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OULNET-357화 (357/492)
  • 00357  제 90 장 - 달콤한 복수  =========================================================================

    소울보다 더 가까이 있던 소망도 그 얘기를 들었는지 얼굴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이건 또 뭔 소리야?’

    아무래도 오지랖 넓은 소현이가 소망과 세경을 연결해주려고 적극 오버를 해댄 것 같았다. 다행히 세경이 지혜롭게 잘 처신해서 넘긴 모양이다.

    만약 세경과 소망, 두 사람이 정말 한 쌍의 커플로 연결됐다면 그거야 말로 막장 드라마요, 황당함의 극치였다.

    “언니, 오늘은 좀 늦었네요?”

    “응, 병원비 좀 내고 오느라고 그랬어.”

    “아버지는 좀 괜찮으세요?”

    “많이 나아지셨어.”

    “다행이네요. 차라리 우리 오빠한테 부탁해보지 그래요? 그럼 금방 해결될 텐데.”

    “아니야. 절대로 오빠에게는 말하지 마. 제발 부탁이야.”

    “아, 알았어요. 언니야 말로 제발 그런 눈으로 좀 보지 말아요. 내가 다 간 떨어지겠네.”

    적당히 거리가 떨어져 있어서 두 사람이 소곤거리는 얘기는 잘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도 일반 능력자에게나 해당되는 얘기지 등급이 소울 정도 되는 능력자에게는 바로 앞에서 하는 얘기나 마찬가지였다.

    ‘어떻게 된 거지? 예전에 물어봤을 때 분명히 아버지는 완쾌했다고 하지 않았나? 설마 나에게 부담주지 않으려고 일부러 그렇게 얘기한 건가? 손정도 이놈은 또 왜 이러지? 여자 친구의 아버지가 아픈 것을 보고도 그냥 두고 보고만 있었단 말이야? 아니다. 세경의 말에 의하면 여자 친구가 될 뻔했지만 결국 되지 않았다고 했어. 그럼 손정도가 세경의 아버지를 치료해줄 이유 자체가 사라지는 거야. 그럼 세경의 마음에 이미 다른 사람으로 채워졌다는 말은 무슨 말이지? 그 당시 나 말고 혹시 딴 사람 사귀고 있었나? 설마 그 사람이 나를 말하는 것은 아니겠지?’

    소울은 괜히 심장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

    남자의 둔한 감보다 그의 직감이 훨씬 더 빨리 진실을 캐치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사람은 감성만으로 이 세상을 살아갈 수는 없다.

    아버지의 병을 고치기 위해 할 수 없이 효녀 심청 같은 짓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이유가 어떻게 됐던 간에 민세경은 자신을 버리고 손정도에게 갔던 여자다.

    그의 날카로운 이성이 심쿵대는 심장은 서서히 가라앉혔다.

    ‘비서들에게 민세경의 상황에 대해서 알아오라고 해야겠다. 유정아에게도 좀 물어보고, 도대체 유정아는 왜 민세경을 길드에 들인 거야? 분명히 내가 잘 모르고 있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

    그는 일단 민세경에 대한 문제는 확실한 현황부터 알아본 후에 처리하기로 했다.

    “마스터!”

    갑자기 여자의 뾰쪽한 소리가 그의 등 뒤에서 들려왔다. 그리고 누군가가 빠르게 달려오는 것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려보자 커다란 가슴을 출렁이며 달려드는 실비아의 모습이 보였다.

    “실비아, 크윽!”

    실비아가 자신의 몸에 딱 달라붙는 타이즈를 입은 채 소울의 품으로 거칠게 뛰어 들었다. 뭉클한 감촉이 가슴전체로 번지며 그녀의 체중을 견디기 위해 한발을 뒤로 빼내야 했다.

    “흐윽, 마스터, 살아계셨네요.”

    “실비아, 그럼 당연히 내가 살아있지. 죽어?”

    실비아의 두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주변의 시선 같은 것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그저 소울의 얼굴만을 쳐다보는 시선에는 반가움과 애정이 가득했다.

    “제 목숨을 살리기 위해서 스스로 미끼가 되시다니, 정말 감동했어요. 이 은혜는 아마 죽어도 다 갚지 못할 거예요. 앞으로 제 몸을 다 바쳐서 갚을게요. 흑흑흑!”

    “실, 실비아,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거야? 다른 사람들이 들으면 오해하겠어.”

    “제 생명의 은인에게 은혜를 갚겠다는데 누가 뭐라고 해요. 이제 앞으로 저는 마스터의 곁에서 한시도 떨어지지 않을 거예요.”

    “자자, 제발 좀 진정해. 다른 사람들이 다 쳐다보잖아.”

    실비아가 마스터에게 목을 맨다는 소문이 돈 적이 있어서 이미 서너머즈 길드 소속 능력자들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두 사람의 시끄러운 재회를 구경했다.

    하지만 소울은 아버지와 어머니를 비롯해서 소망과 소현까지 있는 상황에서 받고 있는 육탄공세에 몸 둘 바를 몰라 했다.

    거기에다 이제는 민세경까지 자신을 묘한 눈초리로 쳐다보고 있었다.

    소울은 도저히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그녀를 안고 있을 수가 없어 기분 나쁘지 않게 조심스럽게 실비아를 밀어내고는 안색을 굳혔다.

    “실비아 비서! 그런데 왜 직접 구조대와 같이 오지 않았지?”

    “네? 아! 죄송해요. 구조대를 보내고 난 후, 마스터의 가족을 챙기려다보니 시간이 좀 늦어졌어요. 다행히 소문을 들으셨는지 마스터의 가족들은 벌써 큐브 안에 들어와 계시더라고요.”

    실비아는 소울의 말을 책망으로 받아들였는지 금세 시무룩하게 변했다. 그리고는 고개를 푹 아래로 떨궜다.

    그 모습에 김혜진 여사가 기가 막힌 듯 탄식했다.

    “여보! 우리가 큰아들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는 것 아니에요?”

    “그러게 말이야. 한손에 꽃을 든 것이 아니라 양손에 꽃을 들고 있었군.”

    “우린 누구를 밀어줘야 하죠?”

    “글쎄? 그건 좀 더 두고 봐야하지 않을까? 어! 저기 세 번째 꽃도 날아오네.”

    작게 소곤거리셨지만 소울의 귀에는 두 분이 하고 계신 얘기가 모조리 다, 제대로 들렸다.

    얼굴이 붉어진 소울이 자신의 아버지가 바라보는 곳을 향해 고개를 돌리자 유정아가 그를 향해 직선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마스터, 무사하셨군요?”

    “유 고문, 반가워요.”

    소울은 사람들의 다 쳐다보고 있어서 뭔가 근엄하게 보이려고 목소리를 깔았다.

    하지만 유정아는 그의 목소리를 쌩 까고 바로 그의 품으로 안겨들었다.

    “윽!”

    “아! 정말 다행이야. 멀쩡히 살아 돌아와서 고마워. 난 네가 어떻게 된 줄 알고 걱정했었어.”

    유정아가 소울의 귀에 대고 소곤거리는 말에 소울은 순간 가슴이 뭉클했다.

    그녀의 말에서 자신을 걱정하는 깊은 속마음이 느껴졌다. 그는 당장이라도 그녀의 입술에 키스를 하고 싶었지만 그래도 여기는 둘만 있는 장소는 아니었다.

    그는 작게 심호흡을 하고는 살짝 유정아를 밀어냈다.

    “이것 좀 놓고 얘기하자. 숨을 못 쉬겠다.”

    “안 돼! 잠시만 이대로 있어.”

    유정아를 떼어내려 했지만 그녀가 소울의 목을 두 팔로 꽉 붙잡고 있어서 실패했다.

    “뒤에 우리 부모님 보고 계신 것 안보여?”

    “헉, 그렇구나.”

    천하의 유정아도 소울의 부모님 앞에서는 함부로 행동을 하지 못했다.

    그녀는 굳이 밀어내지 않아도 알아서 급히 그의 품에서 떨어져 나갔다.

    그러나 이미 소울의 가족과 서머너즈 길드 소속의 능력자 그리고 소울 디펜스 대원들까지 모두 그녀의 행동을 다 봐버렸다.

    ‘아! 이거 앞으로 시집가기는 글러먹었네.’

    유정아는 그제야 속으로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하지만 두꺼운 그녀의 얼굴 가죽은 금세 자연스러운 미소를 만들어 내며 이대산과 김혜진에게 다가가 살갑게 인사를 했다.

    “아버님, 어머님, 안녕하세요?”

    “유 고문도 잘 지냈어요?”

    “네, 저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두 분이 이렇게 무사하시고 또, 건강해보이시니 제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네요.”

    “모두 유 고문 덕분이에요.”

    “아니에요. 제가 뭘 한 게 있나요? 다행히 세경이가 옆에서 지혜롭게 잘 처신을 잘해줘서 마스터의 걱정을 덜었어요.”

    소울은 지금 유정아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갑자기 자신의 부모님에게 다가가서 저렇게 살갑게 대하는 모습에 뭔지 모를 위화감을 느꼈다.

    ‘쟤가 미쳤나? 갑자기 왜 저러지?’

    유정아까지 나타나자 주변 공기가 마치 분홍빛에서 회색으로 변해버리는 것 같았다.

    그 모습에 그들을 구경하던 서머너즈 길드 소속의 능력자와 소울 디펜스 대원들이 모두 각자 제 갈 길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실비아!”

    “네, 마스터.”

    “저기 민세경 힐러 알지?”

    “네.”

    “그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알아봐.”

    “뒷조사를 해보란 말씀이십니까?”

    “그래.”

    실비아는 소울의 뭔가 석연치 않은 눈빛을 읽더니 살짝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실비아! 우리 따로 얘기 좀 해야 하지 않을까?”

    “네? 무슨 얘기요?”

    “예를 들면 실비아가 어떻게 그렇게 찰진 사투리를 쓸 수 있는지? 정체는 무엇인지? 나에게 도대체 뭘 숨기고 있는지 말이야?”

    “저 별로 숨기고 있는 것 없는데요?”

    일단 실비아는 어설픈 오리발부터 내밀었다.

    하지만 이미 의심하기 시작한 소울에게는 그저 의혹을 부채질하는 말일 뿐이었다.

    “별로 숨기고 있는 것이 없다면 뭔가 숨기고 있는 것이 조금은 있다는 얘기군. 직접 얘기할래? 아니면 내가 직접 뒤를 캐볼까? 아니다. 지금 당장 국정현 사무총장을 불러서 물어보면 되겠네.”

    “그, 그런…….”

    실비아는 얼굴이 새빨개져서는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안절부절 하는 모습을 보니 꽤나 귀여운 구석이 있었다.

    하지만 소울은 곧 진실이라는 얼음속의 칼을 맞고 경악에 빠져 들어야했다.

    “실비아의 정체는 이미 마스터도 알고 있잖아요.”

    “유 고문, 그게 무슨 말이야? 내가 실비아의 정체를 알고 있다니?”

    어느새 유정아가 다가와 실비아와 소울의 옆에 서더니 삼각대형을 이뤘다.

    “정말 전혀 눈치 채지 못했나보네?”

    “유 고문님! 제발!”

    실비아는 유정아를 향해 두 손을 모으더니 간절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하지만 유정아의 눈빛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국정현 사무총장이 신신당부해서 그동안 모른 척 하고 있었는데 마스터가 물어본 이상 숨기는 것은 곤란해. 더 이상 마스터에게 진실한 자신의 정체를 숨긴다는 것은 서머너즈 길드에 소속된 능력자로써 할 짓이 아니야. 박은영! 안 그래?”

    “아!”

    소울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유정아가 분명히 실비아를 보고 박은영이라고 불렀다.

    “박은영이라니? 실비아가 왜 박은영이야?”

    “휴우, 이래서 남자는 다 바보라니까? 아무리 껍데기가 바뀌어도 속까지 바뀌는 것은 아닐 텐데, 어쩜 이렇게 모를 수가 있지? 하긴 껍데기가 그냥 바뀐 것이 아니라 애벌레에서 나비로 화려하게 변태를 했으니 모를 만도 하겠구나.”

    유정아는 혼자 병 주고 약 주듯이 빠르게 혼잣말을 쏟아내고 있었다.

    “혹시 실비아가 박은영 간호사야?”

    소울이 실비아의 눈을 바라보면서 직접 물었다.

    실비아는 고개를 푹 숙이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간신히 대답했다.

    “네.”

    쿵!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어떻게 그 뚱뚱한 비호감의 박은영 간호사가 이렇게 아름답고, 육감적이고, 섹시하고, 귀여운 실비아가 될 수 있단 말인가?

    그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뚱뚱한 여자가 전신성형을 해서 아름다운 미녀가 되는 영화를 본 적은 있지만 자신의 비서가 같은 종류의 일을 겪을 줄은 정말 몰랐다.

    “어디 가서 전신성형이라도 한 거야?”

    “아니에요. 능력자가 되면서 신체에 변화가 일어나자마자 올리비아 뉴튼 존의 처녀 때 사진과 킬리 레베카 헤이즐의 사진을 보면서 간절히 소원을 빌었어요.”

    “그래? 그래서 이렇게 변했다고?”

    “네.”

    그제야 소울은 실비아의 얼굴을 보면서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느낌이 든 기억이 났다. 또한 그녀의 육감적인 몸매가 어디에서 왔는지도 알 수 있었다.

    정말 사람의 의지는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기적을 일으킬 정도로 대단한 것인가 보다.

    박은영이 실비아가 된 것은 환골탈태를 한 것보다 더 어렵고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크음!”

    소울이 대놓고 그녀의 얼굴과 몸매를 뚫어지게 쳐다보자 옆에서 보다 못한 유정아가 헛기침을 했다. 그제야 자신이 무슨 실수를 하고 있는 지 깨달은 소울은 얼른 정색을 하고는 실비아에게 다시 질문을 했다.

    “그럼 앞으로 박은영 비서라고 불러야 하는 건가?”

    “아니에요. 지금도, 앞으로도 전 마스터의 실비아로 살 거예요. 실비아로 불러주세요.”

    어째 말이 좀 껄쩍지근 한 느낌이 들었지만 박은영, 아니 실비아의 의지는 단호했다.

    소울은 굳이 그녀의 의지를 꺾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가 왜 자신의 정체를 숨겼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누구나 자신의 과거의 흑역사는 감추고 싶어 하는 것이 인지상정(人之常情)인 것이다. 소울만 해도 과거의 찌질했던 기억들은 이미 다 지워버린 듯이 살고 있지 않은가?

    뭔가 엄청난 비밀이라도 있는 줄 알았는데 막상 알고 보니 개인의 환골탈태 스토리였다.

    물론 듣고 보니 실비아에게는 엄청난 비밀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건 지극히 개인적인 실비아의 비밀이지 소울에게는 하등에 상관없는 문제였다.

    아니 이건 사실 문제도 되지 못했다.

    ============================ 작품 후기 ============================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유쾌한 하루 되세요.

    선호작, 추천, 코멘트, 쿠폰, 후원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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