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88 제 97 장 - 전설의 시작, 불새인간 =========================================================================
다무 나가르에 도착하자 소울은 눈살을 찌푸렸다.
이미 몬스터들이 다무 나가르 지역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지나갔기 때문이다.
[이놈들이 어디로 갔지?]
[고클 나가르 지역에 몬스터들이 난동을 피우는 모습이 보입니다.]
[본, 들었지? 그리로 가자.]
[예스, 마이로드.]
본이 다크 배틀리언의 기수를 남으로 돌렸다.
고클 나가르로 가는 중간에 있는 가우탐 나가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가우탐 나가르는 다무 나가르와 마찬가지로 쑥대밭으로 변해 있었다.
판자와 양철 판으로 허름하게 지어진 집들은 드레이크의 발에 짓밟혀 폭삭 주저앉았고 그 아래로 사람의 피가 강물처럼 흐르고 있었다.
시체가 많이 보이지 않는 것을 보니 그 와중에도 사람을 잡아먹으면서 이동하고 있는 것 같았다
‘지옥이 따로 없군.’
한반도에 있는 몬스터 필드 중에 좀 피해를 입었다는 대구도 이곳에 비하면 새 발의 피에 불과해보였다.
필리핀 마닐라, 베트남 하노이, 타이 방콕, 방글라데시 다카, 인도 뭄바이 까지 돌아보니 대한민국이 지금 중대형 몬스터 웨이브를 얼마나 기가 막히게 잘 막고 있는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이곳에 비하면 대한민국은 천국 그 자체였다.
[서두르자.]
[예스, 마이로드.]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죽어간 모습에 소울은 자신도 모르게 서두르기 시작했다.
고클 나가르 지역에 도착하자 역시 이미 이곳도 드레이크를 비롯한 리자드맨 무리가 한바탕 휘젓고 지나간 것을 볼 수 있었다.
[여기도 벌써 박살이 났네?]
[주인님, 고클 나가르의 남도쪽에 있는 크란티 나가르와 남쪽의 램가드 나가르도 초토화됐습니다. 몬스터들은 지금 고클 나가르의 서쪽에 있는 두르가 나가르에 있습니다.]
소울은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렉시, 나를 태워라!]
[빠아!]
고클 나가르 지역이 초토화 된 것과는 반대로 북쪽에 있는 록핸드왈라 타운쉽 지역은 너무나도 멀쩡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고층 아파트와 고급 주택가, 커다란 쇼핑센터와 그 앞에 펼쳐진 잘 정돈된 타운 내의 숲까지 ‘아쿨리 크로스 로드’ 라는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어떻게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아무리 카스트 제도의 아래쪽에 걸쳐진 보잘 것 없는 인간들이라고 할지라도 사람의 생명은 모두 똑같이 귀중한 것이다.
죽은 이들은 분명히 누군가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될 것이고, 누군가에게 아들과 딸이 될 것이다.
친척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어도 가슴이 아프고 우울해지는데 가족이 죽으면 얼마나 슬프고 고통스럽겠는가?
사고로 죽은 것도 아니고 몬스터에게 생으로 잡아 먹혀 죽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소울은 드레이크와 리자드맨을 비롯한 몬스터들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다.
돈과 권력으로 능력자들을 불러들여 철통같이 보호되는 지역과는 달리 너무나도 쉽고 허무하게, 파리 목숨이 되어버린 사람들을 위해 그래도 누군가는 한번쯤 편을 들어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쌔앵!
렉시의 몸 위에 훌쩍 뛰어 올라서자 동남아시아를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불새인간이 또다시 뭄바이 시 하늘에 등장했다.
렉시의 몸이 붉게 타오르듯 빛나자 소울의 모습은 더욱 더 신비롭게만 느껴졌다.
[본은 다크 배틀리언을 지휘하여 저 앞에 있는 몬스터 무리를 쓸어버려라!]
[예스, 마이로드.]
[까뮤와 푸티나는 드레이크 위주로 사냥을 시작한다.]
[네, 주인님.]
[예, 주인님.]
명령이 떨어지자 그의 소환수들은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소울도 디스트로이어를 꺼내들고는 연사모드로 바꾸고 레버를 위로 올렸다.
그동안의 경험으로 드레이크의 대가리를 조지는 것은 저격모드 보다 연사모드에 위력만 조절하는 것이 더 좋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동안 아무도 공중에서 드레이크를 잡아본 적이 없어서 드레이크의 머리 위쪽이 의외로 약하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하지만 소울은 그동안 질리도록 드레이크만 잡아왔기 때문에 이제는 드레이크의 몸체 어디가 강하고 약한지 빠삭했다.
물론 드레이크의 머리 위쪽이 약하다는 기준은 소울의 전투력을 기준으로 볼 때였다.
푸슈슈슝 푸슈슈슝 푸슈슈슝!
쿵 쿵 쿠쿵 쿵 쿵!
이리저리 몰려다니며 집을 파괴하고 사람을 잡아먹고 있던 드레이크 몇 마리가 일제히 땅바닥에 대가리를 처박았다.
이들은 자신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당했는지도 인식하지 못하고 머리통에 구멍이 뻥 뚫려 이승을 하직했다.
하지만 첫 번째 공격 후에 주변에 흩어져 있던 드레이크들은 즉시 소울의 존재를 알아차리고는 귀청이 터질 듯 소리를 질러댔다.
쿠에에에에 쿠훼에에에 쿠아아아아!
그러나 그들이 입을 크게 벌리고 소리를 지른 것은 그들의 명을 재촉하는 짓이었다.
드레이크들이 입을 벌리는 순간, 그들의 입안으로 뭔가가 빠르게 날아들었다.
그리고 그것은 곧 화끈한 화염을 일으키며 폭발해버렸다.
꽝 꽈꽈꽝 꽝꽝!
입안으로 들어간 수류탄은 드레이크의 머릿속과 목을 걸레로 만들어버렸다.
그 자리에 주저앉은 드레이크의 코와 귀로 검은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나이스 샷!]
[고맙습니다. 주인님.]
소울은 까뮤의 기지에 아낌없는 칭찬을 해줬다.
드레이크를 정면으로 상대해서 이기는 것도 좋겠지만 기왕이면 머리를 써서 손쉽게 사냥하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
두르가 나가르 지역을 초토화시키고 있던 드레이크를 다 잡아 죽이자 리자드맨들은 그야말로 추풍낙엽처럼 본과 다크 배틀리언에게 쓸려나갔다.
쿠라 빌리지를 거쳐 코카니 파나, 트리베니 나가르 지역을 싹 정리하고 8번(Western Express HWY) 고속도로를 타고 빠르게 남하했다.
‘조겟워리 비크롤리 링크 로드’를 넘어가자 왼편에 거대한 주거지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 한눈에 봐도 서민들이 모여 사는 인구밀집지역이었다.
높은 건물이 거의 없는 프라탑 나가르, 사마스 나가르를 지나 드레이크를 추적했다.
줄라 메단 로드를 중심으로 드레이크와 리자드맨들이 만찬을 벌이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드레이크 한 마리가 막 발버둥치는 어린아이를 자신의 입속에 떨어뜨리고는 몇 번 우적거리는 것을 보자 소울은 자신도 모르게 욕을 하며 렉시를 움직였다.
“저런 썩을?”
소울은 곧바로 디스트로이어를 치켜들었다.
그리고는 사정없이 드레이크들을 잡아 죽이기 시작했다.
푸슈슈슝 푸슈슈슝 푸슈슈슝!
쿵 쿵 쿠쿵 쿵 쿵!
신나게 인간의 살과 피로 만찬을 즐기고 있던 드레이크들은 자신들이 왜 죽는 지도 모른 채 뒤통수에 구멍이 뚫리며 죽어갔다.
소울의 분노가 소환수들에게 전염이라도 된 것일까?
까뮤와 푸티나 그리고 본과 다크 배틀리언은 갑자기 미친 듯이 드레이크와 리자드맨을 잡아 죽이며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그 모습에 울화통이 터질 것 같던 소울의 가슴이 조금은 진정이 됐다.
그때였다.
그의 눈에 뭔가 이상한 것이 보였다.
[까뮤, 저것 좀 이리 가져와봐.]
[네, 주인님.]
까뮤는 윈드커터를 난사하며 리자드맨을 조각내다가 소울의 명령을 받고는 즉시 날아가 검은 비닐봉지를 낚아챘다.
그는 손에 들어온 검은 비닐봉지를 열어 안을 살펴봤다.
안에는 빈 혈액 팩이 가득 들어있었다.
“이게 왜 여기에 있지? 여긴 병원도 아닌데? 혹시?”
소울은 갑자기 머릿속에서 뭔가 구역질나는 그림이 그려졌다.
‘설마, 아니겠지. 아닐 거야. 아무리 그래도 사람이라면 그럴 수 없지.’
그는 강하게 고개를 좌우로 한번 흔들었다.
하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의심이 눈덩이처럼 커져가고 있었다.
[렉시, 남쪽으로 내려간다.]
[빠아.]
[까뮤, 날 따라와!]
[네, 주인님.]
쌔애애액!
렉시가 크게 날갯짓을 한번 하자 그의 몸이 뒤로 확 쏠렸다.
공기를 찢어발기며 날아가는 속도는 그를 순식간에 뭄바이 남쪽 끝단까지 이동시켜줬다.
직선거리로 30km.
빠르게 날아오면서, 매처럼 날카롭게 눈을 빛내며 뭄바이 시 전체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었다.
피해는 극심했다.
닷새 밖에 되지 않은 중대형 몬스터 웨이브였지만 뭄바이 시 곳곳은 피와 죽음으로 가득 차있었다.
언제부터 시작된 화재인지는 알 수 없지만 곳곳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몬스터가 이미 뭄바이 시 남쪽 끝까지 쫙 퍼졌네?]
[그럼 남쪽 끝에서부터 몬스터를 소탕해볼까요?]
까뮤의 말에 소울은 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도 나쁘지 않겠지. 본, 푸티나, 남쪽으로 내려와!]
[예스, 마이로드.]
[알겠어요.]
일단 본과 다크 배틀리언을 뭄바이 최남단으로 불러들였다.
그 사이 소울은 주변을 훑어보더니 손가락으로 한 곳을 가리켰다.
[우린 저기로 가보자.]
[네, 주인님.]
[빠아.]
도비가트(Dhobi Ghat).
그가 제일 먼저 주목한 곳의 이름이다.
도비가트는 인도 카스트제도의 최하 신분인 수드라에도 미치지 못하는, 약 180년 동안 빨래를 생업으로 살아가는 자들의 터전이다.
다닥다닥 붙어있는 판자 집에 모여 살며 빨래를 하는 사람들을 '도비왈라'라고 부르는데 이들의 직업은 대대로 자손에게 이어진다.
도시재개발로 점차 거리로 내몰리고 있던 이들의 삶의 터전은 불행하게도 드레이크와 리자드맨에 의해 처참하게 박살나 있었다.
[주인님, 검은 봉지가 여기에도 있어요.]
[이런…….]
까뮤가 도비왈라들의 것으로 보이는 피와 시체 사이에서 검은 비닐봉지 하나를 찾아냈다.
안을 들여다보니 아까 봤던 그 혈액 팩과 같았다.
[결국 내 생각이 맞았군. 의도적으로 몬스터를 이쪽으로 끌어들였어.]
[드레이크와 리자드맨의 조합은 꽤나 강력합니다. 이들을 분산시켜서 각개격파를 하려고 했을 수도 있잖아요?]
[물론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이유가 어떻게 됐던 간에 차별을 받은 것은 확실해. 배부른 포식자는 이빨과 발톱이 무뎌지는 법이니까…….]
소울이 말을 하면서 남서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까뮤의 얼굴도 동시에 같이 돌아갔다.
고층아파트가 즐비한 남서쪽 대로에서 아까부터 계속 폭음이 들려왔다.
그는 렉시를 움직여서 대로를 따라 움직였다.
아니나 다를까 능력자들로 이뤄진 파티 수십 개가 드레이크와 리자드맨을 포위한 채 맹공격을 퍼붓고 있었다.
대충 숫자를 세어보니 능력자들은 족히 백 명도 더 되는 것 같았다.
그들의 뒤쪽에 있는 지역을 훑어봤다.
한마디로 깨끗했다.
뭄바이필드에서 리자드맨만 수십만 마리가 나왔다.
그런데 여기는 어떻게 이처럼 깨끗할 수 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인도의 능력자들이 철저하게 여기를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말 징그러운 곳이군.’
소울은 뭄바이 시에 정나미가 뚝 떨어졌다.
비단 뭄바이 시에서만 일어나고 있는 일은 아니다.
인도는 물론이고 지구촌 곳곳에서 이와 비슷한 일은 비일비재 할 것이다.
어딜 가나 가진 자들의 행태는 다 비슷비슷 하니까 말이다.
갑자기 어깨에 힘이 쭉 빠졌다.
인도의 능력자 파티, 아니 공격대가 잡고 있는 드레이크와 리자드맨 무리를 보니 배가 빵빵하게 불러있어 움직이는 동작이 영 시원치 않았다.
그의 생각대로 드레이크와 리자드맨 무리는 배터지게 포식을 한 상태로, 아직 먹은 것조차 제대로 다 소화를 시키지 못하고 있었다.
배부른 포식자의 이빨과 발톱이 무뎌질 것이라는 그의 생각은 정확했다.
그리고 누가 이런 작전을 세웠는지 모르지만 정말 같은 인간으로써 해서는 안 되는 일을 저질렀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 작전을 세우고 지시한 놈들은 아마 인도의 가진 자들에게 전폭적인 신임을 얻게 될 것이 분명하다.
[작전을 바꾼다. 드레이크만 집중적으로 골라서 빠르게 제거하고 인도를 뜬다.]
[네, 주인님.]
[예, 알겠어요.]
[예스, 마이로드.]
[빠아.]
소울은 냉정한 목소리로 명령을 내린 뒤 곧바로 렉시를 남서쪽으로 움직였다.
배가 불러서 땅에 질질 끌리고 있는 드레이크를 배를 보자 절로 살기가 치밀어 올랐다.
도대체 얼마나 사람들을 잡아먹어야 저렇게 배가 빵빵해질까?
푸슝 푸슝 풋슈슈슈슝!
소울은 드레이크의 머리 위에서 사정없이 디스트로이어를 쏴재꼈다.
맞는 족족 드레이크의 대가리가 땅바닥에 거칠게 처박혔다.
[까뮤, 전리품 수거해!]
[네, 주인님.]
그는 일부러 공격대가 잡고 있는 드레이크들을 골라서 사냥했다.
그리고 까뮤를 이용해 드레이크들의 사체를 아공간에 쓸어 담았다.
아래쪽에서 인도의 능력자들이 자신을 향해 손가락질을 하며 뭐라고 시끄럽게 떠들어댔다.
그래봤자 소울은 그저 차가운 눈빛으로 답을 대신 할 뿐이었다.
[렉시, 가자.]
[빠아.]
소울이 렉시를 타고 빠르게 사라지자 그제야 인도의 능력자들도 소울의 정체를 파악했는지 놀란 눈빛을 했다.
하지만 불새를 타고 다니는 인간은 이미 그들의 시야에서 사라져있었다.
그리고 얼마 후, 불새인간의 모습은 뭄바이 시에서 찾아볼 수 없게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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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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