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42 제 86 장 - 300 =========================================================================
눈을 떠서 여기저기를 살펴봤지만 어두워서 그런 건지 아니면 눈을 다쳐서 그런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설마 시력을 잃지는 않았을 것이다.
“여기가 어디지?”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리자 동굴 안에서 말을 하는 것처럼 목소리가 울려왔다.
그리고 그의 정면에서 두 개의 시퍼런 불빛이 떠올랐다.
“으헥!”
소스라치게 놀라 뒤로 물러나자 곧 익숙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마이로드, 깨어나셨습니까?]
[야! 본! 놀랐잖아?]
[놀라게 해드려서 죄송합니다.]
본이란 것을 알게 되자 소울은 놀라서 막 튀어나오려던 심장이 급격히 진정됐다.
나중에 공포영화에 본을 내보내면 대박을 치겠다는 엉뚱한 생각을 하며 그는 기억을 더듬어봤다.
뭔가에 강력한 충격을 받아서 지금 그의 머리는 전혀 제 기능을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주인님, 깨어나셨군요?]
[어? 까뮤, 어떻게 된 거야?]
[일단 힐을 넣어드리겠습니다.]
[그래. 부탁해!]
화악!
소울의 머리에 우윳빛 광채가 내려앉았다.
우윳빛 광채는 그의 머리에서 시작하여 목을 지나 가슴과 배 엉덩이와 다리로 빠르게 내려갔다.
그에 따라 소울은 전신이 다 시원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아이고, 이제야 좀 살겠다.]
[빠아!]
본의 옆으로 렉시와 까뮤가 나타났다.
그제야 소울은 자신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여긴 어디야? 토굴인가?]
[그렇습니다. 여긴 제가 만들어놓은 땅속 토굴이에요.]
까뮤의 말에 소울은 뭐가 기억이 날 듯 말 듯 했다.
[그런데 내가 왜 토굴에 들어와 있지?]
[그것은 커다란 미사일로 공격을 당했기 때문이지요.]
[커다란 미사일?]
소울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생각에 잠겨들자 까뮤는 소울이 토해놓은 오물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오물들이 땅속으로 깊이 가라앉아 사라져 버렸다.
오물이 사라지자 냄새가 남았다.
까뮤는 다시 허공에 손을 뻗어 원을 그리면서 정화를 펼쳤다.
순식간에 공기가 정화되어 냄새가 사라졌다.
까뮤의 눈에 소울이 입고 있는 둠 플레이트가 보였다.
흙과 먼지가 묻어 아주 볼썽사나웠다.
까뮤는 그의 몸을 향해 한손을 뻗었다. 그러자 소울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푸른 물의 나이테가 한차례 휩쓸고 지나가며 클린과 정화를 해버렸다.
덕분에 소울은 토굴에 처박힌 상태에서도 마스터의 품위를 유지할 수 있었다.
[아!]
소울은 한참동안 생각을 한 뒤에야 기억이 조금씩 돌아왔다.
‘아니 어떤 개잡놈의 새끼가 나를 공격한 거지? 내가 그렇게 원한을 많이 샀나? 아니야. 나를 노린 것은 내가 원한을 사서가 아니라 나한테 뭔가를 얻기 위해서야. 아니면 반대로 나한테서 뭔가를 지우기 위해서겠지?’
거기까지 생각을 한 소울은 생수통을 꺼내 물을 마시며 목을 축였다.
‘엥? 그건 아니네. 나를 죽이고 얻기는 뭘 얻어? 개뿔을 얻어? 그렇다면 지워? 뭘 지워? 아이고, 내 머리가 왜 이렇게 꽉 막히고 둔해졌지? 왜 팍팍 안돌아가는 거야?’
그는 자신의 머리를 주먹으로 몇 번 치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가만 이런 짓을 할 놈이 하나 있네. 아니 한 년이 확실히 있긴 있구나. 오라클! 그 때려죽일 년이 분명해. 누군가 큐브를 노렸다면 나와 협상을 하려고 시도했을 거야. 다짜고짜 날 죽여 버리려는 살의가 너무 진한 테러라서 누가 저지른 짓인지 정말 확실히 알겠구나.’
드디어 적이 누군지 감을 잡았다. 대상이 확실해지자 걷잡을 수 없는 분노가 일어났다.
‘이런 가랑이를 찢어 죽일 년 같으니라고. 아니지. 이년은 잡아다가 곱게 죽이면 안 돼. 똥물에 담갔다가 튀겨 죽여야 해. 아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절대 그냥 죽이는 것은 사양해야겠다. 사지를 자르고 얼굴을 태우고 고블린들에게 던져 줘야겠다.’
제법 악독하게 어떻게 죽일지를 생각해보자 조금은 화가 풀어지는 것 같았다.
[까뮤, 아까 말했던 커다란 미사일은 뭐야?]
[설명 드리겠습니다.]
소울은 까뮤의 친절한 설명을 듣자 커다란 미사일이 탄도미사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런 미친, 도대체 누가 나 하나를 죽이자고 탄도미사일을 발사했지? 탄도미사일을 쐈다는 것은 전쟁을 하자는 것이나 마찬가지의 의미인데? 설마 중국이나 러시아에서 쏜 것은 아니겠지? 아니야. 중국이나 러시아가 왜 나를 죽이려고 한반도를 향해 탄도미사일을 쏘겠어. 그럼 누가? 역시 오라클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었다.
모르는 것은 모르는 것이다.
소울은 당장 알 수 없는 사실을 굳이 알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까뮤, 내 핸드폰 어디 있지?]
[여기 있어요.]
까뮤가 보관하고 있던 핸드폰을 꺼내주자 소울은 박살이 난 핸드폰을 손으로 잡으면서 불연 듯 한 가지는 확실히 알 것 같았다.
[이 나쁜 년이 내 핸드폰을 통해서 위치를 알아냈구나.]
[그냥 녹여버릴까요?]
[그래. 네가 없애버려라.]
[네, 주인님.]
까뮤는 소울이 자신에게 다 깨진 핸드폰을 내밀자 두 손으로 받아서는 자신의 몸속으로 흡수해서 녹이고 분해시켜버렸다.
그 모습을 확인한 그는 이제 절대로 핸드폰을 통해서는 자신의 행적을 추적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안심했다.
[우리는 잠시 여기 숨어있도록 하자. 까뮤만 몸을 숨긴 상태로 이 근처로 누가 다가오고 있는지 살펴보고 나머지는 모두 여기 조용히 대기하고 있어라.]
[네, 주인님.]
[예스, 마이로드.]
[빠아!]
까뮤, 본, 렉시가 차례로 대답을 했다.
“뭘 좀 먹어볼까?”
화끈하게 공격을 당해서 그런지 차가운 비빔냉면이 먹고 싶었다.
까뮤의 아공간에서 인스턴트식품으로 만들어 놓은 비빔냉면 하나를 꺼내 맛있게 비벼먹었다.
그리고는 차분히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자신의 몸을 관조했다.
‘스피릿 파워! 이상 없고, 마나홀! 잘 돌아가고, 오러홀! 쌩쌩하군, 내단도 멀쩡하네. 그런데 이렇게 많은 기운을 가지고 있는데 내가 왜 비 맞은 개새끼처럼 도망을 다녀야 했던 거지? 제기랄! 실드 보다 훨씬 더 강력한 방어막이 필요해. 무협지에서 나오는 호신강기나 금강불괴 같은 기공을 찾아서 연성해야겠어.’
아무리 B+급 능력을 가지고 있는 멀티 능력자면 뭐하겠는가?
이렇게 정신없이 도망만 쳐대는 별 볼일 없는 존재인데 말이다.
소울은 정신없이 두들겨 맞으면서 꼬리를 말고 도망쳐야했던 자신의 행동이 생각나자 절로 얼굴이 붉어졌다.
가만히 생각을 해보면 자신에게는 디스트로이어, 크레센트, 디바인 쉴드 같은 훌륭한 무기와 방어구가 있었다. 침착하게 잘 대처했다면 얼마든지 자신의 소환수들 앞에서 망신살이 뻗히지 않아도 될 성싶었다.
하지만 어떻게 생각을 해도 탄도미사일을 막는 것만은 불가능해보였다.
‘쓰벌, 탄두로 전술핵을 쓰지 않을 것을 천만다행으로 생각해야겠군.’
결론을 내리자 소울은 다시 뻔뻔한 예전의 얼굴로 돌아갔다.
어차피 개망신을 당했어도 자신의 소환수 앞이다.
이놈들이 어디 가서 자신의 부끄러운 비밀을 까발리고 다니지는 않을 테니 사실 이제 더 쪽팔릴 일도 없었다.
[까뮤, 너를 통해서 내가 밖을 볼 수 있을까?]
[네, 아마 될 거예요. 주인님과 저는 서로 영혼이 연결되어 있잖아요.]
[그렇지.]
소울은 까뮤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어 주고는 정신을 집중했다.
까뮤도 역시 소울에게 정신을 집중시켰다.
그러자 소환력이 까뮤에게 조금 넘어가는 느낌이 들면서 시야가 살짝 바뀌었다.
‘시야 전체로 보는 것도 좋겠지만 한쪽에 PIP 기능이나 멀티비전처럼 보이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
자신의 시야 한쪽에 까뮤의 시선을 띄운다는 생각을 하자 곧 자신이 상상한데로 멀티비전처럼 한쪽에 까뮤가 보는 자신의 얼굴이 떠올랐다.
[이거 재미있는데?]
[주인님, 그럼 올라가서 주변을 한번 살펴볼까요?]
[그래. 천천히 움직여봐. 갑자기 움직이면 놓칠 수 있으니까.]
[네, 주인님.]
세계적으로 전쟁준비가 가장 잘 된 나라이자 방공능력도 수위에 있는 대한민국의 영토 안에 탄도미사일을 거침없이 쏘는 놈들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 아무리 조심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비겁하다고 욕해도 할 수 없다.
목숨은 하나뿐이다.
괜히 섣불리 움직였다가 잘못해서 한방에 훅 가는 상황이 생긴다면 그것은 개죽음이나 다를 바가 없다.
소울은 최악의 경우 자신이 죽었다고 믿게끔 시체라도 하나 가짜로 만들어서 내주고 조요히 잠적할 용의까지 있었다.
[잘 보이세요?]
[응, 잘 보인다.]
까뮤가 지상으로 올라갔다.
그러자 까뮤의 시선을 통해 주변 일대가 환하게 보였다.
단지 시선만이 아니었다.
뭘 어떻게 했는지 모르지만 까뮤를 통해 시각은 물론 소리와 냄새, 바람의 움직임까지 느껴졌다.
거의 자신이 지상을 부유하고 있는 느낌이 그대로 들었다.
‘이거 아주 대박인데? 까뮤는 역시 까면 깔수록 자꾸만 까고 싶게 만드는 녀석이구나. 이런 능력이 있었다니.’
새로운 까뮤의 능력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이제 얼마나 거리가 떨어져야 하는지 알고 싶었다.
[까뮤야, 100m 단위로 내가 있는 곳과 멀어지도록 해.]
[네, 주인님.]
100m, 200m, 300m, 400m, 500m 조금씩 거리를 벌리는 까뮤의 행동에도 소울은 감각이 조금도 떨어지지 않자 이번에는 조금 욕심을 내기로 했다.
[이제 500m 단위로 움직여봐!]
[네, 주인님.]
500m, 1000m, 1500m, 2000m, 2500m, 3000m…….
까뮤가 3000m를 넘어가자 뭔가 묘한 감각이 느껴졌다.
마치 감각이 흐려지는 느낌이었다.
[다시 100m 만 돌아와 봐!]
[네.]
확실히 3000m 안으로 들어오자 감각이 다시 예민해졌다.
[오케이, 3000m 까지는 내가 밖에 나간 기분이야. 그렇지만 더 멀어지니까 감각이 떨어지기 시작하는 것 같아. 이제 다시 100m 단위로 멀어져봐.]
[네, 주인님.]
소울은 이렇게 까뮤를 통해서 감각을 공유하는 법을 자연스럽게 배우면서 조금씩 익숙해져갔다.
3500m 까지는 그런 대로 견딜 만 했다.
하지만 4000m 가 넘어가자 너무 흐릿한 감각에 더 이상은 힘들다는 것을 직감했다.
여러 가지 실험을 해보자 4000m 까지는 다른 감각을 포기하고 한 가지 감각에 집중하면 3000m 안에서 느끼는 감각처럼 확실하게 느낄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렇게 되면 최대 4km까지 시야를 확보할 수 있다는 말이나 마찬가지다.
[까뮤야, 이제 주변을 수색해보도록 해. 하늘에는 뭐가 떠있는지도 확인해보고.]
[네, 주인님.]
까뮤는 즉시 허공으로 높이 솟구쳤다.
소울과의 감각의 공유가 끊어졌지만 대신 주변 일대를 한눈에 볼 수 있었다.
[하늘 높이 드론이 떠 있어요. 전투기도 종종 다니고 공격헬기와 정찰헬기가 일대를 돌아다니고 있네요. 수송헬기에서 사람이 뛰어 내리고 있는데 조금씩 마스터가 있는 땅을 향해 다가가는 것 같아요. 모두 총을 들고 있어요.]
[그래? 그럼 수송헬기에서 뛰어 내린 사람들에게 가까이 다가간 후에 나와 감각공유를 하도록 해봐.]
[네, 마스터.]
드론이나 헬기는 모르지만 수송헬기에서 뛰어 내린 총을 들고 있는 자들은 자신이 숨어 있는 땅속까지의 거리가 3000m 이상 떨어져있지 않았다.
까뮤와 다시 감각공유가 일어나자 소울은 기절할 듯 놀랐다.
아파치 가디언 공격헬기 3대로부터 공격을 받을 때 어느 정도 짐작을 하고 있긴 했지만 실제로 직접 눈으로 확인하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 미친 년, 주한미군을 동원해서 나를 공격한 거였어?’
소울은 당장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물 건너갔다고 생각했다.
자신을 공격한 배후가 오라클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녀와 동조한 세력이 단지 주한미군 만인지 아니면 미국 정부인지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주한미군 만으로도 어지간한 중소국가는 가루로 만들 만한 전투력을 가지고 있다. 만약 미국이 작정을 하고 자신을 죽이려고 한다면 자신은 죽을 때까지 양지로 나올 수 없을 지도 모른다.
아니 차라리 음지로 확실하게 사라져 미국 정부, 아니 미국이란 나라 자체를 콩가루로 갈아버릴 용의도 있었다.
소울은 도저히 화가 나서 견딜 수 없었다.
땅속에 두더지처럼 숨어 있는 것도 화가 나는데 자신을 죽이려고 저렇게 버젓이 남의 나라의 영토를 휘젓고 다니는 놈들을 보자 속에서 열불이 끓어올랐다.
‘들키지 않고 저놈들을 쓸어버릴 방법은 없을까? 아! 있다.’
생각해보니 좋은 방법이 하나 생각났다.
바로 옥사나가 준 몬스터 변신주술서가 있었다.
몬스터로 변신해서 공격한다면 틀림없이 저들의 눈을 피해서 움직일 수가 있을 것이다.
============================ 작품 후기 ============================
* Merry Christmas & Happy New Year! 즐거운 크리스마스 보내세요!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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