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OULNET-389화 (389/492)

00389  제 98 장 - 오라클  =========================================================================

“마스터, 도착했어요.”

“우와! 여기가 말로만 듣던 그 이스탄불이구나.”

청아한 목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사내의 감탄성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사내의 눈은 실망감으로 가득 찼다.

“이런, 여기는 이미 지옥이네.”

“그렇군요. 일주일이 지났으니 사실 좀 늦긴 했죠.”

그들의 눈에 보이는 이스탄불은 폐허, 그 자체였다.

소울은 혀끝을 차며 안타까워했다.

천년고도(千年古都)이자 풍성한 볼거리와 먹거리가 가득한 이스탄불을 보고 싶었는데 그의 바람은 아무래도 쉽게 이루어질 것 같지 않았다.

“오라클은 지금 어디쯤 있지?”

“영국 런던, 프랑스 파리, 스위스 취리히, 오스트리아 빈, 헝거리 부다페스트, 루마니아 부쿠레슈티, 불가리아 소피아를 거쳐 현재 이스탄불로 들어와 보스포루스 해협을 향해 다가오고 있다고 합니다.”

금소희가 하는 말을 듣자 그는 그간 자신이 거쳐 온 나라들과 도시들이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필리핀 마닐라, 베트남 하노이, 타이 방콕, 방글라데시 다카, 인도 뭄바이, 쿠웨이트 쿠웨이트, 레바논 베이루트를 거쳐 이제 터키 이스탄불에 도착한 것이다.

“우리 이스탄불에서 결착을 보도록 하자.”

“네, 마스터.”

소울의 말에 금소희가 힘차게 대답했다.

이미 군용수송기를 통해 이스탄불로 서머너즈 길드 최정예 능력자들과 소울 디펜스 특수영업부 대원들이 속속 도착하고 있었다.

미국의 정찰위성도 총동원됐고, 군용 드론들도 두 자리 숫자가 이스탄불 상공에서 빠르게 차로 이동하고 있는 오라클과 그의 추종자들을 추적하고 있었다.

오라클은 이제 더 이상 빠져 나갈 구멍이 없다.

보스포루스 해협은 흑해와 마르마라 해(海)를 잇고, 아시아와 유럽을 나누는 터키의 해협으로 유명하다. 길이는 30 km이며, 폭은 가장 좁은 곳이 750 m 에 불과했다.

보스포루스 해협이 끝나는, 유럽 쪽의 해안에 텔레포트를 통해 도착한 소울은 잠시 모든 것을 잊고 마르마르 해(海)를 묵묵히 쳐다봤다.

인간과 몬스터 간의 치열한 전투와 나는 전혀 상관없다는 듯, 오늘도 바다는 변함없이 파도를 치며 하얀 포말을 만들어내고 있다.

멍하니 바다를 보고 있자니 괜히 달려가서 풍덩 빠져버리고 싶어진다.

왜 그런 생각이 드는지는 모르지만, 그런 생각이 들자 피식 웃음이 흘러나왔다.

인생이란 무엇일까?

난 지금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나?

내가 과연 어디까지 할 수 있을까?

그동안 여러 가지 상념들이 머릿속에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나와 자신을 괴롭혔다.

하지만 바다를 바라보는 지금 이 순간, 더 이상 그런 생각은 들지 않는다.

잡생각이 멈추자, 그동안 본능적으로 느껴왔던 이상한 감이 슬그머니 고개를 치켜들었다.

“금소희!”

“네, 마스터.”

“좀 이상하지 않아?”

“뭐가요?”

금소희는 소울이 자신을 쳐다보지도 않고 묻자 뭐라고 답을 해줘야 할지 몰라, 그저 눈만 말똥거렸다.

하지만 소울은 금소희에게 굳이 답을 원한 것은 아니다.

그는 지금 대화할 상대가 필요했을 뿐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해. 오라클이 대서양을 건널 때부터 뭔가 얘기의 앞뒤가 맞지 않아.”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으음, 오라클이 의도적으로 자신의 행적을 노출시키고 있는 것 같아.”

“에엑, 설마요?”

금소희는 소울의 말에 단호하게 고개를 흔들었다.

그녀의 눈빛이 불안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 뭔가 알 수 없는 함정에 빠진다고 생각하니 끔찍한 생각이 들었나보다.

그러나 소울의 시선은 바다를 향해 있어 그런 금소희를 보지 못했다.

“왜 대서양을 건넜을까?”

“…….”

“뭘 노리고 유럽을 한바탕 들었다가 놓은 거지?”

“…….”

“혹시 나를 부르고 있는 건가?”

“그, 그럴 리가 있나요?”

그제야 소울은 금소희에게 고개를 돌렸다.

싱긋 미소를 짓는 소울을 보자 금소희는 천천히 그에게 다가갔다.

소울의 넓은 등을 보자 그녀는 참을 수 없는 안타까움에 자신의 몸을 가만히 기대어봤다. 그리고는 허리로 두 손을 집어넣어 깍지를 끼고 꽉 끌어안았다.

“마스터, 너무 혼자 모든 것을 감당하려고 하지 마세요.”

“으음?”

“어깨가 너무 무거워 보여요. 제게도 조금 나눠주세요.”

뭉클한 그녀의 가슴의 감촉이 등을 압박했다.

그녀의 따뜻한 마음이 그 느낌보다 더욱 진하게 다가온다.

긴장했던 근육이 슬며시 풀어지고 예민해진 신경이 조금씩 이완됐다.

“후우우우!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

“천만에요.”

소울은 고개를 다시 바다를 향해 돌렸다.

그는 굳이 그녀를 자신의 몸에서 떼어낼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냥 가만히 내버려뒀다. 왠지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녀의 온기가 필요했다.

드르르르르르!

주머니에 넣어둔 위성전화가 울렸다.

“여보세요?”

-마스터, 나인권 부장입니다.

“나 부장, 좋은 소식 들어왔어?”

대뜸 나인권에게 소식을 물었다.

나인권은 소울이 물어보는 좋은 소식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고 있어 망설임 없이 바로 대답했다.

-오라클은 현재 이스탄불 시(市) 서부, 아브지라르 지역을 지나가고 있습니다. 마스터가 계신 곳과는 정확히 20km 떨어진 지점입니다.

“포위망은?”

-확실하게 굳혔습니다. 하늘과 땅은 물론 바다까지, 그 어느 곳으로도 빠져 나가지 못할 겁니다.

“텔레포트 능력자가 있으면 도망갈 수 있지 않을까?”

-오라클에게 텔레포트 능력자가 붙어 있다는 정보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설사 텔레포트 능력자가 옆에 있다고 해도 소용없을 겁니다. 마스터의 옆에는 금소희 대원이 있으니까요. 텔레포트 능력자는 같은 능력자의 행적을 추적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

소울은 금소희에게 그런 능력이 있는 줄 전혀 몰랐다. 하긴 아무리 서머너즈 길드의 마스터라고 하더라도 모든 정보를 다 알고 있을 수는 없다.

어찌됐던 중요한 것은 오라클이 빠져 나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오라클의 이동경로를 보면 술탄아흐메트 광장으로 갈 확률이 높습니다. 이동을 위한 차량을 보내 드릴까요?

“아니야. 직선거리로 500m 밖에 되지 않는 곳이니 걸어가도록 할게. 토끼몰이 잘 부탁해!”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오늘 오라클은 결코 빠져나가지 못합니다.

자신에 찬 나인권 부장의 목소리를 들으니 소울은 적이 안심이 됐다.

위성전화를 주머니에 집어넣고 몸을 돌리려고 하자 등뒤에 뭔가 매달려 있는 것이 느껴졌다.

그는 자신의 등 뒤에서 백허그를 하고 있는 금소희를 살짝 떼어 놓았다.

“술탄아흐메트 광장으로 이동한다.”

“네, 마스터.”

금소희는 밝은 미소를 지으며 그의 뒤를 따랐다.

소울은 나인권의 전화로 오라클이 자신을 향해 오고 있다는 것을 확신했다.

[오라클이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다. 모두 술탄아흐메트 광장으로 이동하면서 전투준비를 한다.]

[네, 주인님.]

[예, 알겠어요.]

[예스, 마이로드.]

[빠아.]

그의 소환수들이 힘차게 대답을 했다.

‘그럼 나도 미리 준비를 해볼까? 오라클, 넌 오늘 반드시 내손에 죽는다.’

소울은 이를 뽀드득 한번 갈고는 전투준비를 시작했다.

그가 입고 있는 둠 플레이트가 풀 플레이트 아머에서 몸에 딱 붙어서 행동하기 편한 전투슈트 모양으로 형태변환 되었다.

서먼나이트 전용스킬인 트렌스 페인, 네크로멘시, 커스 오브 둠, 뱀피릭 미스트, 쉐어링 어빌리티, 다섯 가지 스킬을 동시에 펼쳤다.

호신강체공을 일으키고 실드를 중첩시켰다.

술탄아흐메트 광장에 도착하자, 소울과 그의 소환수들은 이제 모든 전투준비를 끝내놓고 느긋하게 오라클이 오는 것만을 기다렸다.

오크와 트롤, 오우거 등 간간이 겁도 없이 달려드는 몬스터들이 있었다.

그때마다 푸티나가 블리츠어택 스킬을 써서 번개처럼 달려가 마빡을 도끼로 쪼개버렸다.

[주인님, 일단의 무리가 술탄아흐메트 광장에 도착했습니다.]

까뮤의 말에 소울의 눈에 서늘한 기운이 서리며 날카롭게 빛났다.

그토록 찾아 헤맸던 오라클과 그의 추종자들이 술탄아흐메트 광장에 도착한 것이다.

검은 정장을 입은 일단의 사내들이 빠르게 차량에서 내렸다.

그들은 하얀 원피스를 입은 여자를 반원형으로 둘러싸더니 소울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마스터, 저기 가운데에 있는 여자가 오라클인가 봐요?”

금소희의 말에 그의 눈에서 시퍼런 살기가 줄기줄기 쏟아져 나왔다.

오라클은 눈처럼 새하얀 원피스를 입고 그를 향해 정면으로 다가왔다.

당장이라도 금가루가 떨어져 날릴 것 같은 금발에 남태평양의 바다처럼 파랗고 깊은 눈을 가진 눈부신 백인 미녀가 소울의 눈앞에 멈춰 섰다.

하얗고 뽀얀 얼굴에 석류처럼 붉은 입술이 보이자 그의 심장이 주인의 허락도 받지 않고 마구 두근대기 시작했다.

‘뭐, 뭐야 이 여자? 사람 맞아?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지?’

오라클은 한눈에 봐도 정말 엄청난 미녀였다.

그도 금소희를 비롯해 유정아, 성유나, 고하라, 정윤이 등 많은 미녀를 만나봤지만, 오라클처럼 아름다운 미녀는 결단코 본적이 없었다.

이건 절대 사람이 가질 수 있는 미(美)가 아니다.

그는 이 사람 같지 않은 미친 미모의 소유자, 오라클 앞에 서자 자신도 모르게 살기가 사그라지고 무장해제가 되어가는 것을 느꼈다.

민세경을 죽인 원한을 잊지 않고 있는 자신이 이럴진대 다른 사람은 어떨까 생각을 해보자 절로 소름이 끼쳤다.

오라클의 뒤에서 반원형으로 서서 나름 철통같은 경호를 하고 있는 이십 명의 사내들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한결같이 소울을 적으로 보고 단단히 경계하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간간히 시선이 오라클을 향했을 때 보이는 그들의 표정은 진한 애정과 사랑, 존경으로 가득 차있었다.

이상한 것은 그들의 표정이 자신도 모르게 이해가 간다는 것이다.

“안녕하세요? 이소울 마스터!”

오라클의 맑고 깨끗한 음색의 목소리가 귀를 울렸다.

“오라클, 너와 내가 이렇게 인사를 나눌 만큼 친한 사이는 아니지 않아?”

소울은 일부러 조금 까칠하게 말했다. 자꾸 무장해제 되어가는 자신의 모습에 경각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본의 아니게 이소울 마스터에게 피해를 드린 점은 사과할게요. 하지만 잘못된 오해는 꼭 풀어야 할 것 같아 이렇게 왔어요.”

참 신기했다.

그녀가 사과를 하자 당장 그 사과를 받아주고 싶었다.

오해가 있으니 풀어야겠다고 말하자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하자고 말할 뻔했다.

그녀의 눈은 진실해보였고 그녀의 목소리는 절대 거짓말을 할 것 같지 않았다.

‘요물이구나. 어떻게 이렇게 말만 가지고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까? 이것이 그녀가 가지고 있는 능력인가?’

여자는 몰라도 사내라면 아마 오라클의 말에 넘어가지 않을 자는 찾기 힘들 것이다.

“사람을 죽여 놓고 사과만 하면 그만인가? 그리고 오해라니? 우리 사이에 무슨 오해가 있어? 외계인에게 지구를 팔아넘긴 년이 어디서 자꾸 개소리를 지껄이고 있어?”

“히잉, 그게 아니에요. 전부 오해라니까요? 전 외계인에게 지구를 팔아넘긴 적이 없어요. 다만 우주의 상위 지성체들의 도움을 받아 지구를 좀 더 아름답고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고자 했을 따름이에요.”

“어떻게? 차원의 균열을 만들어서 몬스터를 불러들여 인류를 멸종시키는 방법으로?”

“그건 지구를 살리고 풍요롭게 만드는 거대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다가 생긴 작은 부작용이에요. 지금 지구는 죽어가고 있어요. 지구가 아파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나요? 지구가 죽으면 인류는 당연히 멸망하는 거예요. 인간의 문명에 의해 지구가 이처럼 아파하고, 죽어가고 있는데 가만히 있어야 하나요? 전 살리고 싶어요. 도와주세요. 이소울 마스터가 도와주시면 더욱 손쉽게 지구를 살리고 인류도 살아날 수 있어요.”

소울은 그녀의 말에 호락호락 넘어가지 않았다.

“지구를 살리는 방법을 왜 네가 결정하지? 아니 왜 외계인들을 끌어들여서 그들이 결정하게 만들었어? 아무리 미사여구로 네 말을 포장하려고 해도 결국 너는 지구를 망치고 인류를 멸종으로 몰아넣는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어.”

“제가 잘못한 것이 있으면 달게 벌을 받겠어요. 목숨을 달라고 하면 내주겠어요. 하지만 전 결단코 인류를 멸종으로 몰아넣지 않았어요. 당장 숨이 넘어가려고 하는 이 지구를,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오기 전에 살리려고 한 것뿐이에요.”

============================ 작품 후기 ============================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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