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32 제 83 장 - 오러 블레이드 =========================================================================
“일단 회의실로 모시겠습니다.”
“네.”
얼마나 급한지 소울에게 숨 돌릴 시간조차 주지 않았다.
그만큼 상황이 다급해진 것이다.
3층에 마련된 회의실로 들어가자 서머너즈 길드와 소울 디펜스의 핵심간부들이 모여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인사를 하려고 일어나는 모습에 소울은 자리에 앉으면서 만류를 하고는 그냥 가볍게 군례로 인사를 대신하게 했다.
말없이 다들 주먹을 쥐고 가슴에 손을 댔다가 떼고는 각자의 자리에 앉자 곧바로 회의가 시작됐다.
국정현 사무총장
유정아 고문
정일용 고문변호사
김영신 소울 디펜스 사장
나인권 소울 디펜스 정보부장
두보환 소울 디펜스 보안부장
테이블 위에 놓은 생수를 따서 컵에 따라 마시며 빠르게 회의실에 앉은 사람들을 훑어보자 국정현 사무총장이 바로 급한 현안을 끄집어냈다.
“정부에서 당장 개성큐브에 대한 정보를 공개하고 개성큐브의 출입제한도 해제하라는 최후통첩이 내려왔습니다.”
“정부라면 누구를 말하는 겁니까? 대통령입니까? 총리입니까? 능력개발청입니까?”
“네?”
소울의 말에 국정현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순간 불길한 예감이 든 소울이 다시 한 번 물었다.
“혹시 정부에서 정식으로 공문을 보내 요청한 것입니까?”
“아니, 그, 그것이…….”
국정현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갑자기 말을 더듬었다.
“이런 국정현 사무총장님이 제대로 당했군요. 아마 이름만 대도 알 만한 사람들이 비서를 통해서 수시로 전화를 걸어 압력을 가했겠지요. 그게 지금 권력을 잡은 놈들의 전형적인 전술이자 수법입니다. 공식적으로 문서를 작성해서 보내면 책임을 져야하니 이런 방법을 자주 써먹고 있습니다.”
정일용 고문변호사가 딱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국정현을 쳐다봤다.
“진정하시고 일단 누구누구한테 전화를 받았습니까? 혹시 대통령도 전화했습니까?”
“아닙니다. 총리실에서 안부전화라며 전화 한 번 주시고 몇몇 장관과 차관 비서가 전화했습니다.”
“국정원에서도 전화가 왔나요?”
“국정원장과 국방장관은 제게 매일 전화를 걸어서 압박을 가했습니다.”
“그럼 일단 몸통은 국정원장과 국방장관이네요. 하는 짓을 보니 총리도 어느 정도 연관이 있고요.”
대충 얘기를 들어보니 답이 나왔다.
“다른 곳은 없습니까?”
“국회의원 몇 명이 노골적으로 협박을 해왔습니다. 재벌가 비서실에서도 은근한 압박을 해왔습니다.”
“국정현 사무총장께서는 지금 즉시 리스트를 작성해주세요. 협박, 압박, 요청, 이렇게 세 가지로 나눠서 누가 전화를 직접 걸었고 누가 비서실을 통해서 전화를 걸었는지 하나도 빼놓지 마세요.”
“그건 제 비서가 이미 정리해놓았습니다.”
“그럼 가져오라고 하세요.”
“네, 마스터.”
국정현이 자기 비서를 부르러 잠시 밖으로 나가자 소울은 김영신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무래도 대 정부 협상은 앞으로 김영신 사장이 맡아 줘야겠습니다.”
“제가요?”
“네, 기가 어지간히 센 사람이 아니면 힘들 것 같아서요. 할 수 있으시겠습니까?”
“해보겠습니다.”
“그럼 잘 부탁합니다.”
소울은 더 이상 국정현에게 대 정부 관계를 맡겨 놓았다가는 서머너즈 길드가 이리저리 휘둘리다 못해 뿌리 채 뽑힐 것만 같다는 불길한 생각이 들어 서둘러 김영신에게 일을 맡겼다.
“마스터, 여기 있습니다.”
“고마워요. 앞으로 대 정부 관계는 김영신 사장이 맡아서 하는 것으로 합시다.”
“아! 잘됐네요.”
비서에게 받은 목록을 테이블에 내려놓은 국정현은 소울의 말에 섭섭함 보다는 시원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동안 얼마나 당했는지 대 정부 관계의 일을 보는 것이 지긋지긋했던 모양이었다.
“당장 김영신 사장이 일을 하기는 벅찰 수도 있으니 정일용 변호사를 붙여주면 좋을 것 같아요.”
“으음, 그것도 나쁜 생각은 아니네요.”
“저도 찬성합니다.”
유정아의 발언에 소울이 고개를 끄덕이자 국정현도 찬성을 했다.
“그럼 일단 대 정부 관계는 이 정도로 마무리 짓고 우리에게 압력을 행사하거나 협박을 한 놈들을 어떻게 해결할지 얘기를 나눠봅시다.”
“살생부를 만들자는 겁니까?”
나인권 정보부장의 말에 소울이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비슷합니다. 우리가 너무 만만하게 보였던 모양입니다. 그러니까 최소한 몇 놈은 본보기로 맛을 보여줘야 합니다.”
“마스터, 사실 비슷한 계획을 정보부와 보안부에서 준비 중입니다.”
“그래요? 그럼 일단 조금 더 기다려보지요. 대신 빨리 해결하도록 합시다.”
“네, 마스터.”
나인권 정보부장과 두보환 보안부장이면 믿을만했다.
“능력자협회 회장과 능력개발청 청장의 움직임은 어떻습니까?”
“아주 협조적입니다.”
“그건 참 다행이군요. 정부가 압력을 행사하려고 해도 주무부처인 능력개발청에서 움직이지 않으면 법적인 효력을 가질 수 없습니다. 능력개발청은 이미 개성필드의 지분이 어떻게 정리됐는지 알고 있으니 절대 나서려고 하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실질적으로 우리에게 무력을 사용할 수도 없으니 결국 협박이나 압력이나 전부 공갈에 불과합니다.”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국정현 사무총장께서 그래도 사흘이나 잘 막아줬으니 제 몫은 한 셈입니다.”
소울은 그동안 국정현에게 들어온 협박과 압력이 결코 범상치 않으리라 짐작할 수 있었다. 오히려 권력의 생리를 너무나도 잘 아는 국정현이기 때문에 아마 더욱 힘들었을 것이다.
차라리 그걸 모르면 오히려 무식하게 나갈 수가 있는데 국정현은 너무 많이 아는 게 병이었다. 결정적으로 국정현은 김영신 같이 대가 센 유형이 아니었다.
“미 대사가 자주 전화했네요. 백악관 비서실에서도 전화가 왔고요. 이건 뭡니까? 국가 정보국(DNI)에서 왜 우리한테 전화를 했죠?”
“사실 정부를 제외하고 개성큐브에 가장 많은 관심을 보인 곳이 미국입니다. 저희를 압박한 국회의원과 정부 각료들 뒤에 미국이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버릴 수 없었습니다.”
그제야 소울은 국정현이 느꼈던 압박의 정도를 대충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해는 이해고 현실은 현실이었다.
“국정현 사무총장은 미국과 채널을 만들어 보세요. 단일 창구여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그 정도는 문제없다는 표정을 짓는 국정현을 보며 소울은 살짝 미소를 지었다.
“미국만 해결되면 다른 나라들의 압력은 저절로 해결됩니다. 그리고 당장 새로운 작전을 시작합시다.”
“새로운 작전이요?”
“네, 그렇습니다. 작전명은 ‘김선달’입니다.”
“김선달이라면 대동강 물을 팔아먹었다는 봉이 김선달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다들 잘 이해가 안가는 표정이다.
뭐 설명을 제대로 안했으니 그럴 수도 있다.
“잘 생각해보세요. 개성큐브의 독점은 1주일입니다. 하지만 그런 사실을 누가 알겠습니까? 다들 우리 서머너즈 길드가 독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을 겁니다. 그러니까 앞으로 남은 사흘 동안 개성큐브의 출입권한을 팔아치우자는 겁니다.”
“아! 그런 수법이 있었군요? 정말 대단한 잔 머리, 아니 아이디어입니다.”
유정아가 살짝 실언을 하긴 했지만 그녀가 크게 놀라는 모습이 은근히 귀엽게 보였다.
놀란 것은 유정아 만은 아니었다.
사실 회의실에 있는 모두가 놀라고 말았다.
“화랑, 서울, 월야, 천마 길드가 개성필드에 대한 지분 10%씩을 각각 가지고 있습니다. 이들은 당장 우리보고 개성큐브를 개방하라고 난리입니다.”
“일단 겉으로는 무시하세요. 대신 은밀히 담당자를 따로 불러서 며칠 안에 개방시켜주겠다고 달래면서 개성필드 지분을 팔거나 위임할 수 없도록 추가로 제약을 걸어놓으면 됩니다.”
“그럼 누구한테 출입권한을 팔겠다는 말씀이십니까?”
“제가 출입권한을 팔자고 말하고 있는 대상은 개성큐브에 대한 정보를 알고 싶어 하는 국내외의 대형 길드와 정보기관입니다. 미국만 하더라도 국가 정보국(DNI)을 중심으로 연간 100조원 이상의 예산을 소모하면서 전 세계를 대상으로 정보활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들에게서 몇 백억 뜯어내는 것은 일도 아니지요.”
소울의 배포에 다들 입을 딱 벌렸다.
초강대국 미국을 벗겨먹으려고 하는 그의 태도를 보며 남자들은 다들 은근히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그게 가능 하겠습니까?”
“아쉬운 놈은 우리가 아닙니다. 이건 정일용 변호사가 국정현 사무총장을 좀 도와야할 것 같네요.”
“아닙니다. 저보다는 유정아 고문께서 더 능력이 있으십니다.”
국정현의 말에 정일용 변호사를 붙여주려던 소울의 시도는 정일용 변호사의 말에 유정아를 쳐다봤다.
“그럼 유정아 고문이 좀 맡아서 해주세요.”
“알겠습니다. 당장 움직이도록 하지요. 대신 저에게 전권을 주셔야 합니다.”
“물론이지요. 하지만 시간은 단 3일 뿐입니다. 그 뒤로는 외국의 길드와 정보기관의 출입은 엄금하겠습니다.”
“잘 알았습니다.”
일단 운을 떼자 다들 한마디씩 좋은 의견을 주었다.
그리고 개성큐브를 이용해 먹을 방법은 무궁무진했다.
“개성큐브 주변의 부동산을 모두 정리해뒀습니다. 이건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그것보다 먼저 서머너즈 길드 본부가 있는 강남구 세곡동의 땅값의 변화를 알고 싶네요.”
“크게 폭락했습니다. 이상하게도 강남필드가 사라졌는데 땅값이 내려가고 있습니다.”
“그럼 그곳은 만약을 대비해서 그냥 가지고 있도록 합시다. 당장은 충격이 커서 그런 모양인데 사실 강남필드가 없어졌으니 그곳은 오히려 땅값이 올라야 정상입니다.”
“저희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누가 장난을 치고 있는지도 모르지요. 어쨌든 개성큐브 주변은 앞으로 크게 개발될 가능성이 높으니 철저한 계획을 세워서 개발하도록 하세요. 그리고 대 몬스터 장벽 안은 그 어떤 건물도 세울 수 없도록 조치하세요.”
“네, 마스터.”
언제나 이놈의 땅값이 요동치는 것이 문제였다.
하지만 북한이 안정되고 나면 땅값도 점차 안정되어갈 것이다.
“고구려 길드 문제는 어떻게 됐지요?”
“고구려 길드와 저희 서머너즈 길드는 마스터만 허락하시면 앞으로 동맹을 맺어 최대한 협력을 하기로 했습니다.”
“평양필드의 중대형 몬스터 웨이브 문제는 어떻게 됐지요?”
“네버다이 길드가 완전히 발을 빼는 대신 우리 길드가 49%의 지분을 가지고 적극 지원을 하기로 했습니다. 지원의 규모는 대 몬스터 장벽 변경을 통한 중대형 몬스터 사체 획득에서부터 서머너즈 길드 소속 능력자 파견까지 넓고 다양합니다.”
“잘됐군요. 정일용 변호사가 확인해보시고 특별한 문제가 없다고 판단되면 동맹 서류에 서명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국정현 사무총장이 바쁜 가운데에서도 큰일을 해냈다.
물론 고구려 길드의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에다 서머너즈 길드가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고 덤으로 개성큐브까지 독점하고 있으니 어지간한 양보는 다 해줬을 것이다.
하지만 소울이나 국정현 모두 동맹을 맺을 상대에게 불공정한 계약을 맺어 화기를 상하게 하고 싶어 하진 않았다.
그리고 소울에겐 고구려 길드와의 동맹이 시작에 불과했다.
“중대형 몬스터 웨이브에 대한 정부와 해외 각국의 대처사항은 어떻습니까?”
“백두원 협회장과 지동현 청장이 적극적으로 나서줘서 순조롭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특히 세계능력자협회 패트릭 부회장과 얘기가 잘 됐다고 합니다.”
“오라클에 대한 실드는 제대로 쳐주겠다고 하던가요?”
“책임지고 실드를 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또한 이번 기회에 오라클을 쳐내겠다고 의욕이 대단합니다.”
국정현의 말에 소울은 잠시 머릿속으로 생각을 해보곤 정말 일이 잘되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가지 걱정되는 것은 오라클의 뒤에 있는 괴물 같은 정체불명의 우주의 타 차원의 상위 지성체들이다. 이놈들이 변덕을 부려서 지구의 행사에 끼어들지만 않으면 젊고 아름다운 여자에 불과한 오라클은 세계능력자협회에서 설자리가 없어질 것이다.
‘오라클과 그녀의 뒤에 있는 상위 지성체들의 힘을 빼놓으려면 코어를 확인하고 큐브로 바꿔놓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한 두 개도 아니고 지구에 열린 이 많고 많은 몬스터 필드의 코어를 어떻게 전부 확인하지?’
절대 혼자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반드시 조력자가 필요하다. 그것도 아주 강력한 조력자가 많이 필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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