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19 제 80 장 - 사(死)의 찬미 =========================================================================
큐브 3층에서 4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밟고 올라가자 까뮤는 뭐가 그리 기쁜지 계단위로 오르내리며 뛰어 다녔다.
그때마다 까뮤가 입고 있는 옷들이 한 번씩 바뀌었는데 가끔은 자신이 보기에도 정말 민망한 옷들을 잘도 바꿔 입었다.
‘아냐, 절대 아냐. 내가 저런 취향일리 없어.’
소울은 끝까지 자신을 부인하고 서둘러 계단을 올라 4층으로 갔다.
큐브 4층에 오르자 확실히 큐브 1층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넓고 커진 것이 느껴졌다.
큐브 중앙에 있는 광장 분수대 앞으로 가자 어느새 장백두 제3 레기온 대장이 올라와 제2 캠프를 차려놓고서 서머너즈 길드 소속 길드원들을 진두지휘하고 있었다.
“마스터, 올라오셨습니까?”
“수고가 많아요.”
소울의 등장에 장백두를 비롯한 길드 공격대 대장들이 일제히 몸을 돌리고 군례를 올렸다.
가볍게 한손을 들었다 내린 소울은 장백두에게 큐브 4층에 대한 정보를 받아 확인했다.
큐브 4층은 확실히 등급이 달라서 그런지 새로운 몬스터의 종류도 많고 게이트를 통해 갈 수 있는 장소도 많았다.
하지만 역시 E-급으로 시작하는 큐브 4층은 소울에게 그리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큐브 4층은 오크전사, 리자드맨 전사, 홉고블린 전사 등 전사 시리즈가 참 많군. 하지만 나한테 맞는 레벨은 아니야. 여기는 길드원들에게 맡겨두고 나는 차라리 지하의 언데드 던전이나 개척하는 것이 좋겠다.’
소울은 마음의 결정을 내리고 장백두를 쳐다봤다.
“난 지금부터 지하1층으로 내려가서 언데드 던전을 개척하겠어요.”
“알겠습니다. 그렇게 보고 하겠습니다.”
장백두는 말을 많이 하는 스타일이 아닌지 바로 목례를 취했다.
소울은 그런 장백두가 왠지 든든해 보여 그의 어깨를 몇 번 두드려줬다.
큐브 4층 북쪽 게이트 구역으로 올라간 소울은 지하1층으로 내려가는 녹색의 테두리를 가진 게이트를 향해 똑바로 걸어갔다.
‘이제 보니 저 게이트의 테두리 색깔이 등급을 나타내고 있었구나. 그렇다면 지하1층 언데드 던전은 말 그대로 E급 던전이 되겠군.’
스팟!
게이트를 통해 지하1층으로 내려왔다.
지하1층은 가로와 세로가 대략 100m쯤 되어 보이는 작은 마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지하의 마을이라서 일부러 그런 건지, 전체적으로 좀 어두운 분위기였다.
하지만 규모만 작았다 뿐이지 큐브 1층에 있는 대부분의 기능이 이곳에서도 잘 작동되고 있었다.
지하1층 중앙에 있는 분수대 앞에 있던 서머너즈 길드 공격대 대장과 그의 파티원들이 소울을 보자 곧바로 일어나 군례를 올렸다.
이제 큐브 각층의 분수대는 서머너즈 길드의 연락사무소가 되버린 것 같았다.
한손을 들어 답례를 한 그는 분수대를 스쳐 그대로 북쪽을 향해 걸어갔다.
검은 절벽 같이 보이는 게이트 구역으로 들어서자 단 한 개의 게이트가 열려 있는 것이 눈에 보였다.
‘사(死)의 찬미?’
게이트 입구에 ‘사의 찬미’라는 이름이 써져 있었다.
던전의 이름치고는 상당히 문학적이라는 생각을 하며 한손으로 물결치는 게이트를 살살 쓰다듬었다.
아마 이곳이 그 말로만 듣던 ‘언데드 던전’이라는 곳이리라.
언데드 던전이건 데드 던전이건 간에 그에게는 큰 위협이 되지 않다고 생각한 소울은 거침없이 게이트 안으로 몸을 던졌다.
스팟!
눈 깜빡할 사이에 소울의 몸을 먹어치운 게이트는 그의 몸을 지구에서 멀리 떨어진 새로운 차원의 세계로 옮겨 놓았다.
휘이이이잉!
축축한 땅에 두 발을 단단히 딛고 서자 차갑고 음습한 바람이 볼을 할퀴고 지나갔다.
하늘은 검은 잉크를 풀어 놓은 것 같은 먹구름으로 가득 차 있었고, 대지는 불에 태운 재를 뿌려 놓은 것 같은 짙은 회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위화감에 주위를 둘러보자 절로 몸이 오싹거렸다.
‘뭐야? 이거? 묘지잖아?’
이제 보니 사의 찬미라는 독특한 게이트를 통해 나온 곳은 묘지였다.
그것도 그 끝이 전혀 보이지 않는, 묘비가 끝도 없이 늘어선 넓고 광활한 언데드 던전이었다.
이 넓고 넓은 묘지 안에 도대체 얼마나 많은 시체들이 파묻혀 있을까 생각해보니 절로 끔찍한 생각이 들었다.
고개를 좌우로 돌리며 어디로 가야할지 망설이다 결국 정면에 보이는 커다란 석조 건물을 향해 걸어갔다.
저벅 저벅 저벅…….
소울과 푸티나 그리고 본이 걸어가는 소리가 주변을 울리며 넓게 퍼져 나갔다.
소름끼치는 적막 속에서 살아서 움직이는 생명체는 오직 자신들뿐이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100m나 걸었을까?
묘비와 봉분 사이에서 뭔가 희미한 물체가 흐느적거리며 다가왔다.
가만히 보니 공포영화나 좀비영화에서 단골로 등장하는 다시 살아난 죽은 시체, ‘좀비’의 등장이었다.
퀭한 두 눈구덩이에는 증오와 악의가 가득 찬 새까만 눈알이 붉은 혈기를 뿜어내었고, 이미 반 이상이 썩어 문드러진 몸에선 구더기들이 꼬물거리며 영역을 확장하고 있었다.
뒤틀린 팔다리와 말라비틀어진 내장의 흔적을 가진 몸으로, 어떻게든 빨리 다가와 살아 있는 인간의 피와 육체를 씹어 먹고 싶다는 욕망을 조금도 숨기지 않고 표출하는 것을 보니 과연 좀비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좀비를 살펴보는 사이, 어느새 그의 주변을 향해 다가오는 좀비의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수십 마리의 좀비는 순식간에 주변의 좀비들을 불러 모아 수백 마리로 늘어나고 있었다.
하지만 소울은 이런 좀비들의 등장에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자신의 몸은 이미 이 따위 좀비의 이빨이 박혀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강하고 질기다.
또한 저런 허접한 좀비 따위에게 잡혀 물릴 정도로 그가 무른것도 아니었다.
소울은 피식 냉소를 흘리며 본에게 말했다.
“본, 네가 처리하는 것이 좋겠다.”
“예스, 마이로드.”
그에게 정중히 군례를 올리고 난 본은 소울의 앞으로 나섰다.
입을 크게 벌려 악어 입을 만들어 스켈레톤 기병대를 토해내기 시작했다.
까득 까득 까라라라라라라!
스켈레톤 기병대가 쏟아져 나와 정렬을 하자 본은 그들의 옆에 다시 한 번 거대한 뼈 뭉치들을 마구 쏟아냈다.
뼈 뭉치들은 땅에 떨어진 즉시 해골을 중심으로 뼈다귀를 서로 맞추며 스켈레톤으로 변해 살아 일어났다.
본은 무표정한 얼굴로 그런 모습을 바라보며 자신의 가슴에 손을 깊이 쑤셔 넣어 보관하고 있던 마석들을 꺼냈다.
그리곤 스켈레톤 기병대와 새로 일어난 스켈레톤들을 향해 뿌리듯이 던지기 시작했다.
스켈레톤 기병대와 새로 일어난 스켈레톤들은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각기 다른 색깔의 마석들을 하나도 헷갈리지 않고 딱딱 입으로 받아먹었다.
그들의 몸에서 빛을 터져 나오며 곧 변태가 시작됐다.
스켈레톤 센츄리온에서 스켈레톤 커맨더로 변한 본의 모습은 예전에 비해 뭔가 더 중후한 무게가 느껴졌다.
스켈레톤 나이트 중 셋은 스켈레톤 센츄리온으로 업그레이드되고, 스켈레톤 랜서는 스켈레톤 용기병(dragoon)으로 변했다.
스켈레톤 샤먼과 스켈레톤 위저드의 숫자가 각각 열둘로 불었고, 스켈레톤 호스아처가 대폭 늘어났다.
스켈레톤 맘모스가 열다섯 마리로 늘어나 덩치를 급속히 키워가자 그것만으로 소울을 향해 다가오는 좀비들의 진군이 막혀버렸다.
휘이이이잉!
차가운 바람이 묘지 안을 핥고 지나가자 날개 달린 해골전투마를 탄 스켈레톤 커맨더, 본의 옆에 스켈레톤 센츄리온 셋이 해골전투마를 타고 나란히 섰다.
그들의 뒤로 스켈레톤 나이트 아홉이 정열하자 그 뒤로 스켈레톤 엘리트 스물일곱이 섰다.
소울과 푸티나를 포함한 그들의 주변으로 스켈레톤 샤먼과 위자드가 각각 열둘씩 자리를 잡고, 그들의 주변으로 크게 스켈레톤 용기병 여든하나와 스켈레톤 호스아처 여든하나가 이중으로 방진을 이뤘다.
가장 바깥으로 스켈레톤 맘모스 열다섯이 지속적으로 뼈 뭉치를 흡수하며 몸집을 불려 나갔다.
얼추 스켈레톤 기병단이 완성되자 본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주위를 살펴보더니 입을 활짝 벌렸다.
스으으으으으!
본의 입에서 하얗고 서늘한 연막이 마구 뿜어져 나왔다.
연막은 소울과 푸티나, 본과 스켈레톤 기병단을 제외한 주변으로 빠르게 퍼져 나갔다.
그 모습에 소울은 갑자기 이번에 얻은 서먼나이트 전용스킬들이 생각났다.
“네크로멘시!”
“뱀피릭 미스트!”
소울이 작게 중얼거리는 순간, 본과 스켈레톤 기병단의 몸체가 연한 보라색으로 은은히 빛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은 마치 보라색 빛으로 몸을 코팅한 것 같았다.
동시에 본이 사방으로 펼친 연막을 따라 연한 보라색의 기운이 물에 물감을 뿌리듯 빠르게 퍼져 나갔다.
그 연한 보라색 기운에 좀비들의 몸이 닿자 강한 산성 물질에 쇠가 녹아내리는 것 같은 소리가 들리며 그들의 몸이 빠르게 녹아내렸다.
네크로멘시는 서먼나이트 전용스킬로 언데드 소환수의 능력을 10%나 증폭해주는 스킬이다.
본과 스켈레톤 기병단의 몸이 보라색 빛으로 코팅한 모양으로 변한 것은 바로 이 네크로멘시 스킬이 제대로 걸렸다는 증거가 된다.
뱀피릭 미스트 역시 서먼나이트 전용스킬로 죽음의 안개를 살포해 저주와 속성 데미지를 주고 20%를 생명력으로 흡수하는 스킬이다.
등급이 E-급인 좀비는 물리면 좀비로 변하게 만드는 강력한 전염성을 빼면 사실 공격력은 F급에도 못 미치는 언데드 몬스터이다.
좀비 따윈 뱀피릭 미스트에 걸리면 한순간에 모든 기운을 쪽 빨리고 한줌의 핏물로 녹아버리게 되는 것이다.
풀썩 풀썩 풀썩…….
사방에서 좀비들의 썩어가는 살이 녹아내리며 힘을 잃은 뼈다귀들이 땅바닥으로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동시에 소울의 몸 안으로 묘한 기운들이 빠르게 빨려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게 도대체 무슨 기운이지. 분명히 생명력을 흡수한다고 했던 것 같은데…….’
소울은 ‘뱀피릭 미스트’ 스킬의 상세설명에서 분명히 뱀피릭 미스트는 죽음의 안개를 살포해 저주와 속성 데미지를 주고 20%를 생명력으로 치환하여 흡수한다고 알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자신의 몸에 들어오는 기운은 생명력이라기보다는 사기(死氣), 마기(魔氣), 음(陰)차원의 마나, 암흑물질(dark matter)같아 보였다.
신기한 것은 이런 기운들이 몸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자 자신의 스피릿 파워와 내단이 급격히 출렁거리더니 목이 마른 것처럼 마구 빨아들이는 격렬한 반응을 일으키고 있다는 것이다.
‘무슨 음양화합(陰陽和合)이나 음양합일(陰陽合一)도 아니고, 왜 이렇게 스피릿 파워와 내단이 이런 강렬한 반응을 보이는 거지?’
소울은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스피릿 파워와 내단의 반응을 보니 지금의 자신에게는 오히려 생명력을 흡수하는 것보다 훨씬 유익한 기운이 되는 것 같았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고, 자신이 기대했던 현상은 아니었지만 자신에게 이롭다면 굳이 그것을 막을 필요는 없었다.
본의 연막을 타고 소울의 뱀피릭 미스트가 빠르고 넓게 퍼져 나가는 만큼 바닥으로 쓰러지는 좀비의 숫자가 늘어났다.
동시에 소울의 몸으로 흡수되는 기운의 양도 늘어나고 있었다.
적당히 자신에게 쏟아져 들어오는 기운을 스피릿 파워와 내단으로 나눠준 소울은 본과 스켈레톤 기병단이 시간이 가면 갈수록 점점 더 강해지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아마도 언데드 던전인 이곳의 사기(死氣), 마기(魔氣), 음(陰)차원의 마나, 암흑물질(dark matter)같은 기운들이 몸에 흡수되면서 더욱 강해지게 만드는 것이 아닌가 생각됐다.
“본, 주변의 좀비를 모두 쓸어버려라.”
“예스, 마이로드.”
본은 소울의 명령에 스켈레톤 기병단을 바라봤다.
그러자 스켈레톤 기병단이 본의 명령을 듣고 주변으로 확 퍼져나가더니 눈에 보이는 언데드 몬스터들을 닥치는 대로 잡아 박살내기 시작했다.
이 주변은 좀비 밭인지 언데드 몬스터 대부분은 좀비였다.
가끔 구울이 보이기도 했지만 그건 정말 가뭄에 콩 나듯 했다.
반경 수 킬로미터를 초토화 시키고 있는 스켈레톤 기병단을 보며 소울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푸티나를 타고 다니면서 좀비들을 끌어 모아 뱀피릭 미스트를 펼쳐 한번이 수백 마리씩 녹이고 다녔다.
그렇게 1시간 이상을 주변의 언데드 몬스터를 잡으러 다니자 일대에 좀비들의 씨가 말라버렸다.
그냥 뼈만 남은 좀비를 가만히 내버려두면 나중에 이 뼈들이 이곳의 사기(死氣), 마기(魔氣), 음(陰)차원의 마나, 암흑물질(dark matter)과 같은 기운들과 결합되어 스켈레톤이 되어 되살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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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유쾌한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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