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63 제 91 장 - 타오르는 분노 =========================================================================
그의 명령이 떨어질 때마다 담당 간부가 큰 목소리로 대답을 하고는 어디론가 달려갔다.
국정현과 김영신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다가 이내 긴 한숨을 쉬더니 이번에는 다시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였다.
무슨 의미인지는 아마 두 사람만이 알 것이다.
이미 소울과 자신들은 한 몸이나 마찬가지다.
소울이 지면 자신들도 져야한다.
소울이 살면 자신들도 살 것이다.
공동운명체가 된 이상, 마스터의 명령을 완수하는 것은 그들에게 내린 지상명령이나 마찬가지였다.
“아무래도 서머너즈 길드 스페셜포스를 세상에 등장시켜야겠습니다.”
“특이능력자들만 모아놓았다는 그것 말입니까?”
“네, 그렇습니다. 지금이야말로 마스터에게 그들의 능력이 가장 절실하게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렇군요. 하지만 제 생각은 그들보다 금소희를 부르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으음, 아직 연습이 덜 되긴 했지만 이제 금소희도 투입할 때가 됐지요. 그녀도 같이 부르겠습니다.”
“아!”
김영신은 국정현의 말에 절로 탄식이 튀어 나왔다.
고개를 돌리자 소울의 두 눈에서 타오르는 불길이 정면으로 자신에게 쏟아지는 것 같았다. 순간, 소름이 돋으며 심장이 마구 뛰기 시작했다.
그는 마스터의 분노가 혹시라도 세상을 활활 태워버릴까 봐 걱정이 됐다.
하지만 지금 그가 이렇게 분노를 쏟아내지 않는다면 나중에는 몬스터 필드보다 그가 더 위험한 존재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해가 시작된 지 며칠 되지도 않은 시각, 큐브 안에서 시작된 한 사내의 분노가 한반도와 태평양을 건너 북아메리카 대륙을 활활 태우기 위해 날아가고 있었다.
* * * **
“미 해군의 7함대, 개성을 향해 핵미사일을 발사하다! 그러나 큐브에 의해 소멸!”
“큐브의 반격에 의해 USS 머스탱 이지스함과 항모 조지 워싱턴 호 증발!”
“큐브는 그 어떠한 공격에도 흠집조차 낼 수 없다!”
“대한민국 전역, 개성을 향한 미국의 핵미사일에 분노의 도가니가 되다.”
“대한민국 대통령 안천수, 미국과의 관계 전면 재검토 선언!”
“백악관, 갑작스럽게 터진 핵미사일 사태로 크게 당황하다!”
“미 정부, 비공식 루트를 통해 대한민국 대통령에게 사과! 하지만 골이 너무 깊다.”
“미 해군 7함대 사령관 캐로트 제독과 맥케인 부함장을 현장에서 체포, 현재 미국으로 이송 중.”
“한국군! 주한미군을 공격하다!”
“주한미군, 개전 1시간 만에 항복하다!”
“주일미군사령부, 전면교체! 백악관, 더 이상 주한미군과 같은 사태는 없다고 선언!”
“전 세계의 여론은 지금 미국 비난 중!”
“중국과 러시아, 미국은 핵 관리가 안 되는 후진국이다.”
…….
새해 벽두부터 시작된 일련의 핵미사일 사태는 급물살을 타며 전 지구촌으로 퍼져나가 뜨겁게 여론을 달궈댔다.
이미 주한미군 사태로 인해 외교적으로 막다른 구석에 몰려있는 미국의 이번 핵미사일 사태는 과연 초강대국 미국을 이대로 내버려둬도 좋은지 지구촌 사람들에게 깊은 의문을 드려놓았다.
뉴욕, LA, 시카고, 보스톤, 워싱턴, 마이애미 등 미국의 대도시에서는 개성을 향해 발사된 핵미사일 사태에 대한 비난과 함께 격렬한 반핵시위가 들불처럼 번져나갔다.
외교적, 군사적, 도덕적으로 치명적인 타격을 받은 미국은 안팎으로 크나큰 시련에 직면하게 됐다.
하지만 미국의 시련은 이제 시작에 불과했다.
워싱턴 D.C. 펜실베이니아 가(街).
최고급 방탄 리무진 차량은 앞뒤로 경호원들을 가득 실은 경호 차량의 삼엄한 호위를 받으며 달려가고 있다.
검은 색 썬틴을 해서 안이 전혀 보이지 않는 차량의 뒤 창문이 조금 열려지며 금발의 푸른 눈을 가진 나이 지긋한 신사의 모습이 보인다.
“우리 좀 늦지 않았어?”
“아닙니다. 오히려 예상보다 10분 쯤 빨리 왔습니다.”
“그렇군. 그럼 시가 한 대 필 동안 백악관을 한 바퀴만 돌지?”
“네, 부통령님.”
조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리무진 안에 있는 고급스런 함을 열어 쿠바 산 시가를 하나 꺼냈다. 오랜 적대관계를 청산한 쿠바에서 가장 빠르게 밀려들어오고 있는 것은 이민자와 쿠바 산 시가였다. 예전에는 쿠바 산 시가를 수입하는 것 자체가 불법이라서 밀수로 들여오는 것을 비싼 값을 주고 구입해야했지만 최근에는 가격이 많이 떨어져서 그의 기호를 충족시키고 있었다.
최고급 시가의 끝을 자르고 입에 문 뒤, 금장 라이터로 불을 붙인 부시는 손바닥만큼 열어놓은 창문을 통해 푸른 하늘을 쳐다봤다.
푸우우우!
입안에 가득한 시가향이 차안에 은은하게 퍼져나갔다.
‘운이 참 좋은 놈이군. 아니 명줄이 질기다고 해야 할까? 요리조리 미꾸라지처럼 잘 빠져 나갔다만 네가 살날도 멀지 않았다.’
조지는 은은한 살기를 눈에 담으며 서머너즈 길드의 마스터를 생각했다.
몇 번은 죽어 마땅한 놈이 계속 살아나서 조직은 물론 오라클의 신변까지 위협을 하는 것이 참으로 괘씸했다.
위대한 미국의 영광을 위해 지구는 새롭게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멍청한 일반 시민들이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그저 자신 같은 선택받은 사람들이 솔선수범해서 대의를 위해 다소의 희생으로 세상을 바꿔야 하는 것이다.
그는 오라클의 아름다운 얼굴과 육감적인 몸매를 생각했다.
언제 봐도 질리지 않는 그녀의 미모를 떠올리자 괜히 사타구니 사이가 묵직해졌다.
눈에 살기가 사라지고 대신 살짝 혈기가 올라왔다.
후우우우우!
다시 한 번 시가를 내뿜었다.
이번 일이 잘 끝나면 오라클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때를 위해 지금은 조금 참아야했다.
그의 입 꼬리가 위로 살짝 올라갔다.
그때였다.
부통령 조지가 탄 방탄 리무진에서 강력한 폭발이 일어났다.
쾅!
방탄 리무진은 순식간에 붉은 화염에 휩싸이더니 이내 차체가 강력한 백색 화염에 의해 녹아버리더니 순식간에 아스팔트 위에 들러붙어버렸다.
도대체 얼마나 강력한 화염이어야 이런 현상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일까?
놀라운 것은 그렇게 강력한 폭발과 화염이 일어났는데도 불구하고 앞뒤에서 호위하던 경호 차량은 큰 피해가 없었다는 것이다.
경호원들이 밖으로 나와 망연자실한 표정을 짓더니 급히 어디론가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미국 텍사스 주(州) 서부 사막.
뜨거운 태양의 열기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대지는 10분만 서 있어도 바로 익어버릴 것 같이 이글거린다.
땅은 프라이팬처럼 달아올라 맹렬한 열기를 발산하고 있고 한낮의 기온은 수은주가 터질 것 같이 솟구쳐있다.
썬글래스가 없다면 바로 눈이 멀어버릴 것 같은 강렬한 빛과 아지랑이가 가득한 사막의 한 가운데에 한눈에 봐도 군사기지 및 군사시설보호구역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지대가 펼쳐져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미군의 그리 크지 않은 캠프 중 하나로 보이지만 사실 이곳은 전략탄두가 오천 기도 넘게 보관되어 있는 탄두격납창이다.
탄두격납창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작은 언덕에는 무인감시초소가 세워져 있고 그 위는 콘크리트로 단단한 지붕이 만들어져 있다.
스팟!
무인감시초소 지붕 위로 돌연 빛이 번쩍했다.
햇빛에 뭐가 반사가 된 것 같은 착각이 일어날 즈음, 빛은 사라지고 대신 그 자리에 모래와 비슷한 색깔의 로브를 뒤집어쓴 사람 넷이 나타났다.
이들은 도대체 어디서 갑자기 나타난 것일까?
마술사라도 되는 듯 그들은 신기하게도 허공에서 그냥 문을 열고 나타난 것처럼 보였다.
“여긴가?”
“그렇습니다.”
“바로 시작하지?”
“네, 그렇게 하죠.”
로브를 걸친 사람 중 둘이 한 명에게 고개를 살짝 숙이더니 바로 허공으로 몸을 뽑아 올렸다.
그 순간 그들의 모습이 허공에서 꺼지듯이 사라졌다.
남은 자들은 가만히 그 자리에 서서 기지를 바라보며 서 있었다.
[까뮤, 너도 가야지.]
[네, 주인님.]
[하나도 남기지 말고 싹 쓸어와.]
[물론입니다. 전략탄두를 단 한 개도 놓치지 않고 몽땅 챙겨올게요.]
로브를 깊이 눌러쓴 사내는 손으로 선글라스를 살짝 위로 들어 올렸다가 내리며 자신의 옆에 바짝 붙어 서 있는 자를 쳐다봤다.
“시간이 갈수록 이동거리가 늘어나는구나?”
“죄송해요. 제가 아직 등급이 높지 못해서 여기까지 한 번에 이동하기는 힘들어요.”
“그래도 그게 어디야? 네 덕분에 우리가 이렇게 북미 대륙을 마음껏 휘젓고 다니잖아?”
“그거야 마스터께서 저를 도와주시니까 그렇지요. C급의 능력으로 저 혼자 하루에 몇 번이나 이렇게 장거리이동은 불가능해요.”
듣기만 해도 사이다처럼 가슴이 다 시원해지는 목소리가 그의 귀를 간지럽혔다.
그녀의 체향이 뜨거운 사막의 열기 속에서도 향기롭기 그지없었다.
“그래도 텔레포트 능력을 각성한 것은 너야. 그 사실만큼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지.”
“그렇게 생각해주시니 감사해요.”
“이번 일만 끝내면 오늘은 끝인 건가?”
“아니에요. 뉴욕 주(州) 근교에 있는 탄두격납창 하나가 남았어요.”
“거긴 얼마나 있지?”
“2천에서 3천기 정도 있다고 합니다.”
“적은 수는 아니군. 그런데 오늘 날씨가 좀 덥군.”
“잠시 만요.”
금소희는 소울을 위해 바람의 정령 슈나이더를 소환해 시원한 바람을 불어 주었다.
뜨거운 사막의 열기에도 불구하고 슈나이더가 만들어낸 바람은 정말 시원하고 청량한 느낌을 주었다.
“신호가 왔네요.”
“그렇군.”
금소희는 자신의 주머니에 넣어 놓은 신호기의 불이 들어오자 즉시 소울에게 보고했다.
[렉시, 이제 네가 가야할 차례이다.]
[빠아!]
[둘이 빠져 나오면 바로 시작하도록 해!]
[빠아! 빠아!]
렉시는 소울의 앞에서 날갯짓을 몇 번 하더니 소리 없이 탄두격납창 안으로 날아갔다.
피닉스인 렉시는 사람의 눈에 일체 자신의 모습을 보이지 않고 유령처럼 지하 깊숙이 가라앉았다.
[주인님, 다녀왔습니다.]
[그래. 수고했다. 얼마나 건졌지?]
[미니트맨-III(LGM-30G) 미사일에 들어가는 W78 핵탄두 3212기, 피스키퍼(LGM-118) 미사일에 들어가는 W87 핵탄두 2001기, 기타 24기 총 5237 기의 핵탄두를 확보했습니다.]
[흐음, 그 정도면 충분한 핵 억지력은 확보한 셈이군.]
소울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마스터, 다녀왔습니다.”
“수고했다.”
그의 앞 허공에서 로브를 입은 두 명의 사내가 나타나더니 소울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건진 것이 좀 있던가?”
“예상대로 이곳에도 오라클의 마수가 퍼져 있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명단은 확보했나?”
“점조직이라서 그런지 많은 숫자는 아닙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장소가 장소인 만큼 꽤 높은 자리에 있는 놈들까지 확인했습니다.”
“그래? 잘 됐군. 명단을 넘기고 나면 다시 바빠지겠군.”
“아무래도 그렇게 되겠지요.”
그때 탄두격납창에서 붉은 화염이 위로 높이 솟구쳤다.
화염은 주변의 건물을 건드리지 않고 오로지 위로만 솟구쳤는데 이내 붉은 빛에서 새하얀 색으로 변하더니 주변의 모래까지 녹여서 엿가락처럼 만들어 버렸다.
이정도 화염이 지하 깊숙이 있는 탄두격납창을 덮쳤다면 틀림없이 그곳은 이미 용암덩어리처럼 변해버렸을 것이 틀림없었다.
5분이나 지났을까?
소울의 눈앞에 렉시가 나타났다.
[빠아!]
[렉시, 수고했다. 갈수록 화염의 온도가 올라가는 것 같구나.]
[빠아, 빠아!]
[그래, 더 강해져야지. 세상을 다 태워버릴 수 있을 정도까지 더 강해져라!]
[빠아!]
소울은 렉시를 부드러운 눈으로 한번 쳐다본 후, 금소희를 쳐다봤다.
“전 준비됐어요.”
“그럼 이번에는 뉴욕으로 날아가 볼까?”
“네. 출발합니다. 셋, 둘, 하나, 텔레포트!”
스팟!
무인감시초소 위의 지붕에 서있던 로브를 입은 남녀 네 명은 처음에 나타났던 것처럼 그렇게 신비롭게 사라져버렸다.
탄두격납창에서 화염이 사라지고 나자 곧 더운 김이 모락모락 허공으로 피어올랐다.
그리고 놀란 경비병들이 밖으로 튀어나오더니 패닉상태에 빠져 버렸다.
텍사스 사막은 역시 사람이 살기에는 너무나 더운 곳이다.
미국 뉴욕 주(州) 롱아일랜드 나소카운티 브룩빌.
브룩빌은 경제시사 주간지 비즈니스위크(Business Week)가 선정한 ‘미국 내 25대 부자 동네’에서 당당히 1위에 오르기도 했던 미 동부 최고의 부촌이다.
848가구에 주민 연평균 수입이 35만 달러에 이르는 이곳은 미 동부의 미국 판 재벌들이 오래전부터 터를 잡아온 곳으로 유명하다.
숲으로 우거진 자연 속에 자리 잡은 넓은 집터, 화려한 정원, 유럽의 성을 방불케 하는 대저택의 모습은 이곳이 과연 왜 부촌인지를 그대로 설명해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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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금 탈고한 따끈따끈한 연재 올려봅니다. 이거 바쁜 와중에 연참 올리기가 쉽지는 않군요. 즐겁게 읽어주셨으면 좋겠네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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