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80 제 95 장 - 범람(氾濫) =========================================================================
이렇게 자신은 다치지 않고 무한 스태미나로 적을 잡아 죽일 수 있으니 어찌 신나지 않겠는가?
소울은 물 만난 고기처럼 동에서 번쩍 서에서 번쩍하며 바실리스크를 도륙하고 돌아다녔다.
하지만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
어느새 제2 성벽과 제3 성벽 사이에 있던 바실리스크가 모두 죽자 그의 움직임도 서서히 멈췄다.
“이소울 마스터, 여기는 모두 정리됐습니다. 이제 제2 성벽을 통과하여 안으로 들어가시죠?”
“그럽시다.”
백제 길드의 소수림 마스터는 아까보다 훨씬 정중한 태도로 소울을 대했다.
역시 남자는 힘이 강해야 대접을 받을 수 있나보다.
소울은 겸손하게 그를 대하며 제2 성벽의 암문을 통과해 안으로 들어갔다.
제1 성벽과 제2 성벽의 사이에는 지금 한창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본이 이끄는 다크 배틀리언과 바실리스크 떼가 치열한 공방전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제1 성벽의 구멍을 뚫고 나온 바실리스크는 제2 성벽의 구멍을 뚫고 나온 바실리스크와 숫자에서 차원을 달리했다.
더 큰 문제는 제1 성벽에 뚫린 구멍에 있었다.
구멍이 점점 커지는 것도 있었지만, 구멍을 통해 바실리스크가 지속적으로 유입되니 천하의 본과 다크 배틀리언 부대라도 더 이상 그들을 밀어 붙일 수 없었다.
다른 곳과는 달리 이곳만은 전투가 소강상태를 이뤘다.
소울은 제2 성벽의 암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이런 상황을 바로 눈치 챘다.
[이런 것은 렉시가 전공이지. 렉시! 저기 구멍 앞을 불바다로 만들어라!]
[빠아!]
렉시가 즉시 하늘에서 제1 성벽에 뚫린 구멍 앞에 지옥의 불이라는 인페르노를 일으켰다.
[주인님, 저기에다 백린탄을 섞으면 좋은 화염 칵테일이 될 것 같아요.]
[오오! 까뮤, 아주 좋은 생각이야. 인페르노와 백린탄이라! 카! 좋았어. 한번 해봐!]
[네, 주인님.]
까뮤의 아이디어는 즉각 채용됐다.
아공간에서 백린탄을 꺼낸 까뮤는 렉시가 만들어 놓은 인페르노의 활활 타오르는 불길 안으로 정확히 던져 넣었다.
펑 퍼퍼펑!
화르르륵 화르르륵!
순식간에 화염이 몇 배로 증폭하더니 이제는 새하얀 백광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인페르노를 어떻게든 뚫고 나가려고 발버둥을 치던 바실리스크들은 백광을 보자 일제히 뒤로 물러났다.
바실리스크들도 저 백광 속을 통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통과는커녕 아마 가까이 다가가기만 해도 그대로 뼈와 살이 녹아버릴 것이다.
일단 바실리스크의 유입이 멈추자, 본과 다크 배틀리언은 그것만으로도 크게 사기가 오르고 부담이 줄어든 것을 느꼈다.
본과 다크 배틀리언은 기회는 이때다 하고는 바실리스크 떼를 거칠게 밀어붙였다.
원래 물 들어올 때 배를 띄워야 한다던가?
기회가 왔을 때 제대로 확실하게 밟아놓지 않으면 금방 기가 살아나 다시 기어오르는 법이다.
소울 일행과 백제 길드는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일제히 바실리스크 떼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리고 엄청난 기세로 바실리스크 떼를 사납게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펑 퍼퍼퍼펑!
파츠츠측 파츠츠츠측!
쾅 쾅쾅 콰콰콰쾅!
화르르륵 화르르륵!
서걱 서걱 서걱 서걱!
냉기폭탄이 터지고, 번개가 비산하고, 화염덩어리가 폭발하고, 남색의 오러 블레이드가 난무했다.
안 그래도 본과 다크 배틀리언에게 조금씩 밀리고 있었던 바실리스크 떼는 광폭풍우처럼 몰아닥친 소울 일행과 백제 길드의 일제 공격에 처참하게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중대형 몬스터 웨이브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바실리스크가 왜 이렇게 허무하게 밀리는 것일까?
그것은 일단 바실리스크의 장기인 독(毒)이 전혀 통하지 않는, 언데드 소환수인 본과 다크 배틀리언이 바실리스크 떼의 정면을 틀어막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만으로도 바실리스크는 남의 동네에 들어와 반은 접고 싸우는 개꼴이 났다.
똥개도 자기 동네에서는 반은 먹고 들어간다는 말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바실리스크 떼는 자신들의 커다란 덩치를 이용해 이들을 밀어버리고 싶었지만 코끼리보다 더 큰 44마리의 다크라이노의 날카로운 뿔과 육중한 동체에 찢기고, 짓밟혀 오히려 뒤로 밀려나고 있었다.
그 사이에서 쏟아져 들어오고 있는 돌격과 돌파, 마법과 저주, 날카로운 검기에 바실리스크 떼는 잔인하게 짓이겨져갔다.
키아아악 카하아악 큐하아아악…….
바실리스크들의 고통스런 비명소리가 귀청을 긁어댔다.
하지만 그 소리를 듣는 능력자와 병사들의 입가에는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서서히 피어올랐다.
퍼퍼펑 퍼퍼펑!
쾅 콰앙!
화르르륵 화르르륵!
대구필드에서 또다시 엄청난 굉음이 터져 나왔다.
후끈한 열기도 몰아닥쳤다.
바실리스크들의 구슬픈 비명소리는 허무하게 새로 일어난 소음에 그대로 파묻히고 말았다.
까뮤가 터트린 네이팜탄에 의해 얼마나 많은 바실리스크들이 구워진 것일까?
노릇노릇하게 잘 구워진 뱀 고기 냄새가 성벽 위에서 바실리스크를 비롯한 몬스터를 상대하고 있는 능력자와 병사들의 입가에 침을 흘리게 만들고 있었다.
“지금이다. 성벽에 난 구멍을 메꿔라.”
“소이탄을 가져와라. 우리도 소이탄을 투하한다.”
“중기관총과 기관포를 가져와!”
“부상자를 이송시켜라.”
“의무병, 의무병!”
전장은 승패와 관계없이 언제나 정신없이 시끄럽고 복잡한 복마전을 연상케 한다.
“드디어 돌아왔다.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줄 알았는데…….”
제1 성벽 위로 올라간 소울의 옆에서 백제 길드의 마스터 소수림이 환한 미소를 지었다. 소수림이 살짝 감회에 빠지자 소울은 그를 흘낏 한번 쳐다보고는 성벽 아래의 전황을 살펴봤다.
이미 네이판탄의 연속 공격으로 고블린, 오크, 코볼트, 놀, 리자드맨 등 다양한 몬스터들이 죽거나 다쳐서 신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성벽 위에서는 조금이라도 움직이는 것이 보이면 일단 무조건 총을 쏘고 활을 날렸다.
바실리스크의 사체도 적지 않았다.
문제는 이놈들의 사체가 성벽 아래에 너무 많이 싸여 있어서 이게 오히려 성벽을 오를 수 있는 발판이 될 가능성을 만들어 놓고 있었다.
“저기 바실리스크 떼가 다시 몰려옵니다.”
누군가의 외침소리에 고개를 들어보니 말 그대로 바실리스크들이 새까맣게 몰려오고 있었다.
“소수림 마스터, 작전을 좀 바꿔야 할 것 같습니다.”
“뭐든지 말씀하시면 저희는 따르겠습니다.”
“하하하,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럼 용기를 내서 제 생각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소울은 소수림과 머리를 맞대고 뭔가를 열심히 의논했다.
그러자 소수림은 잠시 고민을 하는 것 같더니 이내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좋을 것 같으니 한번 해보도록 하죠.”
“그럼 부탁합니다.”
소울이 소수림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이자 소수림은 황송한 듯 더 깊숙이 고개를 숙였다.
소수림은 곧바로 백제 길드의 간부들을 불러서 소울과 합의한 지시사항을 빠르게 전달했다. 백제 길드의 간부들은 다들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소울을 한 번씩 쳐다봤다. 개중에는 황당하다는 표정을 숨기지 못하는 자들도 있었다.
하지만 소수림은 특유의 뚝심으로 밀어붙여 빠르게 전 백제 길드의 길드원들을 유기적으로 움직였다.
소울은 소수림과 백제 길드의 움직임을 보며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밥을 숟가락으로 떠 먹여줘도 못 먹는 놈이 있는가 하면, 길만 알려줘도 알아서 달려가 포장마차를 차려놓고 떼돈을 버는 놈이 있다.
그리 오랜 시간을 같이 하지는 않았지만 소수림 마스터를 보니 백제 길드의 길드원들의 두터운 신뢰를 받고 있는 것 같았다. 아마도 그의 화통한 성격과 의리가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것이리라.
[까뮤, 백제 길드에게 네이팜탄과 백린탄을 넉넉히 넘겨줘! 약초 가마니도 하나 넘겨주고.]
[네, 주인님.]
[성벽 밑에 있는 바실리스크의 사체 좀 정리해줘!]
[네.]
소울도 가만히 서 있지만은 않았다.
그는 까뮤를 시켜 백제 길드에게 네이팜탄과 백린탄을 넘겨줬다.
또한 바실리스크가 싫어하는 약초를 가마니 채 넘겨줬다.
“김민호, 강수현, 송준기, 로이, 백제 길드를 도와줘라. 무른 땅을 찾아서 굴을 파고 외부로 연결시켜. 평양필드에 있는 대 몬스터 장벽에 설치해놓은 작업장 기억하지?”
“아,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김민호는 소울의 말을 바로 알아먹고는 강수현과 송준기를 데리고 로이가 있는 성벽 아래를 향해 달려갔다.
퍼퍼펑 퍼퍼펑!
쾅 콰앙!
화르르륵 화르르륵!
또다시 까뮤가 던진 네이팜탄이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공기가 식을 만하면 터뜨리고, 잊을 만하면 터트려대는 네이팜탄으로 인해 대구필드 안은 뜨거운 용광로처럼 달아올랐다.
바실리스크 떼는 이글이글 타오르는 화염 속에서 비명을 지르며 몸을 꿈틀댔지만 그들의 몸을 타고 넘어오는 새로운 바실리스크 떼에 묻힐 뿐이었다.
이런 모습을 보자 성벽 위에 서있는 능력자들과 병사들은 자신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어댔다.
하지만 소울과 그의 소환수들은 전혀 걱정을 하지 않고,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고 있었다.
“걱정하지 말고 당장 사체처리용 트레일러를 보내라니까? 글쎄 다 보내면 된다고.”
“크레인도 좋고, 불도저도 좋으니까 중장비를 다 가져오라고. 모든 직원 다 끌고 와.”
“지금 안 오면 다음부터 국물도 없습니다. 그렇게 아세요.”
“무른 땅을 찾았다고, 그래 빨리 굴을 파도록 해. 아니지. 바깥쪽은 아까 내가 설명한 대로 따로 구덩이를 파라니까. 시간 없으니까 흙골렘과 우드골렘도 다 그리로 보내. 당연히 대지의 정령사들도 모두 보내야지.”
“성벽의 보수가 끝났으면 그들도 작업장을 만드는데 투입해.”
“제1 성벽은 네버다이 놈들에게 맡겨두고, 지금 호출한 인원들은 다 빼란 말이야. 뭐라고 하던 그냥 무시해버리고 이동시켜!”
…….
아까와는 달리 대구필드를 둘러싼 대 몬스터 장벽 위는 정신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능력자들과 병사들이 재배치되고 바실리스크 떼를 향한 공격 스타일이 화공으로 바뀌었다.
성벽에는 철사로 급조해서 만든 철망에 약초를 쑤셔 넣고 불을 붙여 연기를 내는 모습이 쉽게 보였다.
제1 성벽의 성문이 활짝 열렸다.
본이 이끄는 다크 배틀리언이 빠르게 밖으로 돌진해 나갔다.
그들의 제일 앞은 화살표 모양으로 포진한 44마리의 다크라이노가 무서운 기세로 달려가고 있었는데 바실리스크 떼가 마치 거대한 도끼질이라도 당한 듯 반으로 쭉 찢어지는 모습이 보였다.
그 사이 대지 계열의 정령사와 소환사들은 모조리 한 마음으로 제1 성벽의 서쪽에 있는 무른 땅을 찾아서 바실리스크 한마리가 간신히 빠져 나올 수 있는 땅굴을 하나 파기 시작했다.
땅굴은 김민호 제1 레기온 대장의 지휘아래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제3 성벽 바깥에서 파고 있는 커다란 구덩이와 연결되었다.
평양필드에 있는 대 몬스터 장벽 안에 계획적으로 만들어 놓은 작업장에 비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급조한 것 치고는 상당히 그럴 듯한 모습을 보였다.
중요한 것은 겉모습이 아니다. 기능이 중요하다.
임시작업장을 만든다고 해도 작업장의 역할만 잘할 수 있다면 겉모양이야 뭐가 됐던 상관없다.
[까뮤, 렉시, 본을 지원해!]
[네, 주인님.]
[빠아!]
[본, 까뮤와 렉시가 지원하면 틈을 봐서 퇴각해라.]
[예스, 마이로드.]
[푸티나는 백제 길드의 소환수들에게 도끼질을 가르쳐라. 몇 번 시범을 보여준 뒤에는 도끼를 넘겨주고 빠지도록 해.]
[예, 주인님.]
소울은 자신의 소환수들에게 명령을 내리며 제1 성벽의 안팎을 면밀하게 살폈다.
언제까지 대구필드에 발이 묶일 수는 없었다.
급한 불은 끈 셈이니 이제는 스스로 싸워서 이겨낼 수 있게 도와주는 선에서 자신의 일을 마무리 짓고 싶었다.
합참에서는 서머너즈 길드가 대 활약하고 있는 평양필드의 대 몬스터 장벽의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가 네이팜탄과 백린탄이 바실리스크를 상대하는데 효과가 있다고 판단하자 즉시 전투기와 공격헬기, 군용수송기와 수송헬기를 총동원해서 각 몬스터 필드를 지원했다.
다행히 서머너즈 길드와 능력개발청에서 네이팜탄을 엄청나게 주문하여 가격이 확 떨어지자 군(軍)에서도 기회는 이때다 하고 같은 가격에 재고량을 2배 이상 쌓아 놓는 마술을 부렸다.
그리고 지금 그 덕을 톡톡히 보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올 한 해, 가내평안(家內平安) 하시고 만사형통(萬事亨通) 하시기를... ^^
선호작, 추천, 코멘트, 쿠폰, 후원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