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93 제 99 장 - 플래쉬(Flash) =========================================================================
줄리는 그 모습에 목을 잡고는 고개를 뒤로 했다.
존은 줄리의 눈치를 살살 보면서 소울과 엘리스의 키스장면을 훔쳐봤다.
이 사건은 소울과 엘리스가 오렌지카운티 하이스쿨의 역대 급 CC커플의 하나로 명예의 전당에 오르는 계기가 됐다.
하지만 남의 염장을 지르는 이들의 만행을 본 학생들은 소울에 대한 적개심 게이지를 급속히 올려대고 있었다.
점심식사가 끝나자마자 엘리스와 줄리는 전미 치어리더 대회를 준비하러 운동장으로 향했다.
소울과 존은 그들이 안 보일 때까지 손을 흔들더니 잽싸게 제2 실내체육관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늦었다. 빨리 가자.”
“오케이!”
다다다다다!
“헉헉헉, 소울, 더 이상 못 가겠다. 여기 2층이니까 너 먼저 가.”
“그래, 알았어.”
제2 실내체육관 정문까지 단번에 달려오자 존은 숨이 차서 더 이상 못 가겠는지 소울을 향해 손을 휘저었다. 존의 이마에서 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존의 저질체력을 확인한 소울은 고개를 한번 끄덕이더니 망설이지 않고 2층으로 먼저 뛰어 올라갔다.
‘오렌지카운티 하이스쿨 복싱센터.’
양문 옆에 붙어있는 간판을 확인한 소울은 크게 심호흡을 한번 하고는 문을 열었다.
“우와아!”
뭔가 후끈한 열기 같은 것이 자신을 향해 밀려들었다.
오렌지카운티 하이스쿨 복싱센터 안에는 수십 명의 남녀학생들이 복싱코치의 지도에 따라 각자 열심히 훈련을 하며 땀을 흘리고 있었다.
줄넘기를 하는 사람, 샌드백과 스피드볼을 치는 사람, 코치가 미트를 대주자 펀치 연습을 시키는 사람, 링에서 실제로 연습 경기를 펼치는 사람…….
모두 각자 따로 운동을 하고 있었지만 한 가지는 동일했다.
열정!
오렌지카운티 하이스쿨 복싱센터 안에서 땀을 흘리는 모든 사람들에게는 소울에게 없는 열정이 아우라처럼 빛나고 있었다.
소울은 뭔가에 홀린 듯 링을 향해 걸어갔다.
“허억, 허억, 허억!”
“헤엑, 헤엑, 헤엑!”
퍽퍽 퍼퍼퍽!
타닷 타닷 타다닷!
머리를 짧게 깎은 근육질의 백인과 키가 크고 날렵한 몸을 가진 흑인이 거친 숨을 토해내며 서로를 향해 팔을 뻗어냈다.
얼마나 경기를 했는지 모르지만 지금 둘은 많이 지쳐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쉬지 않고 상대를 향해 잽을 날려댔다.
아마추어라서 그런지 존의 집에서 본 동영상의 프로 복서들과는 달리 스텝, 펀치, 스피드, 기술 등 모든 것이 많이 떨어졌다.
하지만 두 사람의 눈빛만큼은 맹수처럼 빛났고, 움직이는 동작에는 거친 수컷의 향기가 풍겼다.
땀과 열정이 섞인 묘한 링의 분위기가 그의 심장을 서서히 펌프질하기 시작했다.
‘왜 이렇게 내 심장이 뛰는 거지?’
그는 가만히 오른손을 들어 자신의 심장이 있는 왼쪽 가슴에 올려놓았다.
두근, 두근, 두근…….
엘리스를 볼 때를 제외하곤 거의 뛰지 않던 자신의 가슴이 지금 심하게 두근거리고 있었다.
마치 운명이라도 되는 양 뛰어대는 자신의 심장의 고동소리에 귀를 기울여봤다.
그는 돌연 싱긋 미소를 지었다.
드디어 자신이 가야할 길을 찾은 것 같다.
“누구 찾으러 왔어요?”
그때, 누군가 자신의 팔을 툭툭 치며 말했다.
소울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옆으로 돌려 자신의 팔을 친 사람을 쳐다봤다.
“어!”
소울은 순간 멍한 표정을 짓고 말았다.
자신의 옆에 서 있는 여자는 뭐라 말로 표현을 할 수 없을 만큼 귀엽고, 아름답고, 섹시하고, 기품이 혼재된 얼굴을 하고 있는 흑인 혼혈 미녀였다.
그는 태어나서 이렇게 아름다운 흑인 혼혈 미녀는 처음 봤다. 아니 가만히 살펴보니 그녀가 정말 흑인 혼혈이 맞는지 확신이 서질 않았다.
시선이 그녀의 얼굴에서 아래쪽으로 내려갔다.
슈퍼 모델이라고 해도 믿을 것 같은 늘씬한 몸매에, 흑진주처럼 매끄럽고 반짝거리는 피부가 그의 눈길을 끌었다.
들어갈 곳은 확실히 들어가고 나올 곳은 확실하게 나온 굴곡진 글래머 몸매는 완벽하게 균형이 잡혀있어 어디하나 흠잡을 곳이 없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소울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은하수처럼 반짝이는 그녀의 눈이었다.
그녀의 눈과 정면으로 마주치는 순간, 그는 도저히 그녀로부터 시선을 떼어낼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하이!”
“하이!”
그녀가 인사를 하자 소울도 반사적으로 인사를 했다.
“누구 찾아왔어요?”
“아, 아니요. 저 복싱 배우러 왔는데요.”
“취미로 하실 거예요?”
“아니요.”
“어머, 그럼 혹시 프로 복서가 되려고 오셨나요?”
“뭐, 네, 일단은.”
소울의 말에 그녀가 미소를 지었다.
순간, 복싱센터가 환하게 반짝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난 까뮤에요. 복싱센터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고 있어요.”
“이소울입니다. 오렌지카운티 하이스쿨의 학생입니다.”
까뮤란 이름의 여자가 손을 내밀며 자신을 소개하자 소울도 그녀의 손을 잡으며 자신의 이름과 소속을 말했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그녀의 손을 잡자 왠지 마음이 편안해졌다.
“알아요. 여길 찾아오는 사람은 모두 이 학교 학생이니까요.”
“그런데 혹시 복싱코치세요?”
“그것도 겸하고 있어요. 일단 이쪽으로 오세요. 시니어 코치를 소개시켜드릴게요.”
“감사합니다.”
소울은 까뮤를 따라 안쪽 사무실로 들어갔다.
작은 사무실에는 3개의 책상이 있고 그 중 하나에 50대 흑인 남자가 앉아 있었다.
그는 뭔가를 열심히 생각하다가 볼펜으로 종이에 뭔가 적기 시작했는데 까뮤가 다가오자 고개를 들어 그녀를 쳐다봤다.
까뮤가 소울을 가리키며 뭐라고 소곤거리자 흑인 사내는 대뜸 미소를 짓더니 하던 일을 멈추고 일어났다.
“혹시 자네 이름이 소울 아닌가?”
“맞습니다.”
“까뮤가 그러는데 자네 복싱 배우러 왔다면서?”
“맞습니다.”
“호오, 이거 잘 됐군.”
“네?”
그는 박수를 치며 소울이 복싱을 배우러 온 것을 기뻐했다.
“나는 레너드라고 하네.”
“처음 뵙겠습니다. 이소울입니다.”
“자네는 나를 처음 봤겠지만 나는 오래전부터 자네를 지켜봤어.”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소울은 레너드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레너드는 까뮤를 한번 쳐다보고는 고개를 돌려 소울을 정면으로 봤다.
“운동신경이 좋은 자네가 지금까지 왜 운동을 안 하는지 이상해서 지켜보고 있었다는 얘기야.”
“그렇습니까?”
“체육 시간에 간간히 보여준 자네의 재능은 가히 천재적이라고 학교에 소문이 자자하다네. 혹시 모르고 있었는가?”
“저는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하하하, 그럼 더 잘됐군. 당장 등록하고 훈련을 시작하세.”
“네? 아! 네.”
레너드는 까뮤를 쳐다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까뮤는 레너드에게 고개를 한번 끄덕이고 오렌지카운티 복싱센터 선수등록 서류를 가져왔다.
소울은 까뮤의 친절한 안내로 필요한 서류를 다 작성해서 제출했다.
“자, 치즈?”
“네? 아! 치즈.”
레너드가 무턱대고 디지털 카메라로 소울의 사진을 찍었다.
얼떨결에 치즈라고 말하고 사진을 찍었다. 아니 찍혔다.
영문을 알 수 없다는 그의 표정에 레너드는 바로 궁금증을 해소시켜줬다.
“프로 복서가 되려면 사진이 필요하거든.”
“네? 오늘 여길 등록했는데 벌써 프로 복서 등록을 하는 겁니까?”
“등록이 아니라 프로 복서 테스트 신청을 하려는 거야. 자네라면 그리 오래 걸리지 않고 프로 복서 테스트를 통과할 수 있으리라 믿네.”
“믿어주시는 것은 고맙습니다만 제가 할 수 있을까요?”
“스스로를 믿고 나와 여기 까뮤 코치를 믿는다면 프로 복서가 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지. 어려운 것은 프로 복서가 되고 난 후부터 치러질 경기야. 하지만 자네라면 허리에 벨트를 하나 걸 정도는 충분해.”
레너드는 아주 자신 있게 말했다.
그의 말을 들어보면 소울은 당장이라도 캘리포니아 주(州) 챔피언이라도 될 만한 천재복서가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게 만들었다.
“까뮤 코치를 따라가서 옷을 갈아입고 기본기부터 착실하게 익히도록 하게.”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천만에. 앞으로 내가 자네에게 아주 많이 감사를 하게 될 거야.”
레너드의 말은 갈수록 태산이었다.
그의 마음을 알아차렸는지 까뮤가 다가와 그의 팔을 잡아 당겼다.
“저래 뵈도 레너드는 왕년에 아메리카 챔피언이었어요. 그의 말을 의심하지 말아요.”
“그, 그래요?”
까뮤의 말에 소울은 일단 좀 더 두고 보기로 했다.
자신을 높이 평가해주는 것은 고마웠지만, 진짜 자신의 실력이 어떤지 확실하게 알기 전까지는 괜히 들떠있고 싶지 않았다.
아직 자신은 글로브조차 끼어보지 못한 햇병아리였기 때문이다.
“여기가 탈의실이에요. 이걸로 갈아입고 나와요.”
까뮤가 내미는 쇼핑백을 받은 소울은 탈의실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었다.
미리 맞춰놓기라도 한 듯 운동복과 복싱화가 딱 맞았다.
밖으로 나오자 까뮤는 소울을 데리고 거울 앞으로 데리고 갔다.
그리고는 복싱의 기초를 처음부터 하나씩 자세히 가르쳐주기 시작했다.
“모든 운동의 기초는 자세에요. 좋은 자세에서 좋은 동작이 나오고, 좋은 동작에서 좋은 펀치와 움직임이 나옵니다.”
“네.”
까뮤는 일단 스텝부터 가르쳐줬다.
“어깨 너비로 발을 벌리세요. 오른발을 뒤로 빼고, 뒤꿈치를 올리고, 왼발은 발끝을 45도로 안으로 꺾어서 뒷발과 평행을 이루게 하세요. 양손은 가슴으로 당깁니다.”
“이렇게요?”
“네, 잘하셨어요.”
까뮤는 칭찬을 아끼지 않으며 소울에게 의욕을 불어넣어줬다.
덕분에 짧은 시간에 소울은 다양한 스텝을 배우며 하나씩 연습을 할 수 있게 됐다.
복싱에서 가장 중요하고 제일 오랜 배우는 기술 중 하나가 스텝이다. 중요한 만큼 제대로 배우고 많이 연습하는 것이 중요하다.
소울은 그렇게 복싱을 시작하게 됐다.
매일 학교에서 점심식사를 마치고 난 후에는 복싱센터를 찾았다.
가끔 엘리스 때문에 못 오는 경우도 있었지만 운동 자체를 쉬지는 않았다.
복싱 연습은 집 안에서도 거울을 보며 할 수 있었고, 집 근처나 가까운 공원을 뛰어 다니며 스텝을 연습하고 위빙과 더킹, 사이드 스텝 등을 훈련할 수 있었다.
그렇게 1주일이 지나자 소울은 드디어 잽, 스트레이트, 훅, 어퍼컷 같은 공격기술을 배우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에 비하면 진도가 무지막지하게 빠르게 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까뮤는 소울에게 충분히 그럴 능력이 있다며 가끔 자세가 바르지 않거나 틀리면 교정을 해주곤 복싱의 다양한 기술을 전수하는 것을 아끼지 않았다.
신기한 것은 소울 자신이었다.
그는 마치 복싱을 위해 태어나기라도 한 것처럼 솜이 물을 빨아들이듯 무서운 속도로 배운 복싱 기술을 자신의 것으로 흡수했다.
소울이 아무리 복싱에 문외한이라고 해도 이건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본인이 더 잘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복싱을 하고 싶은 욕망에 소울은 모든 의심을 일단 접어두고 연습과 훈련에 집중했다.
그의 몸은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고 있었다.
복서에 최적화 된 몸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한 달이 지나자 레너드와 까뮤가 스파링을 해보기로 결정했다.
180cm의 키에 75kg의 몸무게를 가지고 있었던 소울은 연습과 훈련을 통해 이미 미들급인 72.57kg에 맞게 72kg의 몸무게로 맞춰져 있었다.
“가공할만한 재능이군.”
“플로이트 메이데이를 보는 것 같지 않으세요?”
“숄더롤은 누가 가르쳤어?”
“제가 가르치긴 했지만 스스로의 몸에 맞게 체화시킨 것은 소울 자신이에요.”
“플로이트 메이데이가 보면 기절하겠군.”
레너드는 소울이 스피드볼과 샌드백을 치면서 연습을 하는 것을 보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스피드, 펀치, 파워, 스텝, 방어, 위빙, 더킹, 반사 신경 등 무엇 하나 부족한 것이 없어보였기 때문이다.
이제는 홀로 연습하는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복싱은 상대가 있어야 배울 수 있는 기술도 아주 많기 때문이다.
“미들급에 맞는 스파링 상대로는 우리 복싱센터의 간판스타, 페도르가 좋겠어요.”
“페도르는 캘리포니아 주(州) 아마추어 복싱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강자야. 겨우 한 달 배운 것 가지고 페도르를 상대할 수 있을까?”
“페도르가 이번에 많이 배울 수 있을 거예요.”
레너드는 까뮤의 말에 할 말을 잃었다.
까뮤의 의견은 레너드를 통해 페도르에게 전해졌다.
마침 페도르는 엘리스의 남자친구인 소울에게 악감정이 많았다.
노란 원숭이 새끼가 여신과도 같은 백인 미녀 엘리스의 남자친구라는 사실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레너드가 부탁을 하자 그는 곧바로 승낙을 했다.
이것은 그에게 좋은 기회였다.
소울을 공개적인 링 위에서 합법적으로 구타할 수 있는 기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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