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97 제 100 장 - 나를 잊지 말아요. =========================================================================
와아아아아아!
갑자기 소울은 80년대 최고의 공격형 아웃복서로 5체급을 석권했던 전설적인 복서, 슈가레이 레너드와 토마즈 헌즈의 경기가 생각났다.
그는 두 손을 높이 치켜들었다.
이미 승리는 자신의 것이라고 미리 선언을 해버린 것이다.
그 모습에 마커스의 얼굴이 크게 일그러졌다.
퍽 퍼퍼퍽 퍽!
하지만 마커스가 화가 나서 달려드는 순간, 그는 오히려 크게 후회하고 말았다.
이제는 잽이 아니라 제대로 된 펀치가 안면과 복부를 파고들었던 것이다.
그렇게 빠르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이미 소울의 주먹은 뼈가 시릴 정도의 고통과 함께 얼굴과 턱, 옆구리를 골고루 두들겨 대고 있었다.
어떻게든 버텨보려고 고개를 숙이고 두 팔을 바짝 옆구리에 붙였지만 소나기처럼 날아오는 펀치에 맞다보면 자연스럽게 가드가 열리고 유효펀치가 안으로 들어왔다.
퍽!
쿵!
결국 몸을 휘청거리던 마커스는 소울이 부드럽게 뻗은 라이트 스트레이트에 턱을 제대로 적중 당해 그대로 링 위로 무너져 내렸다.
주심은 더 볼 것도 없다는 듯 두 팔을 좌우로 휘둘렀다.
와아아아아아아!
순간 MNM 그랜드 가든 아레나를 가득채운 1만7천여 명의 관중이 일제히 함성을 질렀다.
“소울, 잘했어.”
“최고였어요.”
레너드와 까뮤 모두 환한 미소를 지으며 소울의 어깨를 두들겼다.
레너드는 감동으로 인해 눈물을 찔끔거리고 있었다.
그 뒤로는 다들 어떻게 MNM 그랜드 가든 아레나를 벗어났는지 모른다.
뭔가 정신없이 플래시가 반짝이는 것 같더니 어느새 그들은 MNM 그랜드 가든 호텔의 한 스위트룸에 들어와 있었다.
“승리를 축하드립니다. 저녁은 호텔에서 준비했습니다. 맛있게 드십시오.”
“감사합니다.”
소울은 일단 욕실로 들어가 샤워부터 했다.
별로 땀이 나진 않았지만 마커스와 부대끼다보니 그의 땀과 피까지 자신의 몸에 묻어났던 것이다.
쏴아아아아아!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자 온몸이 노곤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샴푸와 린스를 하고 샤워 젤로 깨끗이 씻고 마른 수건으로 물기를 잘 닦았다.
미리 준비한 티셔츠와 반바지로 갈아있고 밖으로 나오자 까뮤도 벌써 샤워를 하고 나왔는지 머리에 물기가 촉촉하다.
“일단 좀 먹자. 갑자기 왜 동시에 샤워 질이야?”
“기분 좋게 먹어야죠. 땀 냄새 나면서 밥 먹고 싶어요?”
“그건 또 소울의 말이 맞네.”
레너드는 소울의 말에 바로 꼬리를 내렸다.
이제 갑과 을의 위치가 확실하게 뒤바뀌었다는 것을 그의 행동을 통해 알게 됐다.
“그런데 MNM 그랜드 가든 호텔에서 우리에게 왜 스위트룸을 내주는 거죠?”
“승리한 자에게는 의례히 전리품이 따르는 법이지. 일단 룸서비스로 식사를 준비해놓았다니 가서 좀 먹자. 배고프다.”
“오케이.”
그들은 스위트룸 창가에 놓인 테이블로 자리를 옮겼다.
스테이크와 샐러드를 시작으로 각종 요리가 테이블에 가득하자 세 사람은 잠시 말을 잊은 채 열심히 먹는 것에 집중했다.
“포도주도 있네요?”
“그것도 따서 마시자.”
그들은 오늘 서로에게 관대했다.
포도주를 따고 승리를 축하하며 잔을 높이 들어 부딪쳤다.
챙!
쌉싸름한 포도주의 맛이 뱃속을 뜨겁게 달구자 소울은 절로 미소를 지었다.
테이블 위에 차려진 요리를 어느 정도 먹고 나자 배가 차올랐다.
세 사람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자, 다들 수고했어. 특히 소울은 정말 대단했다.”
“헤헤헤!”
“승리를 했으니 당연히 보상을 받아야지. 여기 있다. 오늘 번 파이팅머니다.”
“감사합니다.”
“까뮤 코치도 수고했어.”
“감사합니다.”
레너드는 테이블 위에 두툼한 봉투를 꺼내서 소울과 까뮤에게 나눠줬다.
소울은 물을 한잔 마셔 입안을 헹구고 자신의 앞에 놓인 두개의 봉투를 하나씩 열어봤다.
첫 번째 봉투에는 1,280달러가 들어있었다.
이건 프로데뷔전의 파이팅머니와 승리수당이었다.
두 번째 봉투를 열어봤다. 2만 달러가 들어있었다.
“와우!”
“놀랐지? 대전료 1만 달러에 승리수당 1만 달러다.”
“확실히 링크 아레나에서 하는 경기와는 차원이 다르네요.”
소울이 만족한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레너드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차원이 다른 것은 너에게 박살이 난 마커스가 가져간 돈의 액수야. 모르긴 해도 아마 수십만 달러를 받아갔을 거야.”
“네에? 그렇게나 많이요?”
이제 고등학교 졸업반인 소울에게 2만 달러, 아니 첫 번째 봉투에 들어있는 1,280달러도 무척이나 큰돈이었다.
하지만 10전 10승 9KO의 화려한 전적을 자랑하는 미국 챔피언 마커스 레이놀의 대전료에 비하면 코 묻은 돈이나 다름없었다.
대전료에 승리수당, 중계료와 후원사의 후원금, 트렁크에 붙은 로고 사용권과 각종 광고료 등을 합치면 족히 백만 달러는 훌쩍 뛰어 넘는 돈을 벌어갔을 것이다.
그런 마커스 레이놀을 무참하게 깨부순 소울에게는 달랑 2만 달러만 들어왔으니 레너드가 만족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했다.
“그나저나 매니지먼트 비용을 빼고 주시지 그러셨어요?”
“그건 이번 행사를 주관한 프로모션으로부터 따로 받았어. 그래서 네 대전료에서 비용을 굳이 따로 떼지 않은 거야.”
소울은 무심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까뮤는 레너드를 쳐다보며 날카로운 질문을 했다.
“무슨 명목으로 돈을 받은 거예요? 혹시 프로모터들과 따로 계약을 한 것은 아니죠?”
“그건 아니야. 하지만 잘 봐달라는 뇌물인 것만은 분명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예요?”
까뮤가 포도주를 마시면서 레너드를 보자 그는 길게 한 숨을 쉬면서 대답했다.
“아무래도 작전을 변경해야할 것 같아. 오늘 소울의 경기를 본 유명 프로모터들이 계약을 맺자고 난리들이야. 아마 지금쯤이면 전 미국이 다 들썩이고 있을 거야. 새로운 슈퍼 루키가 탄생했다고 말이야.”
“그거야 이미 예상을 한 것 아닌가요?”
“소울이 유명 프로모터와 계약을 맺게 되면 나와 까뮤 코치는 더 이상 설자리가 없어. 그렇다고 내 욕심을 차릴 수도 없고.”
레너드가 소울을 쳐다보자 소울은 오히려 까뮤를 쳐다봤다.
레너드 보다는 까뮤가 더 믿음이 갔기 때문이다.
“소울, 잘 들어요. 소울은 지금 하루아침에 신데렐라가 되어버렸어요. 전 세계적인 인지도를 높이려면 반드시 유명 프로모터들과 계약을 해야 돼요. 특히 미국 최고의 복싱프로인 HBO 복싱의 메인이나 언더카드로 선정되는 것이 아주 중요해요.”
“그게 두 사람과 무슨 상관인데 설자리가 없어진다는 말이죠?”
“유명 프로모터들에게는 세계 최고 수준의 매니저와 코치들이 포진하고 있어요. 당연히 우리 같은 레벨의 매니저와 코치와는 클래스 자체가 다르죠. 전 이미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어요. 그러니 레너드 너무 고민하지 말고 주겠다는 돈을 받고 소울을 놓아주도록 해요.”
까뮤의 말에 소울은 크게 놀랐다.
자신을 두고 지금 뒤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정말 알 수가 없었다.
“그게 무슨 말이죠? 그들이 레너드에게 돈을 주기로 했다고요?”
“쉽게 말하자면 소울과 맺은 매니지먼트 계약을 파기하고 유명 프로모터들과 계약을 맺게 도와주는 조건으로 커미션을 받는 거죠. 어차피 세계 챔피언 타이틀매치는 대부분 유명 프로모터들만의 전유물이에요. 그들을 통하지 않고는 복서들이 크게 돈을 벌 수 없으니까 다들 하이 랭킹에 들어가게 되면 그렇게 해요. 물론 끝까지 함께 가자며 의리만으로 험난한 시간을 보내는 선수들도 없는 것은 아니에요.”
소울은 열심히 싸우기만 하면 저절로 돈이 들어와 셋이 모두 행복해질 줄 알았는데, 스포츠 비즈니스는 자신이 생각한 것과는 달리 복잡한 이면이 존재했다.
“좋아. 소울이 허락하기만 하면 내가 좋은 조건으로 유명 프로모터와 계약을 맺도록 해보지.”
“내가 뭘 어떻게 허락해야 하죠?”
소울은 아직도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그러자 까뮤가 그의 손에 자신의 손을 얹고는 작게 속삭였다.
“쉽게 말해서 프로 축구선수가 타 구단과 이적협상을 한다고 생각하세요. 좋은 조건으로 계약을 맺어 단번에 큰돈을 벌 수 있게 레너드가 도와줄 거예요. 레너드도 계약에 성공하면 프로모터로부터 이적료를 받을 수 있으니까 서로에게 좋은 일이죠.”
“하지만 난 까뮤 코치와 계속 같이 하고 싶은데요?”
“하하하, 풀타임은 모르겠지만 파트타임으로는 내가 밀어줄 수 있을 거야. 그건 너무 걱정하지 말게.”
레너드는 소울의 말에 크게 웃었다.
자신과는 정을 붙일 사이가 없었지만 까뮤 코치와는 계속 같이 훈련을 했으니 정이 붙을 만도 했다.
이럴 경우, 선수의 심리적인 안정을 위해서 파트타임으로 코치를 고용하는 경우는 다반사였다.
레너드의 말에 소울은 결국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물론 이제부터 유명 프로모터들과 피 말리는 계약협상을 벌여야 하겠지만 그것은 소울이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레너드의 몫 이었다.
소울은 레너드가 가져올 계약서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을 선택하기만 하면 끝이었다.
“소울이 승낙했으니 나는 그럼 지금부터 본격적인 협상테이블을 열도록 하겠네. 내일은 주말이니 두 사람은 그동안 라스베이거스의 야경이나 구경하도록 해.”
“네, 알겠어요.”
소울은 기왕 라스베이거스까지 왔는데 바로 돌아가기는 싫었다.
마침 호텔 측에서 스위트룸을 공짜로 제공했으니 주말에 이곳에서 신나게 놀다가 가도 될 것 같았다.
물론 그러려면 먼저 가족과 엘리스의 전화를 하는 게 중요했다.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허락을 받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이제 성인이 됐으니 라스베이거스로 친구들이랑 같이 놀러오는 정도로 뭐라고 할 분들이 아니셨다.
하지만 엘리스는 꽤나 집요하게 물어왔다.
그는 엘리스에게 왜 이곳에 오게 됐는가, 핑계를 대느라 진땀을 흘려야했다.
그러나 이제 와서 엘리스가 뭘 어떻게 하겠는가?
이미 자신은 라스베이거스에 도착해 있는 상황인데 말이다.
결국 엘리스를 설득(이라고 읽고 허락이라고 쓴다.)하는데 성공한 소울은 간신히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휴우, 힘들다.”
“꽉 잡혀 살겠군요.”
“네? 아! 그게 좀 그렇게 됐네요. 헤헤헤.”
소울은 까뮤의 말에 얼굴을 붉혔다.
까뮤는 다 이해한다는 듯 부드럽게 미소를 지어줬다.
레너드는 벌써 아래로 내려가고 없었다.
디저트를 먹으면서 멀뚱멀뚱 창문 밖을 바라보던 소울은 갑자기 돈 생각이 났다.
“참, 640달러 드려야죠?”
“그것보다 우리 이번 경기에서 얼마나 벌었는지 확인해보도록 해요.”
“아! 그거 좋은 생각이네요.”
“지금 가지고 있는 돈도 은행 ATM 머신에 넣어두는 것이 좋을 거예요. 괜히 가지고 다니다간 도박하는데 다 써버릴 수 있으니까요.”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죠.”
소울은 피땀 흘려 번 돈으로 도박을 하고 싶은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그래서 그녀의 말에 따르기로 했다.
일단 640달러를 떼어 까뮤에게 줬다.
그러고도 남은 돈이 무려 20,640 달러나 됐다.
감개무량한 마음에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까뮤는 테이블에서 일어나 소파로 갔다.
그리고는 스마트폰을 꺼내 오늘 소울의 경기에 건 배팅 결과를 확인했다.
그녀의 입가에 미소가 환하게 걸렸다.
“꺄아아아! 이거 엄청나요.”
“네? 얼마나 벌었는데 그래요?
“와서 직접 봐요?”
“네.”
소울은 얼른 의자에서 일어나 까뮤의 옆자리에 앉아 얼굴을 마주대고 스마트폰을 확인했다.
“헉, 이게 얼마야? 28,160 달러? 내가 제대로 본 것 맞죠?”
“맞아요. 640달러를 걸었는데 배당금이 44배나 되는 잭팟이 터졌어요.”
44배라고 하니까 그제야 자신이 싸운 상대가 얼마나 엄청난 상대였는지 이해가 됐다.
45명이 있다고 가정하면 1명 빼고 44명이 모두 마커스 레이놀이 승리할 것이라고 배팅을 했다는 것이다.
“와아아아!”
“꺄아아아!”
소울은 자신의 대전료와 승리수당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은 돈을 벌게 되자 신이 나서 두 손을 들고 소리를 질렀다.
까뮤도 같이 소리를 지르며 즐거워했다.
생각해보니 까뮤는 이번 달에 번 월급을 몽땅 털어 넣었다고 했다.
모르긴 해도 이번 배팅으로 아마 자신보다 훨씬 더 벌었을 것이다.
두 사람은 크게 흥분을 하자 벌떡 소파에서 일어나 서로를 끌어안고는 제자리에서 방방 뛰었다.
원래대로라면 소울은 640달러만 챙겨서 지금쯤 고속도로를 타고 열심히 집으로 달려가고 있는 중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의 수중에는 48,800 달러라는 거금이 들어와 있었다. 도저히 흥분하지 않을 수 없었다.
============================ 작품 후기 ============================
연재의 한계로 인해 지루함을 느끼신다니 폭참 밖에 없군요.
추천과 격려를 보내주실 것으로 믿습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을 추게 한답니다.
스킵이라는, 지루하다는 말은 더 이상 안해주셨으면 합니다. 진짜 힘 빠지거든요.
작품의 완성도를 생각하면 그냥 막 넘길수가 없어서 그렇습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선호작, 추천, 코멘트, 쿠폰, 후원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