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82 제 96 장 - 진출(進出) =========================================================================
필리핀은 태평양에 있는 동남아시아의 섬나라로 1억250여만 명의 인구(세계 12위)를 가지고 있다. 7,107개의 섬으로 구성되어 있는 필리핀은 크게 루손 섬, 비사야 제도, 민다나오 섬의 세 지역으로 나뉜다. 수도는 마닐라이고, 공용어는 필리핀어와 영어이다.
필리핀은 한 때(1950년대부터 1970년대 초까지), 아시아에서 일본 다음으로 경제가 좋은 나라였다. 하지만 마르코스 정권의 독재와 부패 및 과도한 빈부 격차로 인해 몰락해 현재 1인당 구매력 평가 기준 국내 총생산 세계 119위($6,974)인 후진국이 되고 말았다.(대한민국 30위: $35,379 위키백과)
쏴아아아아아!
삭풍이 부는 한반도와는 달리 뜨거운 기온을 식혀주는 시원한 소나기가 필리핀의 수도인 마닐라를 적시고 있다.
부우우우웅!
눈앞의 시야를 가리는 빗줄기를 뚫고 미국에서 공여 받은 험비차량들이 필리핀 육군의 마크를 당당히 달고 빠르게 도로 위를 질주하고 있다.
평상시에는 자동차로 가득한 도로가 오늘은 웬일인지 군용차량을 제외하고는 단 한 대도 지나다니는 모습을 볼 수가 없다.
“얼마나 더 가야합니까?”
“마닐라필드는 마닐라에서 동남쪽으로 25km 떨어진 비난고난에 있습니다. 앞으로 10분만 더 가시면 됩니다.”
황달수, 여행사의 직원이라고 소개받았지만 국정원 직원임이 분명한 중년 사내는 소울의 물음에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미소 띤 그의 눈길이 소울의 옆에 앉아 있는 금소희의 아름다운 얼굴에 잠깐 머물렀다가 사라졌다.
“마닐라필드의 상황은 어떻습니까?”
“한마디로 최악입니다. 3중으로 만들어 놓은 대 몬스터 장벽은 드레이크가 나타나면서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습니다.”
처음으로 황달수의 얼굴에서 미소가 잠깐 사라졌다.
“드레이크에 말씀해주세요.”
“쉽게 말씀드리면, 우리가 아는 드래곤의 이미지에서 날개를 빼시면 됩니다. 크기도 그렇고 생긴 것도 딱 비슷하게 생겼어요.”
“설마 드래곤처럼 마법을 쓴다거나 브레스를 쏘지는 않겠지요?”
“드레이크들이 마법까지 쓸 정도였다면 지구는 아마 멸망 테크트리를 탔을 겁니다. 다행히 마법을 쓴다거나 머리가 좋지는 않습니다. 그야말로 천만다행인 셈이지요.”
황달수는 몸을 한번 부르르 떠는 것으로 자신의 심정을 대변했다. 그의 설명은 끊이지 않고 계속 이어졌다.
“마닐라필드를 비롯한 필리핀의 각 몬스터 필드는 다른 대륙에서 일어나고 있는 중대형 몬스터 웨이브와 비교해 중대형 몬스터의 숫자가 좀 적은 편입니다.”
“그건 다행이군요.”
“하지만 드레이크라는, 이놈의 대형 몬스터는 엄청나게 강하고 단단한 외골격과 가죽을 가지고 있어 어지간한 공격으로는 흠집도 내지 못합니다. 거기에다 화가 나면 브레스까지 마구 쏴 대서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닙니다.”
“브레스의 위력이 어느 정도나 됩니까?”
“화염방사기를 한 열 대 모아놓은 정도라고 보시면 됩니다.”
“흐음, 화염 브레스에다 방어력까지 높으면 쉽게 상대하긴 애초에 글러먹은 몬스터군요.”
“그렇습니다. 개체 하나하나가 가지고 있는 전투력과 파괴력이 다른 중대형 몬스터에 비해 발군이라 이미 숫자가 적다는 것은 전혀 위로가 되지 않고 있습니다. 결정적으로 이번에 중대형 몬스터 웨이브가 일어나면서 엄청난 숫자의 리자드맨들이 같이 쏟아져 나왔는데 현재 드레이크와 같이 붙어 돌아다니면서 메트로 마닐라 주변을 초토화시키고 있습니다.”
“그럼 피해가 상당하겠네요?”
“말도 마십시오. 오죽하면 다른 나라의 길드에 긴급 지원을 요청하겠습니까?”
황달수는 안타깝다는 듯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운전대를 잡고 있는 필리핀 육군의 병사는 한국말을 알아듣기라도 하는지 가끔 황달수의 말에 맞춰 길게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필리핀의 수도 마닐라의 주변지역을 포함한 메트로 마닐라로 영역을 확대하면 인구가 무려 1,200만 명에 달하는 대도시권을 형성하게 된다.
메트로 마닐라를 비수처럼 위협하고 있는 마닐라필드는 그동안 수많은 사상자를 내며 악명을 떨쳐왔다.
몇 차례 몰아닥친 몬스터 웨이브를 대 몬스터 장벽을 의지해 간신히 물리쳤던 필리핀의 능력자들도 드레이크가 장벽을 깨버리고 밖으로 쏟아져 나오자 속수무책으로 당하거나 도망치고 말았다.
“필리핀 전역에 생긴 14개의 몬스터 필드로 인해 그동안 죽은 사람만 수백만 명에 달합니다. 필리핀 정부는 어느 순간 사망자 집계가 더 이상 의미가 없다면서 세는 것을 포기했습니다. 이로 인해 필리핀의 인구는 더 이상 1억을 넘지 못하고 아래로 뚝 떨어졌지요. 아마 이 상태로 몇 달만 더 지나간다면 필리핀은 전역은 몬스터 천국이 되고 말 것입니다.”
“1억 아래로 떨어졌다면 최소한 250만 명은 죽었다는 말이 되잖아요.”
“그 몇 배는 족히 될 겁니다. 어쩌면 9천만 명도 안 될지 모릅니다. 일부 몬스터 필드가 있는 섬과 지역에서는 더 이상 사람이 살지 않는다는 괴담이 퍼지고 있으니까요.”
황달수의 얘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소울은 소름이 돋는 것을 금치 못했다.
지금 이 시대에는 어지간한 전쟁이 일어나도 수십만 명 이상이 죽어나가는 모습을 보기 힘들다.
그런데 전쟁도 아니고 몬스터로 인해 필리핀에서는 벌써 천만 명도 넘는 많은 사람이 죽어가고 있었다.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건 정말 엄청난 비극이 아닐 수 없다.
“필리핀에 몬스터 필드가 14개가 있다고 하셨는데, 그럼 그 중에 몇 개나 대 몬스터 장벽이 세워져 있습니까?”
“필리핀 정부에서 대 몬스터 장벽은 어떻게든 직접 통제를 하려고 노력했지만 아시다시피 이슬람 반군이 장악하고 있는 민다나오 섬에서는 절대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루손 섬과 비사야 제도 지역의 몬스터 필드에는 그런대로 대 몬스터 장벽은 잘 세워놓았지만 민다나오 섬은 확인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소울과 금소희는 서로의 얼굴을 한번 쳐다보더니 긴 한숨을 쉬었다.
어딜 가나 종교문제는 답이 나오지 않는다. 예전에는 중동에서나 일어나는 문제라고 치부했는데 어느새 필리핀이란 나라를 두 쪽으로 갈라놓고 있었다.
쾅 콰콰쾅 쾅쾅!
어디선가 육중한 폭음소리가 들려왔다.
“저흰 여기서 멈춰야겠습니다. 우리 능력으로는 더 이상 못 갈 것 같네요.”
“고맙습니다. 이제부터는 저희가 알아서 가도록 하지요.”
“네, 그럼 수고하세요.”
황달수는 소울과 금소희를 내려놓자마자 즉시 험비를 몰아 현장을 빠져 나갔다.
살짝 서운한 마음이 생겼지만 일반인에 불과한 그가 여기까지 자신들을 데려와 준 것만 해도 감사해야 옳다.
“마스터, 이제 어떻게 하죠?”
“뭘 어떻게 해. 그냥 우리가 하던 대로 해야지.”
금소희가 조금 걱정이 되는 투로 그를 쳐다보았지만 소울은 천연덕스럽게 대답했다.
나인권 부장을 통해 대한민국 정부와 필리핀 정부는 모종의 합의를 진행했다.
소울을 파견하는 조건으로 뭔가 테이블 밑으로 오가는 것이 있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소울은 그런 것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다만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마닐라필드로 지원을 가서 대 몬스터 장벽을 회복시키는데 노력하겠지만 다른 것은 그 어떤 것도 책임을 지지는 않겠다는 조건을 내건 것이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정도가 아니라, 메트로 마닐라가 드레이크를 비롯한 몬스터들에게 당장 공격을 받고 있는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한 필리핀 정부는 소울이 거는 그 어떤 조건이라도 다 받아들이겠다는 약속을 서면으로 해주고야 말았다.
소울의 진짜 목적은 마닐라필드의 봉쇄가 아닌 오라클을 잡는 것이다.
하지만 대외적으로 그런 일을 굳이 까발릴 필요는 없었다.
한국전쟁(6.25 전쟁) 당시 유엔군의 일원으로 보병 1개 대대를 보내 대한민국의 위기를 도왔던 필리핀이니 이번 기회에 어느 정도 빚을 갚아주는 것도 괜찮겠다 싶어 허락한 첫 해외진출이자 해외원정이었다.
물론 당연히 그 저변에는 오라클이 눈치 채지 못하게 조금씩 서진을 하려는 목적도 숨겨져 있다.
[모두 나와라!]
[네, 주인님.]
[예스, 마이로드.]
[부르셨어요?]
[빠아!]
소울이 자신의 소환소들을 부르자 까뮤, 본, 푸티나, 렉시가 차례로 그의 앞에 나타나 인사를 했다.
[까뮤와 렉시는 하늘로 올라가서 마닐라필드로 가는 최단 직선로를 확인하고 주변지역의 상황을 보고해줘!]
[네, 주인님.]
[빠아!]
까뮤와 렉시가 즉시 소울의 말에 반응해 허공으로 떠올랐다.
[본, 다크 배틀리언을 소환하고 마닐라필드를 향해 진군할 준비를 갖춰라.]
[예스, 마이로드.]
소울을 향해 본이 정중히 허리를 숙였다.
그리고는 즉시 주변을 연막으로 가린 뒤 다크 배틀리언을 쏟아냈다.
다크 배틀리언은 밖으로 나오자마자 곧바로 전열을 가다듬고는 진군준비를 마쳤다.
[주인님, 저는요?]
[푸티나는 일단 나와 같이 다크라이노를 타고 가자.]
[좋아요. 주인님.]
푸티나는 다크라이노를 같이 타고가자는 말에 손뼉을 치며 좋아서 껑충껑충 뛰었다.
[마이로드, 이 녀석을 타고 가시지요?]
본이 커다란 다크라이노 한 마리를 끌고 오더니 등 위에 뼈로 의자를 만들어줬다.
까뮤가 번개같이 나타나 허공에 푹신한 털가죽을 떨어뜨리고 사라졌다.
그러자 푸티나가 얼른 그것을 받아서 다크라이노 위에 만들어놓은 의자 위에 깔기 시작했다.
소울이 먼저 다크라이노 위로 올라가 의자에 앉은 채 손을 내밀자 금소희와 푸티나가 차례로 그의 손을 잡고 위로 올라갔다.
다크라이노의 등은 셋이 뼈 의자에 나란히 앉아서 갈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넓었다.
“마닐라필드를 향해 진군!”
소울이 명령을 내리자 그를 철통같이 둘러싼 본과 다크 배틀리언은 서서히 텅빈 도로를 따라 마닐라필드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마닐라필드까지는 현재 완전히 무주공산이었다.
겨우 3km 밖에 되지 않은 짧은 거리를, 그것도 도로를 따라 이동했다.
몬스터들은 모두 인간의 피와 살 냄새가 넘쳐흐르는 메트로 마닐라를 향해 달려가는데 정신이 팔려있어서인지, 마닐라필드까지 오는데 그 어떤 공격 한번 받지 않고 무사히 도착했다.
“허어, 이것 참! 이거 미션을 너무 쉽게 달성했네?”
“그러게요. 일단 대 몬스터 장벽을 보수해야겠어요.”
소울은 조금 어이가 없었다.
드레이크와 크게 한판 할 생각을 했는데 막상 대 몬스터 장벽 앞에는 몬스터가 거의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눈에 보이는 리자드맨들도 본과 다크 배틀리언의 위용에 놀라 허겁지겁 도망칠 뿐이었다.
[경계 병력만 남겨두고, 모두 3중으로 된 마닐라필드의 대 몬스터 장벽을 복구해라.]
[네, 주인님.]
[예스, 마이로드.]
[알겠어요.]
[빠아!]
까뮤와 렉시, 본과 푸티나가 대답을 하더니 곧바로 대 몬스터 장벽을 향해 우르르 몰려갔다.
다크라이노 위에 탄 소울과 금소희는 느긋하게 대 몬스터 장벽 앞으로 다가가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는 성벽의 복구 작업을 지켜봤다.
그 사이 까뮤는 땅의 정령의 권능을 이용해 드레이크에게 무너지고 구멍 뚫린 성벽을 보수하고 렉시는 뜨거운 열을 가해 보수한 성벽에 견고함을 더해줬다.
이 둘이 하는 일을 보조하고 지원하는 역할을 맡은 본과 다크 배틀리언은, 진정한 삽질이 무엇인지 보여주려는 듯 모두 삽을 들고 대 몬스터 장벽의 안쪽 성벽을 깊숙이 파기 시작했다.
여기서 나오는 흙과 돌은 약해진 성벽의 보수에 쓰였다.
푹 파인 구덩이는 몬스터들이 성벽을 쉽게 넘지 못하게 만드는 장애물로 사용됐다.
간간이 마닐라필드 안에서 나오는 몬스터들은 이들의 삽에 의해 골통이 부서지고 목이 잘렸다.
그러자 어디론가 도망쳤던 필리핀 능력자들이 하나둘씩 성벽위로 모이기 시작했다.
소울은 잘 됐다싶어 필리핀 능력자들에게 마닐라필드의 대 몬스터 장벽을 얼른 넘기고 바로 그 자리를 떠나기로 했다.
이들이 대 몬스터 장벽을 잘 지켜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그는 더 이상 참견하는 것은 실례라고 생각했다.
대신 빠른 시간 안에 미션을 끝냈으니 이제는 보너스 미션을 챙길 시간이 됐다.
[모두 수고했다. 지금부터는 메트로 마닐라를 향해 천천히 진군한다. 작전은 한 놈씩 끌고 와서 각개격파를 하는 것이다. 본이 유인작전을 지시하도록!]
[예스, 마이로드.]
다크라이노를 앞세우고 본과 다크 배틀리언은 보무도 당당한 발걸음으로 북서쪽을 향해 진군했다.
============================ 작품 후기 ============================
꿈꾼대로 이루시고 따스한 마음으로 사람을 만나며 즐거운 마음으로 하루를 맞이하고 어려운 이들과 나눌 수 있는 아름다운 한 해 되세요!
선호작, 추천, 코멘트, 쿠폰, 후원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