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OULNET-395화 (395/492)

00395  제 99 장 - 플래쉬(Flash)  =========================================================================

레너드는 오히려 소울이 놀라는 모습을 보자 미소를 지었다.

“상대방이 어떤 식으로 더티 플레이를 하는지 알아야 막을 수도 있을 것 아냐? 더티 플레이와 그것을 막는 법을 모두 가르쳐줄테니까 잘 보고 배우기나 해.”

“네, 알겠습니다.”

스포츠맨십을 항상 강조하던 레너드가 더티 플레이를 가르친다는 것은 모순이다.

하지만 그의 말대로 더티 플레이에 대해 잘 알지 못하면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도 멘탈에 금이 가서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할 수 있었다.

까뮤 코치가 가르치는 정석 플레이는 이제 더 이상 배울 것이 없을 정도다.

온갖 복싱기술들을 그 짧은 시간 안에 갈고 닦아 이미 자신의 몸에 녹아들었다.

지금은 까뮤 코치의 강훈련과 더불어 레너드의 경험과 고급기술이 필요할 시점이었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드디어 꿈에도 그리던 프로복서 데뷔전 날이 밝았다.

한 달 동안 땀방울을 흘리며 훈련에 훈련을 거듭한 소울은 이제 잘 갈린 칼날처럼 눈에 예기가 느껴졌다.

레너드의 탈탈 거리는 소리를 내는 스테이션왜건을 타고 네바다 주(州)에 있는 라스베이거스 시를 향해 출발했다.

운전은 레너드가 하고 조수석에는 소울이 앉았다.

뒷좌석에는 까뮤 코치가 묵묵히 앉아 창문 밖을 쳐다봤다.

캘리포니아 주(州) 오렌지카운티에서 라스베이거스 까지는 4시간 반 정도가 걸린다.

시원하게 뻗어있는 I-15 N 하이웨이를 쭉 타고 가면 목적지가 나타나는 것이다.

세계의 모든 축구선수들이 동경하는 ‘꿈의 그라운드’가 잉글랜드의 프리미어 리그가 라고 한다면 프로 복싱선수들이 꿈꾸는 ‘꿈의 링’은 바로 미국의 라스베이거스다.

세계적인 빅 매치(Big Match)는 대부분 MNM 그랜드 가든 아레나, 시저스팔레스 호텔 특설 링, 미라주 타워 등이 있는 라스베이거스에서 주로 치러지고 있는 것이다.

소울도 자신의 프로데뷔전을 라스베이거스에서 한다니 절로 신이 났다.

“너 매니저 잘 만난 줄 알아라. 세상에 누가 프로데뷔전을 라스베이거스에서 하겠니?”

“그러게 말이에요.”

“소울, 너무 흥분하지 말아요. 프로데뷔전을 라스베이거스에서 하는 것은 맞지만 MNM 그랜드 가든 아레나가 아닌 그 근처 신축 호텔에서 하는 거예요.”

“네에? MNM 그랜드 가든 아레나가 아니었어요?”

“크흠.”

레너드는 백미러를 힐끗 한번 쳐다보고는 헛기침을 해댔다.

“그럼 그렇지. 괜히 헛물 켰네.”

소울은 괜히 흥분했다가 오히려 힘이 쪽 빠져버리는 부작용을 겪게 됐다.

하지만 목적지인 링크(LINK) 호텔에 도착하자 금세 그의 컨디션은 회복됐다.

MNM 그랜드 가든 아레나 같은 17,157명이나 되는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경기장은 아니었다.

그러나 1,000여명은 충분히 들어갈 것 같은 경기장이라 데뷔전을 치르는 곳 치곤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레너드!”

“제임스!”

레너드는 링크 아레나에 들어서자 정장을 하고 있는 흑인 노신사의 손을 마주잡고 힘차게 흔들었다.

둘은 친구라도 되는 듯 반갑게 포옹을 하더니 이내 시선을 소울을 향해 돌렸다.

“자네가 말한 그 슈퍼 루키인가?”

“그래. 곧 있으면 MNM 그랜드 가든 아레나에서나 볼 수 있는 친구니 잘 봐두게.”

“하하하, 정말 그런 날이 빨리 오길 바라겠네.”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거야.”

까뮤는 잠시 그들이 하는 양을 지켜보다 소울을 데리고 링크 아레나 안으로 먼저 들어갔다.

아레나라고 부르기에는 규모가 조금 작다는 느낌이 있었지만 중앙의 링을 바라보니 코앞에서 경기가 볼 수 있는 구조라 인상적이었다.

관중과 선수가 혼연일체가 되어 박진감 넘치는 경기를 관람할 수 있는 매력이 있는 것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었다.

라스베이거스의 하루는 해가 떨어져야 시작된다.

아직 시합이 시작되려면 한참이나 남았는데도 불구하고 링크 아레나에 입장한 관중은 적지 않았다.

한손에는 맥주를 들고 다른 한손에는 자신이 배팅한 선수들의 정보를 확인하면서 링 바로 위에 내려와 있는 유료 채널을 시청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자 소울은 괜히 피가 빨리 도는 느낌이 들었다.

선수대기실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었다.

까뮤 코치가 손에 꼼꼼히 붕대를 감아줬다.

프로 경기라서 헤드기어는 착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마우스피스는 안전을 위해 꼭 입에 물어야한다.

허벅지의 반을 덮은 파란 트렁크를 입고 스파이크가 없는 복싱화를 신은 소울은 상반신을 탈의한 채로 거울을 보며 가볍게 몸을 풀어봤다.

컨디션은 아주 좋았다.

누구라도 다 때려눕힐 자신감이 충만했다.

경기관계자들이 들어와서 계체량을 재고 오버 웨이트가 아닌 것을 확인하고 나가자 몸을 푸는 동작에 조금씩 힘이 들어갔다.

“마스터, 이제 곧 밖으로 나가야해요.”

“네?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어요?”

시간이 너무 빨리 가서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까뮤는 소울의 말에 대답을 하는 대신 얼굴을 심각하게 굳혔다.

“한 가지만 기억하세요. 누구도 소울을 막을 수 없어요. 무한질주를 시작하세요.”

“물론이죠. 까뮤!”

까뮤는 소울에게 다가와 허그를 했다.

소울도 까뮤의 행동을 말리지 않고 오히려 그녀를 꼭 안아줬다.

볼륨 있는 그녀의 가슴이 느껴지고 상큼한 그녀의 체향이 코를 간지럽혔다.

그녀가 자신을 안는 순간, 그는 뭐라고 말할 수 없는 편안함과 깊은 신뢰를 느꼈다.

팡팡!

글로브를 낀 두 주먹을 부딪치며 선수대기실을 빠져 나왔다.

입구에서 대기를 하자 소울에 대한 소개가 시작된다.

소개라고 해봤자 뭐 오늘 처음 프로로 데뷔하는 신출내기일 뿐이다.

관중들은 별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 같다.

소울이 오늘 링크 아레나에서 벌어지는 메인이벤트가 아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워낙 정보가 적어서 그렇기도 하다.

하지만 소울은 그런 것에 조금도 연연하지 않았다.

까뮤가 그의 등을 밀자 그는 당당한 걸음걸이로 걸어갔다.

백인이나 흑인 아니면 최근 강세를 보이고 있는 히스패닉 계통의 복서가 올라올 줄 알았는데 느닷없이 동양인이 올라오자 관중들이 술렁대기 시작했다.

특이하거나 기이하거나, 희소성이 있으면 사람들의 관심을 받을 수 있다.

소울은 자신이 동양인이자 마이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자신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인기가 올라갈지 무시를 당할지가 결정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블루코너, 소울 리, 180cm, 72kg, 오늘 프로로 데뷔하는 루키입니다. 여러분 그의 새로운 출발을 위해 박수를 부탁합니다.”

짝짝짝짝!

나름 소울을 배려하는 진행자의 멘트였지만 환호성도 없었고 몇 사람만 예의상 박수를 쳐주고 있었다.

소울은 가볍게 손을 한번 들었다가 내렸다.

조금 시크해보이기도 했지만 이런 자들을 일일이 상대할 필요는 없었다.

실력이 있으면 알아서 고함을 지르며 열광하는 날이 올 것이다.

슬슬 사람들이 들어와 빈 좌석을 채우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메인이벤트가 멀어서 그런지 아직도 빈자리가 보였다.

“레드코너, 제프리 로나드, 178cm, 71.95kg, 5전 4승 1패 3KO, 라스베가스의 고독한 야수입니다.”

와아아아아!

짝짝짝짝짝!

확실히 소울보다는 더 많은 환호와 박수를 받았다.

제프리는 두 주먹을 번쩍 들고는 환소성에 반응했다.

주심이 두 사람을 링 중앙으로 불러들였다.

반칙을 하면 안 된다는 등 주의를 주는 사이, 제프리가 소울을 날카로운 눈으로 노려봤다.

소울도 제프리의 눈을 마주쳐다봤다.

굉장한 투지가 느껴졌다.

소울은 그게 마음에 들어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상대는 그것을 비웃음으로 느꼈나 보다.

처음부터 일을 만들어 내는 소울이다.

뎅!

드디어 소울의 프로데뷔전이 시작됐다.

1라운드의 벨이 울리자 제프리가 빠르게 달려들어 오프닝 블로우(Opening blow)를 날렸다.

하지만 소울은 빠르게 좌우로 스텝을 움직이고 백스텝을 섞어 사용해 그의 공격권을 빠져나갔다.

제프리는 전형적인 오소독스 복싱(Orthodox stance)을 구사하는 백인 복서로 굉장히 좋은 몸을 가지고 있었다.

연습을 많이 했는지 상체를 바로 세우고, 턱과 가슴을 당기고 싸우는 어프라이트 스타일(Up-right style)을 정석대로 사용하며 다가오고 있었다.

“소울, 잽을 날려! 화려하게 폭발시켜!”

레너드가 소울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소울은 화려한 조명과 관중들에 둘러싸인 링 위의 분위기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분위기를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사각의 링.

어차피 이 안에서는 누구도 도와줄 수 없다.

오직 자신의 실력으로 결과를 만들어 내야한다.

탁탁탁 타타탁 타타탁…….

소울은 경쾌한 스텝을 밟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제프리의 몸 주위를 빠르게 돌면서 잽을 날려댔다.

팡 파파팡 파파팡 팡팡…….

제프리는 얼굴 양쪽으로 팔을 들어 올리며 소울의 주먹을 막아내고는 조금씩 그를 향해 다가왔다.

휙휙!

제프리가 정면으로 다가서며 원투 스트레이트를 날렸다.

하지만 이미 소울은 사이드 스텝으로 빠져 나가며 짧게 라이트 훅을 제프리의 옆구리에 쑤셔 박았다.

몸을 돌리고 소울을 향해 달려들려는 순간, 제프리는 돌덩이에 맞은 것 같은 느낌에 힘이 쭉 빠지면서 멈칫 서고 말았다.

‘뭔 놈의 주먹이 이렇게 맵지? 오늘 이거 잘못하면 발리겠는데…….’

제프리는 복서로써 좋은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아직 완성된 것은 아니지만 시간이 지나면 계속 성장하며 나중에는 북미 챔피언 벨트를 노려볼만했다.

하지만 오늘 그는 운이 좋지 않았다.

그가 만난 상대가 바로 소울이기 때문이다.

눈치 100단인 소울은 제프리의 상태를 바로 알아챘다.

그래서 바로 폭풍 같은 소나기 펀치를 퍼붓기 시작했다.

권투는 처음부터 끝까지 거리다.

상대가 아무리 강력한 펀치를 가지고 있어도 정확한 타점으로 맞추지 못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뜻이다.

소울은 제프리의 리치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의 스타일을 빠르게 눈에 익혔다.

그리고 눈을 크게 치켜뜨면서 그의 몸 근육의 움직임을 하나하나 노려봤다.

파파팡 파파팡 파파팡!

와아아아아아!

그제야 관중들의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역시 권투는 뭐니 뭐니 해도 화끈한 펀치가 최고다.

난타전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렇게 화려한 소나기펀치도 그에 못지않게 좋아하는 사람이 많다.

폭풍우처럼 퍼부어 대는 소울의 잽은 스텝과 어우러져 제프리의 온몸을 강타하고 있었다.

제프리는 분명히 잽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도저히 두 팔로 자신의 몸을 보호하고 있는 지금의 상태에서 벗어날 방법을 찾을 수 없었다.

‘이런 미친, 뭔 놈의 잽을 이렇게 끝도 없이 쏘아대는 거야. 이놈은 지치지도 않나?’

제프리는 속으로 소울의 체력에 대해 욕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소울은 아직 제대로 시작도하지 않았다.

‘이놈이 완전히 쫄았네. 더 이상 했다가는 물 펀치라고 소문이 나겠다.’

더 이상 화려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상대가 완전히 방어로 돌아서있는 상태에서 끝장을 못 낸다면 오히려 관중들은 열광에서 실망으로 바뀌며 야유를 보내게 될 것이다.

퍽퍽 퍽!

쿵!

소울은 비어있는 제프리의 옆구리를 레프트 훅과 라이트 훅으로 한방씩 먹여주고 마무리를 어퍼컷으로 짧게 끊어서 올려쳤다.

제프리는 자동차가 와서 친 것 같은 충격이 양쪽 옆구리에서 올라오자 자연스럽게 가드가 조금 벌어졌다.

그 사이로 날카롭게 파고든 어퍼컷이 턱에 작렬하자 제프리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그 자리에 무너졌다.

와아아아아!

제프리가 다운을 당하자 주심이 빠르게 달려들더니 카운트를 하려고 했다.

하지만 제프리가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모습을 보는 순간 주심은 두 손을 위로 치켜들더니 양쪽으로 마구 흔들었다.

더 이상 경기를 진행할 수 없다는 뜻이다.

와아아아아!

와아아아아!

관중들이 화끈하게 KO 승을 따낸 소울에게 열광했다.

“블루코너, 소울 리! 승!”

주심이 소울의 승리를 선언하자 소울은 갑자기 링의 로프 위로 뛰어 올랐다.

그러더니 두 손을 하늘 높이 들고는 크게 소리를 질렀다.

“우와아아아아!”

링크 아레나가 떠나갈 듯한 그의 고함소리에 오히려 관중들이 더욱 신나서 같이 고함을 질러댔다.

소울은 링의 로프의 반동을 이용해 그대로 허공으로 떠올랐다.

그리고는 부드럽게 한 바퀴 돌아 링 안에 착지했다.

소울의 쇼맨십에 다시 한 번 링크 아레나가 환호성으로 뒤덮였다.

와아아아아!

링을 내려오는 소울을 보며 레너드와 까뮤 코치가 환한 미소를 지었다.

이렇게 프로데뷔전의 날은 화려하게 막을 내리는가 싶었다.

============================ 작품 후기 ============================

건강하시고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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