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85 제 97 장 - 전설의 시작, 불새인간 =========================================================================
렉시는 근본 자체가 피닉스다.
자신의 몸의 크기를 조절할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정말 새처럼 날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그냥 그렇게 보일뿐, 실질적으론 중력에 거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전후(前後), 좌우(左右), 상승, 하강, 회전, 급기동 등 메트로 마닐라를 향해 날아가면서 여러 가지 기동을 해봤다.
처음에는 조금 어색하더니, 소환사와 소환수사이답게 금방 서로에게 적응했다.
이제는 소울이 마음만 먹어도 어떻게 움직일지 렉시가 한 몸처럼 알고 움직였다.
비난고난에서 마닐라 이스트로드를 타고 북서쪽으로 달리자 ‘타이타이’가 나왔다.
눈에 보이는 몬스터들을 다크라이노가 그대로 짓밟고 지나자 뒤이어 다크 배틀리언들이 해골마로 피 떡을 만들고 지나갔다.
스켈레톤 궁기병들의 화살이 사방으로 날아가며 놀란 리자드맨들의 머리와 가슴에 박혀들었다.
타이타이를 질풍처럼 지나가자 ‘케인타’가 나왔다.
케인타의 서쪽이 메트로 마닐라가 시작되는 지점이다.
드레이크가 없는 리자드맨들은 다크 배틀리언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그대로 그들을 짓밟고 지나치자 ‘마리키나 강’이 나왔고 그동안 달린 길은 ‘마닐라 이스트로드’에서 ‘오르티가스 에비뉴’로 변했다.
‘마리키나 강’을 건너자마자 본이 소울에게 의지를 전달했다.
[마이로드, 전면에 드레이크와 리자드맨 무리가 보입니다.]
[본은 정면으로 돌파해 나가라.]
[예스, 마이로드.]
본이 시원하게 대답을 하고는 더욱 달리는 속도를 무섭게 높였다.
[푸티나는 남쪽의 파시그 지역으로 가라. 가서 눈에 보이는 모든 몬스터를 제거해라.]
[예, 주인님.]
푸티나가 본의 대열에서 이탈해서 아래쪽으로 내려갔다.
하늘에서 바라보니 푸티나의 움직이는 모습은 블리츠어택 스킬로 인해 마치 대지를 질주하는 번갯불 같았다.
번쩍거리며 직선으로 이리저리 이동하는 모습은 빠르고 멋있었다.
하지만 당하는 입장의 몬스터들에게는 번개처럼 날아와 휘두르는 도끼질이 결코 멋있게만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렉시, 저리로 가보자.]
[빠아.]
소울은 오크티가스 에비뉴를 따라 빠르게 서쪽으로 날아 ‘왁왁 그린힐’까지 날아갔다. 왁왁 그린힐에 세워진 필리핀 육군의 마닐라 방어총사령부를 확인하자 그는 바로 아래쪽 전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마닐라필드에서 쏟아져 나온 드레이크와 리자드맨의 주력은 필리핀군이 펼쳐놓은 방어선을 속속 격파하고, 오르티가스 에비뉴를 따라 서진하여 이미 메트로 마닐라 깊숙이 들어와 있었다.
‘에피파니오 데 로스 산토스 에비뉴’라는 더럽게 긴 이름의 도로를 마지노선으로 삼은 필리핀군과 필리핀 능력자들의 거센 저항에 직면한 몬스터들은 곧 드레이크를 선두로 해서 파상공세를 펼쳐 필리핀군이 보유한 전차와 장갑차를 장난감처럼 부셔대고 있었다.
‘여기가 시가지만 아니라면 네이팜탄을 쓰면 참 좋을 텐데, 좋은 것을 알고도 정말 어떻게 할 수가 없네. 그냥 소이탄으로 만족해야겠다.’
소울은 아쉬움을 뒤로 하고 까뮤에게 소이탄으로 몬스터를 폭격하게 만들었다.
까뮤는 소울의 명령에 아공간에 보관중인 소이탄을 몬스터 무리의 머리 위로 섭섭하지 않게 골고루 잘 떨어뜨렸다.
펑 퍼퍼퍼퍼펑!
화르륵 화르르르륵!
소이탄이 터지며 불길이 치솟자 드레이크를 비롯한 리자드맨은 온몸이 화염에 휩싸여 미친 듯이 비명을 지르며 발버둥을 쳤다.
거기에다 불행 중 다행으로, 몬스터들의 이동경로는 오르티가스 에비뉴를 따라 길게 이어져 있어서 소이탄의 폭격은 아주 만족할 만큼의 결과를 만들고 있었다.
이로 인해 필리핀군과 필리핀 능력자들에게 가해지는 압박이 약해지자 그들은 급히 전열을 재정비하는 시간을 벌게 됐다.
[빠아!]
[렉시, 왜? 너도 한방 쏴주고 싶어?]
[빠아, 빠아!]
소울은 렉시가 날갯짓을 하면서 강력히 자신의 의사를 피력하자 고개를 흔들었다.
[렉시, 조금만 참아. 네 광역기는 이런 시가지에서 쓰면 너무 위험해. 나중에 좋은 기회가 생기면 쓰도록 하자.]
[빠아!]
렉시가 힘없이 고개를 푹 숙였다. 그 모습이 불쌍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렉시가 광역기를 사용하게 할 수는 없었다.
그건 빈대를 잡으려다 초가삼간을 다 태우는 격이기 때문이다.
렉시가 크게 원을 그리며 선회를 했다.
높은 상공에서 아래쪽으로 하강을 하면서 내려오는 선회가 끝나자 그의 몸은 지상에서 30m 높이에 고정되었다.
우두두두두두!
멀리서 본과 다크 배틀리언이 질주해오는 모습이 보였다.
소울은 디스트로이어의 공격모드를 유탄모드로 바꾸고 리자드맨 떼가 모여 있는 곳을 향해 신나게 발사했다.
퉁 퉁 퉁 퉁 퉁…….
가벼운 발사음과는 달리 디스트로이어에서 쏘아져나간 푸른 원형의 광채가 대지에 떨어져 내리자 리자드맨들을 한꺼번에 사방으로 날려버렸다.
쾅 쾅 쾅 쾅 쾅…….
히익, 크힉, 케엑, 캬악 크악…….
리자드맨들의 다양한 비명소리가 폭발음 속에서도 생생히 들려왔다.
쿠화아아아아! 쿠하아아아!
놀란 드레이크들이 일제히 고개를 위로 들어 올리더니 괴성을 질러댔다.
일부는 소울을 향해 브레스를 쏘아댔다.
하지만 렉시는 우아한 동작으로 간단히 방향을 트는 것만으로 드레이크의 브레스를 모조리 피해버렸다.
‘본의 아니게 드레이크들의 브레스를 유도하게 됐네. 이건 나쁘지 않아. 화염방사기도 아니고 저런 화염 브레스를 쿨타임도 없이 계속 쓰지는 못할 거야.’
소울의 생각은 정확했다.
드레이크는 드래곤이 아니다.
한번 브레스를 쏘면 다시 브레스를 사용하는데 꽤나 오랜 시간이 걸린다.
소이탄에 의해 분노에 휩싸인 드레이크는 지금 허공에 자신의 목숨과도 같은 주(主)무기를 남발하고 있는 것이다.
까뮤의 소이탄 폭격과 소울의 디스트로이어 유탄 공격으로 몬스터의 행렬은 난장판이 되어버렸다.
그 상태에서 드디어 본과 다크 배틀리언은 후미를 강타했다.
우두두두두두!
쿵 쿠쿠쿠쿵 쿵쿵쿵!
다른 것은 일단 제쳐두더라도 다크라이노 43마리의 돌파는 정말 장관이었다.
화살표 모양으로 일정한 대열을 이루고 정면으로 들이받는 단순하고 무식한 공격은 엄청난 파괴력을 가지고 있었다.
리자드맨을 굳이 뿔로 들이받을 필요는 없다.
그냥 다크라이노의 육중한 동체로 툭 치고 지나가도 머리통이 깨지고 뼈가 박살나 땅바닥을 뒹굴었다.
그 뒤로 다크 배틀리언이 달려오면서 해골마의 말발굽으로 잔인하게 짓밟고 지나가면 도로는 리자드맨의 사체가 피떡으로 포장되어 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놀란 리자드맨들이 일제히 에비뉴(큰 도로)에서 벗어나 한쪽으로 물러서자 순간 허공에 뭔가가 일제히 솟구쳐 올랐다.
쏴아아아아아아!
소나기라도 다시 내리는 걸까?
스켈레톤 궁기병의 일제사격이 소나기처럼 리자드맨 무리를 덮쳤다.
리자드맨들은 온몸에 화살을 맞고는 그 자리에서 무너지듯 쓰러져 내렸다.
우두두두두두!
오르티가스 에비뉴를 따라 돌격을 감행하는 본과 다크 배틀리언이 대지를 진동시켰다.
필리핀군과 필리핀 능력자들이 방어선을 구축하고 있는 ‘에피파니오 데 로스 산토스 에비뉴’에서 몰려있던 드레이크들도 후미에서 들려오는 리자드맨들의 비명과 대지의 진동으로 뭔가 그들을 향해 달려오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마닐라 시의 외곽을 원형으로 둘러싸고 있는 ‘에피파니오 데 로스 산토스 에비뉴’를 중심으로 처절한 방어를 하고 있던 필리핀군과 필리핀 능력자들도 뭔가 변화가 생긴 것을 감지했다.
전멸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며 절망의 절벽에서 떨어지기 직전에 느껴진 작은 변화가 희망으로 활활 불타오르는 것은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하늘에 불새가 날아다닌다.”
“불새의 위에 사람이 서 있다.”
“불새인간이 벼락을 내린다.”
“신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불새인간을 내리셨다.”
“신은 우리 필리핀을 버리지 않으셨다.”
…….
도대체 필리핀 사람들은 매일 무슨 TV 드라마와 영화를 시청하며 살아가고 있었던 것일까?
그들의 상상력이 극대화되며 소울은 단숨에 필리핀을 구원하기 위해 신이 내려 보낸 불새인간이 되어버렸다.
전황이 절망에서 희망으로 단박에 변해버리자 필리핀 능력자들은 젖 먹던 힘까지 쏟아 부어 드레이크와 리자드맨들의 파상공세를 강력히 밀어붙였다.
방금 전에는 당장이라도 방어선이 깨져버릴 것 같았는데 지금은 몬스터들이 오히려 살짝 뒤로 밀리는 기분이 들었다.
하늘에서 푸른 광채가 떨어지고 대지에 화염기둥이 치솟아 오르는 가운데 후미에서 강력한 기병이 돌격해왔다.
드레이크와 리자드맨들은 점차 혼란에 빠져들었다.
몬스터가 아니라 군대라고 해도 이런 상황이 되면 당황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럴 때 머리가 좋고 카리스마가 있는 놈 한 마리가 나서서 리더십을 발휘했다면 아마 몬스터들은 승기를 놓치지 않고 배가 터져라 인간의 피와 살로 배를 채웠을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드레이크는 그렇게 머리가 좋거나 카리스마가 강하지 않았다.
그저 두꺼운 우동가락이 대가리 속의 뇌를 가득 채우고 있을 뿐이다.
본능에 충실한 드레이크로 인해 필리핀은 구원을 받게 되는 지도 모른다.
아니 지금 그들의 눈에 보이는 하늘의 불새인간이 나타남으로 인해 전황은 급변했다.
우두두두두두!
콰콰콰콰쾅쾅!
43마리의 다크라이노가 드디어 오르티가스 에비뉴에 길게 늘어선 몬스터 떼의 후미를 강타하며 거침없이 돌파해오기 시작했다.
그들이 지나가자 하늘로 수도 없는 리자드맨들이 떠올라 에비뉴 옆으로 떨어져 내렸다.
본과 다크 배틀리온은 다크라이노 뒤에서 든든하게 돌파를 받쳐주며 몬스터의 피해를 크게 확대시키는 역할을 했다.
그들은 마치 날카로운 창이라도 된 듯 몬스터의 무리를 꼬치 꿰듯 가로질러 비수처럼 파고들었다.
[렉시 지금 돌파하고 있는 다크 배틀리온의 선두에 있는 다크라이노들의 머리 위로 가자.]
[빠아!]
소울의 명령에 렉시가 급기동을 해서 움직였다.
순식간에 돌파를 하고 있는 다크라이노들의 상공에 도착한 소울은 다크라이노들을 향해 그룹힐을 시전했다.
“그룹힐!”
소울의 손에서 우유빛 광채가 무섭게 달리고 있는 다크라이노들의 몸에 쏟아졌다.
그러자 온몸이 자잘한 상처로 덮여있던 다크라이노의 몸이 순식간에 치료가 됐다.
계속된 돌파로 인해 조금은 지치고 상처를 입은 다크라이노들이 자신의 몸에 난 상처가 사라지고 몸에서 새로운 힘이 솟구치자 기분 좋은 울음소리를 터트렸다.
뿌우우이이잉 뿌우우이이잉 뿌우우이이잉!
그와 비례하여 다크라이노의 돌파는 더욱 강하고 빨라졌다.
[렉시, 이제 네가 나설 차례다. 돌파를 하고 있는 다크라이노의 앞쪽으로 불기둥을 쏟아내면서 쓸어버려라.]
[빠아! 빠아! 빠아!]
렉시는 드디어 자신이 나설 차례가 된 것을 기뻐하며 연속 세 번을 소리쳤다.
그러더니 입을 살짝 벌리고 토치처럼 새파란 불기둥을 날아가는 전면 45도 각도로 쏟아내기 시작했다.
콰하아아아아아!
가스용접기에서 나오는 새파란 불기둥이 무서운 속도로 휩쓸어 오자 드레이크와 리자드맨은 본능적인 두려움을 느끼며 허겁지겁 옆으로 피했다.
몬스터의 행렬은 순식간에 난장판이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전열이 무너진 몬스터의 행렬 속으로 다크라이노의 육중한 동체가 칼처럼 파고들었다.
우두두두두두!
콰콰콰콰쾅쾅!
이번에는 리자드맨 뿐만 아니라 드레이크들까지 다크라이노의 돌격에 당해 순식간에 좌우로 나동그라졌다.
그 뒤로 다크 배틀리언의 기사들이 일제히 기병도(騎兵刀)를 꺼내들고는 오르티가스 에비뉴를 화살표 모양으로 꽉 채운 채 돌파했다.
촤악 촥 촥 서걱 서걱 철썩!
펑 펑펑 퍼퍼펑!
다크라이노가 돌격을 하면서 몬스터들의 전열을 붕괴시키며 짓밟고 지나간 자리를 다크 배틀리언의 기사들이 기병도로 다시 한 번 돌파하면서 몇 번에 걸쳐 살아남은 적을 베고 지나갔다.
첫 번째 공격에 쓰러지지 않는 몬스터는 곧바로 두 번째 공격과 세 번째 공격을 받게 된다. 운이 좋아 기병도의 물결을 간신히 피해 살아남아도 그 뒤에서 달려오는 스켈레톤 드래군과 궁기병의 집중공격을 받게 된다.
리자드맨이라면 절대로 견뎌낼 수 없는 연속공격이고, 드레이크도 몇 번이나 이런 식으로 공격을 당하면 상처를 입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뒤로 네크로멘서와 다크메이지의 저주와 디버프가 쏟아져 내렸다.
부상과 출혈은 순식간에 중상과 치명상으로 변해 전투불능에 빠뜨렸다.
특히 이번에 새롭게 등장한 직종인 네크로멘서들은 바닥에 넘쳐나는 시체를 이용해 ‘시체폭발’이라는 공격으로 몬스터들의 피해를 순식간에 확대재생산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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