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OULNET-361화 (361/492)
  • 00361  제 91 장 - 타오르는 분노  =========================================================================

    [어깨 안으로 파편 같은 게 들어와 박혀있어요. 제거할까요?]

    [응, 부탁해.]

    까뮤는 김혜진의 상처 안으로 손가락을 집어넣고는 가볍게 파편을 꺼냈다.

    그리고는 힐을 써서 상처를 간단하게 치료했다.

    반정령인 까뮤만이 할 수 있는 즉석 수술이었다.

    [주인님, 다 됐어요.]

    [다른 곳은 이상 없지?]

    [네, 전혀 이상 없어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쉰 소울이 김혜진에게 차분하게 말했다.

    “어머니, 작은 파편이 박혔는데 제거했어요. 완벽하게 치료됐으니 이제 일어나세요.”

    “그래?”

    김혜진은 소울의 말에 자신의 상처를 손가락으로 만져봤다. 피를 닦아내자 매끄러운 피부가 손에 만져졌다. 고통도 없었고 흉터조차 생기지 않았다.

    “그것 참, 신기하게도 하나도 아프지 않네?”

    “제 소환수가 치료해서 그래요. 놀라셨을 테니 가서 좀 쉬세요.”

    “응, 그래야겠다.”

    소울의 말에 김혜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이대산의 부축을 받고 큐브 4층에 있는 임시거처를 향해 걸어갔다.

    소울은 부모님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다 소망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소망은 소울의 날카로운 시선에 흠칫 놀라서 고개를 숙였다.

    “어떻게 된 거야?”

    “형, 소현이가 큐브 밖으로 나갔어. 내가 말렸는데 말을 듣지 않았어. 그리고 아버지와 어머니도 소현이가 걱정되어 잠시 큐브 밖으로 나갔다가 내가 급히 모시고 들어온 거야.”

    “그럼 지금 소현이가 큐브 밖에 혼자 있단 말이야?”

    “아니, 세경 누나가 따라갔어.”

    소울은 소망의 말에 일이 어떻게 된 것인지 짐작이 갔다.

    소현이 자신의 말을 무시하고 큐브 밖으로 나갔다가 어머니, 김혜진 여사가 큰 변을 당할 뻔 한 것이다.

    마침 소망이 있어서 급히 두 분을 큐브 안으로 모시지 못했다면 정말 돌이킬 수 없는 큰 일이 일어났을 것이다.

    그는 소현이의 이런 천방지축(天方地軸) 한 성격을 더 이상 용납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문득 지금 큐브가 공격받고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소현이가 위험해!’

    소울은 더 이상 망설이지 않았다.

    “소망아, 아버지와 어머니 절대 큐브 밖으로 못나오시게 해라.”

    “응.”

    “믿는다.”

    “알았어. 다시는 같은 실수 하지 않을거야.”

    소울은 소망의 얼굴을 한번 쳐다보고는 즉시 큐브 밖으로 이동했다.

    스팟!

    큐브 밖으로 나오자 콧속을 찌르는 피비린내와 시큼한 화약 냄새가 진동했다.

    그는 빠르게 큐브 주변을 눈으로 쓸어봤다.

    큐브 앞에서 성업 중이던 포장마차들이 모조리 불에 타 쓰러져 있었다.

    부상당한 서머너즈 길드 소속 능력자들과 소울 디펜스 대원들은 큐브 안으로 속속 옮겨지고 있었고, 중형전술차 몇 대가 대 몬스터 장벽 안으로 들어와 부상자들을 병원으로 실어 나르고 있는 모습도 보였다.

    한쪽에서는 사체 수송용 가방에 죽은 사람의 시체를 넣고 있었고 다른 한편에서는 가족인 것으로 보이는 여러 사람이 목 놓아 울고 있었다.

    ‘어디냐? 어디야?’

    소울은 점점 조급해지는 마음을 느끼며 눈으로 빠르게 소현을 찾아봤다.

    [주인님, 저기 있어요.]

    그때 소울보다 까뮤가 먼저 소현을 찾아내 소리쳤다.

    소울은 까뮤의 말에 즉시 다 타버린 포장마차 옆에 쓰러져 있는 소현을 향해 달려갔다.

    “소현아!”

    소울이 소현을 부르자 소현은 아직까지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눈을 떴다 감았다 하며 허우적거렸다.

    그녀의 몸 위에 등이 새카맣게 타버린 시체 하나가 얹어져 있자 소울은 한손으로 시체를 옆으로 밀어내고 소현을 안았다.

    “소현아! 괜찮아?”

    “오, 오빠!”

    “그래, 오빠다. 오빠야.”

    소현이 살아있는 것을 확인한 소울은 즉시 까뮤에게 명령했다.

    [까뮤, 소현이의 몸을 살펴봐!]

    [네, 주인님.]

    사실 이미 말하기도 전에 까뮤는 소현의 몸을 샅샅이 훑고 있었다.

    [다행히 생명에 지장이 있는 부상은 없습니다. 얼굴과 몸에 입은 화상과 충격을 받아 내장이 흔들린 정도입니다.]

    까뮤의 말에 소울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휴우, 다행이다. 즉시 치료해줘.]

    [네, 주인님.]

    까뮤는 소현의 몸에 힐과 정화를 난사했다.

    그러자 소현의 얼굴과 몸에 난 화상이 말끔히 치료되고 부상을 입은 타박상도 깨끗하게 원상복구됐다.

    그리고 얼마지 나지 않아 소현은 정신을 차렸다.

    “오빠! 우와아앙!”

    소현은 소울을 보자마자 대뜸 두 팔로 덥석 끌어안더니 어린아이처럼 울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가슴이 뭉클해진 소울은 소현의 등을 토닥거리며 작게 속삭였다.

    “괜찮아. 괜찮아. 넌 무사해. 이제 다 지나갔어.”

    소울은 아직 진정하지 못하고 있는 소현을 두 손으로 안고는 몸을 벌떡 일으켰다.

    여기서 이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다가 또 무슨 일이 터질지 몰라서 급히 큐브 안으로 들어가려는 것이다.

    몸을 막 돌리는 순간, 소현의 몸 위에 누워있던 시체의 머리가 눈에 들어왔다.

    새카맣게 탄 시체에는 어디서 많이 본 듯한 꽃모양의 머리띠가 박혀 있었다.

    살짝 고개를 갸웃한 그는 이내 큐브 안으로 사라져갔다.

    스팟!

    큐브 안으로 들어오자 그는 4층 광장에서 급히 힐러들을 찾았다.

    “제 동생인데 폭발로 인해 충격을 받은 모양입니다.”

    “알겠습니다. 저희가 데리고 가서 안정시키겠습니다.”

    힐러 전용 복장을 입은 힐러 둘이 소울을 보고는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들것을 가져다가 소현을 눕히고 임시로 만들어놓은 병동으로 옮기려는 순간, 소현이 소울의 한쪽 팔을 꽉 잡았다.

    “오빠!”

    “응?”

    “미안해!”

    “뭐가?”

    “말 안 듣고 밖으로 나간 거.”

    “괜찮아. 나중에 얘기하자.”

    당장은 그녀에게 뭐라고 얘기를 해야 좋을지 소울 자신도 판단이 서지 않았다.

    그보다 소현이 이렇게 살아있어 준 것만 해도 그는 감사하다는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소현의 눈에는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나오고, 마치 세상을 다 산 것 같은 힘없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리고 미안해.”

    “또 뭘?”

    “내가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뭐를?”

    “오히려 세경언니가 나를 지키려다가 죽었어.”

    “뭐? 그게 무슨 말이야?”

    소울은 깜짝 놀라서 그녀를 향해 몸을 돌렸다.

    “흐흑, 세경언니가 타오르는 불속에서 나에게만 계속 힐을 넣었어. 내가 그러지 말라고 소리쳤는데도 언니는 웃으면서 계속 힐을 넣어줬어. 그래서 지금 내가 이렇게 살아있는 거야. 머리카락과 얼굴 피부가 타고 눈이 녹아내리는데도 세경언니는 힐을 멈추지 않았어.”

    쿵!

    소울은 그녀의 말에 큰 충격을 받았다. 그는 소현의 어깨를 두 팔로 잡고는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며 물었다.

    “설마 아까 네 몸 위에 있던 시체가 민세경이란 말이야?”

    “응.”

    “아!”

    절로 탄식이 새어나오며 입이 딱 벌어졌다.

    어쩐지 새까맣게 타버린 머리에 박혀 있던 꽃 모양의 머리띠가 유난히 낯이 익는다고 생각했다.

    “언니가 죽으면서 꼭 오빠에게 전해달라는 말이 있었어.”

    “…….”

    소울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처연한 눈빛으로 소현을 바라봤다.

    “미안하대. 너무 너무 미안하대. 그리고 너무나 사랑했다고 전해달래. 만약 다음 생에 태어난다면 꼭 오빠의 종이 되어 자신의 죄를 갚겠다고 했어.”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았다.

    그녀를 원망하고 미워했던 시간들이 너무나 아쉬웠다.

    이럴 줄 알았다면 좀 더 잘해주는 건데…….

    이렇게 쉽게 죽어버릴 줄 알았다면 그렇게 매몰차게 대하지 않아도 됐을 것을…….

    생각해보면 그녀가 자신에게 저지른 짓이 그렇게 죽을죄는 아니었다.

    남녀가 서로 좋아하다가 헤어지는 것이 죄는 아니지 않는가?

    자신이나 그녀나 어려운 가정형편에 가족을 위해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발버둥친 것이 굳이 죄라면 죄일 것이다.

    가난했기 때문에, 돈이 없었기 때문에, 아버지의 병을 꼭 고쳐드리고 싶었기 때문에 그녀는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넌 참 더럽게도 운이 없구나.’

    소울은 그녀의 인생이 가여웠다.

    자신의 가슴에 대못을 박고 떠난 것은 안타까웠지만 만약 자신에게 이런 비슷한 상황이 닥쳤더라면 그녀보다 더 나은 선택을 했을 거라는 보장이 없었다.

    자신을 희생해서 아버지의 병을 고쳐보려고 끝까지 노력했던 그녀에게 돌을 던질 수 있는 사람은 없다.

    2천 년 전의 예수도 간음하다 적발된 여인을 향해 ‘죄 없는 자가 돌을 들어 치라!’고 말했다. 당시 죽일 듯이 난리를 피우던 군중들도 자신이 정말 죄 없는 사람인가 스스로 살펴보다가 결국 들고 있던 돌을 모두 슬그머니 내려놓고 자리를 피하고 말았다고 한다.

    소울도 세경에게 돌을 들 생각이 전혀 없었다.

    아니 그녀는 돌을 맞을 만한 일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는 자신을 구할 수 있는 기회를 과감하게 포기하고 소현을 구하기 위해 스스로를 희생했다.

    소울은 소현과 세경이 처한 상황을 상상해봤다.

    폭발로 인한 화염 속에서 세경은 폭발의 충격으로 정신을 못 차리는 소현을 위해 자신을 극단적으로 내몰았을 것이다.

    입고 있는 옷은 물론이고 머리카락과 피부가 타들어가는 끔찍한 고통 속에서 그녀는 힐러인 자신의 등급으로는 둘을 살리지 못할 것이라는 냉철한 판단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과감히 스스로를 포기하고 소현에게 힐을 난사한다.

    F-급 힐러가 가지는 힐의 양으로는 한 사람도 제대로 살릴 수가 없으니 자신의 모든 기운을 바닥까지 긁어서 퍼부었을 것이다.

    자신의 얼굴과 눈알이 타들어가는 그 참담한 고통 속에서 그녀는 끝까지 이성을 유지하며 소현을 위해 마지막까지 힐을 쏟아 부으면서 유언을 남겼을 것이다.

    얼마나 아팠을까?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손가락에 바늘만 찔려도 아파서 우는 게 인간인데 그녀는 가장 고통스럽다는 화형과 같은 고통 속에서 어떻게 끝까지 정신을 차리고 힐을 넣을 수 있었을까?

    죽어가면서 자신에게 유언을 남길 정도로 그녀는 그토록 자신에게 미안했던 것일까?

    정말 그렇게까지 자신을 사랑했던 것일까?

    소울의 두 눈에서 맑은 물방울이 또르르 흘러내렸다.

    오열하지 않는 사내의 진한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려 턱에 맺혔다.

    그는 고개를 돌리며 몸을 일으켰다.

    “오빠!”

    “…….”

    그는 대답 없이 터벅터벅 광장 분수대를 향해 걸어가더니 어느 순간 꺼지듯이 허공에서 사라졌다.

    그가 떨어뜨린 눈물 한 방울만 무겁게 땅에 흔들리며 소리 없이 존재의 의미를 부여하고 있었다.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을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처절하게 오열하는 소현의 울음소리가 주변을 울린다.

    * * * * *

    서해 격렬비열도 앞바다, 미 해군 7함대 기함 블루리지 호의 함교.

    “보고하라!”

    “총 10기 중 한국의 미사일방어체계에 막혀 8기가 격추당했습니다. 2기만 명중했습니다.”

    “오오오! 잘 피해갔군. 큐브의 피해상황을 보고하라.”

    “드론을 통해 확인 중입니다. 아! 전혀 데미지를 입지 않았습니다. 말끔하네요.

    “으음.”

    함대사령관 캐로트 제독(해군 중장)은 깊은 한숨을 쉬면서 고개를 흔들었다.

    “W80 핵탄두를 단 토마호크 미사일을 준비하라.”

    “네?”

    캐로트 제독의 말에 놀란 함교의 장교들이 일제히 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명령이다. W80 핵탄두를 단 토마호크 미사일 발사를 준비해!”

    “네, 제독님.”

    미 해군에서는 핵탄두를 단 토마호크 미사일을 발사하려면 함대사령부에서 내려온 명령도 필요하지만 반드시 함장과 부함장의 의사가 일치되어야 한다.

    함교의 장교들이 맥도날드 부함장의 얼굴을 쳐다보자 맥도날드 부함장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행동에 함교의 장교들은 어쩔 수 없이 수십, 수백만의 인명피해를 낼 수 있는 W80 핵탄두를 단 토마호크 미사일 발사를 준비했다.

    “1기만 발사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중간에 요격당할 수 있으니 미끼로 던져줄 토마호크 미사일을 모두 한꺼번에 발사해야합니다.”

    매케인 부함장의 말에 캐로트 제독은 고개를 끄덕였다.

    “기왕 시작한 김에 함재기도 날려 보내도록 하지.”

    “역시 그렇게 하는 것이 미션을 완수하는데 유리하겠지요.”

    캐로트 제독과 메케인 부함장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니미츠급 핵추진 항공모함 조지 워싱턴 호에서 함재기를 날릴 것을 결정했다.

    놀라운 것은 조지 워싱턴 호의 함장 라우먼 대령도 그들의 의사에 조금도 반하지 않고 적극 찬성을 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조금 시간이 걸리겠네요.”

    “그렇겠군.”

    그들은 머그컵에 커피를 따라 마시면서 느긋하게 개성 쪽을 바라봤다.

    하지만 함교의 장교들은 직감적으로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에 불안감을 떨칠 수 없었다.

    ============================ 작품 후기 ============================

    * 논란의 여지를 없애기 위해 3연참을 했습니다. 사정없이 추천을 꽝 꽝 꽝 찍어주세요! ^^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유쾌한 하루 되세요.

    선호작, 추천, 코멘트, 쿠폰, 후원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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