울은 본능적으로 타격을 흘리고 분산시켜야한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생각이 일자 그의 몸이 반사적으로 움직였다.
고개를 일부러 오른쪽으로 돌리면서 익숙한 스텝을 밟았다.
그러자 케네디의 라이트 훅의 위력이 자연스럽게 분산되어 흩어져버렸다.
와아아아아아!
하지만 보는 관중들과 카메라를 통해 지켜본 시청자는 소울의 얼굴이 크게 돌아가자 제대로 맞은 줄 알고 환호성을 질렀다.
그러나 막상 주먹을 휘두른 케네디는 소울이 자신의 주먹에 안면을 타격당하는 순간 허깨비처럼 사라지는 것을 보고 놀라야했다.
누구보다도 자신의 주먹이 정타로 들어가지 않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케네디는 불길한 예감에 급히 방어로 돌아섰다.
소울은 기쁘기도 하고 투지가 샘솟는 것 같아서 절로 지었다.
그래도 지금까지 싸웠던 선수 중에는 거의 유일하게 소울의 얼굴에 글로브를 가져다 댄 선수가 케네디였다.
허나 미소를 짓는 그의 얼굴과는 달리 그의 주먹은 점점 진심을 담아 매섭게 휘둘러지고 있었다.
퍼억 퍽퍽퍽 퍽 퍼억!
케네디는 글로브와 자신의 팔로 분명히 그의 펀치를 막고 있는데도 소울에게 정타로 맞는 것 같은 충격에 혼비백산했다.
‘이 새끼 뭐야? 뭔 놈의 주먹이 돌주먹이야. 아니 이 정도면 정말 핵주먹이 맞겠구나.’
케네디는 속으로 인간 같지 않은 펀치력을 지닌 소울을 욕했지만 그래도 계속 소울을 향해 밀고 들어가면서 한방을 노렸다.
‘호오, 역시 미들급 챔피언 벨트를 두 개나 가지고 있는 선수라 다르긴 다르네.’
소울은 진심으로 케네디가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아무리 투지가 대단하다고 해도 이변이 일어나는 것을 그는 원치 않았다.
결과는 정해졌다.
승리는 자신의 것이다.
마음을 독하게 먹자 그의 펀치도 매섭게 변했다.
퍽 퍼퍼퍽 퍼퍼퍽 퍼퍼퍽…….
소울의 화려한 원투 스트레이트와 어퍼컷, 뒤를 이어 위에서 아래로 대각선으로 찍어 치는 라이트 훅과 레프트 훅의 콤비네이션이 화려하게 작렬했다.
케네디도 이를 악물고 소울을 향해 카운터를 날려봤지만 소울의 간단한 숄더롤과 위빙, 더킹의 조합에 의해 무력화됐다.
오히려 그의 무모한 공격으로 인해 방어에 빈틈이 생기면서 소울의 레프트 훅과 라이트 훅을 양쪽 옆구리에 차례대로 허용했다.
아무리 맷집이 좋아도 옆구리를 맞으면 힘이 빠진다.
단련을 하고 또 단련을 해도 정타를 제대로 맞으면 내장의 장기가 쪼개지는 고통으로 인해 다리에 힘이 풀리게 된다.
거기에다 케네디는 지속적으로 소울의 소나기펀치에 데미지를 입고 있는 상태였다.
퍼억 퍽!
결국 케네디는 라이트 스트레이트에 이은 레프트 어퍼컷으로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다운, 다운입니다. 케네디 선수가 플래시의 연타를 맞고 침몰했습니다.”
“이건 더 이상 어떻게 만회를 해볼 수가 없겠군요. 주심이 빨리 경기를 멈춰야 합니다. 케네디 선수는 이미 눈이 돌아갔어요.”
와아아아아아아!
우레 같은 함성이 일었다.
케네디는 끝까지 일어서려고 발버둥을 쳤지만 결국 비틀거리다 다시 주저앉고 말았다.
그제야 주심은 두 손을 들고 마구 흔들었다.
와아아아아아아!
“경기 끝났습니다. 플래시, 소울이 1라운드 2분 30초 만에 케네디를 KO시켰습니다.”
“연속 16KO 승이라는 새로운 대기록을 장식하는 플래시입니다.”
“정말 대단하군요. 드디어 미들급에서 통합 챔피언이 나왔습니다.”
“그것도 4개의 챔피언벨트를 거머쥔 명실상부한 퍼펙트 통합 챔피언이죠.”
소울은 링 로프 위로 뛰어 올라갔다.
그리고 두 손을 하늘을 향해 높게 치켜들었다.
MNM 그랜드 가든 아레나의 1만7천여 명의 관중이 그의 행동에 미친 듯이 함성을 질러댔다.
와아아아아아아!
소파에 한 임신을 한 미녀가 우아한 자태로 앉아있다.
임신한 상태라 시합이 있는 MNM 그랜드 가든 아레나에는 가지 못하고, 케이블 TV를 통해 소울의 경기를 지켜보고 있던 엘리스는 커피를 마시며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미들급 통합 챔피언이 됐으니 이제 화려하게 은퇴를 하라고 설득해야겠다. 쌍둥이도 곧 나올 테니 내 부탁을 들어주지 않고는 못 배기겠지? 더 이상 놀아주는 것도 지겨웠는데 이정도만 해야겠다.”
엘리스는 자신의 배를 살살 만지면서 그렇게 냉정하게 속삭였다.
그러다 돌연 얼굴에 처연한 미소를 지으며 소울을 뜨거운 눈으로 바라봤다.
“그냥 저 사람과 이대로 살아볼까? 쌍둥이를 키우면서 이렇게 행복을 누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휴우, 어떻게 하지?”
엘리스는 전혀 다른 두 개의 생각이 자신의 머릿속에서 충돌을 하자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소울, 당신이 언젠가 나를 직접 죽인다고 해도 원망하지 않겠어요. 하지만 내게 첫사랑은 오직 당신뿐이에요. 기억해주지 않아도 나의 가슴과 순결을 가져간 당신을 영원히 사랑하겠어요. 그리고 정말 미안해요.”
엘리스의 눈에서 맑은 이슬 같은 눈물 한 방울이 또르르 흘러내렸다.
그녀의 어깨가 들썩이고 이내 수도꼭지를 틀어 놓은 것처럼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져 흘렀다.
그녀가 흘린 이 눈물의 의미가 과연 무엇인지 아직은 아무도 정확히 알 수 없었다.
* * * * *
“어떻게 됐어?”
“해안을 따라 계속 내려가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에게 해로 나가서 지중해로 들어갈 모양입니다.”
“이 새끼들이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거지?”
“아무래도 리비야로 가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알제리, 리비야, 이집트에는 이미 연락 다 해놓았잖아?”
나인권의 말에 그의 부하는 난색을 띄었다.
“저 아무래도 리비야가 배신을 때릴 것 같습니다.”
“뭐야? 이런 미친 새끼들이?”
나인권의 눈에서 불길이 솟구치는 것만 같았다.
“흥분하지 말아요.”
“죄송합니다. 유 고문님.”
유정아가 나인권의 어깨에 손을 얹자 나인권이 바로 신색을 회복했다.
“어차피 그들이 타고 있는 요트로는 지중해를 빠져 나가기 힘들 거예요. 거기에다 우리는 구축함을 타고 가고 있잖아요.”
“하지만 리비야로 들어간다면 얘기가 아주 복잡해집니다.”
“알아요. 그러니까 그 전에 구출을 해야지요. 마스터가 인질로 잡혀 있는 이상, 함부로 움직이면 안 됩니다. 기회를 봐서 단번에 승부를 봐야 해요.”
“이러다가 마스터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는 것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건 걱정 하지 말아요. 마스터의 옆에는 마스터의 소환수가 같이 있어요. 오라클이 핵무기로 자폭을 감행하지 않는 이상 그는 절대 쉽게 죽지 않을 거예요.”
유정아의 말에 나인권은 함교의 바깥으로 시선을 돌렸다.
미국에서 제공한 최첨단 이지스함 다섯 척이 요트 하나를 넓게 포위한 채 유유히 파도를 헤쳐 나가고 있었다.
고개를 위로 돌렸다.
하늘에는 수많은 전투기와 헬기들이 끊임없이 주변해역을 돌고 있었다.
바다 속에도 미 해군의 핵잠수함이 몇 척이나 숨어 있으니 오라클이 도망갈 곳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오라클과 이십 명의 수하들만 제거하면 되는 일이 정말 요상하게 꼬였군요.”
“우리가 실수한 거예요. 굳이 마스터가 오라클을 제거하게 만들 필요가 있었나요?”
“그렇군요. 그렇게 본다면 제가 결정적인 실수한 거네요.”
“지금은 그런 실수를 논할 때가 아니에요. 결정적인 한 방을 위해 기회를 만들도록 노력할 때입니다.”
“알겠습니다.”
나인권이 유정아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때 그의 부하가 곤란한 표정으로 말했다.
“미국에서 언제 공격할 거냐고 자꾸 물어보는데요?”
“이런 개새끼들이, 마스터가 인질이 된 것을 알고서도 저런 소리를 한단 말이야?”
“그렇습니다. 죄송합니다.”
그의 부하가 깊이 고개를 숙였다.
“고개를 드세요. 당신의 잘못이 아니에요.”
“죄송합니다.”
“그것 역시 당신이 죄송하다고 사과할 문제가 아니에요.”
유정아의 말에 나인권이 쳐다보자 유정아가 조용하고 단호하게 말했다.
“미국에게 경고를 하세요. 한번만 더 물어보면 다시 한 번 대공황을 겪게 될 것이라고 말이에요.”
“알겠습니다.”
나인권은 유정아의 말에 미소를 짓더니 그녀에게 고개를 숙이고는 자신의 부하를 데리고 함교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금소희가 얼른 유정아의 곁으로 다가왔다.
“언니, 나에게도 기회를 주세요. 내가 조금만 주의를 기울였으면 마스터를 오라클에게 빼앗기지 않았을 거예요.”
“이번 일에는 소희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해. 그러니까 마음 졸이지 말고 느긋하게 기다리고 있어. 기회가 오면 절대 실수하지 말자고.”
“네, 언니. 고마워요.”
금소희는 자신을 원망하지 않는 유정아를 보며 고마움을 느꼈다.
“그런데 마스터를 인질로 잡고 있는 게 얼마나 됐지?”
“한 시간 쯤 된 것 같아요.”
유정아는 금소희가 듣지 못하게 가늘고 길게 한숨을 쉬었다.
오라클에게 시간이라는 의미가 어떤 것인지 유정아는 어느 정도 짐작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소울, 잘 견뎌야 해. 까뮤가 지켜준다고 했으니까 믿고 기다릴게.’
눈이 촉촉하게 젖기 시작했다.
얼마나 세게 쥐고 있는지 그녀의 주먹이 피가 통하지 않아 새파랗게 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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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후기 ============================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 그냥 열심히 광참이나 하다가 장렬하게 전사하겠습니다. ㅠㅠ
즐겁게 읽어주세요. 추천 쾅쾅쾅 부탁드려요.
선호작, 추천, 코멘트, 쿠폰, 후원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