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47 제 87 장 - 대 능력자 혈전(血戰) =========================================================================
“크헉!”
하지만 실라이론의 행동이 조금 늦었다.
이미 브리즈는 두 눈을 까뒤집으며 입에 거품을 물고 있었다.
-꺄악! 안 돼!
“안되긴 뭐가 안 돼? 꺼져라. 다시는 이곳으로 오지마라. 또다시 내 눈에 보이면 그때는 네년을 꼭 잡아먹고 말테다.”
참담한 표정으로 비명을 지르던 실라이론의 모습이 순간, 퍽! 하고 꺼지듯 사라졌다.
계약을 맺은 주체인 브리즈가 죽자 정령계로 강제소환 되어 끌려가버린 것이다. 실라이론은 브리즈가 죽으면서 엄청난 영적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브리즈의 몸에서 까뮤가 쓰윽 고개를 내밀더니 소울을 쳐다봤다.
소울과 눈이 마주치자 까뮤는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한손을 들더니 마구 흔들었다.
[주인님!]
[하하하, 잘했다.]
[헤헤, 이정도야 뭐 보통이죠.]
장수를 잡으려면 말을 노리라고 했다.
소울이 실라이론과 엎치락뒤치락 하는 그 짧은 시간에 까뮤는 썬더의 몸에서 그의 권능과 능력을 쪽 빨아먹고는 브리즈에게 이동하여 그의 기운을 몽땅 흡수해버렸다.
소환력과 생기(生氣)는 물론 원기(元氣)까지 깨끗이 빨린 브리즈가 더 이상 숨을 쉬고 살아갈 수는 없었다.
실라이론이 소울을 공격하지만 않았다면 까뮤가 이렇게 독하게 손을 쓰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실라이론에게 브리즈가 중요하듯 까뮤에게는 소울이 생명같이 중요했다.
결국 실라이론은 오늘 건들지 말아야할 자를 건드린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만 했다.
엔젤, 브리즈, 세이렌, 로빈슨, 넷이 죽었다.
열 명의 썬더 파티 중에서 살아있는 자는 여섯, 그중에서 온전한 정신을 가지고 그나마 정상에 가까운 능력자를 꼽자면 탱커인 티나와 로키가 유일했다.
“항복하는 게 어때?”
“비겁한 놈, 모습이나 보이고 말해라!”
티나는 푸티나에게 연신 얻어터지면서도 입을 놀려댔다.
“그럼 조금 더 맞던가, 일단 쓰러진 놈들부터 죽여야겠군.”
“뭐? 뭐라고? 잠깐만! 항복, 항복하겠다.”
티나의 때늦은 말에 소울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티나와 로키 따위는 전혀 그의 안중에도 없었던 것이다.
‘써니가 가지고 있는 소환수인 아이스퀸이 좀 탐나긴 하군. 브리즈의 능력은 별로 영양가가 없고, 바론의 원소계 능력도 썩 당기지가 않아. 그나마 썬더의 능력은 나름 요긴하게 써먹을 수 있겠어.’
티나와 로키가 푸티나와 본에게 막혀 있는 동안, 까뮤는 썬더와 브리즈에 이어 써니와 바론, 그리고 네이트까지 권능과 능력을 흡수해갔다.
“크하하하, 이제 보니 네가 바로 서머너즈 길드의 마스터라는 놈이구나. 다크나이트 두 마리가 있을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내가 큰 실수를 했어.”
회광반조의 현상인지 썬더가 말짱하게 정신을 차리고 앉아서 소울을 보며 웃었다.
다 죽어가는 놈이 환하게 웃는 것을 보자 혹시 사이코가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썬더, 미국 능력자협회 회장이나 되는 놈이 뭐가 아쉬워서 오라클의 똥구멍을 빨아주고 있는 거야?”
“크하하하, 내가 그녀의 똥구멍을 빨고 싶어 하는 것은 어떻게 알았지. 정말 꼭 한번 빨아보고 싶었는데 결국 뜻을 이루지 못하게 됐군.”
“뭐시라? 허어! 아주 가지가지 하는 구나. 지금 네가 한 짓이 도대체 어떤 짓인지 알고나 있는 거야? 넌 지금 외계인들에게 지구를 팔아먹는 개 같은 짓을 한 거란 말이야. 알고나 있냐?”
썬더는 소울이 노골적으로 비웃는 소리에도 별로 동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소울이 하는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흐음, 그걸 알고 있는 것을 보니 너도 소울넷에 접속을 하는 놈이구나.”
“너와 나 그리고 오라클, 이 셋이 지구에서 소울넷에 접속할 수 있는 유일한 유저라고 볼 수 있지.”
“나도 그럴 것이라 짐작하고 있었다.”
썬더의 말에 소울은 의문이 들었다.
“그동안 소울넷에는 왜 접속하지 않았지?”
“접속을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못한 거야. 난 소울넷 포인트가 하나도 남지 않았거든. 제발 이유는 묻지 말아줘!”
“흐음, 알만하군. 오라클, 그년에게 다 가져다 바쳤겠구나.”
“크으, 눈치 한번 더럽게 빠른 놈이네.”
썬더는 입가에 흐르는 피를 손으로 닦으며 고개를 저었다.
“사랑했냐?”
“그렇다.”
“그래서 지구를 팔아먹었냐?”
“그래 팔아먹었다. 네가 사랑을 알아?”
썬더의 두 눈에서 갑자기 불똥이 튀는 것만 같았다. 오라클을 사랑하긴 했나보다. 하지만 저런 놈이 하는 사랑이라면 틀림없이 혼자만의 짝사랑으로 끝났을 것이다.
“모른다. 이 병신 새끼야.”
“그래. 네 말이 맞다. 난 병신이다. 사랑에 빠져서 죽을 때까지 자신이 뭘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호구새끼지.”
소울은 썬더가 하는 말을 듣자 더 이상 그를 놀리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이유 없는 무덤이 없다고, 썬더에게도 나름 사정이라는 것이 있었을 것이다.
다른 것은 몰라도 썬더의 눈과 목소리를 들어보니 오라클을 진심으로 사랑했다는 것은 사실인 것 같았다.
“그래도 죽을 때는 주제파악을 하고 죽는구나. 기분이다. 네가 죽으면 양지바른 곳에 무덤을 하나 만들어주도록 하겠다.”
큰 인심이라도 쓰는 듯한 소울의 말에 썬더가 유쾌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가만히 한손을 들더니 손가락 하나를 펴서 위로 향했다.
“넌 아마 내 무덤을 만들지 못할 거야. 내 심장이 멈추는 순간 이곳은 초토화가 될 테니까. 그리고 내가 끝이라고 생각하지마라. 난 끝이 아니라 시작이야.”
“뭐라고?”
소울은 썬더의 말에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까뮤, 수상하다. 튀자!]
[네, 주인님.]
까뮤가 썬더 파티의 전리품을 챙기다 말고 소울의 말에 얼른 그의 옆으로 날아왔다.
[본, 스켈레톤 기병단을 흡수하고 튀어.]
[예스, 마이로드.]
본은 소울의 의지가 느껴지자 곧바로 악어 입을 만들어 스켈레톤 기병단을 흡수했다.
[푸티나, 달려!]
[꾸잉!]
소울은 푸티나의 등을 향해 몸을 날려 등에 올라탔다.
푸티나는 소울의 감정에서 알 수 없는 공포를 느끼자 자신 낼 수 있는 최대의 속도로 계곡을 달려 빠져 나갔다.
“오라클을 만나면 사랑했다고 전해줘! 그리고 기회가 되면 꼭 이곳에 같이 묻어줘!”
썬더가 큰 소리로 소울에게 소리를 질렀다.
소울은 고개를 뒤로 돌리며 대답했다.
“야! 이 미친 새끼야, 죽으려면 곱게 혼자 죽지 왜 남의 나라까지 와서 개지랄을 떨어? 오라클, 그년의 목을 따서 꼭 네놈의 시체위에 뿌려줄게.”
“크하하하! 고맙다.”
그것을 마지막으로 썬더의 목소리는 더 들려오지 않았다.
[빠아!]
순간, 렉시의 목소리가 뇌리로 파고 들었다.
[주인님, 렉시가 계곡을 향해 뭔가 떨어져 내리고 있답니다.]
[아! 쓰벌, 이놈들 또 왜 이러냐?]
[마이로드, 제 손을 잡으십시오.]
그때였다.
자신의 뒤쪽으로 빠르게 달려오는, 아니 거의 날아오는 해골전투마가 느껴졌다.
소울은 즉시 본의 손을 잡고 해골전투마에 올라탔다.
[날아라! 본!]
[예스, 마이로드!]
쌔애애앵!
해골전투마가 날개를 활짝 펼치고 눈부신 속도로 계곡을 빠져 나가 하늘로 날아올랐다.
[빠아!]
그때, 다시 한 번 렉시의 목소리가 뇌리 속으로 들려왔다.
느낌상 상당히 실망한 목소리였다.
쿵 쿠쿵 쿠쿠쿵!
여섯 번의 굉음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그리고 그의 뒤쪽의 계곡이 완전히 뒤집혀 버렸다.
‘푸티나, 소환해제!’
소울은 급히 푸티나를 소환해제 시키고 뒤를 돌아봤다.
저절로 입이 딱 벌어졌다.
자신의 뒤로 거대한 폭풍이 다가오고 있었다.
[본, 더 빨리!]
[예스, 마이로드.]
해골전투마도 살고 싶었는지 최선을 다해서 날아갔다.
거대한 폭풍이 한참을 쫓아오다가 점점 힘을 잃고 사그라졌다.
[도대체 저게 뭘까?]
[뭔지는 잘 몰라도 전술핵에 버금가는 위력을 지닌 공격이 분명합니다.]
[으음, 핵은 아닌 것 같고……. 그렇다면 저 정도 위력을 낼만한 무기가 뭐가 있지? 설마 신의 지팡이는 아니겠지?]
신의 지팡이(The Rod from god)는 위성궤도에서 6m 길이의 100kg짜리 텅스텐 탄심 10여발을 자유 낙하시켜 지상을 공격하는 우주무기다.
목표지점 상공에서 발사하면 약 1~2분 내로 목표에 명중이 가능하다.
텅스텐 탄심의 지상 최종 돌입속도는 시속 11,520km, 지면 충돌 시의 위력은 TNT 1천 톤(1kt, 히로시마급 15kt)에 달하지만 방사능오염이 전무한 무기다.
레이건 행정부 때부터 개발이 시작됐다는 말이 있으니 지금 당장 신의 지팡이가 지상에 떨어진다고 해도 불가능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탄도미사일도 요격하기가 힘든데 마하 10 이상의 신의 지팡이라면 렉시가 중간에서 요격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저게 진짜 신의 지팡이라면 이거 정말 큰일 났네. 우주무기를 마음대로 쓸 정도면 미국 연방정부와 국방부에 얼마나 오라클의 입김이 깊게 닿는다는 거야?’
생각만 해도 정말 아찔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소울이 날아가는 방향으로 뭔가 반짝이는 것이 날아오자 이제는 아찔하다 못해 끔찍하기까지 했다.
[본, 미사일이다. 고도를 낮춰라.]
[예스, 마이로드.]
펑 퍼퍼펑 펑펑펑!
해골전투마가 급강하하고 지나간 자리에서 연속적으로 폭발이 일어났다.
간발의 차이로 미사일을 피해간 것이다.
[빠아!]
어느새 렉시가 날아와 하늘을 날고 있는 스텔스 전투기와 아파치 가디언 공격헬기를 향해 죽음의 보복을 시작했다.
방금 전 자신의 능력으로 막지 못한 정체불명의 무기로 인해 소울이 위험할 뻔 했다는 것을 인지한 탓에 상당히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는 렉시였다.
그런데 또다시 소울을 위협하는 미사일이 날아오자 렉시는 더 이상 참지 않고 마음껏 분노를 터뜨렸다.
울고 싶은데 뺨 때려준 격이라, 렉시는 소울의 머리 위로 날아다니는 전투기와 공격헬기를 가리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공격해서 마구 떨어뜨렸다.
주한미군 소속 전투기 편대와 공격헬기 편대는 차례로 허공에서 폭파되어 지상으로 비처럼 떨어져 내렸다.
렉시는 더 이상 눈에 보이는 적이 없자 자신의 감지영역을 최대한 확장해서 고공에 떠있는 드론을 감지해냈다.
차가운 눈빛을 한 렉시는 무서운 속도로 고공으로 올라왔다.
지상을 감시하며 미사일을 유도하고 있는 드론들은 렉시의 마수에 걸려 모조리 지상으로 추락해버렸다.
렉시가 고공으로 올라간 그 짧은 사이, 저공으로 접근한 공격헬기와 드론이 소울을 찾아 사방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본, 안되겠다. 지상으로 내려가자.]
[예스, 마이로드.]
해골전투마가 지상에 내려앉자 본은 즉시 해골전투마를 흡수해버렸다.
소울은 이미 자신의 위치가 적에게 노출된 것을 알고는 즉시 개성을 향해 달려갔다.
하지만 눈에 띄는 평지나 벌판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수풀이 울창한 숲속을 가로질러 남쪽으로 내려갔다.
사사삿 사사삿!
스스슷 스스슷!
소울과 본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숲속을 엄청난 속도로 가로질렀다.
괜히 잔머리를 굴린다고 시간을 끌었다가 앞으로 뭐가 날아올지 겁이 났던 것이다.
‘탄도미사일에 신의 지팡이라는 가공할 무기에 공격당했다. 공격헬기에다 드론, 이제는 스텔스 전투기까지 동원해서 나를 잡아 죽이려고 하는구나.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어. 이제는 무조건 최대한 빨리 큐브 속으로 숨어 들어야한다. 오라클, 이년이 아주 작심을 한 모양이니 나도 더 이상 미적거려선 안 돼.’
소울은 하늘에서 또 뭐가 떨어질지 몰라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남하했다.
자신의 머리 바로 위에선 까뮤가 정찰을 하고 있었고, 고공에서는 렉시가 눈에 띄는 모든 항공작전기를 다 작살내버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안심이 되지 않았다.
심장이 마구 뛰며 불길한 예감이 등골을 뱀처럼 기어 올라왔다.
목덜미가 서늘하고 머리털이 쭈뼛거리며 곤두서는 느낌은 정말 사람의 마음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불길한 예감은 틀리는 법이 없다는 모 업계의 전설처럼 소울의 불길한 예감도 적중률이 대단했다.
[주인님, 전면에 능력자들이 포진하고 있습니다.]
[능력자가? 얼마나 되는데?]
[백여 명은 되는 것 같아요.]
[설마 백여 명이 모두 B+급 이상은 아니겠지?]
[거리가 있어서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풍기는 기운이 그 정도는 넘는 것 같아요.]
[뭐시라?]
까뮤의 대답에 소울은 순간 급정거를 하더니 달리는 방향을 옆으로 꺾어 우회했다.
[우회하도록 하자. 까뮤, 길을 안내해라.]
[네, 주인님.]
까뮤와 감각공유를 시작하자 소울은 아까보다 훨씬 더 정확하게 전면에 포진한 자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 작품 후기 ============================
* 연말연시, 즐겁고 행복한 시간 보내세요. ^^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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