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83 제 96 장 - 진출(進出) =========================================================================
곧 본의 명령에 의해 스켈레톤 드래군과 궁기병의 반이 앞으로 나가더니 사방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마스터, 그냥 다음 목적지로 넘어가는 게 좋지 않을까요?”
“벌써 텔레포트를 할 수 있게 됐어?”
“많은 사람을 데리고 미국 같이 멀리 가는 것도 아니고, 마스터와 저, 이렇게 단 둘이서 필리핀의 수도 마닐라까지 오는 건데요. 뭐?”
“그런가? 나는 그것도 꽤 먼 거리라고 생각하는데…….”
소울의 말에 금소희는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간신히 참으며 새침하게 얘기했다.
하지만 소울의 눈에는 자신이 한 말을 칭찬으로 받아들이는 금소희의 좋아 죽겠다는 표정이 그대로 다 보였다.
“어쨌든 도와주시는 김에 확실히 도와주려고 그러는 거죠?”
“뭐 꼭 그런 것은 아니야. 강력한 외골격과 가죽으로 무장한 드레이크라면 몇 마리 잡아다 서머너즈 길드 연구소에 넘겨주려고 그래.”
“아!”
“물론 약점을 파악해보고 쉽게 잡을 수 있을 것 같으면 싹 쓸어가는 것도 괜찮고 말이야.”
“역시.”
금소희는 그러면 그렇지 하는 표정으로 소울을 쳐다봤다. 하지만 얼굴이 두꺼워진 건지 소울은 그녀의 그런 눈빛이 조금도 부담스럽지 않았다.
이미 필리핀 정부가 의뢰한 메인 미션은 달성했다.
그것만으로도 필리핀 정부는 그에게 감사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기왕 돕기로 한 것, 드레이크 몇 마리 정도는 잡아주는 것도 서로를 위해서 좋을 것 같았다.
[까뮤, 그런데 드레이크의 약점이 뭐지?]
[비스크의 말에 의하면 드레이크는 날지 못하는 것과 머리가 썩 좋지 않은 것이 약점이라고 했습니다.]
[그 정도는 약점이라고 말할 수 없어.]
[제 생각에는 화공은 거의 소용이 없을 것 같고 차라리 유인해서 함정에 빠뜨리는 것이 어떨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소울은 까뮤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이동하면서 갑자기 빠뜨릴 함정을 준비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때, 본이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마이로드, 제 생각에는 그냥 힘으로 밀어 버리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유인해서 다크라이노로 짓밟아버리면 천하에 드레이크라고 해도 자기가 뭘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것도 나쁘지 않네. 그럼 일단 두 가지를 다 사용해보도록 하자. 까뮤와 렉시는 일단 주변에 함정으로 사용할 수 있는 장소를 살펴봐.]
[네, 주인님.]
[빠아!]
까뮤와 렉시가 그의 명령에 주변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하자 소울은 고개를 돌려 본을 쳐다봤다.
[힘으로 밀어버리는 것도 나쁘지 않아. 하지만 약점을 찾는 것이 더 중요하다.]
[예스, 마이로드.]
[내 생각에는 드레이크가 머리가 나쁘다고 했으니까 하나씩 유인해서 잡아 죽이면서 약점을 찾아보자. 거기에다 이번에 진화한 네크로멘서와 다크메이지의 저주와 디버프를 이용해 장님과 귀머거리로 만들어 버리는 것도 시험해보도록 하자.]
[예스, 마이로드.]
드레이크를 상대할 방법을 찾는 것은 사실 쉽지 않다.
드레이크 자체가 대형 몬스터에다 속성저항력이 높고, 무엇보다 강하고 질긴 외골격과 가죽을 가지고 있어 쉽게 공략할 수 있는 상대는 아니다.
거기에다 간간이 브레스를 쓰게 되면 난이도가 대폭 올라간다.
서머너즈 길드의 파티라고 해도 1개 파티로는 어림도 없고 최소한 4~5개 파티가 연합을 해야 한 마리를 상대할까 말까 할 것 같았다.
물론 능력자는 등급이 깡패니 드레이크보다 높은 등급의 파티라면 1~2개 파티로도 상대가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소울이 찾고 싶은 것은 지금 자신만의 사냥법이 아니다.
바실리스크의 경우처럼 대다수의 능력자들이 응용해서 사용할 수 있는 범용 사냥법을 찾고 있는 것이다.
드레이크에게도 분명히 약점이 있을 것이다.
그걸 찾기만 하면, 아시아를 강타하고 있는 중대형 몬스터 웨이브의 핵심인 드레이크를 능력자 파티로 능히 사냥할 수 있게 되어 큰 피해를 줄일 수 있게 된다.
[마이로드, 드레이크 한 마리를 유인했다고 합니다.]
[좋아. 이리로 데리고 와!]
[예스, 마이로드.]
본의 보고에 까뮤와 렉시가 즉시 아래로 내려왔다.
[주변에 함정으로 쓸 만한 것이 없어요. 굳이 사용하자면 저 건물 안으로 유인해서 건물을 무너뜨리면 됩니다.]
소울은 바로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그런 방법은 안 돼. 나중에 빌딩을 무너뜨린 것에 대해 배상을 요구할 수 있어.]
[그럼 저주와 디버프를 걸어볼게요.]
[아니야. 저주와 디버프는 다크 배틀리언에 있는 네크로멘서와 다크메이지면 충분할 거야. 그보다 넌 이 헬 나이프를 줄 테니까 드레이크의 눈을 노려봐. 아니면 독을 써보던가.]
[네, 주인님.]
까뮤는 소울이 헬나이프를 던져 주자 잽싸게 다가와 낚아채고는 허공으로 사라졌다.
울프리나가 선사한 마족의 발톱으로 만들었다는 저주의 A급 단검 헬나이프가 드디어 까뮤의 손에 들어갔다.
[옵니다.]
본의 말에 고개를 돌려보니 집채만 한 커다란 회색의 드레이크 한 마리가 빠르게 이쪽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는데 그 박력이 장난이 아니었다.
드레이크의 뒤로는 리자드맨 무리가 씩씩대며 떼거리로 몰려오고 있는 모습도 보였다.
소울은 드레이크를 노려보며 차분히 전투준비를 시작했다.
먼저 서먼나이트 전용스킬인 트렌스 페인, 네크로멘시, 커스 오브 둠, 뱀피릭 미스트, 쉐어링 어빌리티, 이렇게 다섯 개의 스킬을 빠르게 펼쳤다.
뒤이어 호신강체술을 펼치고 타이타늄 팔찌로 실드를 중첩했다.
디바인 건틀렛에 디바인 쉴드를 소환해 부착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러나 전투준비를 하고 있는 소울에게 과연 차례가 돌아올지는 의문이었다.
본과 다크 배클리언이 넓게 포위망을 구축해놓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두두두두두두!
우두두두두두!
대지를 진동시키는 것은 같지만 뭔가 묘하게 다른 두 개의 진동음이 주변 땅을 울려댔다.
하나는 커다란 동체를 자랑하는 드레이크가 달려오면서 나는 소리고 다른 하나는 달려오고 있는 드레이크를 향해 달려가는 다크라이노들의 발소리였다.
쿠하아아아앙!
뿌우우이이잉 뿌우우이이잉 뿌우우이이잉!
드레이크가 먼저 기선을 제압하려는지 크게 입을 벌리고 포효를 질렀다.
그러자 그 기에 눌리지 않겠다는 건지 달려가는 다크라이노들이 일제히 포효를 지르며 맞대응을 했다.
하지만 다크라이노들의 포효는 덩치에 안 맞게 의외로 굉장히 얇고 귀여웠다.
그 소리에 오히려 소울은 웃음이 튀어 나왔다.
“코뿔소의 울음소리는 정말 반전 매력이네.”
“그러게요.”
소울의 말에 금소희가 옆에서 맞장구를 치며 같이 미소를 지었다.
목소리와는 반대로 드레이크를 향해서 돌진하는 다크라이노들의 기세는 살벌하기 그지없었다. 드레이크도 정면에서 달려오는 다크라이노들에게 지지 않겠다는 듯 더욱 빠르게 다리를 움직였다.
두두두두두두!
우두두두두두!
그렇게 양쪽이 정면으로 맞부딪치기 일보직전, 어느새 사각에서 돌진해온 다크라이노 한 마리가 온몸을 던져 드레이크 옆구리에 충돌했다.
쿵!
쿠히이이익!
놀란 드레이크가 비명을 지르자 드레이크의 육중한 동체가 옆으로 확 밀리면서 쓰러질 듯 비틀거렸다.
빠른 속도로 질주하던 드레이크의 옆을 다크라이노가 온몸으로 받아버렸으니 옆구리에 난 상처는 둘째 치고, 중심을 잃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드레이크는 혼신의 힘을 다해 간신히 중심을 잡았다.
그러나 이미 그의 정면으로 다크라이노 떼가 쏘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쿵 쿠쿵 쿵쿵쿵!
쿠웨에에에엑!
이번에는 제대로 데미지가 들어갔는지 드레이크의 비명소리가 처절하게 들려왔다.
아무리 체급에 차이가 난다고 해도 다크라이노의 몸도 다 자란 아프리카의 코끼리만 했다. 정면충돌한 충격이 절대 가볍지 않았다.
문제는 드레이크는 한 마리에 불과하지만 다크라이노는 무려 44마리나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 중 한 마리는 소울과 금소희를 태우고 있어서 열외가 됐지만 남은 43마리의 연쇄충돌공격에 드레이크는 속절없이 계속 온몸에 구멍이 숭숭 뚫리며 피를 쏟아내야 했다.
‘이게 뭐야? 상대로 안 되잖아? 내가 너무 드레이크를 높이 평가했나?’
그때 참다못한 드레이크의 입이 활짝 벌려지며 붉게 빛나기 시작했다.
브레스를 쓰려는 것이다.
콰하아아아아아!
드레이크의 입에서 화염방사기에서 나올법한 무시무시한 불줄기가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다크라이노 세 마리가 동시에 드레이크의 머리를 들이 받자 화염이 뚝 끊기고 말았다.
쿵쿵쿵!
쿠웨에에에엑!
그 모습을 보자 소울은 자신이 잠시 잘못 판단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드레이크의 무시무시한 브레스에도 불구하고 다크라이노들은 건재했다.
겉의 피부나 살이야 다 타들어갔지만 뼈다귀는 온전한 상태로 쌩쌩하게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보니 드레이크가 약한 것이 아니라 다크라이노가 강한 것이였구나. 아니 정확하게 말해서 드레이크에게 다크라이노는 상성이 극악인 거네.’
그렇다.
드레이크가 가지고 있는 장점이 다크라이노에게는 전혀 통하기 않았다.
한 두 마리라면 어떻게 힘으로 눌러서라도 해결을 보겠지만 사십여 마리가 연속으로 돌진해서 크고 날카로운 뿔을 박아대니 견딜 재간이 없었던 것이다.
강하고 단단한 외골격과 가죽을 가지고 있는 드레이크도 다크라이노가 전력으로 달려와 뿔과 체중을 이용해 받아버리자 구멍이 숭숭 뚫렸고 그 사이로 피가 줄줄 쏟아져 내렸다.
[까뮤, 더 이상 볼 것 없다. 헬나이프와 독을 차례로 테스트 해봐.]
[네, 주인님.]
까뮤는 다크라이노들에게 정신없이 받히고 있는 드레이크에게 은밀하게 다가가 그의 왼쪽 뒷다리에 난 상처에 헬나이프를 살짝 찔렀다.
그리고는 오른쪽 앞다리로 이동해 상처에 마비독을 찔렀다.
[상처에다만 테스트하지 말고 가죽과 속살에다가 해봐.]
[네, 주인님. 그런데 헬나이프로도 가죽은 쉽게 뚫을 수 없네요. 차라리 최루탄이나 사린가스를 써보는 것이 어떨까요?]
[사린가스는 보는 눈이 너무 많아서 안 돼. 최루탄과 최루액을 사용해봐.]
소울은 까뮤와 계속 의논을 해가면서 상처 입은 드레이크에게 온갖 실험을 해댔다.
[주인님, 보세요. 헬나이프에 당한 다리가 빠르게 썩어 들어가고 있어요.]
[오오오! 정말 그렇구나.]
멀리서 보고 있는 소울이 알 수 있을 정도로, 헬나이프에 찔린 왼쪽 뒷다리는 새까맣게 변해 빠르게 썩어 들어가고 있었다.
정말 무시무시한 헬나이프의 위력이었다.
[마비독은 어때?]
[어지간한 양으로는 힘들겠네요.]
헬나이프에 반해 마비독 테스트는 실패나 마찬가지였다.
드레이크가 워낙 크고 속성방어력이 높아 독이 잘 듣지 않는 모양이었다.
케엑 켁 케에에엑 켁켁!
그때, 드레이크가 갑자기 기침을 하면서 괴로워했다.
[까뮤, 뭐야? 어떤 최루탄을 썼어?]
[그냥 대한민국 경찰들이 사용하는 최루탄을 뿌렸는데요?]
드레이크가 냄새에 민감한 것인지, 아니면 대한민국 경찰이 사용하는 최루탄이 대형 몬스터도 견디기 힘들 정도로 지독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일단 최루탄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분명했다.
[까뮤, 본, 드레이크 제거하고 다른 놈 유인해와.]
[네, 주인님.]
[예스, 마이로드.]
드레이크와 다크라이노 간의 대결에서 날카로운 뿔과 쪽수에서 앞선 다크라이노가 승리를 거뒀다.
물론 치명상을 입히지는 못했지만 소울과 까뮤가 굳이 상관하지 않아도 10분 정도면 어차피 쓰러졌을 것이다.
본이 쓰러져서 거친 숨을 쉬고 있는 드레이크에게 다가가 남색 오러를 뿜어내는 자신의 대검을 치켜들었다.
드레이크의 목 아래에 있는 하얀 역린(逆鱗)을 노리고 깊게 찔렀다가 빼자 드레이크는 길게 최후의 숨을 몰아쉬더니 고개를 땅으로 처박고 죽었다.
죽은 드레이크의 사체는 바로 본과 다크 배틀리언에 의해 해체되었다.
드레이크의 마석은 이미 까뮤가 챙겼고 분리된 사체는 전리품으로 까뮤의 아공간으로 들어갔다.
본도 드레이크의 뼈를 챙겨 자신의 아가리에 집어넣었다.
전리품은 드레이크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드레이크를 따라온 리자드맨도 수백 마리가 넘었다.
하지만 소울은 굳이 리자드맨의 사체까지 챙기지는 않았다.
그 정도는 필리핀의 피해복구를 위해서 얼마든지 넘겨줄 용의가 있었던 것이다.
[마이로드, 이번에는 드레이크 두 마리입니다.]
본의 말에 고개를 돌려보니 각각 방향이 다른 곳에서 드레이크 두 마리가 스켈레톤 드래군과 궁기병 분대를 열심히 쫓아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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