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OULNET-392화 (392/492)

00392  제 98 장 - 오라클  =========================================================================

문제는 소울, 자신이다.

뭐하나 특출 난 것이 없는 평범 그 자체인 그는 대학교에 입학을 해야 할지 아니면 그냥 직장이나 구해서 돈이나 벌어야할지 전혀 감이 서질 않았다.

어영부영 시간을 보내다 보니 그는 어느새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잘할 수 있는지 모르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무슨 생각해?”

“아! 그냥 졸업하면 뭘 할까 생각중이야.”

“우리 이미 그 얘기는 끝났잖아. 나와 같이 스탠포드 대학교가 있는 스탠포드 시(市)로 가기로 하지 않았어?”

갑자기 엘리스가 눈을 크게 뜨고는 소울을 쳐다봤다.

소울은 슬그머니 그녀의 눈빛을 피하곤 앞에 있는 콜라를 집어 마셨다.

엘리스가 갑자기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며 그를 쳐다봤다.

“나와 같이 가기로 분명히 약속했는데…….”

“약속했지. 엘리스와 스탠포드 시로 가지 않겠다는 말이 아니야. 거기 가서 내가 뭘 할 건지 생각은 해봐야 하잖아?”

“아! 그래? 그건 그냥 가서 천천히 생각해봐. 난 자기만 내 옆에 있으면 돼. 그냥 맨날 집에서 펑펑 놀고먹어도 괜찮아. 내가 자기 먹여 살릴 테니까.”

“아이쿠!”

소울은 미쳐 그녀의 입을 막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

엘리스가 저런 말을 할 때마다 소울은 줄리와 존에게 엘리스의 옆에서 기생하는 인간말종 취급을 받는다는 것을 그녀는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소울, 제발 부탁이야. 너 인생의 진로 좀 빨리 결정해.”

“나도 그렇게 생각해. 차라리 너 풋볼(미식축구) 하는 거 어때? 너 몸으로 하는 것은 다 잘하잖아?”

“그, 그건.”

줄리의 말에 이어 존까지 합세를 하자 소울은 몸 둘 바를 몰라 했다.

엘리스는 단순히 줄리와 존이 그에게 좋은 충고를 해주고 있다고만 생각을 하고 있어 구태여 그들이 하는 말을 말리지 않았다.

소울이 불편해하는 표정을 지었다면 당장 말렸겠지만 소울은 줄리와 존의 말이 틀린 말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저 가만히 콜라만 쪽쪽 빨아먹었다.

“존, 그게 무슨 말이야? 소울이 풋볼을 잘하다니?”

“소울이 보기와는 달리 몸이 아주 좋아. 운동도 아주 잘하고.”

“그래?”

줄리는 처음 듣는다는 표정을 지으며 엘리스를 바라봤다.

엘리스는 소울의 어깨에 자신의 머리를 기대고는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우리 자기가 운동신경은 좀 있지. 하지만 난 굳이 힘들게 운동 안 시킬 거야. 다치면 안 되니까.”

엘리스의 말에 줄리는 확 인상을 썼다.

도저히 여자로썬 해서는 안 되는 말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그녀는 엘리스의 트라우마를 잘 알고 있어 안타깝기도 했다.

“엘리스, 너 소울이 아무 것도 안하고 네 옆에 그냥 붙어있기만 하면 행복할 거라고 착각하지 마. 남자는 일에 대한 성취감으로 살아가는 동물이야. 사랑하는 여자에게 빌붙어 사는 것보다 부양하는 쪽에 훨씬 더 행복감을 느낀다고.”

“그게 정말이야?”

“당연하지.”

줄리의 말에 엘리스가 바로 몸을 세우더니 소울의 얼굴을 정면으로 쳐다보며 물었다.

“자기야, 나 하나로 충분하다고 했잖아. 나만 있으면 행복하다고 하지 않았어?”

“마, 맞아.”

소울은 엘리스의 촉촉이 젖은 눈을 보자 바로 고개를 위아래로 마구 흔들었다.

그제야 안심을 하듯 엘리스의 입가에 미소가 돌았다.

“이것 봐! 소울은 나만 옆에 있어도 충분해.”

“바보야! 그건 소울이 너를 위해 그냥 그렇다고 해주는 거야. 당연히 남자라면 뭔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해야지.”

“그런가?”

엘리스와 줄리의 말이 시작되자 소울은 답답한 마음이 변해 이제는 아주 좌불안석이 되고 말았다.

“가만 내가 소울이 할 만한 운동을 알고 있어.”

“그게 뭔데?”

존의 말에 엘리스가 걸려들었다.

“프로페셔널 복싱! 이게 미국에서 아니 세계에서 제일 돈을 많이 버는 운동이야.”

“그건 절대 안 돼!”

엘리스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존을 죽일 듯이 노려봤다.

“허억, 아니 난 그냥 인터넷을 검색해보니까 그게 돈을 제일 많이 번다고 해서…….”

“존, 이 푼수야. 엘리스가 소울이 다치는 것 얼마나 싫어하는지 몰라서 그래?”

“그, 그럼 그냥 골프를 시켜. 그건 절대 안 다치잖아?”

줄리의 설명에도 엘리스의 도끼눈은 풀리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소울은 그녀의 손을 가만히 잡아 깍지를 꼈다.

그러자 언제 화가 났냐는 듯 엘리스의 얼굴이 단번에 풀리며 그의 옆자리에 얌전히 앉았다.

“엘리스, 나 믿지?”

“응, 나 소울 믿어.”

“그럼 조금만 기다려줘. 내가 뭘 할지 결정해서 알려줄게.”

“응, 뭘 하던 소울이 행복하다면 난 좋아. 단 다치는 것은 안 돼.”

“알았어. 그렇게 할게.”

엘리스는 소울의 말에 너무나도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소울에게 달라붙어 진하게 키스를 했다.

그 모습에 여기저기에서 진한 탄식이 쏟아져 나왔다.

줄리와 존도 그 소리를 들었는지 길게 한숨을 쉬었다.

“정말 못 말리는 한 쌍이군.”

“그래도 우리는 정상에 가까운 커플이네.”

“존, 누가 누구와 커플인데?”

“아, 아니 그냥 그렇다고…….”

은근슬쩍 커플로 만들어 가려고 했던 존의 시도는 바로 좌절되고 말았다.

긴 키스가 끝나고 그녀를 꼭 안아주고 있는 소울의 눈빛은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가득했다.

* * * * *

“어때? 죽여주지?”

“정말 끝내준다.”

존은 소울이 정신없이 동영상에 빨려드는 모습을 보고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소울은 대형 쇼핑몰의 게임 센터를 연상시키는, 존의 넓은 방 중앙에 비치된 하얀 소파에 앉아 침을 삼켰다.

한쪽 벽 전체가 초대형 LED 모니터 만들어진 멀티비전이다 보니 존이 틀어놓은 복싱 동영상은 마치 눈앞에서 실제로 경기를 하는 것처럼 박진감이 넘친다.

“플로이트 메이데이, 전설의 복서인 록키 마르시아노와 타이 기록인 49전 49전승의 무패신화를 이루고 데뷔한지 20년에 39살의 나이로 화려하게 은퇴했어.”

“단 한 차례도 진적이 없네?”

“맞아. 단 한 번도 진적이 없어. 하지만 더 대단한 것은 바로 이거야.”

존은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 있게 리모컨의 버튼을 눌렀다.

새로운 동영상이 틀어졌다.

플로이트 메이데이가 어떻게 상대의 공격을 막고 흘리는지를 보여주는 디펜스 하이라이트 영상이었다.

“와아아아!”

“어때? 기가 막히지?”

“어떻게 저런 동작이 가능하지? 자신의 왼쪽 어깨를 위로 살짝 들어서 돌리는 것만으로 거의 대부분의 펀치를 흘려버리네?”

“저건 숄더롤(shoulder roll)이라는 복싱기술이야. 그게 다가 아니야. 저렇게 상대방의 공격을 피하기 위하여 윗몸을 앞으로 숙이고 머리와 상체를 좌우로 흔드는 위빙(weaving)을 섞으니까 한 대도 안 맞잖아?”

“정말 그러네?”

주말데이트를 기대했던 소울은 전미 치어리더 대회 연습으로 바쁜 엘리스가 학교로 가버리자 존의 집에 초대됐다.

소울이 다치는 것을 정말 싫어하는 엘리스 때문에 천재적인 운동신경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운동선수로 뛰어 본적이 거의 없었다.

사랑하는 엘리스의 바람을 전격 수용하긴 했지만 야성이 살아있는 사내라면 누구나 복싱경기를 보고 흥분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존은 소울의 무의식에 깔린 이러한 불만과 약점을 노리고 지금 유혹의 마수를 펼치고 있는 것이다.

“복싱에는 상대방의 공격을 피하고 방어하는 기술이 아주 많아. 보빙, 더킹 등 여러 가지 무빙이 있어. 네가 다치지만 않으면 엘리스도 너보고 뭐라고 하진 못할 거야. 일단 학교 체육관에서 복싱을 배워보자.”

“엘리스가 알면 나중에 난리를 피울 텐데…….”

“누가 당장 시합에 나가라고 했어? 그냥 복싱이 어떤 운동인지 한번 해보란 말이야. 너 몸도 좋고 운동신경도 끝내주잖아? 가볍게 스텝과 무빙을 배우고 펀칭도 배워보면 나중에 불량배를 만났을 때 엘리스를 지켜줄 수도 있고 좋지 않겠어?”

“그거야 뭐…….”

소울은 존이 뭔가 의도적으로 자신에게 복싱을 배우라며 푸시(push)를 하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플로이트 메이데이의 복싱 동영상을 보니 꼭 한번 복싱을 배워보고 싶었다.

‘정말 가볍게 복싱이 어떤 운동인지 한번 배워볼까? 엘리스가 뭐라고 하면 존의 말대로 셀프 디펜스를 위해서 배운다고 하면 되겠지? 엘리스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어느 정도는 무력이 필요해.’

그는 스스로 자기합리화를 시작했다.

생각해보니 정말 자신한테 꼭 필요한 운동이 아닌가?

그의 마음이 점차 복싱을 한번 해보자는 것으로 기울었다.

별다른 운동을 하지 않아도 자신의 몸매는 다비드의 조각상 같다.

균형 잡힌 골격에 적당한 근육으로 잘 만들어진 그의 몸은 어떤 운동에도 적합한 훌륭한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몸을 가지고 있어도 사용하지 못하면 말짱 도루묵이다.

공부에는 특출한 재주가 없으니 몸을 쓰는 것으로 뭔가 인생의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결국 소울은 존의 유혹에 넘어가고 말았다.

“내가 월요일이 되면 학교 체육관에 미리 가서 복싱코치에게 네 얘기를 해놓을게.”

“엘리스가 알면 안 되는 것 잘 알고 있지?”

존은 그 와중에도 엘리스가 화를 낼까봐 걱정을 하는 소울을 보며 고개를 흔들었다.

“물론이지. 걱정하지 마. 절대 모를 거야. 그리고 나중에 알게 된다고 해도 뭐라고 하겠어. 그냥 건강 때문에 운동 삼아 한다고 하면 되잖아?”

“으음.”

소울은 존의 말에 굳이 대답을 하지 않았다.

제일 좋은 방법은 일단 자신이 한번 복싱을 직접 체험해보는 것이다.

시작도 해보기 전에 엘리스에게 걸리는 것은 정말 원치 않았다.

월요일 아침이 되자 엘리스는 여느 날과 같이 그의 방까지 거침없이 쳐들어왔다.

졸린 눈으로 샤워실로 끌려간 그는 샤워를 마치고 그녀가 만들어준 아침을 먹고 학교로 갔다.

그녀의 손에 이끌려 학교로 들어오자 어떻게 알았는지 존이 학교 앞으로 그를 마중 나와 있었다.

쪽!

“I love you. 자기야, 나 먼저 가볼게.”

“I love you, too. 응, 그래. 점심식사 시간에 보자.”

“오케이.”

엘리스가 소울의 입술에 키스를 하고는 바쁘게 건물 안으로 뛰어가자 존은 멍한 표정으로 그녀의 뒤태를 감상하고 있었다.

“너 줄리가 이러는 거 아냐?”

“응, 아, 아니야.”

존은 소울의 날카로운 눈빛에 급히 고개를 돌리더니 두 손을 마구 흔들었다.

“엘리스냐 줄리냐? 하나만 정해!”

“엘리스라니? 절대로 아냐. 난 줄리만 좋아해.”

소울이 한심하다는 듯 작게 물어보자 존은 펄쩍 뛰면서 소리쳤다.

“존, 네가 감히 날 좋아한다고?”

“허억, 줄리!”

“네까짓 녀석이 날 좋아해서 뭘 어떻게 하겠다는 건데?”

존의 뒤로 줄리가 나타나자 존은 사색이 되었다.

소울은 그 모습에 고소를 지었다.

원래 티셔츠가 작은 것인지 아니면 워낙 바스트가 커서 티셔츠가 터질 것처럼 부풀어 오른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주변에 있던 사내의 시선들이 동시에 줄리의 가슴으로 향하는 것은 본능이라 누가 뭐라고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꿀꺽!

소울도 본능에 따라 자신도 모르게 고개가 돌아가고 괜히 목이 타는 것 같은 느낌에 침을 삼켰다.

“이 새끼가 지금 어디를 보는 거야? 눈깔 안 내려?”

“헉, 미안. 아, 아니야. 난 절대 안 봤어.”

“뭘 안 봐? 응, 뭘 안 봤는데?”

“아니 그게, 그게 말이야.”

줄리는 존이 하는 말을 이미 다 듣고는 복날에 개잡듯이 존을 잡아댔다.

소울은 잠시 존이 영혼까지 털리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조용히 걸음을 옮겨 건물 안으로 사라졌다.

수업시작 종이 칠 때까지 존이 얼마나 줄리에게 털렸는지 수업시간 내내 그는 입을 떡 벌리고 멍하니 창문만 쳐다보고 있었다.

오전 수업이 끝나자마자 누가 뭐라고 할 것도 없이 다들 카페테리아로 몰려들었다.

소울과 엘리스는 카페테리아에서 마치 견우와 직녀가 만나기라도 하듯 요란하게 서로를 반겼다.

존과 줄리도 같이 만났지만 소울과 엘리스와는 반대로 철저하게 줄리가 갑인 상황으로 존의 지갑만 가벼워졌을 따름이다.

“엘리스, 오늘도 치어리더 연습하러 가야해?”

“응, 요새 자기한테 신경 많이 못써줘서 미안해. 내가 주말에 밀린 것 까지 전부 보상해줄게.”

“아니야. 그렇게 안해도 돼. 너 바쁜 것 아니까 내가 이해해야지.”

“소울, 고마워. 역시 나를 이해해주는 것은 자기밖에 없어.”

“하하하! 그렇지?”

“호호호! 응. 우리 그러는 의미에서 프렌치 키스 한번 할까?”

“좋지.”

소울의 옆에 바짝 붙어 있던 엘리스가 자리에서 일어나 소울의 무릎 위로 앉았다.

그리고는 소울의 목을 두 팔로 감싸더니 진한 프렌치키스를 시작했다.

카페테리아가 순간 침묵에 휩싸였다.

============================ 작품 후기 ============================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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