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OULNET-334화 (334/492)

00334  제 84 장 - 암운  =========================================================================

소울은 도시락 하나로는 역시 부족했는지 어머니가 끓여주신 김치찌개와 함께 밥을 세 공기나 먹고 나서야 숟가락을 놓았다.

소울과 가족들은 거실로 자리를 옮겨 커피와 차를 마셨다.

이렇게 오붓하게 가족끼리 모여 대화를 나누니 복잡했던 머리가 한결 가벼워졌다.

“오빠, 우리 모두 능력자가 된 것은 알고 있지?”

“그럼.”

당연히 알고 있다.

가족들에게 소울넷 상점에서 소울 크리스털을 왕창사서 소망이를 통해 넘겨 준 것이 소울 자신인데 모를 리가 없었다.

소현은 소울에게 자신의 무용담을 자랑하고 싶어서 입이 근질근질해보였다.

그의 얼굴 앞에 자신의 얼굴을 바짝 들이밀고는 열심히 큐브에 들어가서 활약한 얘기를 한바탕 시원하게 쏟아냈다.

“……그렇게 해서 내가 레인저로 전직을 하게 된 거야. 오빠! 어때? 나 대단하지?”

“응, 정말 대단하다. 어떻게 그런 상황에서 오크를 한방에 보내 버릴 수 있었는지 놀랍다.”

소울이 그녀의 장단에 맞춰주자 소현은 의기양양해서 고개를 치켜들고 잔뜩 교만한 표정을 지었다.

“앞으로 큐브는 내가 싹 정리해놓은 테니까 오빠는 아무 걱정 말고 나만 믿어.”

“그래 고맙다. 우리 소현이 때문에 내가 다 마음이 놓인다.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소망이도 잘 좀 부탁한다.”

“오호호호홋! 그래. 그래!”

한껏 교만해진 소현의 표정을 쳐다보던 김혜진 여사가 도저히 못참겠는지 지나가면서 던지는 말투로 슬쩍 치고 들어왔다.

“소현아, 그런데 그때 오크를 죽인 것은 내 윈드커터 아니었니?”

“아이참, 엄마가 죽인 놈은 고블린 새끼 한 마리잖아요, 그때 그 오크를 죽인 것은 접니다요.”

“네가 아니고 나라니까.”

“아닌데요.”

“어허, 맞다니까.”

“아니라니까요.”

갑자기 오크 한 마리를 죽인 것 가지고 김혜진과 소현의 기 싸움이 시작했다.

결과야 안 봐도 뻔한 것이라 오히려 좀 식상한 싸움이었다.

소울은 슬쩍 고개를 반대로 돌려 소망이를 쳐다봤다.

“좀 성과가 있었어?”

“응, 아버지와 어머니, 나와 소현이 모두 E-급 능력자로 승급했어. 서머너즈 길드에서 최적의 퀘스트를 안내해줘서 전직도 무사히 마쳤어.”

“그래?”

소울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는 결과에도 불구하고 살짝 놀란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그의 반응에 고무됐는지 소망은 한껏 얼굴에 자신감이 찼다.

사실 소울 크리스털을 그렇게 퍼 먹이고, 큐브 내의 각종 퀘스트를 최적화해서 제공했는데 그동안 E-급 능력자도 안 됐다면 오히려 크게 실망했을 것이다.

“다들 직업이 뭔데?”

“아버지는 팰러딘, 어머니는 소서러, 나는 글라디에이터, 소현이는 레인저야.”

“그럼 아버지가 탱커, 어머니는 누커, 넌 근접 딜러, 소현이는 원거리 딜러네?”

“맞아. 가족끼리 모여서 파티를 하려는 생각이라면 역할은 그렇게 하는 것이 좋을 거라고 조언을 받았어. 참 중간에 실비아 비서가 같이 껴서 5인 파티로 퀘스트를 했어.”

“실비아라면 나쁘지 않지. 하지만 역시 힐러가 있어야겠다.”

서너머즈 길드의 누군가가 나름 균형 잡힌 파티를 짜준 것 같았다. 그렇지만 힐러까지 포함된다면 더욱 안정적인 파티가 될 것 같았다.

자신이 이 파티에 끼면 더할 나위 없이 안전하겠지만 그렇게 되면 등급의 차이가 너무 심해서 서로에게 좋지 않다.

‘유정아가 새롭게 영입한 힐러가 있다고 했지. 능력이 고만고만하면 같이 붙여주면 좋겠구나.’

높은 등급의 힐러라면 당장 자신에게 데리고 와서 인사라도 시켰을 테지만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을 보면 유정아가 영입한 힐러는 분명히 하위 등급의 힐러가 틀림없다.

무엇보다 가족의 안전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소울이라 가족파티에 당장 힐러를 끼어 넣고 싶었다.

만약 힐러를 파티에 넣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자신의 테이민 비스트인 트로트라도 꽂아 넣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러고 보니 그레이 트롤 오십 마리를 포로로 잡아서 유정아에게 넘겨준 것이 생각났다.  지금쯤이면 포션이 만들어져 마구 쏟아질 때가 됐다. 조만간 무한 포션 사냥으로 궁극의 폭렙이 가능해질 것이다.

“어쭈? 피해?”

“헤헤헤, 엄마, 나 민첩계 능력자야. 더 이상 엄마의 그 허접한 손바닥 신공에는 안 당한다고.”

“호호호, 그래? 바인딩!”

김혜진 여사의 손을 피한 소현이 두 팔을 허리에 올리고 당당한 자세로 말하다가 갑자기 바인딩 마법에 몸이 묶이자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엄마!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지. 마법이라니? 내가 몬스터야? 마법을 쓰게?”

“아니긴 뭐가 아니야?”

쫙!

악!

결국 소현의 등짝에 통렬한 일격을 가한 김혜진 여사는 소현의 귀를 잡아 소파로 다시 끌고 오더니 팔소매를 걷어붙였다.

“자, 다시 처음부터 얘기해보자. 내 윈드커터가 맞는지 네 그 힘없는 화살이 맞는지.”

“아야! 엄마, 이건 좀 놓고 말해.”

“말이 짧다.”

“아악! 제발 좀 놓고 말씀하세요. 이잉!”

귀가 잡혀 도망가지도 못하는 소현을 바라보며 다들 안 됐다는 표정을 지었다.

세 남자는 서로 눈짓을 하더니 부엌으로 피하기로 잠정 결론을 내리고 슬쩍 소파에서 일어났다.

부엌에 있는 식탁으로 모인 그들은 아까보다 훨씬 편안한 표정을 지으며 남자들만의 대화를 시작했다.

“아버지, 어머니가 언제부터 저렇게 마법을 잘 사용하셨어요? 솜씨가 보통이 아니시네요?”

“하루 종일 같은 것만 쓰다보면 익숙해지기 마련이지. 아직은 큰 거 한방으로 해결할 능력이 되지 않으니 저렇게라도 해서 마법숙련도를 올려야지.”

“네에, 그렇군요.”

가재는 게 편이라고 아버지는 어머니의 상황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계셨다.

“참, 네 엄마가 마법서 구한다고 우리 큐브 코인까지 다 쓸어간 것은 알고 있니?”

이대산은 살짝 불만의 표정을 지으며 작게 속삭였다.

“그랬어요? 전 전혀 몰랐는데요?”

“그걸로 경매장에 가서 마법서를 구매하더구나.”

“그런데 경매장에서 마법서를 팔아요?”

“마법서 뿐만 아니라 별의 별 희한한 것을 다 팔더구나. 거긴 없는 게 없어.”

큐브 상점만 확인했지 아직 경매장에는 가본 적이 없어서 소울은 이대산의 말에 그저 고개만 끄덕여야했다.

“큐브 코인은 제게 넉넉히 있으니까 필요한 게 있으면 말씀하세요.”

“그래? 안 그래도 내가 지금 쓸 만한 방패 하나 봐둔 게 있거든?”

“형, 나도 칼 하나 봐둔 게 있는데 같이가서 한번 구경해볼래?”

“어? 그, 그래.”

아무래도 부엌으로 자리를 옮긴 것은 아버지와 소망의 합동작전이었나 보다.

두 사람은 눈을 반짝이면서 소울에게 달라붙더니 열심히 자신이 본 무기와 장비를 설명했다.

그 모습에 소울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김혜진 여사의 보이지 않는 카리스마에 눌려 큐브 코인을 모두 헌납하고 거지가 된 두 사람이 기댈 수 있는 것은 현재 자신밖에 없었다.

전직을 하고 나서도 원하는 무기와 장비를 구할 수 없자 답답한 심정을 토로해놓을 수 있는 대상도 역시 큰 아들이자 형 밖에 없었을 것이다.

소울은 그런 두 사람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했다.

하지만 순서가 잘못됐다.

얘기를 들어보니 특별히 비싼 무기도 아니었고 더 쉽게 구할 수 있는 방법을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아버지, 그거 아세요?”

“뭘?”

“두 사람도 이제 서머너즈 길드의 길드원이라는 사실이요.”

“그래?”

“아버지는 모르셨다고 해도 소망이 넌 알고 있었을 거 아냐?”

“응, 그건 나도 잘 알고 있지.”

“그런데도 지금 내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어?”

소망은 말똥말똥 눈을 껌뻑거리며 소울을 쳐다봤다.

‘난 아무것도 몰라요!’라고 눈이 말을 하는 것 같았다.

그걸 보니 이 녀석이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모양이다.

“서머너즈 길드에는 초보 능력자들을 위한 육성시스템과 지원시스템이 있잖아?”

“아!”

그제야 소망은 소울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굳이 공격대나 레기온을 찾지 않아도 실비아 비서에게 말만하면 길드 무기고에서 필요한 무기와 장비를 등급에 맞춰 빌려줬을 것 아냐?”

“내가 깜빡했네.”

이대산은 소울과 소망이 하는 대화를 듣자 호기심이 가득한 눈을 빛내며 물었다.

“소울아, 그게 무슨 말이냐? 길드 무기고에서 무기와 장비를 빌려준다고?”

“그렇습니다. 길드원들이 획득한 아이템은 자신이 쓸 것을 제외하고 일단 길드의 무기고에 넣습니다. 필요한 사람이 가져가 쓰면 그것으로 포인트를 받아서 나중에 자신이 원하는 무기를 빌릴 수 있습니다.”

“그럼 포인트가 없는 사람은 어떻게 하냐?”

“일단은 길드에서 포인트를 지원해줍니다. 하지만 나중에 그만큼의 포인트를 반드시 갚아야 합니다. 기간 안에 갚지 못하면 길드에서 정산을 할 때 일정량을 나눠서 떼어가기도 합니다.”

“그런 시스템이 있었구나.”

사실 이것은 시중에서 통용되는 포인트 시스템을 차용한 것에 불과했다.

하지만 누구처럼 포인트 시스템으로 고객을 유혹해서 모았다가 3개월 만에 없애버리는, 그런 몰지각한 행동을 하는 대기업의 포인트 시스템과는 다르다.

서머너즈 길드에서 사용하는 포인트 시스템은 길드원들이 획득한 아이템을 길드 내부에서 자체적으로 최대한 활용을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 것이라 다른 곳과는 달리 상당히 활발하게 이용되고 있었다.

“생각해보니 내가 실수했네. 형한테 큐브 코인을 빌려서 무기와 장비를 사려고 했는데 이제 보니 더 쉬운 방법이 있었어.”

“뭐 실수까지는 아니지. 실비아 비서를 통해서 일단 필요한 무기와 장비를 구할 수 있는지 물어봐. 만약 마땅한 무기와 장비를 찾을 수 없다면 그때는 내가 큐브 코인으로 사줄게.”

“알겠어. 형! 고마워!”

“천만에.”

이대산과 소망은 소울의 말에 한시름 놓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버지, 그런데 소울푸드는 다닐 만 하세요?”

“응, 아직 시작하는 단계라서 그리 어렵지는 않구나. 하지만 많이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제가 전문경영인을 데려다 놓아도 사장이 돌아가는 상황을 모르면 그 기업은 제대로 돌아가지 못합니다. 일단 아버지가 소울푸드 사장으로 취임하셨으니 지금부터 차분히 일에 대해 배워보도록 하세요. 비서실에 말해놓았으니 필요한 공부는 얼마든지 받으실 수 있을 거예요.”

“그래. 그래야지. 이번에는 내가 꼭 제대로 한번 잘 해보려고 한다.”

“잘하실 거예요. 믿습니다.”

소울은 아버지의 눈을 마주보며 믿음을 보여주었다.

물론 큰 기대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뭐를 하던지 손만 대면 망해버리는 마이너스의 손을 가지고 계신 분이라 처음부터 큰 기대를 하는 것은 아주 위험했다.

일단은 시스템적으로 소울푸드가 저절로 잘 돌아가게 만들어놓고, 아버지가 일에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적당한 일거리를 주는 방식으로 능력을 키워드릴 생각이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한 자리에 오랫동안 있으면서 일하다보며 언젠가는 없던 능력도 생겨서 한 회사를 잘 경영하게 되지 않을까 기대를 해본다.

물론 이런 방식을 과감하게 진행 시킬 수 있는 것은 전적으로 소울이 소울푸드에 100% 투자를 하고 지분의 100%를 가지고 사업을 시작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끝은 창대하리라!’

요새 식당에 가보면 벽에 이 문구를 쉽게 볼 수 있다.

소울푸드는 처음부터 세계 3대 메이저 곡물회사와 경쟁할 마음이 전혀 없다.

그저 서머너즈 길드와 소울 디펜스 등 소울과 관계된 회사의 직원과 가족 그리고 황해남도와 개성, 평양과 남포 정도의 영향권이 있는 주민들이 충분히 먹고 살 수 있을 정도의 각종 곡물만 생산할 수 있으면 족했다.

하지만 끝은 꼭 창대하게 번영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은 정말 간절했다.

가족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낸 소울은 소형전술차를 타고 서머너즈 길드 개성지부로 돌아왔다.

4층에 마스터 전용 사무실과 쉴 수 있게 초스피드로 단장을 끝낸 스위트룸이 마련되어 있었다.

사무실에 먼저 들어가 몇 가지 중요한 서류를 확인하고 서명을 했다.

해가 진 창밖을 잠시 바라보다 오늘은 그만 쉬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자 스위트룸으로 향했다.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눕자 회의로 인한 강행군 때문에 정신적으로 피곤했는지 금방 잠에 빠져 들었다.

북녘의 땅에서 비추는 겨울 달빛이 시린 자신의 얼굴을 보라는 듯 침대 위를 쓰다듬고 있었다.

차가운 북풍이 불어오는 소리와 함께 개성의 밤은 그렇게 조용히 하루를 마감하고 있었다.

* * * * *

============================ 작품 후기 ============================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유쾌한 하루 되세요.

선호작, 추천, 코멘트, 쿠폰, 후원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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