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71 제 93 장 - Sink =========================================================================
“푸티나가 변한 게 그렇게 좋으세요?”
뭉클한 기분 좋은 감촉이 등에 느껴지며 낭랑한 까뮤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리자 소울은 까뮤를 자신의 오른쪽에 푸티나를 자신의 왼쪽에 놓고는 한꺼번에 둘을 꼭 안아줬다.
“난 너희들이 정말 좋다.”
“저도 주인님이 좋아요.”
“저도요.”
“저, 저도 로드를 무척…….”
“본, 알았으니까 더 이상 말하지 마.”
“예스, 마이로드.”
소울의 말에 까뮤와 푸티나가 동시에 대답을 하자 어쩐지 자신만 안하면 안 될 것 같아서 끼어든 본은 여지없이 소울에 의해 거부당했다.
소울에게 절대적인 신임을 얻고 있는 본이 처음으로 거절을 당한 것이다.
하지만 본에게까지 좋아한다는 소리를 들으면 정말 닭살이 일어날 확률이 100%라 소울도 어쩔 수 없었다. 본은 자신의 머리를 벅벅 긁으며 한발 뒤로 물러섰다.
“빠아!”
그때, 렉시가 나타나 푸티나와 까뮤의 사이를 비집고 안으로 파고들었다.
“하하하, 우리 렉시가 있었구나.”
“빠아!”
렉시는 자신의 주인의 가슴에 부리를 마구 비비며 소리를 쳤다.
연말보너스를 받아 기분 좋게 웃고 있는데, 미처 정산이 안 된 것이 있다며 지난 상여금을 한꺼번에 또 받은 기분이었다.
귀여운 소환수들을 한아름 안고 있으니 허전했던 가슴이 뭔가로 꽉 찬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기분 좋은 허그를 하면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봤다.
지상은 몬스터와 전투로 이전투구가 되어 버렸지만, 하늘은 자신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듯 여전히 눈이 부시게 푸른 하늘 그대로였다.
자신감이 충만해진 소울은 자신의 소환수들의 머리를 한 번씩 쓰다듬어줬다.
물론 본은 머리 대신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장하다. 수고했다. 다들 같이 새로 얻은 스킬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 연구 좀 하고 있어. 난 아직 남은 일이 있어서 안으로 들어가 볼게.”
“네, 주인님. 여기는 제가 알아서 잘 조율할게요.”
“그래. 맏언니인 까뮤의 말을 다들 잘 듣도록 해라.”
“네, 주인님.”
“예스, 마이로드.”
“빠아!”
소울은 그렇게 소환수들을 뒤로 하고 서머너즈 길드 개성지부 영빈관 앞으로 돌아왔다.
“마스터!”
“마스터, 오셨습니까?”
영빈관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국정현과 김영신이 그를 보자 벌떡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저를 기다리고 계셨습니까?”
“네, 그렇습니다. 두 정상의 대화를 듣고 분석하는 것은 전문가들에게 넘기고 우리는 마스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하하, 감사합니다. 그럼 이만 안으로 들어가 볼까요?”
“네, 그렇게 하시죠.”
김영신이 손수 영빈관의 문을 열어줬다.
소울은 그에게 가볍게 고개를 한번 숙이고는 안으로 성큼성큼 걸어들어갔다.
“오! 헬로우, 마스터 리!”
“어서 오세요.”
영빈관 안으로 들어서자 미국 대통령 헤일리는 앉아 있던 소파에서 벌떡 몸을 일으키더니 마치 죽은 자식이 살아 돌아온 것처럼 소울을 기쁘게 맞이했다.
안천수 대통령은 사전에 소울과 이미 대화를 통해 어느 정도 교감을 가지고 있어서 담담하게 미소를 지으며 눈인사를 했다.
“오래 기다리셨습니까?”
“아닙니다. 그렇게 오래 기다리지는 않았어요.”
“그럼 다행이군요. 제가 일이 바빠서 오셨다는 얘기를 좀 늦게 들었네요.”
“전혀 문제없습니다. 이렇게 약속도 없이 무작정 찾아온 제가 잘못이지요.”
헤일리는 이미 작정이라도 한 듯 한껏 자신을 낮추며 소울의 비위를 맞추려고 노력했다.
“그럼 다들 자리에 앉아서 대화를 나눠보도록 하지요.”
“예스.”
“네.”
어딜 가나 사람들이 서로 만나서 하는 시작은 비슷했다.
소울은 헤일리와 안천수에게 북한산 도라지차를 대접했고 그들은 이미 차를 마셨음에도 불구하고 거절하지 않고 기꺼이 차를 마셨다.
처음부터 대뜸 본론을 말하기가 힘든지 헤일리는 이리저리 말을 돌리며 소울의 눈치를 봤다.
그러나 소울은 시종일관 담담한 신색을 유지하며 헤일리의 말을 경청할 따름이었다.
헤일리의 뒤쪽 벽에 앉아 있던 국무장관 캘리와 국가정보국(ODNI) 국장 제임스가 보다 못해 헛기침을 하여 분위기를 일신했다.
그제야 헤일리는 물을 한잔 들이 마시고 어렵게 입을 뗐다.
“마스터, 이번에 여러 가지로 힘들게 한 점에 대해 미국 대통령으로써 먼저 사과를 드립니다.”
“사과는 받아들이겠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헤일리 대통령이 하는 개인적인 사과이겠지요?”
“그, 그렇습니다.”
소울이 무 자르듯 미리 선을 딱 그어버리자 헤일리는 순간, 말문이 딱 막혔다.
하지만 일국의 대통령은 때론 하기 싫어도 해야 할 때가 있는 법이다.
지금이 바로 그 때라고 헤일리는 확신하고 있었다.
“주한미군이 미쳐서 날뛴 것에 대해서는 책임을 통감합니다. 7함대가 서해로 올라와서 미사일을 쏜 것에 대해서도 미안한 마음을 금치 못하겠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미국 본토에 특수부대를 투입해서 미국인을 살해하고 재산을 갈취하고 시설을 파괴하는 것도 모자라 미국이 보유하고 있는 전략핵탄두를 훔친 것은 너무 지나친 처사였습니다.”
남의 옆구리에 쑤셔박힌 창보다 자신의 팔에 스친 화살이 훨씬 더 고통스럽고 아픈 법이다.
헤일리는 자신의 입으로 주한미군이 미쳐 날뛰고 7함대가 핵미사일을 쏜 것을 인정하면서도 사과와 배상 그리고 재발방지에 대해서는 두리뭉실하게 넘어갔다.
대신 소울이 저지른 것으로 의심되는 일에 대해서는 비난의 날을 세우기 시작했다.
“증거가 있습니까?”
“네?”
소울의 말에 헤일리는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분명히 자신이 저질러놓고도 증거타령을 하니 기가 막혔기 때문이다.
“지금 말씀하신 일들 제가 했다는 증거가 있으니까 절 찾아오셨겠지요?”
“네, 그렇습니다. 증거라면 저희가 좀 준비해놓은 것이 있습니다.”
헤일리는 즉시 제임스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제임스가 서류가방에서 누런 봉투를 꺼내 헤일리에게 건넸다.
헤일리는 다시 그것을 소울에게 건냈다.
소울은 누런 봉투 안에 있는 내용물을 탁자위에 거침없이 쏟아버렸다.
봉투 안에서 쏟아져 나온 것은 사진이었다.
그것도 화질을 최대한 살려서 잘 보이게 손을 본 것 같은 수십 장의 사진이었다.
소울은 사진을 차례로 살펴보더니 고개를 돌려 헤일리를 쳐다봤다.
“이게 증거란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아무리 봐도 로브를 입고 서 있는 사람들밖에는 보이지 않는데요?”
“잘 보십시오. 썬글래스를 쓰고 있는 사람이 바로 마스터가 아닙니까?”
“전혀 제 모습이 아니네요. 그리고 뭐로 찍었는지 모르지만 멀리서 확대해서 찍은 것 같은데 선이 선명한 것을 보니 사진에 뽀샵질을 하셨군요.”
헤일리가 눈을 크게 뜨고는 제임스를 쳐다보자 제임스는 얼른 옆으로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원본이 아니라 사진을 보정했다면 증거로 채택될 수 없다는 것은 기본적인 상식이다.
그리고 사진 속의 인물이 소울이라고 우길 수도 없는 것이 뽀샵질을 하고도 여전히 인물의 윤곽이 전혀 선명하지 않았다.
“다른 것도 있습니다.”
“보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누굽니까?”
“서머너즈 길드 산하 소울 디펜스의 대원들입니다.”
“썬글래스를 쓰고 있고 얼굴에 위장크림을 바른 사람들인데 용케도 우리 대원들이라고 확신을 하고 계시는군요.”
“으음.”
헤일리는 갑자기 자신이 왜 이런 짓을 해야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제임스의 충고대로 비록 이렇게 시작은 했지만 자신이 봐도 저 사진들은 허점이 많았다.
특히 썬글래스를 쓴데다 위장크림을 바른 상태의 사진으로는 법적인 처벌이 쉽지 않을 것 같았다.
그리고 설사 저들이 지금 미국 본토에 있다는 것을 증명해낸다고 해도 그것이 꼭 미국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건을 저질렀다는 의미는 될 수 없었다.
‘이런 식으로는 오히려 마스터의 분노만 살뿐이다. 이미 구천 개의 전략핵탄두를 가지고 있는 자다. 대한민국 정부가 소유하고 있다면 얼마든지 다시 빼앗아 오거나 제어할 수 있지만 어디로 튈지 모를 저자의 손에 들어간 이상 무조건 그의 비위를 맞춰야한다. 듣기로는 서머너즈 길드에는 텔레포트 능력을 가진 능력자가 있다고 했지. 전략핵탄두와 텔레포트의 조합이라. 제기랄, 정말 무적의 조합이군.’
헤일리는 빠르게 현실을 파악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마스터라는 놈을 죽여서 후환을 제거하고 싶지만 오라클과 그 일당들이 미국 능력자협회의 고위 능력자 수백 명을 동원해 죽이려고 해도 저렇게 멀쩡히 살아있는 것을 보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거기에다 주한미군과 7함대까지 동원한 기억을 떠올리자 헤일리의 마음에 소울은 불사신이라는 공식이 만들어졌다.
결정적으로 소울만 암살한다고 다 해결될 문제도 아니다.
서머너즈 길드를 비롯해 소울 디펜스까지 한꺼번에 완벽하게 해결하지 못한다면 그 뒤에 일어날 일은 능히 상상이 가능했다.
아마 북미대륙에 버섯구름 파티가 화끈하게 일어나게 될 것이다.
구천 개의 버섯구름, 아니 그 백분의 일인 구십 개의 버섯구름만 생겨도 미국은 사람이 살 수 없는 지옥의 땅으로 변모할 것이 분명했다.
“이제 보니 정말 이 사진만으론 문제가 있어 보이네요. 죄송합니다. 제임스, 이거 치우도록 하세요.”
“네, 미스터 프레지던트.”
헤일리가 제임스를 사납게 쳐다보자 제임스는 즉시 테이블 위의 사진과 누런 봉투를 챙겼다.
“오해가 풀렸다니 다행입니다. 다른 할 말이 없으시다면 전 그만 나가서 일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소울이 미련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자 헤일리 대통령이 얼른 미소를 지으며 그를 붙잡았다.
“마스터, 제가 오늘 여기 온 것은 사실 저런 사진 때문이 아닙니다. 오라클과 그 일당이 저지른 주한미군과 7함대 사태는 저희 미국에서도 굉장히 안타깝게 여기고 있습니다.”
“흐음, 모든 것을 오라클과 그 일당의 소행으로 돌리시는군요. 하지만 주한미군과 7함대가 오라클의 주구 노릇을 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헤일리는 소울의 말에 크게 당황했다.
소울과 서머너즈 길드에서 이 모든 행위가 오라클과 그 일당이 저지른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미국의 정보기관의 첩보를 통해 알고 있었다.
그런데 소울은 지금까지와는 반대로 오라클과 그 일당의 소행이라는 사실을 전면 부정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앞으로 일이 어떻게 돌아갈 것인가?
아마 이 모든 일의 주체와 배후로 지목될 대상은 미국이 될 것이다.
최악의 경우는 전쟁이고, 잘 해결된다고 해도 미국이 모든 법적책임을 지고 사과와 배상을 해야만 한다.
다른 것은 몰라도 지구의 모든 언론들이 새까맣게 몰려들어 수백 대의 카메라를 들이밀고 있는 가운데 자신이 사과를 하는 모습만큼은 어떻게든 막아야한다.
헤일리가 크게 당황한 가운데에서도 소울의 말은 끊이지 않고 계속 이어졌다.
“특히 7함대에서 발사한 토마호크 미사일에는 분명히 핵탄두가 실려 있었습니다. 큐브가 자체적으로 자위권을 행사하지 않았다면 대한민국의 영토인 개성은 아마 지구에서 삭제되었을 겁니다. 물론 그 여파로 천만의 인구가 살고 있는 수도 서울과 수도권에서 수십, 수백만의 생명이 죽어나갔겠지요.”
“분명히 말씀드립니다만 미국 정부는 이번 사태에 개입하지 않았습니다. 이 모든 일은 오라클과 그녀의 추종세력이 벌인 범죄입니다.”
“그건 정확하게 우리의 문제가 아닙니다. 미국에서 스스로 증명해 내야할 일이지요. 미국에서 정확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한다면 이 문제는 미국이 동맹국을 공격한 것도 모자라 동맹국의 영토에 핵미사일을 발사한 초유의 사태가 될 것입니다. 유엔 국제사법재판소에 헤일리 대통령은 전범으로 재판을 받게 될지도 모릅니다.”
소울의 말을 듣고 나자 헤일리는 등 뒤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가만히 넋 놓고 있다가는 정말 법정에 나가서 증언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미국을 협박하시는 겁니까?”
“그렇게 받아들이셨다면 미국의 전략핵탄두 구천 개를 수거해간 친구는 정말 미국 땅에 버섯구름을 피어 올릴지도 모르지요.”
“아니 뭐라고? 이 자가 정말 보자보자 하니까 못하는 말이 없네? 감히 미국을 협박해?”
국가정보국(ODNI) 국장 제임스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소울을 향해서 버럭 소리를 질렀다.
소울의 고개가 슬그머니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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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즐거운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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