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68 제 92 장 - 로칠드 가(家) =========================================================================
이러다가 단매에 자신을 쳐 죽이는 것이 아닐까?
혹시 영원히 이런 고통을 겪게 되는 것은 아닐까?
그는 자신도 모르게 솟구치는 공포에 질려 얼굴이 파랗게 변해갔다.
지금까지는 자신은 자기의 뜻과 의지에 반하는 자들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주체였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완전히 반대의 상황에 처하게 되자 자존심이고 뭐고, 그의 멘탈은 처참하게 박살나 버렸다.
세상에 그 어떤 사람도 이런 무식하고 살벌한 폭력 앞에서 끝까지 버티는 재주는 없을 것이다.
“으윽, 제발 그만 때려요. 이제 그만 원하는 것을 말해줘요. 으어엉!”
알렉산더가 어린아이처럼 눈물을 흘렸다. 이유나 알고 맞으면 다행이다.
그냥 아무것도 묻지 않고 계속 해서 패기만 하자 오히려 공포가 증폭되어 버렸다.
그제야 소울은 알렉산더의 피로 물든 자신의 주먹을 허공에 털어내며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흐음, 이제 슬슬 때가 된 것 같군.”
“마스터, 수고하셨습니다. 이제부터는 저희가 맡겠습니다.”
“그래. 아주 제대로 한 톨도 남기지 말고 탈탈 털어내도록 해.”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거야 말로 저희들의 전공분야입니다.”
로브를 입은 사내 몇이 알렉산더에게 다가왔다.
그중 하나가 알렉산더의 머리에 손을 대고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순간 알렉산더의 눈이 뒤로 회까닥 뒤집히더니 몸을 덜덜 떨기 시작했다.
“흐음, 이상한데, 뭐가 자꾸 길을 가로막고 있다.”
알렉산더의 머리 위에 손을 얹은 사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보통 이 정도면 그가 원하는 데로 술술 기억이 읽어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알렉산더의 머릿속을 스캔하고 있는 그는 뭔가가 자신의 행사를 자꾸 방해하고 있는 것을 느꼈다.
소울은 문득 머리에 스치는 생각이 있어 소리쳤다.
“혹시 몸에 아티펙트를 지니고 있을지 모르니 홀딱 벗겨서 살펴봐!”
“예, 마스터.”
로브를 입은 사내들이 알렉산더에게 달려들어 순식간에 옷을 홀라당 벗겨서 나체를 만들어 버렸다. 그가 차고 있던 시계와 목걸이, 반지 등 모든 액세서리와 소지품을 뺏어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탁자로 다가갔다.
알렉산더의 소지품을 하나씩 주의 깊게 살펴봤다.
그의 눈에 묵직한 반지 하나가 보이자 손가락으로 집어 들고는 조심스럽게 살펴봤다.
“이건 반지가 아니라 무슨 인장(印章) 같아 보이는데?”
“혹시 로칠드 가문의 인장이 아닐까요?”
“흐음, 그럴 수도 있겠군.”
그는 인장으로 보이는 반지를 내려놓고 이번에는 그 옆에 놓인 반지를 살펴봤다.
푸른 돌이 박혀있는 평범한 반지였는데 뭔가 묘한 느낌이 들었다.
“이 반지 같다.”
“네?”
“이 반지가 능력을 막았던 것 같다고.”
“아! 그렇습니까?”
소울은 굳이 어떤 반지라는 것을 말해주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이 반지에 박힌 푸른 돌이 마나석이라는 것쯤은 능히 짐작을 하고도 남았다.
‘지구에는 마나석이 없다고 하던데 어떻게 구했을까?’
그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로브를 입은 사내가 가까이 다가와 조심스럽게 말했다.
“혹시 위험할지도 모르니 저희가 잠시 가져가서 조사를 해보고 다시 가져오겠습니다.”
“응, 그렇게 해. 그런데 이제 알렉산더를 스캔하는 것은 가능해진 모양이지?”
“네, 순조롭게 잘 진행되고 있네요.”
알렉산더의 머리에 손을 대고 있는 사내의 입가에 미소가 걸린 것을 보자 소울은 그의 특이능력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우와, 이 새끼 진짜 나쁜 놈이네요.”
뇌를 스캔하고 있는 사내가 혀를 내두르더니 점점 얼굴에 미소를 잃어갔다.
뭔가 충격적인 장면을 본 모양이었다.
중요한 것은 이제 그가 알렉산더의 기억을 읽었으니 아무리 알렉산더가 피해가려고 해도 결국 백이면 백, 모든 것을 다 털어놓지 않고는 못 견디게 됐다는 것이다.
알렉산더는 소울이 자신에게 협상을 제안할 것이라 생각했겠지만, 소울에게는 서머너즈 길드의 특이능력자만 따로 모아 훈련시켜 놓은 스펠셜포스가 있었다.
천국에는 쓰레기통이 없다는 말이 있다.
누구든지 천국에 가면 버릴 것이 없이 나름 다 쓸모가 있다는 뜻이다.
소울은 서머너즈 길드에 들어온 능력자 중에 몬스터 사냥에는 전혀 도움이 되진 않았지만, 보기 드문 특이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한번 활용도를 알아보라고 지시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국정현 사무총장이 이런 특이능력자만을 따로 모아 훈련을 시켜서 스펠셜포스라는 근사한 조직을 만들어 낼 줄은 정말 몰랐다.
스페셜포스는 전혀 기대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지금 이 순간 엄청난 성과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투자 대비 이익을 논한다면 아마 이런 것을 보고 초대박이라고 말하지 않을까 싶다.
소울의 손에 제임스 로칠드와 데이비드 로칠드에 이어 이제 로칠드 가문의 가주인 알렉산더 로칠드까지 들어왔다.
이 소식이 밖으로 알려지면 세계를 암중으로 지배해오는데 일조했던 가문들도 섣불리 오라클을 후원하겠다고 나서지는 않을 것이다.
오라클을 후원하다 멸족을 당한 로칠드 가문 같은 좋은 본보기가 그들의 눈앞에 있으니 말이다.
아직 이들 가문들과 공식적인 협상을 해보지 않아 어떻게 될지는 장담할 수 없다. 그러나 조만간 이들 가문에서 먼저 자신을 만나고 싶다고 나올 가능성이 꽤 높아졌다.
이들과 얘기가 잘 되면 거꾸로 이들의 힘을 이용하여 오라클을 압박하고 종국에는 그녀의 숨통을 조일 수도 있을 것이다.
소울은 살기 띤 차가운 눈으로 덜덜 떨고 있는 알렉산더 로칠드를 냉정히 쳐다봤다.
개성에 핵미사일이 떨어질 뻔한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자다가 벌떡 몸을 일으키게 된다. 그는 고개를 옆으로 돌리며 한숨을 쉬었다. 계속 알렉산더를 쳐다보고 있다간 자신도 모르게 그의 머리통을 주먹으로 날려버릴 것만 같았다.
‘오라클, 이제 머지않았다. 네년의 상판대기를 볼 날이 말이야.’
그는 하루라도 빨리 오라클을 만나 목을 비틀어버리게 될 그날이 오기를 이렇게 학수고대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로도스 성은 완전히 진압됐다.
더 이상 기관단총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특작부대가 완벽하게 적들을 몰살시킨 것이다.
잠시 후, 로도스 성 첨탑 꼭대기에 깃발이 하나 올라갔다.
하얀 바탕에 포효하는 불곰의 머리가 그려진 깃발!
그것은 공식적인 서머너즈 길드의 깃발이다.
깃발은 단체와 조직을 상징한다. 그리고 또한 정복을 상징하기도 한다.
로칠드 가문의 수장이 머물던 로도스 성이 이제 서머너즈 길드의 손에 떨어졌다는 비공식적인 메시지가 서머너즈 길드의 깃발을 통해 전 세계로 은밀하게 퍼져나가고 있었다.
* * * * *
“안녕하십니까? 시청자 여러분! 여러분의 편견 없는 시사토크 진행자 오중심입니다. 오늘은 대한민국을 비롯한 전 세계가 궁금해 하는 큐브에 대해 집중 분석 및 조명을 해보는 시간을 가지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개성에 나가있는 정분석 리포터를 불러보겠습니다. 정분석 리포터, 나와 주세요!”
“네, 정분석 리포터입니다. 저는 지금 개성의 대 몬스터 장벽 위에 올라와 있습니다. 제 뒤에 보이시는 가로, 세로, 높이가 각각 정확히 100m 인 검은색 정육면체의 구조물이 바로 많은 사람을 놀라게 했던 바로 그 큐브입니다.”
카메라가 정분석 리포터의 어깨 너머로 보이는 큐브를 커다랗게 확대해서 보여줬다.
TV에서 개성을 직접 연결하여 생중계로 큐브에 대해 집중보도를 시작하자 스마트폰에서 DMB를 보고 있던 사람이나 집에서 TV를 시청하는 시민들 모두 채널을 고정시키고 호기심 가득한 눈을 반짝이기 시작했다.
스크린의 화면은 곧 두 개로 나눠져 방송국의 메인데스크와 개성을 동시에 보여주기 시작했다.
메인데스크에 앉아 있는 진행자 오중심이 마치 뉴스를 전하듯 또박또박 말을 이었다.
그러자 동시에 화면이 세 개로 나뉘어졌다.
새롭게 나타나는 화면은 인천국제공항을 비추고 있었다.
“오늘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헤일리 미국 대통령과 푸딘 러시아 대통령이 대한민국을 비공식 방문했습니다. 일국의 대통령이 다른 나라를 방문을 할 때 보통 공식적으로 방문합니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선지 지구 유일의 초강대국 미국과 점차 예전의 군사력을 회복해가고 있는 러시아의 대통령이 한낮한시에 그것도 다름아닌 우리 대한민국으로 입국했습니다. 여러분! 놀랍지 않습니까?”
시사토크 진행자 오중심은 묵직한 목소리에 강한 눈빛으로 자연스럽게 시청자의 호기심을 이끌어 내는 말을 하며 주의를 상기시켰다.
시청하고 있는 시민들은 그의 말에 홀리듯 빨려들어가고 있었다.
사실 그의 능력이 대단해서라기보다는 보도하고 있는 이슈 자체가 사람들에게 워낙 충격적이고 호기심을 자아냈기 때문이다.
중소국가의 대통령이 들어온 것도 아니고 무려 미국과 러시아의 대통령이 각각 비공식적으로 내한했으니 이상해도 한참 이상한 일일 것이다.
“그럼 두 나라의 대통령이 지금 어디에 있을까요? 청와대 영빈관으로 갔을까요? 아니면 특급호텔에 있는 최고급 스위트룸으로 들어갔을까요?”
오중심은 아리송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손으로 다시 화면을 가리켰다.
“정답은 개성입니다. 두 나라의 정상은 지금 개성에서 누군가를 만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럼 누구를 만나고 있는지 다시 개성에 있는 정분석 리포터를 불러서 확인해보겠습니다. 정분석 리포터!”
“네, 정분석 리포터입니다.”
“미국과 러시아의 정상이 지금 개성에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는데 정확히 어디에 있는 겁니까?”
“두 나라의 정상은 현재 서머너즈 길드의 이소울 마스터와 비공개 만남을 가지고 있습니다.”
“서머너즈 길드면 대한민국이 자랑하는 세계 최대의 길드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서머너즈 길드는 이소울 마스터가 주축이 되어 만들어진 길드로 창설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소환계 능력자들을 중심으로 폭발적으로 성장하여 현재 능력자만 오천 명이 넘는 초거대 길드가 됐습니다.”
“정말 대단한 길드네요. 이런 세계 제일의 거대 길드가 대한민국에 있다는 사실이 무척 자랑스럽습니다.”
오중심은 과장된 몸짓으로 어설픈 애국심을 끄집어 내려했다.
“그런데 서머너즈 길드의 마스터는 어느 정도로 강한 능력자입니까?”
“능력자협회에 문의한 결과에 따르면 최근에 A 클래스에 오른 보기 드문 상급 소환계 능력자로 밝혀졌습니다.”
“A 클래스라면 혹시 국내 최초가 아닙니까?”
“그렇지는 않습니다. 능력자협회에서 이번에 비밀 해제를 한 문건에 따르면 현재 국내에는 25명의 A 클래스 능력자가 있다고 합니다.”
“A 클래스 위는 S 클래스가 있죠?”
“그렇습니다.”
“현재 지구에 S 클래스의 능력자가 존재하나요?”
“아직까지 S 클래스 능력자의 존재가 공식적으로 확인된 적은 한번도 없습니다. 비공식적으로 몇 번 S 클래스 능력자가 출현했다는 논란이 일어나긴 했었지만 나중에 모두 단순한 오해나 해프닝 정도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오중심 호스트는 몸의 자세를 옆으로 살짝 돌리면서 오른 손을 들어 시청자의 시선을 자신에게 모은 뒤, 강하고 힘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 미국과 러시아라는 두 강대국의 정상이 왜 하필이면 개성까지 찾아와서 서머너즈 길드의 마스터를 만나고 있는 걸까요? 그것은 혹시 큐브가 어떤 놀라운 비밀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최근, 큐브에 대한 온갖 루머가 나돌고 있는 가운데 일반인도 큐브에 들어가기만 하면 능력자가 될 수 있다는 제보가 들어와 있습니다.”
오중심은 일부러 잠깐 자신의 말을 끊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쪽에 있는 넓은 플로어를 걸었다. 그리고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지금부터 저희는 서머너즈 길드와 큐브에 대한 비밀을 한번 파헤쳐 보도록 하겠습니다. 채널 고정해주세요.”
화면이 서서히 뒤로 멀어지더니 곧 광고방송이 나오기 시작했다.
방송을 보던 시민들은 그제야 참았던 숨을 몰아쉬면서 긴장을 풀었다.
일부는 냉장고로 가서 음료수를 가져왔고 일부는 과자를 들고 자리로 돌아왔다.
어떤 곳은 과일을 가져와 깎아 먹으면서 광고방송을 지켜보고 있었다.
하지만 누구도 쉽게 채널을 돌리지 못했다. 시청자 모두 서머너즈 길드와 큐브에 대해 궁금한 게 그만큼 많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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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날씨에 건강 유의하시고 생각하시는 일들이 다 잘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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