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OULNET-394화 (394/492)
  • 00394  제 99 장 - 플래쉬(Flash)  =========================================================================

    “소울, 너 미쳤어?”

    “페드로는 우리 학교의 복싱스타야. 캘리포니아 주(州) 아마추어 복싱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놈이라고. 잘못하면 너 죽어.”

    “존, 닥쳐라. 아직 시작도 안했는데 재수 없게 초를 칠거야?”

    소울은 괜히 옆에서 기운을 빼는 존에게 짜증을 냈다.

    까뮤가 그런 소울을 데리고 한쪽으로 끌고 갔다.

    “마스터는 할 수 있어요.”

    “마스터?”

    “오늘부터 나는 이소울 선수를 마스터라고 부르겠어요. 당신은 복싱의 마스터가 될 존재이니까요.”

    “마스터라…….”

    소울은 까뮤의 말에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마스터라는 말이 왠지 딱 자신에게 어울리는 말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스터도 느꼈죠?”

    “뭘요?”

    “한 달 동안 복싱을 배우면서 자신이 얼마나 강한 사내인지 알게 되지 않았어요?”

    “어렴풋이 느끼긴 했어요.”

    소울이 얼마나 강해졌는지 복싱센터에서는 오직 까뮤 코치만이 잘 알고 있었다.

    “페드로는 조만간 시합에 나가야하니까 절대 전력을 다해서 때리면 안 돼요. 오늘은 그냥 가볍게 잽으로 상대하도록 하세요. 잽에 조금만 탄력을 더 주면 좋을 것 같아요.”

    “숄더롤을 사용해도 되죠?”

    “당연하죠. 그걸 써 먹으려고 그렇게 열심히 연습한 것 아니었어요?”

    “맞아요. 내 얼굴에 상처가 나면 안 돼요.”

    “상처 나도 좋으니까 걱정 말고 싸워요. 내가 좋은 약을 가지고 있으니까 바르기만 하면 금세 붓기가 가라앉을 거예요.”

    “그런 좋은 약이 있었어요?”

    “우리 가문에서 내려오는 비법이에요.”

    “고마워요.”

    “천만에요.”

    소울은 까뮤 코치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는 것에 큰 용기를 얻었다.

    붕대를 감고 글러브를 꼈다.

    해드 기어를 쓰고 마우스피스를 입에 물었다.

    링 위에 올라와 가볍게 두 팔을 뻗으며 몸을 풀자 이상하게도 자신감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나왔다.

    주심은 레너드가 보기로 하고 링 위로 올라왔다.

    부심은 까뮤 코치가 맡기로 했다.

    반대 코너에 복서로써 근육이 잘 발달한 페드로가 올라왔다.

    두 사람을 링 가운데로 부른 레너드는 간단히 주의를 주었다.

    “3분 3라운드만 하도록 하겠다. 반칙하지 말고 멈추라고 하면 즉시 멈춰야 한다. 알았지?”

    “네.”

    “예.”

    “좋아. 그럼 각자의 코너로 가서 몸을 풀고 있어.”

    레너드는 시합을 시작하기에 앞서 까뮤를 불러 뭔가를 얘기를 했다.

    그리고는 곧 시합을 시작했다.

    뎅!

    벨이 울리자 드디어 1라운드가 시작됐다.

    소울은 노골적으로 비웃음을 흘리는 페드로를 향해 다가가 글러브를 들었다.

    그러자 페드로는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글러브를 마주쳤다.

    소울은 일단 페드로 주위로 가볍게 스텝을 밟으며 돌기 시작했다.

    페드로가 오른손잡이라 시계 반대방향으로 경쾌하게 뛰면서 왼손으로 툭툭 잽을 던졌다.

    순간 페드로가 갑자기 저돌적으로 달려들며 레프트훅과 라이트훅을 번개처럼 쏟아내기 시작했다.

    놀란 소울은 급히 위빙과 더킹으로 몸을 피하더니 그의 옆을 살짝 빠져 나갔다.

    페드로는 날랜 몸동작으로 자신의 기습을 빠져나가자 이를 바드득 갈더니 거칠게 몸을 돌렸다.

    퍽 퍼퍽!

    그때, 소울의 글러브가 페드로의 안면을 레프트 잽을 시작으로 원투 스트레이트 잽까지 들어왔다.

    “윽!”

    페드로는 순간 골이 띵하고 눈물이 핑 돌았다.

    잽이 잽 같지가 않고 무슨 돌덩이로 후려친 것처럼 느껴졌다.

    ‘무슨 놈의 잽이 이렇게 무겁지? 혹시 글러브에 뭔가를 넣었나?’

    페드로는 순간 소울의 글러브를 의심했다.

    하지만 글러브는 레너드가 골랐고 글러브를 끼어준 것은 까뮤 코치였다.

    글러브를 바꾸거나 뭔가를 집어넣을 시간적인 여유는 없었던 것 같다.

    페드로는 급히 머리를 흔들어 잡념을 털어버리고는 처음보다는 조금 신중하게 소울을 향해 다가왔다.

    그때부터 페드로와 소울의 숨바꼭질이 시작됐다.

    소울은 한 대도 맞지 않겠다고 결심한 상태라 링 위가 좁다하며 경쾌한 몸놀림으로 이리저리 스텝을 밟았다.

    페드로가 열심히 코너로 몰아보려고 노력했지만 워낙 동작이 날쌘 소울이라서 쉽게 잡히지 않았다.

    오히려 무리하게 소울을 몰아세우다가 잽을 연타로 얻어맞아 얼굴이 부어오르기 시작했다.

    뎅!

    1라운드가 끝났다.

    즉시 몸을 돌려 코너로 돌아오자 까뮤가 다가와 의자를 내밀었다.

    “마스터, 잘했어요.”

    “후우, 후우, 후우…….”

    “그렇게 심호흡을 하지 않아도 되요. 사실 전혀 지치지 않았죠?”

    “어떻게 아셨어요?”

    “땀 한 방울 흘리지 않았는데 왜 모르겠어요?”

    소울은 할 말이 없었다.

    신기하게도 그렇게 3분 동안 뛰어 다녔는데 그의 몸에는 땀 한 방울도 흐르지 않았다.

    오히려 가볍게 몸을 뛰어주자 적당히 몸이 데워져서 처음보다 몸이 더 가벼워졌다.

    “이번 라운드는 사이트 스텝을 밟으면서 아웃복싱을 하도록 해요. 아까처럼 너무 뛰면서 도망 다닐 필요 없어요. 블로킹(Blocking), 더킹(Ducking), 위빙(Weaving)으로 피하면서 카운터를 노려봐요. 물론 기회가 있으면 인파이터처럼 공격해서 끝장을 봐도 좋아요.”

    “네, 알겠어요.”

    소울은 까뮤의 코치를 듣고는 곧바로 전략을 바꾸기로 했다.

    뎅!

    2라운드가 시작됐다.

    소울의 잽을 맞고 겁을 먹었던 것이 화가 났는지 페드로는 저돌적인 인파이터로 정신없이 공격해왔다.

    하지만 소울은 숄더롤을 기본으로 블로킹, 더킹, 위빙을 섞어 쓰며 가볍게 사이드 스텝을 밟는 것만으로 페드로의 공격을 모조리 피해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레너드가 입을 딱 벌리며 놀라워했다.

    쉭 쉭쉭쉭쉭!

    끊임없이 쏟아지는 페드로의 공격이 30초가량 지나자 페드로의 호흡이 급격히 거칠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소울은 페드로의 잽과 훅을 모조리 피해내자 자신감이 생겼다.

    이제 페드로의 움직임에 맞춰 가볍게 잽을 던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은 말이 잽이지 카운터 공격이나 마찬가지였다.

    소울의 잽 자체가 워낙 묵직하고 빨랐지만, 페드로의 펀치가 들어오는 순간이나 그의 공격이 스쳐지나간 다음에 맘 놓고 뿌리는 것이라 들어오는 데미지가 장난이 아니었다.

    ‘가만 잽을 쓰라고 했다고 이렇게 가볍게 때릴 필요는 없는 것 아닌가? 그냥 잽처럼 빠르게 후려갈기면 되지 않을까?’

    페드로나 레너드가 들었으면 기절할 생각이었다.

    파팡 팡팡 팡!

    원투 스트레이트 잽에 이어 페드로의 공격을 피하면서 카운터로 훅 같은 잽을 연이어 퍼부었다. 마지막에 가볍게 위에서 아래로 휘어서 찍어 치는 잽을 넣자 페드로가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멈춰!”

    레너드가 놀라서 급히 둘 사이를 막았다.

    페드로는 자신이 어떻게 다운이 됐는지 모르는 것처럼 어안이 벙벙한 얼굴이었다.

    “페드로, 계속할 수 있겠어?”

    “네? 아! 네. 당연히 할 수 있습니다.”

    페드로는 그제야 자신이 지금 어떤 상태인지를 깨닫고는 이를 갈았다.

    급히 일어난 페드로에게 충분한 시간을 준 레너드는 시합을 속개했다.

    이를 가는 것과는 달리 페드로는 쉽게 다가오지 않았다.

    한번 다운이 되고 나자 소울의 잽이 더 이상 일반적인 잽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어라? 저놈이 겁을 먹었네? 진짜 안 들어올 생각인가? 그럼 내가 들어가야겠군.’

    페드로의 눈빛을 보자 그의 상태가 저절로 깨달아졌다.

    소울은 천천히 페드로를 향해 다가갔다.

    페드로는 사이드스텝을 밟으며 아웃복싱으로 전략을 바꿨다.

    팡!

    풀썩!

    소울의 몸이 갑자기 번개같이 앞으로 쏘아져 나가더니 오른 주먹을 쭉 뻗었다.

    라이트 스트레이트를 턱에 맞은 페드로가 그 자리에 무너지듯 쓰러져 내렸다.

    “그만, 경기종료!”

    레너드는 급히 다가와 경기를 멈추고는 페드로의 상태를 확인했다.

    “기절했군요.”

    “끝났군.”

    까뮤가 다가와 페드로의 상태를 확인해줬다.

    레너드는 소울의 얼굴을 쳐다보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해드기어와 마우스피스를 끼고 있는 상태의 상대를 잽에 가까운 스트레이트 한 방으로 기절시킨 소울의 움직임에 전율이 일어났던 것이다.

    “자네 생일이 언제지?”

    “곧 다가옵니다.”

    “그럼 생일에 맞춰서 프로테스트를 보도록 하자.”

    “네.”

    소울은 레너드의 말에 그저 고개만 위아래로 끄덕였다.

    기절해 있는 페드로 앞에서 좋다고 웃어대는 것은 좀 아니었기 때문이다.

    “소울, 너 정말 대단하다.”

    “뭐가?”

    “난 정말 슈가레이 레너드를 보는 줄 알았어.”

    “후후후!”

    존의 아부가 지금은 그리 듣기 나쁘지 않았다.

    소울은 기분이 좋았다.

    페드로를 다운시킨 것도 좋았지만 단 한 대도 맞지 않고 시합을 끝낸 것에 더 큰 의미를 두고 있었다.

    ‘됐어. 이제 엘리스가 알아도 날 막을 수 없을 거야.’

    그 사실이 지금은 승리보다 더 짜릿했다.

    까뮤가 그의 글러브를 벗겨주며 입 꼬리가 슬며시 올라가는 소울을 가만히 쳐다보고 있었다.

    * * * * *

    소울은 만 18세가 되자마자 비밀리에 프로테스트를 받았다.

    하루가 다르게 늘어가는 복싱기술로 인해 링 위가 좁다며 날아다니는 그를 보자 3명의 심사관은 만장일치로 합격점을 줬다.

    복싱계를 흔들 새로운 루키가 태어났다며 미리 사인까지 받아가는 모습에 그는 좀 어리둥절해진다.

    그 덕분인지는 모르지만 그의 프로 데뷔전을 한 달 뒤로 쉽게 잡을 수 있었다.

    레너드와 1년 단위로 갱신되는 매니지먼트 계약을 맺었다.

    까뮤 코치를 자신의 전담 코치로 삼아 더욱 훈련에 박차를 가했다.

    매일 땀을 흘리며 훈련을 하는 가운데 그는 자신이 비로써 살아 있다는 기분을 만끽할 수 있었다.

    훈련은 고됐지만 힘든 만큼 실력이 쑥쑥 느는 보람이 있었다.

    무엇보다도 이제는 하루라도 훈련을 하지 않으면 좀이 쑤실 정도로 운동중독이 되어버렸다.

    모든 것이 순조롭다.

    평화, 그 자체다.

    자신의 생일파티 때, 엘리스의 극성으로 인해 생애 최고로 많은 사람들이 초대되어 정신없이 하루를 보낸 것을 빼곤 말이다.

    그래도 엘리스가 아니었으면 언제 그런 시끌벅적한 생일파티를 해보겠는가?

    그날 엘리스는 너무나 귀엽고 섹시했다.

    잘했으면 생일 날, 정말 환상적인 선물을 받을 수도 있었을 텐데, 주변에 너무 자신들을 주시하는 사람이 많아서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이 옥에 티다.

    그래도 3달 뒷면 프롬(Prom)이다.

    고등학교 학년 마지막으로 열리는 공식 댄스파티에 엘리스와 함께 참석할 계획이다.

    턱시도도 사야하고 피날레를 장식할 준비도 해야 한다.

    그러려면 아무래도 돈이 많이 들 것이다.

    그 안에 최대한 많은 시합을 해서 대전료를 챙겨놓아야겠다.

    세계에서 가장 권위와 전통을 지닌 복싱기구는 무엇일까?

    바로 세계복싱협회(WBA)다.

    그 다음이 세계복싱협회에서 갈라져 나온 세계복싱평의회(WBC)다.

    양대 산맥으로 군림하고 있는 쌍두마차 체제에 국제복싱연맹(IBF)이 1983년에 끼어들어 갖은 무시와 괄시 속에서 살아남아 결국 3대 기구로 인정받았다.

    여기에 세계권투기구(WBO)가 세계복싱협회(WBA)에서 떨어져 나와 1990년에 신생기구로 출범한다.

    세계권투기구 역시 초기에 괄시를 당했으나 이제는 약진을 거듭해서 세계4위의 복싱기구로 인정받고 있다.

    레너드는 옛날 사람이라서 권위와 전통을 자랑하는 세계복싱협회 소속의 프로 복서로 활약했다.

    전성기 시절에는 북미 챔피언으로 이름을 날리기도 했지만 이제는 과거 속의 화려했던 영광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오렌지카운티 하이스쿨 복싱센터를 맡아 운영하는 것에는 그의 과거의 전적이 큰 도움이 돼 주었다.

    특히 그가 소속했던 세계복싱협회의 사람들과는 나름 꽤 인맥이 있었다.

    “소울, 프로 데뷔전은 가급적 화려하게 치러야해. 관중들에게 너에 대한 강한 인상을 심어줘야 네가 원하는 데로 대전 상대를 쉽게 구할 수 있어.”

    “알겠습니다. 그럼 4라운드 마지막에 상대를 녹다운 시킬까요?”

    “아냐. 그렇게 하면 오히려 임팩트가 줄어. 1라운드에서 끝내도록 해. 중요한 것은 전투적으로 화려하게 폭풍처럼 몰아치는 거야. 할 수 있겠지?”

    “네. 할 수 있습니다.”

    소울은 레너드의 말에 강한 자신감을 보였다.

    그동안 레너드가 데리고 온 스파링 상대를 통해 자신의 실력에 대해 정확히 알게 됐기 때문이다.

    “오늘은 내가 복싱에서 흔히 일어나는 더티 플레이에 대해 가르쳐주도록 하지.”

    “설마 저보고 그런 플레이를 하라는 것은 아니시겠죠?”

    소울이 놀라서 소리쳤다.

    ============================ 작품 후기 ============================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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